2014. 12. 30. 말씀나라
의롭다 함 받음에 대해
변 종 길 (고려신학대학원)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 2:13)
로마서 2:13의 ‘의롭다 함을 얻을 것이다’는 표현은 로마서 3:24, 28의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표현과는 가리키는 바 대상이 다르다. 앞의 것은 미래에 마지막 심판 날에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선언 받을 것을 말하지만(cf. 롬 2:16), 뒤의 것은 현재 이 세상에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 받는 것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미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말한다(롬 5:1).
그러나 둘 다 의롭다 함을 받는 원리와 근거는 같다. 둘 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 받는다.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현재 칭의는 ‘믿음’으로 받고, 미래 칭의는 ‘행함’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율법을 행하는 자’란 율법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가 아니라 율법을 듣고 행하는 자 곧 참 믿음이 있는 자를 가리킨다. 참 믿음이 있는 자는 율법을 행하게 된다. 물론 100% 다 행하는 것은 아니지만(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함에 휩싸여 있지만), 최소한 율법을 지켜 행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럴 때에도 의롭다 함을 받는 근거는 그 사람의 ‘행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으며(과거), 현재 의롭다 함을 받은 존재가 되었으며(현재), 또 앞으로 마지막 날에 의롭다 함 받을 것이다(미래). 이런 사람이 율법에 대해 가지는 태도를 말할 때에 단지 ‘율법을 듣는 자’가 아니라 ‘율법을 행하는 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자’를 가리켜 말할 때에 성경에서 또한 ‘의인’, ‘의로운 자’, ‘정직한 자’, ‘겸손한 자’, ‘선을 행하는 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에 대해 가지는 내적 관계는 ‘믿음’이며, 눈에 보이는 외적 모습은 ‘행함’이다.
이처럼 우리가 경우에 따라 여러 관점에서 말할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의롭다 함 받고 구원받는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이며, 그 공로를 받는 수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따라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행 15:11; 엡 2:8; 딤후 1:9; 딛 2:11; 3:7; 롬 3:24).
이런 은혜를 받은 사람은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게 된다. 100% 다 지킨다는 말이 아니라 지켜 행하려고 노력한다는 말이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우리는 거룩하게 살려는 소망을 가지게 된다. 그 성령이 우리를 도우심으로 우리는 육체의 소욕을 대적하고 선한 일을 행하기를 원하게 된다(갈 5:16-17). 따라서 이런 사람은 차츰 차츰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갈 5:22-23). 이것도 순전히 나의 노력으로 맺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맺는 것이다. 따라서 ‘칭의’뿐만 아니라 ‘성화’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게 된다.
그러나 성도가 이 세상에서 맺는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지극히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제114문)은 이렇게 질문하고 답한다. “하나님께 회개한 사람은 이 계명들을 다 지킬 수 있습니까” “아니요. 가장 거룩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는 이 순종의 작은 시작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결코 율법을 다 지켜 행할 수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율법을 다 이루셨다. 따라서 우리는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의 공로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의롭다고 칭함 받았다(법적 의미). 우리 자신이 의롭게 변화된 것이 아니다. 법적으로 의롭다고 칭함(선언)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의롭다 함 받은 우리가 성화(聖化)의 노력을 기울일 때에도 여전히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루는 성화는 지극히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화(거룩하게 됨)의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깨끗하게 하신 목적이 우리가 거룩하게 되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救贖)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딛 2:14) 같은 맥락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한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따라서 성도가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내가 잘 났다는 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정죄가 아니라,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늘 겸손해야 한다. 우리의 구원과 우리의 조그만 성화도 다 하나님의 은혜요 성령의 역사임을 고백해야 한다. 우리의 생명, 우리의 건강,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해야 한다. 따라서 교만이 들어올 공간이 전혀 없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행해야 한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 15:10)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삼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 돌리는 삶이 되기를 기원한다. (2014. 12. 30. 말씀나라)
첫댓글 보통 성화에 대해 설명할 때 현실성이 없는 이론을 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성화에 대한 비현실적인 정의에 얼마나 많은 신앙인들이 주눅이 들어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대신에
성직자들은 우월감에 젖어 있는건 아닌지요.
그런데 이 분은 성화에 대해서 참 편안하고 솔직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고 봅니다.
사실 '성화' 라는 용어는 성경엔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만들어낸 개념(관념) 일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도 없는 신의 완벽한 사랑 곧 '아가페 사랑'을 만들어 그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쨌거나 우리가 이미 성화된 자로서 어떻게 성숙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관해 고민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글은 그것을 잘 제시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화든 성숙이든 이 분의 말씀대로 우리의 그것은 보잘것 없는 시작에 불과한 것일수 있습니다. 아무도 '나는 성화 되었다' 고 말할 사람은 없을것입니다.
예. 구원 받은 자로써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것입니다.
그 당연한 일 조차 사실 힘들어 엉망으로 살게 되어 부끄러울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주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하여 나아갑니다.
@풀꽃향기 주님의 은혜로 인해 율법으로 부터 놓여져 자유자가 된 자로서 주님의 가르침에 따르고자 하는 열망은
당연한 것입니다. 당장은 성령의 열매를 흉내 내는 정도(연습)에 불과할 지라도 그것은 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패를 경험하게 될 때 낙담도 있겠지만 그럴수록 더욱 더 주님께 의뢰하게
될테니까요. 바울도 그러지 않았는지요.
문제는 위선적인 열매로 인한 교만과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 일 것입니다.
성화는 신학이나 교리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때문에 지금의 기독교는 모순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로 정의한다면 지금까지 아무도 성화된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성화를
강조하는 사람들일수록 오만하고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를 서슴지 않는 것에 유의해 보십시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성화는 '율법적' 인 경우가 대부분일겁니다.
성화(성숙함)는 내면적으로 조용히 일어납니다. 가장 먼저 자기를 돌아 봄으로서 시작됩니다. 그것은
내면의 돌이킴(회개)를 불러 일으키고 태도의 변화를 동반합니다. 그렇게 외적인 변화(육체)를 가져오게
합니다.
성화를 구현해 가는 사람은 결코 타인에게 성화될 것을 요구하거나 요구하지 않습니다. 방향을 제시해
주고 이끌어 줄 뿐 그것을 잣대로 삼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예수님의
동일한 성품을 갖게 됩니다. 거만함이 있을 수 없고 도덕적이든 경건함이든 우월감을 가질 수 없고
자기 만족 또한 그 마음에 있을수 없습니다. 성화된 겸손은 자기를 낮추게 합니다.
자기의 성화를 드러내거나 비교하는 기준으로 생각하는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화와는 거리가
먼 사람일 것입니다. 바리새주의에 빠진 사람 이라는 겁니다.
비교적 성화 좀 되었다고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실상 이 시대에 더 많아졌습니다.
@바위섬 예. 옳으신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성경에 기록된 말씀처럼,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예수님을 믿음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