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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한벌초등학교 학생들의 아름답고 활기찬 모습 합리적인 인간으로 성장시켜라 글: 애스넉
민주시민으로서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질서를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설령 혼자 사는 세상이라도 자기만의 마음의 질서를 가지고 있어야 자신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말은 자신의 마음속에 나름대로 다른 사람과도 통할 수 있는 정신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선진국 사람들에 비해 질서 의식이 부족하다고들 합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인정에 기반을 둔, 또는 정에 약한 면을 보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국민 의식과 정서가 우리 자신들에게 어떠한 폐해를 가져오고, 또 우리가 남으로부터 어떠한 정당하지 못한 평가를 받는지 생각해 보기로 하고, 또 우리가 새로이 재편될 기미가 보이는 현대라는 불확실한 시대를 살면서 어떠한 정신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며, 또한 우리의 뒤를 이을 다음 세대 자녀들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 라는 말이 있습니다. 알다시피 ‘적을 알고 나를 아는 것이 모든 전쟁에서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는 의미입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의 군사 전략가인 손 무(孫 武)가 쓴 손자병법(孫子兵法)에 나오는 말입니다. 오늘날의 사회 돌아가는 모습과 국가 간의 무역이나 외교 관계에서도 제법 통할 수 있는 유익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한국을 상대해서 무역을 해온 어느 나라의 해외 무역업자들이 연구 발표한 ‘대(對) 한국 사업 성공의 10가지 원칙(비결)’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한국 정부 수립 이후 계속 한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겪은 여러 가지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자기들만의 비결을 생각해낸 것입니다. 즉 상대를 알고서 내가 대처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곧 우리 한국을 이용하고 공격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한 것이 아닐까요? ‘한국인은 머리가 좋아 교육면에서 좀 더 창의력을 기르면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라든지, ‘오래 전부터 지녀온 많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라는 말도 있다고 합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정으로 융숭히 대접한다.’라는 말도 있고요.
그러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도 많습니다. ‘한국인은 협상을 할 때 그 표정과 말소리의 톤(tone)만 보거나 들어도 그 마음속을 알 수 있다’, ‘한국인은 그 인적 고리만 잘 이용하면 된다.’, ‘한국인에게 상대하기 어렵게 될 때 술을 거나하게 대접하면 대부분 해결된다.’ 라든가, ‘금전을 이용하면 협상을 쉽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등의 평가들이 바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죠. 물론 사람이나 일반 사회나 국가도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남이 우리를 나쁘다고 또 어떤 면에 결점이 있다고 평가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그러한 좋지 않은 점들을 미리 파악해서 고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위에 언급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중 또 한 가지 예로서, ‘한국인들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합리적인 논리보다는 감정적 고려와 대응이 훨씬 중요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러한 평가는 외국인이 말하기 전에 이미 우리 사회에서 느끼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얼마나 인적 관계에 무게의 중심을 깊이 두었는지 말입니다. 학연, 지연, 혈연 등 말입니다.
실례를 들어봅니다.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과 같은 직장에서 10년 넘게 아주 친한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 곁에 신입 사원이 입사했습니다. 신입 사원 C는 B의 7년 후배입니다. 그 뒤로 몇 개월이 흐르지 않았는데 B는 10년 넘게 관계를 유지해온 A보다 겨우 몇 개월 알게 된 C와 더 가까운 사이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한국 사회는 이처럼 선후배 관계나 고향을 배경으로 한 지연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온 결과 비능률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회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사업을 하려고 마음먹으면 합리적인 생각보다는 우선 그 분야에 아는 사람이 있는가를 생각하여 그 당사자를 물색합니다. 최근에 세상이 많이 바뀌었는데도 마찬가지 현상이 아직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요?
우리 사회처럼 이상한(?) 모임이 많은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40대 초․중반의 나이를 가진 사람의 모임을 예를 들어 생각해 봅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의 동문회가 있습니다. 고등학교나 중학교 때 특별 활동을 같이 했던 친구들의 모임, 대학 동기 동창회, 군대 동기회, 재경(재부, 재광) 제 몇 지구 제 몇 회 모임과 총 동문회, 입사 동기회, 자기 부서 모임, 동서와 남매 모임, 동네 테니스 모임, 사이버월드 모임, 컴퓨터 교육 동기생 모임, 등반 모임 또는 서예활동 모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임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모임을 만들고 또 함께 모여서 친목을 도모한다고 합니다. 친목을 도모해서 무슨 일을 한다는 것입니까? 물론 좋은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법적으로 합리적으로 행사되어야 할 것들이 제대로 그렇게 이루어집니까? 나 혼자만의 이익을 생각한다면 나라의 선진화가 요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일을 처리하는 국민이 되어야겠고, 또 그러한 방향으로 우리의 후손들을 기르는 데 힘을 쏟아야 합니다.
국제화 시대에 대비해서 더욱더 합리적이고 능률적인 생각과 실천이 필요합니다. 자기 스스로가 자신을 가장 잘 알면서도 다른 사람이 칭찬해 주면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아주 딴 사람의 자기를 인정해버립니다. 자신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상대방의 앞에 있을 때, 특히 앞에 있는 사람이 직장 상사일 때 상사인 그 사람은 아마 거의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사람의 모습으로 비춰질 것입니다. 그 앞에서는 수많은 칭찬의 말만 건네지는 거죠. 그러나 상사가 사라진 다음의 말들은 정반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몹쓸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러한 정신 또는 언어의 이중 플레이가 과연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바른 인간관계이며 서로 믿고 살 상대자로서의 자격이 있을까요? 상사를 무작정 칭찬하는 하위직 사람이나 칭찬을 무조건 받아들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상사나 사실은 똑같이 비합리적인 사람들입니다. 표리가 부동한 사람은 더욱더 자신의 인생을 덧없이 보람도 없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 모든 것은 한국인들의 전통적인 대인 관계에 있어서 아직도 합리적이고 법적인 것만 가지고는 통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법이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통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우리나라가 의식의 선진국 즉 문화의 선진국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대인 관계에 임하는 방법을 개선해야 세계화(globalization) 시대에 어울리는 한국인의 모습을 세계만방에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자녀를 세계화 시대에 맞는 그리고 대인 관계에서 서로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합리적인 인간성을 가진 사람으로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집안에서부터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 최상책입니다. 가정에서부터 합리주의의 발목을 잡고 있는 요인들을 제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TV를 보거나 신문을 읽거나 대화를 하면서 자녀들 앞에서 어느 인물에 대한, 어느 지방 사람에 대한, 또는 어느 가족에 대한 편견이나 편애를 나타내는 표현을 삼가 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자녀들이 앞으로 삶을 영위해 나갈 때 현명한 그리고 합리적 사고를 가진 세계인으로서의 역할을 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한구석에 머물러 있는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닌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합리적인 자녀로 성장시키도록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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