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추위가 유난히 길고 매서웠지만 계절의 변화는 아무도 붙잡지 못한다. 이제 곧 나뭇가지에 파릇파릇하게 돋아나는 새잎과 꽃망울이 봄을 알리면 양지 바른 곳에서는 산수유의 샛노란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한다. 실제로 겨울 꽃에 가까운 매화를 제외하고 이른 봄에 가장 먼저 흔히 볼 수 있는 봄꽃은 산수유다. 산수유 다음에 목련과 개나리가 핀다.
잎이 나오기 전에 손톱 크기의 작은 꽃들이 2~30개씩 모여 조그만 우산 모양을 만들면서 나뭇가지가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지천으로 달린다. 산수유 수십 그루 또는 수백 그루가 한데 어울려 꽃동산을 이루는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라 할 수 있다. 꽃이 지고 주위가 푸르러지면 사람들은 산수유를 잠시 잊어버린다. 그러다가 가을이 깊어지면 갸름한 오이씨처럼 생긴 예쁜 열매가 해맑은 선홍색으로 익는다. 구름 한 점 없는 코발트색 가을하늘과 한 나무에 수천 개씩 달리는 붉은 열매를 가진 산수유는 가을의 정취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중국의 중서부 지방이 고향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심어서 키우고 있으며 과수원처럼 집단재배 단지가 여러 군데 있다.
전남 구례 계천리의 산수유 시목(始木)
산수유 시목 주변의 광장과 축소한 만리장성
경북 의성 사곡 산수유 재배 단지
지리산 상위마을, 경북 의성 사곡마을, 경기 이천 백사마을 등이 대표적인 곳이다. 상위마을과 인접한 전남 구례군 산동면 계천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산수유 고목나무 한 그루가 자란다. 키 16m, 뿌리목 둘레 440cm, 위로 가면서 가늘고 굵은 여러 개의 가지가 벌어져 나무는 전체적으로 반원모양의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3월 20일경 꽃이 만개할 때는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모여드는 명소가 될 만큼 널리 알려진 나무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지만 나무 앞으로 넓은 광장이 펼쳐지고 주위는 대리석으로 ‘축소판 만리장성’을 만들어 두었다.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다르겠으나 자연과 어울리지 않은 거대한 인공구조물의 생뚱맞음이 눈에 거슬린다.
이 나무는 속칭 ‘산수유 시목(始木)’이라고 하며 1천 년 전 중국에서 어떤 처녀가 이곳으로 시집오면서 가져다 심었다고 한다. 이곳의 면 이름 ‘산동면’도 처녀의 고향인 중국의 산동반도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전설은 진실성보다는 허황함이 더 들어 있지만 무시 할 수만 없는 상징성이 있다. 중국이 고향인 나무이니 우리나라 서해안과 가장 가까운 산동반도에서 가져왔다는 전설은 그럴싸하고 실제 그럴 가능성도 높다. 나무의 나이가 천년이라 함은 오래되었다는 상징성일 따름이고 실제 나이는 3~400년 정도다. 이를 바탕으로 전설을 따라가 보면 대체로 임진왜란 전후의 조선중기라는 시대가 잡힌다. 어느 날 이곳 출신 장사치가 중국에 갔다가 중국처녀와 사랑에 빠져 돌아올 때 데리고 온다. 머나먼 이국땅으로 시집가는 처녀에게 가난한 중국의 친정엄마는, 정력제로 유명한 산수유 씨앗을 넣어주고 심어서 가꾸면 돈이 될 것이라고 일러 준다. 정력제이면서 약제로 유명한 산수유의 심고 가꾸기를 열심히 하다 보니 집안 형편도 산수유 꽃처럼 활짝 피었다. 하나둘 이웃이 따라했고 오늘날 이 일대는 전국에서 가장 큰 산수유 재배마을이 되었다. 그때의 대표 나무가 지금의 산수유 시목이라는 이야기다.
사실 우리나라 산수유는 언제부터 재배되기 시작하였는지는 명확한 기록이 나와 있다. 《삼국유사》에서 신라 48대 경문왕(861-875)과 관련된 설화를 보면, “경문왕은 왕위에 오르자 귀가 갑자기 길어져서 나귀의 귀와 같아졌다. 왕비와 궁인들은 모두 이를 알지 못했지만, 오직 모자를 만드는 장인만은 이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평생 이 일을 남에게 말하지 않다가 죽을 임시에 도림사의 대나무 숲 속 아무도 없는 곳에 들어가 대나무를 향해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 그 뒤로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났다. 왕은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었다. 그랬더니 그 뒤에는 다만 ‘임금님 귀는 길다’는 소리만이 났다”라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우리나라에는 적어도 1,200년 전부터 산수유가 재배되고 있었다. 《동의보감》에 “산수유 열매는 정력을 보강하고 성 기능을 높이며 뼈를 보호해주고 허리와 무릎을 덮어준다.”고 했을 만큼 정력제로 유명한 열매이니, 계천리의 산수유 시목이 자라기 훨씬 전부터 우리나라 여기 저기에 산수유는 퍼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