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0년 살롱전에 밀레는 씨를 뿌리며 걸음을 내딛는 농민을 그린 [씨 뿌리는 사람]을 출품했다. 이 작품은 보수적인 비평가와 진보적 비평가 양쪽의 주목을 받았다. 보수적인 비평가가 보기에 거칠고 이상화되지 않은 이 거대한 농부는 불편한 존재였다. 1848년 2월 혁명으로 수립된 공화정 시대의 진보적인 비평가에게 밀레의 미술은 평범한 사람이 예술의 주제가 되는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변화의 신호였다. 그러나 밀레 자신은 정치에 관심이 없었고 비관적, 보수적 기질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농부 그림에서는 산업화로 인한 농촌 인구 이탈이나 그로 인해 변화하는 농촌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19세기 초의 농촌에 복고적으로 집착하여 구식 농법과 구식 농기구를 굳이 찾아서 화폭에 담았다. [씨 뿌리는 사람]의 경우처럼 구약 성서의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농업의 이미지가 그런 맥락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는 사회주의와 같은 사상을 가졌다기보다, 그림을 통해 고금의 모든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고통스러워도 해야만 하는 노동을, 그렇게 고단한 인간 삶의 조건을 자기 방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보스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1855년 작품 [빨래하는 여인들]은 해질녘 빨래를 마친 여성들이 빨랫감을 정리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밀레는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을, 대낮보다는 해질녘이나 달밤 등을 더 즐겨 화폭에 담았다. 이 작품 외에도 밀레의 그림에는 하루의 시간 변화와 계절의 바뀜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이 많다. 밀레 그림에는 그가 살았던 2월 혁명의 1848년, 파리 코뮌의 1871년과 같은 시간은 없다. 밀레의 시간은 변화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순환하는 것 곧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기도 하다. 밀레의 그림에서 시간과 계절에 따라 해야 할 일을 하는 농부들의 삶은 조상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 그의 농부들은 늘 그들의 벗어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노동, 심고 거두는 끝없는 육체노동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 그는 [실 잣는 여인], [세탁하는 여인], [재봉사], [모성애] 등 농가 안팎의 다양한 노동, 특히 여성 농민의 노동을 주제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농촌 생활 구석구석에 미친 그의 세심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영원 속에 고정된 거대한 농부들
 1857년 살롱전에 출품한 [이삭 줍는 여인들]은 밀레 특유의 ‘서사적 자연주의’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림에는 세 명의 가난한 여성 농민이 힘들게 허리를 굽혀, 먼 배경의 추수하는 사람들이 남기고 간 이삭을 줍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 여성들의 자세는 얼핏 보면 자연스러운 것 같으나 자세히 보면 시간이 멈춰져 굳은 듯한 운동감 없는 정지 동작임을 알 수 있다. 밀레는 농촌의 삶을 자세히 관찰하기는 했으나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작품은 스케치부터 완성까지 작업실 안에서 이루어졌고, 수많은 밑그림을 통해 그는 인물의 배치와 동작을 정교하게 ‘구성’했다. 그 결과 조각 같은 육중한 정지 동작의 인물들이 탄생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