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06. 18 오후 3시 서초동 대검찰청에 소재한 예그리나홀 예식장'에서 德川 前대한변협회장의 장녀 성주孃과 현직검사인 사위 이병래君의 결혼식이 있었다. 식장은 새신랑과 새신부의 장래를 축복하려는 일가친지와 하객들로 발디딜틈 없이 대검찰청 큰 강당을 모두 채우며 북새통을 이루었다. 신랑 어머니의 눈물어린 편지는 온 하객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신부 아버지 철환 혼주의 화답 편지는 딸에 대한 애절한 사랑과 시집보내는 부모의 심정을 잘 표현했는데 아들 딸 많이 낳아 행복한 삶을 당부했다. 신랑의 신부에 대한 간절한 사랑을 '사랑해 여보!'라는 힘찬 함성으로 편지의 대미를 장식했다. 또한 유명가수의 노래는 신세대들의 결혼풍속을 잘 보여주는 듯 참신하고 흥에 겨웠다.
장흥위씨 문중에서는 대종회장(송담 위자형)과 미발협회장(항헌 위성복)이 화환을 보냈다. 법조인을 대표하여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화환이 자리를 빛냈다. 또한 모든 하객들로부터 일체의 부조금을 사양하여 덕천종친의 겸양지심을 표현하는 듯 했다.
松潭대종회장을 비롯 貞巖(승렬)재경종친회장, 蟬巖(옥량)재경중장년회장, 위성호 신한은행장, 위정복 전동작부구청장, 종훈총장, 형윤교수, 위재민 변호사, 월파(이환)감사, 운파(평환)부회장 형제들과 여러 친지들, 靑蓮(두량)사무국장, 오당(운량) 장원봉산악회장, 총무단(성진, 윤기)등 20여명이 참여하여 혼사를 축복했다.
덕천 종친은 33世, 양곡공파, 1958年, 장흥 장평출신으로 변호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아내(이시응)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두고있다. 아래는 <장흥위씨요람> 에 현대사 위씨문중을 빛낸 8인의 인물란에 등재된 원산(정철) 씨족문화연구소장이 기록한 위변호사에 대한 프로필이다
<아래>
' 철환(哲煥) 변호사는 장흥 장평출신이다. 아버지는 원량(元良, 일명 月良), 어머니는 밀양 손행순(孫杏順)의 장남으로 1958년에 출생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을 접고 서울교육대를 선택했다. 졸업한 후에 6년간 초등교사로 봉직했다. 그러다 법조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성균관대 법학과 2학년으로 편입해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1989년에 수료했다. 나이 때문에 법관이나 검사로 임관될 수 없어 부득이 변호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수원에서 개업했다. 변호사로 활동하면서도 늘 여기서 안주하지 말자고 자신을 채근했다. 그런데 2013년 대한변협이 회장을 직선제로 회칙을 바꿨다. 그는 이 기회에 회장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 주변에서는 그의 도전을 돈키호테 같은 돌출행동으로 여겼다. 왜냐하면 이전까지 간선제 회장은 높은 지위의 판검사를 역임하지 않은 사람은 엄두도 못 냈다. 그걸 모르고 덤빈 것은 아니다. 그는 변협의 관료적인 시스템을 파파해야 할 고질적인 병폐라고 진단하고 덤볐다. 그래서 자신의 출마가 한낮 객기에서 출발한 무모함이 아님을 보여주고자 했다. 전국의 변호사를 대상으로 발로 뛰며 득표활동을 벌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최초로 실시된 직선제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에 당선된 것이다. 2013년 1월 21일이다. 변협 61년의 역사를 새로 쓰는 날로 기억된 날이다. 회장에 취임한 그는 협회의 숙원사업을 임기 중 대부분 해결했다. 그의 당선은 위씨가 전국적인 선출직에 당선된 최초의 케이스가 된다.' (출처 : 장흥위씨요람/증보판)
●새신랑 새신부의 백년해로를 하나님께 두손 모아 기도드린다. (벽천)
편지와 음악,
고전과 신세대 취향이 어울어진 혼례였습니다. 또한 부페음식도 맛있고 깔끔했습니다. 일체의 부조금을 사양하여 죄송한 마음이 앞섭니다. 덕천변호사님의 장년 결혼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위문중 종친 덕천 위철환 전변협회장님 장녀 성주양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 합니다.
성주양 다복한 가정 꾸리시고 행복하세요.
결혼을 진심으로 감축 드립니다
행복한 가정 이루시길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