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팔꽃
나팔이라는 이름의 처녀가 있었어요. 나팔처녀는 마을의 어려운 일은 앞장서 해결했어요.
가뭄이 심했어요. 곡식이 빨갛게 타죽었어요.
이것은 예삿일이 아니군. 백세노인께 여쭈어 봐야지.
나팔이는 천기를 안다는 백세 노인을 찾아갔어요.
하늘의 마왕이 심술을 부리고 있네. 그와 싸우는 도리밖에 없네.
나팔처녀는 마왕과 싸울 힘센 젊은이를 찾았어요. 한 젊은이가 나팔처녀를 찾아왔어요.
제가 마왕과 싸워 보겠습니다.
오! 용감하신 총각님, 부디 마왕을 물리쳐 주십시오.
사흘 안에 마왕을 무찌르겠어요. 만약 사흘 안에 제가 돌아오지 않거든 동쪽 하늘을 쳐다보시오.
거기에서 이것으로 반짝이는 빛을 보내겠소.
젊은이는 나팔처녀에게 별처럼 반짝이는 목걸이를 들어 보였어요.
마을 사람들은 백세노인의 지시로 하늘까지 닿는 사다리를 만들었어요.
젊은이는 사다리를 타고 하늘나라 마왕의 궁궐로 올라갔어요. 궁궐을 지키던 마군들이 달려들었어요.
마군과 젊은이의 싸움은 좀처럼 끝이 나지 않았어요.
한 편, 처녀는 마을 사람들과 밤낮 하늘만 쳐다보며 기다렸어요.
일이 잘못 된 게야. 인간이 마왕과 싸운다는 건 너무 힘겨운 일이야.
그 때 하늘에서 쨍그랑 쨍그랑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칼이 부딪치는 소리였습니다.
들으셨지요? 분명히 칼 소리였어요. 아직 싸우고 있나 봐요.
나팔처녀는 기다리고만 있을 수가 없었어요. 쌍보검을 차고 하늘로 올라갔어요.
사다리를 타고 열 두 층 구름을 지나니 마궁이 있었어요.
나팔처녀는 궁궐 문을 하나씩 열고 들어가며 젊은이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어요. 마지막 열 두번째 대문을 열었어요. 마왕과 젊은이가 싸우고 있었어요.
머리가 열 두 개인 마왕은 열 두 개의 입으로 젊은이에게 독기를 뿜었어요. 젊은이가 밀리고 있었어요.
나팔이는 쌍보검을 뽑아들며 외쳤습니다.
이 놈 마왕아! 이제는 내가 너를 상대해 주마.
마왕이 주춤하며 돌아보았어요. 나팔쳐녀의 보검이 날았어요. 마왕의 머리 세 개가 떨어졌어요.
마왕은 남은 머리 아홉 개로 독기를 뿜으며 달려들었어요.
이 때 젊은이가 칼을 휘둘렀어요. 이번에도 머리 세 개가 떨어졌어요.
마왕은 더 사납게 날뛰었어요. 젊은이와 나팔처녀는 앞뒤에서 공격하여 남은 머리도 마저 베었어요.
마왕이 쓰러졌습니다.
마궁도 무너졌어요. 마궁의 기둥이 뽑힌 자리마다 샘물이 콸콸 솟아 넘쳤어요.
물은 열 두 층의 구름 계단에서 폭포를 이루며 땅 나라로 쏟아져 내렸어요.
땅나라에는 타 죽어가던 곡식들이 되살아나고 말라붙었던 샘에서는 물이 넘쳐 났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도 쓰러져 숨을 거두었어요. 나팔처녀는 울면서 땅 나라로 몸을 날렸어요.
하늘을 쳐다보며 두 사람을 기다리던 마을 사람들은 모두 슬퍼했어요.
두 사람은 이제 죽었지만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영원히 살 것이네.
백세노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나팔처녀를 울타리 밑에 묻으라고 했습니다.
그 후 처녀의 무덤에는 쌍보검을 치켜든 모양의 새싹이 돋았어요.
새싹은 덩굴을 뻗으며 울타리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동쪽 하늘에 반짝이는 샛별을 보며 나팔 모양의 꽃을 피웠어요.
사람들은 젊은이의 목걸이는 샛별이 되고, 나팔처녀의 넋은 꽃이 되었다며 그 꽃을 나팔꽃이라고 불렀어요.
나팔꽃이 울타리를 타고 오르는 것은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던 때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김종상 선생님 꽃이야기중 일부 발췌-
첫댓글 나팔꽃에 얽힌 슬픈 이야기네요..
나팔꽃에 이런 슬픈사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