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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원군 남일면 가산리 산18 머미마을 시조 한란의 묘는 조선 8대 명당
청주한씨의 유래(淸州韓氏의 由來)
한씨는 한국의 최고(最古) 역사를 지닌 이른바 삼한갑족(三韓甲族)이다. 본관은 오늘날 한씨 거의가 청주(淸州) 단본을 내세우고 있는데, 문헌에는 청주 외에 평산(平山)·한양(漢陽)·안변(安邊)·양주(楊州)·곡산(谷山)·홍산(鴻山)·대흥(大興)·부안(扶安)·개성(開城)·함흥(咸興)·금산(錦山)·단주(湍州) 등 10여 본이 기록되어 있으며, 모두 청주에서 분적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언제 어떻게 분적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한씨는 멀리 고조선시대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청주한씨세보》에 의하면 기자조선(箕子朝鮮)의 마지막 왕인 준왕(準王)의 후대에 우성(友誠)·우평(友平)·우량(友諒)의 3형제가 있어, 각각 기씨(奇氏)·선우씨(鮮于氏)·한씨(韓氏)가 되었다고 하며, 따라서 청주한씨의 시조 한란(韓蘭)은 기자의 후예인 우량의 원손(遠孫)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종래 '기씨조선(箕氏朝鮮)'으로 알려졌던 고조선사회는 실상 '한씨조선'이고, 준왕은 '기준(箕準)'이 아니라 '한준(韓準)'이며, 따라서 한씨는 기자의 후예가 아니라 한국의 고유한 씨족이라는 것이 사학계의 통설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고조선의 한씨는 마치 부여의 해씨(解氏), 고구려의 고씨(高氏), 백제의 부여씨(扶餘氏), 신라의 박씨(朴氏)·김씨(金氏), 발해의 대씨(大氏), 고려의 왕씨(王氏), 조선의 이씨(李氏)와 마찬가지로 한국 고유의 대성(大姓)이었다.
고조선시대의 왕실이었던 한씨는 고려 후기에 이르러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는데, 우선 조선시대에 문과급제자 315명, 상신(相臣) 12명, 공신(功臣) 24명, 대제학 1명을 배출하였다. 한편, 왕비도 6명을 배출하였다. 오늘날 청주를 중심으로 한 충북 일대는 한씨의 동족부락이 적지 않아 신씨(申氏)와 함께 이 고장의 대성으로 꼽히고 있다.
청주한씨의 분포지역을 보면, 충간공파(忠簡公派)는 충남·경기, 문정공파(文靖公派)는 강원·경남, 몽계공파(夢溪公派)는 경상도 상주·합천, 관북파(關北派)는 평안북도 안변 및 함경도 함흥·영흥, 충성공파(忠成公派)는 충남·부산, 양절공파(襄節公派)는 전국 각처에 각각 분포되어 있다. 그밖에도 제주에 많이 살고 있는데, 이 일문(一門)은 고려 말기 예문관 대제학으로서 태조(太祖)를 섬기지 않아 유배된 천(蕆)의 후예로 알려져 있다.
1960년도 국세조사에서는, 7만 1022가구에 인구 39만 7817명으로, 성별 순위는 258성 중 제11위였고, 1985년도 조사에서는 가구수 14만 9511가구, 인구수 62만 8388명으로 274성 중 제11위였다. 2000년 국세조사에서는 인구 70만 4365명,
가구수 21만 8821가구, 286성 중 제12위였다.
청주한씨의 세계(世系)는 시조 한란의 후대에서 30여 파로 나뉘는데, 그 중 후손이 많기로는 ① 양절공파, ② 문정공파, ③ 충간공파, ④ 몽계공파, ⑤ 관북파, ⑥ 충성공파 등 6파가 청주한씨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청주 한씨(韓氏) 가문의 영광 3연속으로 '재상'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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