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갓피플(GODpeople) 지식자료실 성경총론 > 자료 옮김.
제 1 강 여호수아 개관 (목차)
1. 저자에 관한 문제와 결론
1) 저작 연대의 문제와 결론
2) 저자 문제와 결론
2. 본서의 도덕적인 내용에 대한 문제와 대답
1) 타민족에 대한 침공과 멸절의 부당성
2) 타협적인 의견들
3) 신앙적인 결론
3. 여호수아서의 특징
1. 여호수아서의 명칭
2. 역사적 배경
3. 여호수아서의 내용
1) 여호수아 1-12장
2) 여호수아 13-21장
3) 여호수아 22-24장
4. 구속사적 의미
No.33 제 1 강 여호수아 개관
1. 저자에 관한 문제와 결론
1) 저작 연대의 문제와 결론
여호수아서는 저작 연대와 그 저자에 대해 많은 이견을 낳았다. 대체로 진보적인 비평학자들은 여호수아서가 유대 역사의 훨씬 후기에 여러 시대의 많은 문서로부터 편집되어 구성된 책이라고 추정했다.
대표적으로 벨하우젠(Welhausen) 같은 학자는 여호수아서를 바벨론 포로 후에 이스라엘을 재건키 위해 누군가가 민족 신앙과 부흥의 지침서로 상상하여 지어낸 책이라고까지 단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내용을 통해 여호수아서는 주전 12세기 이전에 기록된 책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첫째, 고대 히브리어 정경 자체가 여호수아서를 모세오경 바로 뒤에 놓았다는 점이다. 이는 의심 없이 본 서가 모세의 죽음 직후와 사사들이 활동하던 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둘쨰, 고고학의 증명이다. 알브라이트(Aibright) 박사의 「팔레스틴 고고학」이라는 책에 '여호수아에 등장하는 고대 지명은 고고학을 통해 거의 사실임이 증명되었다'고 말한다. 그 성읍의 이름, 특히 여호수아 21장에 등장하는 레위족의 성읍들은 그 명칭이 주전 12세기 이전의 것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셋째, 여호수아서 자체가 그 당시 기록된 책임을 인증하는 내적 증거를 지니고 있는데, 돌무더기로 기념비를 삼는 풍습이라든지, 또는 '큰시돈' 등을 언급하면서 두로보다 시돈을 더 큰 성읍으로 말했는데(수11:8; 수19:28,29), 이는 주전 12세기경 시돈이 페니키아 지방에서 두로보다도 더 번성했다는 사실과 부합되는 것이다.
또한 부족간의 영토 분할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밀한 증언은 그 당시 사람이 아니면 기록할 수 없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몇몇의 예만 들더라도 본 서는 주전12세기 이전에 기록된 책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2) 저자 문제와 결론
본 서가 여호수아가 기록하지 않고 후대의 편집인의 상상물이라고 주장하는 이유 중 한 가지가 바로 여호수아의 사후(死後)에 일어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갈렙의 헤브론 지경의 정복은 수15:13,14, 삿1:10,20에 일어난 일이요 그외에 옷니엘의 드빌 정복이나 단지파의 레센 성 정복 기사도 마찬가지이다(수15:15-19; 삿1:11-15). 그러나 모세오경의 마지막 부분인 신명기 34장처럼 여호수아의 죽음이나 그 이후의 사건들은 그 후계자들이 추가로 기록하여 삽입한 것임을 의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즉 제사장 엘르아살과 그 아들 비느하스가 추가 기록자로 지목되고 있다(수24:33).
2. 본서의 도덕적인 내용에 대한 문제와 대답
1) 타민족에 대한 침공과 멸절의 부당성
우리가 일반적인 윤리 기준의 시각으로 볼 때 여호수아의 내용 중에는 섬뜩한 면이 있다. 자비의 하나님께서 평화롭게 거하던 팔레스틴(가나안 지역) 지역의 이스라엘 민족을 침공시키사 전쟁의 참화를 겪게 하고 또 그 부족들을 멸절하도록 명하셨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인해 예전부터 여호수아서의 정경성에 대해 혼란과 의구심을 야기시키는 난점이 되기도 했다. 사실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민족의 분쟁 중 가장 난해한 문제가 이스라엘과 PLO(팔레스틴 해방기구)간의 갈등으로 대두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민족의 분열을 조장하시거나 무자비한 살육을 당연히 여기시는 분이신가? 하는 물음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2) 타협적인 의견들
이와 같은 의문과 물음에 대해 여호수아의 도덕성과 정경성을 수호하기 위해 타협적인 의견이 제시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인데, 첫째는 그 내용 자체가 사실이 아니라는 견해이다. 즉 후대에 상상으로 꾸민 얘기이지 진정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어 왔다. 이 견해는 앞에서 저작 연대 문제와 관련하여 실효성이 없는 견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은 계시의 상대성을 언급하는 학자들도 있다. 즉 하나님의 명령과 뜻은 그 당시 사람들의 윤리와 도덕 수준에 걸맞게 상대적으로 계시된다는 논리이다. 그러므로 부족간의 침공과 약탈과 멸절이 당연시되었던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방식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고 명하신 것을 도덕, 윤리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3) 신앙적인 결론
그러나 그와 같은 회피적인 결론만으로 여호수아서의 도덕성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성경과 마찬가지로 여호수아서도 신앙적인 안목, 즉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섭리 안에서 관조해야 한다. 하나님은 일찍이 극에 달한 타락상을 보인 부족들을 천재지변을 통해 멸절하셨다.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절이 그 좋은 예이다. 그러므로 가나안 거민들도 그 부도덕하고 야수적인 생활로 인해 그 땅에서 살지 못할 것이라고 예고하신 것이다. "그 땅도 스스로 그 거민을 토하여"(레18:25) 낼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천재지변 대신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심판하신 것뿐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후에 타락했을 때 열강을 통해 심판하신 것과 같은 섭리이다.
그 다음 멸절의 의미는 선민의 성장과 성결의 예방책이었다. 그들 가나안 거민들의 우상 숭배 풍습, 야수와 같은 도덕적 문란 풍습이 잔재하는 한 하나님 나라의 못자리와 같은 선민 왕국의 건설은 불가능하다. 결국 선민 이스라엘의 타락은 가나안 거민과의 혼합 생활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사사기는 증거한다. 이와 같이 구속사적인 섭리 안에서 회개치 않은 타락한 인류에 대한 심판 섭리의 일환으로, 또 하나님 백성의 보전을 위해 침공과 멸절의 방식을 명하신 것이다.
3. 여호수아서의 특징
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역사는 영웅들의 역사라고 말한다. 물론 역사 전체의 개념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웅, 위인들이 역사의 기수 역할을 한 것을 인정하는 말이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볼 때 구약성경의 여호수아서는 그야말로 여호수아의 전기서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그의 소명과 활동 그리고 죽음은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가나안 땅에 대한 언약 성취와 선민들의 승리적인 삶과 맞물려 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서는 하나님의 구속 섭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위대한 첫 예언서인 동시에 선민 이스라엘의 신앙적인 역사의 기원을 다루는 역사서로서 양면적인 가치를 지닌 책이다. 여호수아서의 가장 큰 특징을 이스라엘 역사상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전쟁을 치른 '전쟁의 역사' 라는 점이다. 그리고 수많은 전쟁 속에서도 아이 성 싸움에서 패한 단 한 번의 패전 외에는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스라엘의 승리는 그들의 전술이나 무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때문이었다.
1. 여호수아서의 명칭
이 책의 제목은 모세의 후계자로서 하나님께서 선조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정복 전쟁을 영도한 대지도자 여호수아의(Joshua) 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것이다. 여호수아서는 칠십인역(LXX)의 본서 제목인 '이에누스 나우스' (Iesous Naus ; 눈의 아들 여호수아), 벌게이트(Vulgate)역의 본 서 제목 '리메르 요수에' (Liber Josue ; 여호수아의 책)와 일치하는 제목이다. 이런 제목들은 모두 주 내용이 여호수아가 영도한 가나안 정복·정착의 기록임을 반영한 것이다.
2. 역사적 배경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시기는 청동기 후기 시대(B. C. 1550-1200)인 B. C. 1406년이었다. 그는 B. C. 1400년경에 열두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였고, B.C. 1390년 이후까지 생존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시기를 B.C. 1300년 직후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당시, 바로 아멘호텝 3세는 아시아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하였다. 대부분의 팔레스틴과 수리아 지방의 소왕국들은 애굽을 반역하거나 조공을 바치는 것은 그만두었다.
아멘호텝의 아들 악헤나텐의 통치시 수도였던 애굽의 헬 엘아마르나에서 발견된 설형문자들은 당시 통치자들의 공문서였다. 문서들 중 대다수가 인접 국가, 또는 용병에 대항하기 이하여 바로에게 도움을 청한 내용으로서 팔레스틴과 아람 방백들에 의해 쓰여진 것들이다. 여호수아서에 애굽에 대한 언급이 없는 이유는 아마도 애굽이 아멘호텝 3세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진군한 이후에 바로가 된 세티 2세까지 무력한 외교 정책을 수립하여 왔기 때문일 것이다.
3. 여호수아서의 내용
1) 여호수아 1-12장
1장은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전 민족이 뭉쳐서 정치적, 영적 전쟁 준비의 마침을, 2장은 군사적 준비의 완료함을 보도한다. 2-5장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하나님의 이적의 도움으로 건너는 역사적 장면을 보도한다. 뒤이은 6-12장까지는 가나안에 진입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및 정착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가나안 전국의 주요 거점을 본격적으로 공격하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이 부분에서는 하나님께 순종할 때는 승리가, 그렇지 않았을 때에는 패배가 있었음을 밝히 보여 준다. 또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과분한 승리를 얻은 이스라엘이긴 하지만, 아직 완전 정복에는 이르지 못했음을 분명히 밝혀 두고 있다.
2)여호수아 13-21장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일단 가나안 땅을 각 지파별로 나누게 된다. 이 부분에서는 성도들이 하나님 편에 서서 악한 무리들과의 전투에 가담하면 훗날 천국에서 자신의 기업을 받을 것을 우리에게 강력히 교훈 하여 준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주요 거점을 정복하여 기본적인 정착 거점을 확보하게 되었고, 여호수아는 점점 노쇠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제는 단일 지도자의 지휘 아래 전 민족이 함께 정복 사업을 하는 것보다는 각 지파가 지역을 나누어서 세부 정복 사업을 개별적으로 펴나가는 것이 더 효율적인 방법임을 인식하였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일단 가나안 땅을 각 지파별로 나누게 되었다.
3) 여호수아 22-24장
이 부분은 이스라엘이 이제 정복하고 나눈 이 가나안 땅에서 영원히 평화롭게 정착하기 위한 단 두 가지의 조건으로 여호수아가 땅 분배 직후 발생한 요단 동편 지지파들의 제단 사건 및 자신의 임종과 관련하여 제시한 사실을 강조한다. 그것은 출애굽은 물론 가나안 정복 전쟁까지 이기게 해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 신앙과 한 분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12지파의 단결이었다.
4. 구속사적 의미
여호수아서의 저작 동기는 약속을 지키시는 여호와의 신실성을 보여 주는 데 있다.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했는데, 여호수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과 함께 가나안 땅을 점령하게 되었다. 즉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생활하면서 선민으로서의 역사 전개해 갈 삶의 터전을 하나님의 과거의 약속과 그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현재의 도우심으로 마침내 얻었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여호수아에 나타난 이스라엘이 상징하는 것은 구약교회이다. 그들은 신약 구속사의 중심인 우리 신약 성도들의 선구자로서 구약 구속사의 주역들인 것이다. 그들의 가나안 땅을 구약 구속서의 전개를 위한 공간과 배경이 되었고, 이것은 하나님의 오랜 언약의 성취로서 현대 성도들에게 실로 큰 의미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