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청년 싸둔
출발 시각이 20분이나 남았는데 대전복합터미널이라고 쓰인 버스 한 대가 쏜살같이 달려 왔다. 여행용 가방을 끌고 버스 짐칸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하고 묻는 이가 있어서 뒤를 돌아봤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을까 싶을 만치 앳된 외국인 청년이 밝게 웃고 있었다.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니, 까무잡잡한 피부에 유난히 하얀 이를 갖고 있었다. 첫 눈에 ‘동남아에서 온 청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큼지막한 링 귀걸이를 하고 퍼머 머리를 빳빳하게 세워 한껏 멋을 낸 모습이다. 공교롭게도 청년의 좌석은 내 옆 자리였다.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청년은 인도양의 섬나라 스리랑카 태생으로 돈을 벌러 온 외국인 노동자였다 “제 이름은 싸둔입니다. 나이는 스물두 살 이구요. 육십이 된 어머니가 있습니다” 하고 소상하게 자신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오게 된 경위에 대해 이야기했다. 때때로 스마트폰의 메모장에 내가 하는 말들을 적기도 하고 들고 있는 신문을 흘끔대며 읽었다. 글자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발음하는데 어찌나 정확한지 당나귀 찬물을 건너가듯이 유창했다. 그는 붙임성이 좋아서 종달새처럼 쉴새없이 재재거렸다. 잠시의 침묵도 어색해 못 견디겠다는 표정이었다.
현재 충청도의 한 어촌에서 물고기 밥을 주는 일을 한다고 했다. 아마 양식장에서 일을 하는 모양이었다. 싸둔에게는 세 살 더 먹은 형이 있는데 일 년 전 먼저 한국에 들어왔다고 한다. 공장 취업 비자를 받아서 일하던 중 동생을 불러들였는데, 어업 비자가 나오는 바람에 형은 경상도에 동생은 충청도에서 살아간다. 석 달에 한 번 사흘의 휴가를 받은 동생이 형을 만나고 어촌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3D 업종의 사각지대에서 제 몸을 부려 살아가는 고달픈 싸둔의 하루하루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휴일도 없이 한 달 꼬박 일하고 나서 받는 돈은 백 만 원 조금 넘는 액수라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버스가 대전터미널에 도착했다. 가방을 들어준다며 짐칸을 향해 걸어가는데 그의 큰 키가 휘청거렸다. 점심때가 지나니 허기가 몰려왔다. 터미널 안의 식당이 변변찮기는 했으나 그래도 간단한 요기를 시켜서 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모퉁이 분식점에 들어서니, 모녀가 김밥과 우동을 먹고 있었다. “저거요” 그가 모기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면서 신기한 듯 두리번거렸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한 눈치였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그가 슬그머니 귀걸이를 떼어서 청바지 주머니 속에 구겨 넣는다. 음식이 입에 맞을지 몰라서 걱정을 했는데, 잘 먹었다. 자식의 입에 밥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어미의 심정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나도 모르게 멀리 타국에 있는 아들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환경은 조금 다를지 몰라도 우여곡절 끝에 일가를 이루고 사는 아들의 지난한 생을 보는 듯했다.
식당을 나오는데 싸둔이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아! 한국은 정말 아름다워요, 저에게 꿈이 있거든요, 그건요, 한국 아가씨랑 결혼하는 거예요. 그러면 5년 말고 50년도 여기서 살 수 있거든요.” 나는 싸둔이 꿈을 이루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꿈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의 악수와 허그로 아쉬움을 남긴 채 그를 실은 버스가 멀어져갔다. 나는 버스가 나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어린 청년 싸둔의 앞날이 행복하기를 빌었다.
얼마 전 모 일간지에서 스리랑카의 니말 시리 반다라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불법체류자 신분인 니말이 이웃 할머니를 불길 속에서 구했다는 이야기다. 니말은 2도 화상을 입고 기절했고, 폐는 유독 가스에 손상되어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의식을 회복한 시말에게 신문 기자가 물었다.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이 발각 될 텐데 어찌 그런 행동을 했나요?” 그러자 그가 입을 열었다. “우리 어머니, 한국 어머니. 모두 같은 엄마입니다. 나의 엄마가 불길 속에 있다면, 구조를 망설이겠습니까?” 사진 속 시말이 흰 이를 드러내며 웃고있었다. 그의 의롭고 아름다운 선행이 사람들의 가슴 속에 인장처럼 오래도록 새겨졌으면 좋겠다. 넓게 보면 스물 두 살의 싸둔도 불법체류자 시말도 다 우리의 형제이다. 거창하게 사해동포주의나 박애를 말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따스한 사랑이 가슴에 흐르고 있는 한 우리는 지구촌의 한 가족이며 이웃이다.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성서의 한 구절이 뜨겁게 가슴을 울렸다.
첫댓글 서희님 글이 따듯하게
새해 겨울을 밝혀줍니다.
오늘은 날씨가 더욱 춥습니다. 따듯하게 보아주시니 제 마음도 따스합니다.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종교의 근본 정신이 집을 나간 요즘 타자와 함께 기쁨과 아픔을 나눈다는 건 예수의 정신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따뜻한 글 위로가 됩니다.
고맙습니다~ 따스한 겨울 되십시오^^
싸둔 청년이 한국에서 꿈을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님의 따뜻한 응원이 거름이 되지 않았을까요?
고맙습니다. 자주 오세요. 아름다운 소통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