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해사본이 발견된 쿰란에서 이스라엘의 1번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황량한 유대광야가 끝없이 이어진다.
묘하게 생긴 유대광야의 언덕을 해수면보다 훨씬 낮은 사해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 두려움이 인다.유대광야가 맞닿은 이 지역은 뜨거운 열기와 이러한 풍광으로 인해 순례객들을 무겁게 누르는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사해를 찾는 순례객들과 관광객들이 사해진흙으로 몸을 맛사지하고 유황온천에 몸을 담근채 피로를 푸는 엔게디기브츠를 뒤로 하고 취재진은 사해의 서해안 끝부분을 향해 자동차를 달렸다.
20여분 달렸을까.갑자기 오른쪽으로 넓은 광야와 광야끝부분에 높은 절벽이 끝없이 이어지는 계곡이 나타났다.그 계곡에서 광야쪽으로 뚝 떨어져 우뚝솟은 언덕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마치 타원형의 원통을 잘라 놓은 것 같은 기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곳이 난공불락의 바위요새 마사다이다.마사다는 사해수면 보다 약 4백m높은 바위산으로 사면이 깍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형성되어 있는 천연요새이다.정상은 남북간의 길이가 6백m,동서간의 길이가 3백m인 긴 마름모꼴의 평평한 지형으로 되어 있다. 마사다는 유대의 유명한 정치지도자이자 로마저항운동의 지도자였던 마카베오의 동생이자 후계자인 대제사장 요나단(기원전 161~142)이 처음 요새화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백년뒤 해롯이 정적 헬릭스를 물리치고 이곳을 점령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됐다.해롯은 당시 이집트의 지배자 클레오파트라의 도움으로 로마로 가 유대왕국의 왕으로 인정받기까지 가족들을 잠시 이곳에 피신시켰으며 로마에서 돌아와 요새화했다.그는 북쪽에 3층짜리 별궁을 지었고 언덕의 둘레에는 성벽과 두겹으로 방들을 건축했으며 1천명이 40년동안 먹을수 있는 4만t규모의 물저장탱크를 만들었다.
마사다는 신약에서 직접적인 역할을 담당하지 않았지만 서기 66년 로마에 대항해 일어났던 유대인들의 최후의 저항지로 알려지면서 순례객들이 찾는 주요 성지 가운데 하나가 됐다.
로마는 유대를 속주로 삼아 총독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던 시대(서기 6~66년)에 이곳을 점령했으나 66년 시카리우스에게 빼앗겼다.로마의 베스파시아누스황제는 서기 68년까지 예루살렘과 광야의 세요새 즉,헤로디움 마카이루스 마사다를 제외하고 전체 팔레스타인을 점령했다.
로마군은 서기 70년 예루살렘성전을 파괴한뒤 유대독립군의 마지막 저항지인 마사다를 점령하기 위해 10군단을 배치했다.로마의 10군단 사령관이었던 플라비우스 실바는 마사다를 포위하고 쉽게 정복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마사다의 저항은 길었다.
로마군은 마사다를 정복하기 위해 3년동안 물길을 차단하고 포위한채 마사다 서쪽면의 유대광야 계곡으로 부터 어마어마한 토성을 쌓아 연결시키는 작업을 했다.그래도 마사다에 있는 9백67명의 결사대의 저항이 계속되자 돌대포를 쏘아 성벽을 공격하기 시작했다.나중에 로마군은 유대인 포로를 한명 한명씩 돌대포에 실어 날려 보내는 잔악한 공격을 가했다.
그러다 로마군은 유대인의 지도자였던 엘리에벨 야빈을 돌대포로 쏘아 올렸다.이를 본 마사다 저항군은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자결하기로 결심하고 하나 하나씩 자결했다.
로마군이 마사다에 입성했을 때 저항군의 시체와 뽀얀 연기만 그들을 반겼다고 한다.다행히 로마군은 시체 더미에서 살아있는 2명의 부인과 5명의 아이를 발견했다.
로마군과 함께 이 전쟁에 참전했던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들에게서 마사다저항군의 전투기를 들었으며 나중에 `유대인 전쟁'이라는 책에서 마사다에 대해 길게 설명하고 있다.
현재 마사다 정상의 서쪽에는 유대인들의 회당과 비잔틴시대의 교회터가 남아 있다.그리고 북쪽에는 냉탕 온탕 증기탕으로 되어 있는 목욕탕과 탈의실이 있고 식량창고 등이 남아있다.해롯은 무더운 여름이면 이곳에서 지낼려고 궁을 정성들여 만들었으나 한번도 사용하지 못했다고 한다.
마사다 꼭대기로 가는 길은 동쪽에 난 뱀길과 로마군이 쌓아 올린 서쪽의 토성길이 있지만 요즘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이스라엘정부는 내년에 열릴 `예수 2000년'행사에 전세계의 순례객들이 엄청나게 밀려들 것에 대비해 2개의 케이블카를 새로 건설했다.
마사다정상에서 바라본 사해는 평화롭게 누워 있었다.사해의 절반은 요르단정부가 관할하고 있으며 사해의 남쪽해안은 염전들이 들어서 작은 실개천 처럼 보였다.마사다 밑의 광야에는 마사다를 포위했던 8개의 로마군 숙영지가 아직도 남아있다.
오늘날 마사다는 유대인 자녀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역사교육장소로 활용되고 있다.전세계의 많은 유대인 자녀들이 방학때는 이곳에서 정신교육을 받는다.지난해말 빌 클린턴이 이곳을 방문하면서 마사다는 다시 세계인의 관심을 집중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