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제1년 1월 20일 창세기 21장 찬송가 455장(새찬송가 370장)
01.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02.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03. 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04.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05.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 세라
06.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07. 또 가로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0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하였더라
0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
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
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하매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더니
15. 가죽 부대의 물이 다한지라 그 자식을 떨기나무 아래 두며
16. 가로되 자식의 죽는 것을 참아 보지 못하겠다 하고 살 한 바탕쯤 가서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 대곡하니
17.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
20.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21. 그가 바란 광야에 거할 때에 그 어미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더라
22.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23.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너의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24.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25.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26. 아비멜렉이 가로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이야 들었노라
27.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취하여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28.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2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뇨
30. 아브라함이 가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31.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32.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족속의 땅으로 돌아갔고
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34.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약속의 아들인 이삭의 탄생과 이스마엘의 추방”
마침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인 이삭이 태어나게 됩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백 세이고 사라의 나이는 구십일 세로서,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마치 고사목(枯死木)처럼 생식능력이 완전히 말라버린 그 두 사람에게 잉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이삭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이삭의 탄생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는 인간의 힘이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지는 일임을 밝혀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본 장의 8-21절에서는 하갈의 소생인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다가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그들 모자(母子)가 추방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으로 태어난 이삭에게서 나는 후손들만을 구속사의 주역으로 삼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으로, 아브라함이 낳은 ‘육체의 열매’인 이스마엘을 하나님의 언약에서 분리시킴으로써 구속사의 정통성을 이루어 가심을 보여줍니다.
약속의 말씀대로 태어난 이삭(1-7절)
【1절】“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라는 말이 두 번 반복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권고하시고, 행하심으로써 사라는 아들을 낳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창세기 기자는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2-4절】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기한에 이삭은 태어났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할례가 행해졌습니다. 지금까지 아브라함에게는 여러 번 위기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때를 예비해 두시고 아브라함을 이끌어 오신 것입니다.
【5-7절】‘이삭’은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이전에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기들이 아들을 낳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불신으로 인해 어이없는 웃음을 웃었던 적이 있습니다(17:17; 18:12).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기쁨의 웃음을 웃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집에서 추방되는 이스마엘(8-13절)
【8-13절】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큰 잔치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그 잔치자리에서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본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낼 것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사라의 요구는 인간적인 측면에서 몰인정한 처사라고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불신앙과 육체적인 방법에 의해 태어난 이스마엘은 애초부터 아브라함의 기업을 잇지 못할 자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혈육의 정에 이끌려 그들을 쫓아내는 것 때문에 깊이 근심합니다. 그러나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아브라함의 집에서 함께 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이처럼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추방된 사건에 대해서 이스마엘을 옛 언약(유대교)의 상징으로, 그리고 약속의 아들인 이삭을 새 언약(기독교)의 상징으로 비유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갈 4:22-26). 옛 언약에 속한 율법주의자들이나 혈통적인 유대인들은 결코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새 언약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난 자들, 즉 그리스도인들만이 아브라함의 축복을 이어 받을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것입니다.
이스마엘을 돌보시는 하나님(14-21절)
【14-21절】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을 내보내는 것에 대해서 근심하지 말라고 하시며, 아브라함을 보아서 이스마엘도 한 민족을 이룰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는 그들을 보시고 그들을 일으켜 샘물을 발견하게 하여 살게 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아이와 함께 계시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이 원래부터 언약의 씨가 아니라는 것은 하갈이 그 아들의 아내를 애굽인에게서 얻었다는 데서도 잘 나타납니다.
아브라함과 평화의 조약을 체결한 아비멜렉(22-34절)
【22-34절】브엘세바는 ‘일곱의 우물’, 또는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으로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사이에 이루어진 맹세를 기억나게 하는 이름입니다. 오랫동안 그 땅에서 살면서 마치 그 땅의 주인인 양 텃세를 부리던 아비멜렉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두려워하여 아브라함과 평화 조약을 체결하려 합니다. 이 조약에 의해서 아브라함은 그 땅에 평화롭게 거할 수 있는 법적인 권리를 갖게 되었고, 아비멜렉에게 브엘세바의 우물이 아브라함에게 속한 것임을 합법적으로 인식시키게 되었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바로 이 브엘세바의 샘물을 마셨던 것은 비록 그들이 아브라함에게서 쫓겨나긴 했으나, 아브라함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이었습니다.
◈ 묵상을 위한 질문
1.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백 세가 되기까지 아들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2. 왜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아내도록 허락하십니까?
◈오늘의 기도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율법주의와 인본주의적인 신앙의 행태들이 다 쫓겨나게 하소서!”
◈믿음의 글◈ “육체를 따라 난 자와 성령을 따라 난 자”
아브라함이 낳은 두 아들 중에서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난 자였고, 이삭은 성령을 따라 난 자였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1장에서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며 괴롭힌 것은 장차 육체를 따라 난 거짓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령을 따라 난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할 것에 대한 예표적 사건이라고 사도 바울은 설명하고 있습니다(갈 4:29).
초대교회 때에는 복음을 거부하고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따르는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기독교 역사에서도 보면 교회 안에 들어와 있기는 하지만 거듭나지 않은 종교인들이 성령으로 거듭난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일들이 계속되어 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 들어와 있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사는 사람들만이 참된 이스라엘인 것입니다(롬 8:14; 빌 3:3) 그런데 이스마엘이 이삭보다 더 힘이 세서 괴롭혔던 것처럼 교회에서도 권세를 가진 자들이 오히려 이스마엘과 같은 종교인들일 때가 많습니다. 나는 오늘 이삭입니까? 아니면 이스마엘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