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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이야기6 :
산악 그랜드슬램 - 히말라야14좌/세븐서밋/3극점
산악인들의 꿈이라는 '산악 그랜드슬램'.
이는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 히말라야의 8,000m급 14봉 등정, 지구 3극점 도달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세계 최고의 오지들을 모두 정복한다니, 생각만 해도 짜릿하지 않은가? 특히 3극점, 지구의 극지를 정복한다는 말 자체로도 가슴이 설렌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세븐 서밋(Seven Summits)이라 불리는 세계 7대륙 최고봉과 히말라야 8,000m급 14봉 그리고 3극점, 이 각각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직접 가보지 못하는거 구경이라도 하자...... orz
1. 7대륙 최고봉 (Seven Summits)
우선은 전세계 7대륙의 최고봉들에 대해 살펴보자.
아시아의 에베레스트, 남미의 아콩카구아, 북미의 맥킨리, 유럽의 엘브르즈, 오세아니아의 칼스텐츠,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극대륙의 빈슨매시프까지 각 대륙별 최고봉에 관한 이야기다.
떠나고 싶다!!! 우워어어어!!! 살면서 히말라야 14좌는 아니더라도 세븐서밋 등정의 꿈은 꼭 이뤄내고 싶다.
제작년, 한국계 미국인인 이연숙 씨(당시 51세)가 일반인으로써, 그것도 50이 넘은 '아줌마'로 마지막 7번째 봉우리인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 세븐 서밋을 달성했다는 뉴스를 보고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상업등반대와 함께 한 등정이었으나, 그게 어딘가!
일반인의 몸으로 참 대단하구나 싶었다. 우연한 기회에 킬리만자로를 보고 감흥을 받아 등반을 시작, 결국 세븐 서밋까지 완주했다고.
헌데 이 세븐 서밋을 완등하려면 어림잡아도 1억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 OTL
개인이, 그것도 산악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기업의 후원을 받아 원정자금을 지원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ㅎㅎ
하아.... 목숨건 도전을 하는 데도 이렇게 큰 돈이 필요하다니....... OTL
아무튼 현재로써는 그림의 떡으로 만족하지만, 훗날 언젠가는 모두 오르고 말리라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무언가 인생의 커다란 목표가 있다는 건 참 다행이며, 행복한 일인 것이다.
그럼 이제 각각 최고봉의 자세한 설명을 보겠다. 자료 출처는 대산련(대한산악연맹) 홈페이지다. (http://www.kaf.or.kr)
1. 아시아 - 에베레스트 (Everest, 8,848m)
'눈의 거처'라는 의미를 지닌 히말라야는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산맥이다.
히말라야는 인도대륙이 유라시아 대륙과 충돌하면서 융기된 산맥으로 8천m이상 봉우리 10여개가
몰려있다. 동쪽 부탄 남차바르~서쪽 파키스탄 낭가파르밧까지 2,500km나 뻗어있으며 남북의 폭이
300km에 이르는 거대한 산군으로, 쿰부히말라야 지역에 위치하며 네팔과 티베트의 경계를 이룬다.
에베레스트가 세계 최고봉으로 확인된 것은 1852년이다.
영국은 1849년부터 식민지였던 인도의 광활한 히말라야 산맥에 대해 측량사업을 벌였는데 그 중에
P15란 기호로 표기되었던 봉우리가 해발 8,848m의 세계 최고 높이로 밝혀진 것이다. 발견된 후로도
P15라고 불리다가 1856년 비로소 측량국 장관의 이름을 따서 마운트 에베레스트라 명명되었다.
이는 산 이름에 인명을 붙일수 없던 당시 관례를 깬 것으로 재래 고유명이 없단 판단에 의거되었다.
십수년 뒤 초모랑마란 이름이 있었단걸 알았으나 이미 세상엔 에베레스트란 이름이 굳혀져 있었다.
초모랑마는 티베트어로 '대지의 여신'이다. 또 네팔어인 '사가르마타'는 '세계의 정상'을 뜻한다.
자연환경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은 회색의 석회암, 아래쪽은 변성암으로 이뤄져 있으며, 대기권을 지나 성층권 2/3지점까지 솟아 있기에
산소부족,강풍,혹한이 생명체의 존립이 불가능케 해 '제 3의 극지','죽음의 지대'로 불린다. 에베레스트가 포함된 네팔과 더불어 시킴, 부탄
지역은 몬순이라고 하는 계절풍의 영향을 받아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다. 우기는 6월중순~9월하순까지이다.
히말라야는 그 길이만큼이나 폭도 넓고 남북간의 높낮이가 심해 폭넓은 기후대가 형성되어있다. 네팔지역은 1,200m까지 아열대기후이고, 1,900m까지는 냉온대, 3,900m까지는 아고산대(이곳이 삼림한계선이다), 5,500m까지는 고산대로 티베트에서는 방목지로 이용하고 있다.
이같은 기후덕에 바나나부터 고산 노송까지 다양한 식생이 존재한다.
등반역사 에베레스트는 1922년 영국 원정대에 첫 도전을 받았다. 조지 핀치와 제프리 브루스는 산소통을 사용해 8,320m까지 올라섰다.
1924년 영국대의 조지 말로리, 앤드류 어빈이 8,450m이상 진출하고 실종됐다. 그의 시체는 1999년 발견됐고, 등정 여부가 논란이 되었다.
1953년 5월29일, 영국원정대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게이 셀파가 남동릉을 통해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선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이후로도 세계 최고봉답게 모든 산악인들의 열망의 대상으로 많은 도전을 받게 된다. 1975년 일본의 다베이 준코는 여성초등을 기록했고,
1978년엔 이태리의 라인홀트 매스너와 오스트리아의 페터 하벨러가 최초로 무산소 등정을 한다. 메스너는 1980년 단독등정에도 성공한다.
한국은 1977년 대한산악연맹원정대의 고상돈 대원이 정상에 올라 세계 최고봉 등정과 한국 8천m급 등정을 동시에 기록했다.
2. 남아메리카 - 아콩카구아 (Aconcagua, 6,959m)
잉카문명권 공용어인 케추아어로 '흰 수호신'을 뜻하는 아콩카구아는 멘도사주 라스헤라스 지역에
위치한다. 남쪽으론 로스오르코네스 계곡과 경계하며 동쪽으로는 라스바카스 계곡에 접해 있다.
아콩카구아가 속해있는 안데스산맥은 남미대륙 서쪽부터 태평양 연안까지 무려 8,000km나 이어진
세계 최장의 산맥이다. 중부엔 해발 5,000m 이상의 고산들이 이어져 있으며 아콩카구아는 이 산맥의
최고봉이자 남반구 최고봉이다. 이 지역은 위도 차이와 동서의 강수량 차가 크며 지역차도 뚜렷하다.
대부분 인구 밀집지역은 열대권에 속하나 고도가 높아 연중 온대에 가까운 열대고산기후이다.
각국의 주요 도시가 이곳에 위치해 있으며 고대 잉카제국 역시 이 지역을 중심으로 번영했다.
지역별 다소 차이가 있으나 설선고도는 평균 4,500m이며, 그 위는 대부분 만년설과 빙하로 덮혀있다.
이 지역 특유의 바람인 비엔토블랑코는 시속 160km의 눈보라를 동반한 강풍으로 등반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걸로 알려져있다. 그리고 이 산을 오르려면 1인당 80불의 입산료를 내야한다.
멘도사 시내에 이 업무를 맡은 사무소가 있지만, 대부분은 대행사를 통해 절차를 밟는다.
자연환경 안데스 중부는 열대기후인 안티네와 한대기후인 파타고니아의 중간쯤 되는 열대기후며 아콩카구아 주변은 사막같이 건조하다.
척박한 환경 탓에 이 지역에선 식생을 거의 볼 수 없으며 야생동물 또한 매우 제한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다습 기류는 안데스산맥 서편을 따라 상승하며 눈을 뿌리고, 산맥을 넘은 뒤엔 고온 건조한 바람이 되어 동쪽 기후에
영향을 끼친다. 이는 유럽의 푄현상,우리나라의 높새바람과 흡사한데, 이 지역에선 이 바람을 존다라고 부른다.
이 기단의 움직임은 아콩카구아에 폭풍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데, 특히 여름철 안데스 서북면에서 전기폭풍이 자주 발생한다.
등반역사 1883년 독일인 폴 구스펠트에 의해 첫 시도됐다. 1897년 여름, 영국인 피츠제럴드가 이끈 원정대의 마티아스 주브리겐이 북면
노멀루트를 통해 단독 등정에 성공, 아콩카구아 정상에 선 최초의 사람이 됐다.
한국대의 등반은 1980년 서울 문리대 OB팀의 북면등반으로 시작되어 1981년 1월18일 공응대,최중기 대원이 정상등정에 성공했다.
3. 북아메리카 - 매킨리 (Mckinley, 6,194m)
매킨리는 미국 알래스카주 중남부 알래스카산맥 중심 가까이에 있는 북아메리카 대륙의 최고봉이다.
알래스카 대륙 북서쪽 끝, 지질학적으로 북태평양 화산대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1974년 영국 항해사
조지 벤쿠버가 처음 발견했다. 1959년 1월3일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이는 조약을 체결하며
미국의 49번째 주로 편입됐다. 이곳엔 무려 3천여개의 강과 3백만개의 호수, 5천여개의 빙하가 있다.
매킨리는 앵커리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210km떨어진 데날리국립공원에 속해있다.
산의 두 봉우리 중 정상은 남쪽 봉우리며 약 70% 이상이 만년설로 덮혀있다.
원주민에게 매킨리는 '높은 곳'이란 뜻의 '데날리'로, 러시아인에겐 '큰 산'이란 뜻의 '볼샤야고라'라
불린다. 현재 이름은 1896년 미 대통령에 당선된 윌리엄 매킨리를 기념, 윌리엄 A.디키가 붙였다.
이 산은 북면이 5,000m로 19km나 펼쳐져 있고, 남면은 3,000m 표고차의 화강암이 카힐트나 빙하까지
이어져 있다. 북위 63도, 북극에서 322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여 추위가 심하고 기상이 불규칙하며,
낮이 지속되는 백야현상과 높은 위도로 인한 고소증이 히말라야 지역보다 500~900m 높게 나타난다.
자연환경 빙하는 알래스카 대표 지형으로 강수량이 많은 알래스카 산맥,랭글 산군,추가치 산군,세인트엘리아스 산군에 집중되어 있다.
이 빙하지대는 알래스카 총 면적의 5%에 해당되며 알래스카에는 무려 10만개의 크고 작은 빙하가 있다.
광대한 지리적 조건과 지형적 기복으로 알래스카의 기후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전체적으로 비교적 온화기후지만 강우량이 많고
남단 쪽으로는 해양기후의 영향으로 안개가 잦다. 내륙은 대륙성 기후로 여름에는 낮이, 겨울에는 밤이 길다. 공기는 매우 건조한 편이다. 알래스카에서 가장 특이한 기상현상으로 백야와 오로라를 꼽을 수 있다.
등반역사 1913년 4명의 미국대가 초등을 이루었으나 하산 도중 실종되었다.
한국에서는 1979년 청주대팀 고상돈,이일교,박훈규씨가 초등했으나 하산 도중 고상돈,이일교씨가 사망했다.
매킨리는 크게 동릉,서쪽,남릉,남벽,북쪽루트의 5개루트로 나눠 구분한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루트는 서쪽 웨스트버트레스와 웨스트립,
남벽의 캐신 릿지 등이다. 웨스트버트레스는 1951년 7월10일 Washburn, Gale, Buchtel, Hackett 4명에 의해 초등되었다.
매킨리는 히말라야에 비해 경비가 적게 들고 접근이 쉬우며 다양한 루트로 오를 수 있고, 행정처리가 수월하기 때문에 많은 팀들이 몰린다.
그러나 포터가 없기에 대원들 스스로 모든 역할을 맡아야 하고, 랜딩포인트에서 정상까지 4,000m의 표고차를 극복해야 하는 난점이 있다.
4. 유럽 - 엘부르즈 (Elbrus, 5,642m)
엘부르즈가 속한 코카서스는 러시아어로 카프카즈라 불리며 구소련 남부의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있는 산계와 지역의 총칭이다. 엘부르즈는 코카서스 산맥의 주봉으로 서봉(5,642m)과 동봉(5,621m)
두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있으며 활동을 멈춘 사화산이다.
따라서 적설량이 많은 겨울철을 제외하고는 등반중 화산 흔적을 쉽게 볼수있다. 특히 해발 4,800m의
파스투초프록 부근은 화산활동이 멈추면서 굳은 돌이 많이 쌓여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러시아의
카바디나-발키리아 자치공화국에 속하며 서쪽으로 흑해, 동쪽으로 카스피해, 남쪽은 아제르바이젠,
그루지아, 아르메니아 공화국과 접경을 이루고 있는 코카서스 산맥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설선고도는 남쪽사면이 3,200m, 북쪽사면이 3,500m이다. 이 화산에는 22개의 빙하지역이 있으며,
이 빙하에서 나오는 물과 눈은 쿠반강,테레크강의 수원으로 흘러든다. 보통 몽블랑(4,807m)을 유럽
최고봉으로 알고있는 사람이 많지만, 지리학적으로 코카서스의 주봉인 엘브루즈가 유럽 최고봉이다.
등반은 기술적 면에선 어려움이 없지만 해발 5,000m를 넘는 만큼 고소적응이 관건으로 작용한다.
자연환경 코카서스의 지형은 중앙부의 볼쇼이코카서스 산맥을 경계로 북부는 넓은 저지대와 스타브로폴 고원, 남부는 카스피해 서안의 쿠라아라스크 저지대, 흑해 공안의 콜히다 저지대 그리고 두 저지대 남쪽의 말리카프카스 산맥으로 이루어진다.
카스피해에 접해 있는 독립국가연합의 아제르바이젠 공화국 수도 바쿠에서 북서쪽으로 흑해를 향해 1,500km의 길이로 뻗어있는 코카서스 산맥은 동서양을 나누는 역할을 한다. 이는 또한 남북으로도 110~180km에 이르는 넓은 산자락을 펼치고 있어 전체적으로 커다란 산군을
이루고 있다. 이 지역의 1월평균 기온은 영하 2~6도, 7월은 23~28도이며, 2,000m이상 산간지역 1월평균 기온은 영하8도, 가장 더운 8월은
13도이다. 최고봉 엘부르즈를 중심으로 센트럴 코카서스 지역엔 카즈벡(5,047m),시하라(5,200m) 등 5,000m급 봉우리가 여러 개 솟아있다.
등반역사 엘부르즈의 공식적인 초등은 1829년 엠마누엘 원정대의 현지 가이드인 카쉬러프가 북면을 통해 오른 동봉 등정이며,
1874년 그로브의 영국팀이 남면을 통해 서봉에 올랐다고 되어있다. 허나 이 지역 사람들은 아히야 쇼타예프가 1849년 서봉을 초등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당시 61세로 엘부르즈 지역의 유명한 가이드였는데, 1874년 85세의 고령에 또다시 서봉을 올랐단 놀라운 얘기가 전해진다.
국내에선 1989년 소련의 소빈터스포츠에서 개최한 국제 산악캠프의 공식 초청에 의해 등반이 이루어지기 시작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5. 오세아니아 - 칼스텐츠 (Carstensz, 4,884m)
오세아니아는 대양주라고도 하며 6대주의 하나로 태평양 전역에 흩어져있는 섬의 총체적 이름이다.
칼스텐츠는 인도네시아 뉴기니의 이리안자야에 위치한 오세아니아 최고봉으로 현지인들 사이에선
푼칵자야라고도 불린다. 총면적 79만2,540평방미터의 뉴기니는 그린란드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쨰로
큰 섬이다. 섬 전체에 걸쳐있는 약 2,000km의 험한 산계는 뉴기니의 두드러진 지형적 특징을 이룬다.
주능선에는 3,000m 이상 봉우리들이 연해있으며 몇 군데에서는 4,500m 이상의 암봉이 치솟아 있다.
크고작은 만년설원과 잔존 빙하들도 곳곳에 남아있다.
이곳은 서구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지역이며 원주민인 다니족 생활 속엔 아직도 석기시대 영향이
남아 있다. 칼스텐츠 등반을 위해선 이들 다니족을 대동해 열대밀림을 통과해야 한다.
이러한 접근 곤란성, 정치적 내분, 인종갈등으로 인한 위험성 등의 이유로 과거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코시어스코(Kosciusko, 2,239m)를 오세아니아 최고봉으로 쳤으나 현재 국제 산악계는 둘 다
최고봉으로 인정하고 있다. 코시어스코는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주 남동부에 위치해 있다.
자연환경 지질학적으로 이리안자야의 산들은 주로 지각운동에 의해 대규모로 솟구쳐 올라 단층을 이룬 석회암,사암 등으로 구성되있다.
중앙산계는 세 개의 인접 산맥으로 구성된다. 파푸아뉴기니 국경에서 서쪽으로 뻗은 위스누마르티 산맥, 발리엠 계곡 남쪽 끝을 구획짓는 자야위자야 산맥, 서쪽 파푸아뉴기니 호수로 뻗어나가는 수디르만 산맥이다. 칼스텐츠는 이중 수디르만 산맥에 속하며 히말라야 산맥과
안데스 산맥 사이의 최고점이다. 산맥의 남쪽 사면은 급격히 깎여 밀림이 되고 이어 해안 늪지대를 이룬다. 서쪽은 경사가 가파른 퇴적암
능선이 형성되있으며, 산맥의 북쪽을 향한 사면은 완만하게 흘러 산록의 구릉지대와 광대한 맘베라모 분지를 형성한다.
열대다우기후와, 삼림이 전체 면적의 90%이상을 차지하는 이리안자야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풍부한 식물상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연중 덥고 습한 나날이 계속되는 전형적인 몬순기후대에 속해 있으며 건기(5월~10월)와 우기(12월~3월)가 뚜렷한 편이다.
등반역사 1623년 네덜란드 항해가 칼스텐츠가 처음 발견하여 유럽에 소개했다. 1936년 콜리진과 도우지가 등정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1962년 오스트리아의 하인리히 하러와 템플에 의해 초등되었다. 이 등반에는 네덜란드의 후젠가, 오스트리아의 키팍스 등이 함께했으며
식량 등 보급품을 경비행기로 공중투하하는 방법을 썼다. 1971년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매스너와 비가렐라가 피라미드 재등을 기록했으며,
1972년 영국의 이셔우드,머레이,베인즈 3명이 북면루트 초등을 기록했다. 1973년엔 미국 등반가 카슨이 피라미드 신루트로 단독 초등했다.
칼스텐츠에는 현재 북면의 13개, 남면의 3개를 포함해 모두 16개의 등반루트가 있다.
6. 아프리카 - 킬리만자로 (Kilimanjaro, 5,895m)
킬리만자로는 탄자니아와 케냐의 국경부근 탄자니아령에 있는 세계 최대,최고 휴화산이며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이다. 적도에서 남쪽으로 약 330km지점에 있으며 정상부는 주봉인 키보(Kibo, 5,895m)
를 비롯해 마웬지(Mawenzi, 5149m)등 3개의 성층 원추화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의 크기는 동서로
약 80km에 달하며 그중 키보는 분화구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고 최고봉은 우르피크(Uhrue Peak)다.
적도 부근에 위치하면서도 만년설에 덮여 있어 백산이라고도 한다.
대부분이 현무암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기저에는 대규모 기생화산이 순상형태로 존재한다.
가장 최근에 형성된 돔 형태의 키보화산 정상 분화구는 직경 약 1.9km의 칼데라를 이루고 있다.
칼데라 중심부에는 유황을 함유한 화산재에 덮인 작은 분화구가 자리잡고 있다.
킬리만자로란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산'이란 뜻이다. 1889년 오스트리아 등반가 프르트쉘러와 독일
지리학자 한스 마이어가 처음으로 키보봉 등정에 성공하며 산의 존재가 알려지게 됐다.
한국인으로는 전명철씨가 1981년 10월5일 처음으로 공산권 탄자니아령에 있는 킬리만자로를 올랐다.
자연환경 킬리만자로는 적도 남쪽에 위치해 우리나라와 반대 계절을 가지며 3월말~6월초까지 본 우기, 10월말~1월초까지 짧은 우기가
한번 더 있다. 한국과는 달리 7,8월이 가장 기온이 낮다. 3월 초순~5월 중순의 우기엔 두터운 구름이 층을 이루어 정상부에는 눈이 내리고
저지대에는 비가 내린다. 이 시기의 기온은 대체로 따뜻하나 6월말에서 7월 사이 건기에는 구름이 없고 기온이 많이 떨어진다.
등반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1~2월로 대체로 건조하고 따뜻하며 가끔 소나기가 내린다.
케냐와 탄자니아는 고도에 따라 대체로 3가지로 구별대는 기후대와 식생을 보인다. 킬리만자로를 중심으로 펼쳐진 해발 1,700~1,800m에 이르는 고원지대는 열대성 기후를 이루는 인도양에 면한 저지대와 사바나기후를 이루는 중간지대와는 달리 연중 섭씨 12~15도의 기온을 유지하는 이상적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3분법은 킬리만자로에서 다시 적용되어 마랑구게이트(입산신고소, 1,980m)에서 만다라산장(2,730m)까지는 원시림지대, 만다라산장에서 호롬보산장(3,720m)까지는 관목지대, 호롬보산장에서 키보산장(4,700m)까지는 고산성 사막지대를 이룬다. 키보산장부터 길만스포인트(5,685m)까진 화산재로 이뤄진 급경사지대, 우르봉(5,985m)까진 빙하로 덮인 용암지대다.
등반역사 킬리만자로에는 6개의 등반루트가 있다. 산장의 시설이 좋고 정상까지 코스가 평이해 가장 많이 찾는 코스는 마랑구 루트다.
이 코스는 마랑구게이트에서 출발해 만다라 산장~호롬보 산장~키보 산장을 거쳐 정상에 이르는 코스이다. 이 외에도 일반 루트에서는
가장 힘들지만 경치가 좋은 움베루트, 빠른 고도상승으로 고소적응이 힘든 시라고원루트, 산을 가로지르는 로이토키톡 루트 등이 있다.
7. 남극대륙 - 빈슨매시프 (Vinson Massif, 4,897m)
빈슨매시프가 속한 남극대륙은 연평균 기온이 영하55도로 세계에서 가장 춥고 건조하며 바람이 많은
지역이다. 총 면적은 미국의 1.5배인 1400만 평방킬로미터이며 그중 98%가 2~4km두께의 얼음으로
뒤덮여 있어 '백색의 제7의 대륙'으로 불린다. 전체 육지 면적의 9.2%를 차지하는 이 광대한 지역에
탐험가들의 발길이 닿기 시작한 건 18세기말 경으로 1772~1775년 영국인 선장 J.쿡이 선단을 이끌고
남극권을 처음으로 횡단했다. 이후 1948 노르웨이,영국,스웨덴 3국 합동으로 퀸모드랜드를 탐험하고,
프랑스의 빅토르는 탐사대를 이끌고 아델리랜드에 기지를 세웠다. 남극대륙 최고봉 빈슨매시프는
1935년 미국의 탐험가 링컨 엘스워스에 의해 발견됐고, 남극조사/탐험의 강력한 후원자며 남극대륙
탐사대가 정부지원을 얻는데 큰 역할을 한 국회의원 칼 빈슨의 이름을 따 빈슨 매시프라 명명되었다.
200~900m의 얼음으로 덮인 붕빙을 포함, 한반도의 60배가 넘는 거대한 대륙빙엔 몇 개의 산봉우리와
연안의 산맥 그리고 해안지대의 암산이 드러나 있는데, 본초 자오선과 경도 180을 기준으로 동남극과
서남극, 횡단산맥을 기준으로 큰남극과 작은남극으로 나누기도 한다.
자연환경 남극대륙은 육지의 대부분이 얼음으로 덮여 있는, 생명체가 살아가기엔 최악의 자연환경을 가진 불모지이다. 평균 얼음두께는
2,160m, 가장 두꺼운 곳은 4,700m나 된다. 유럽 알프스 몽블랑(4,807m)의 높이와 거의 맞먹는 두께이다.
이 지역은 지구상에서 가장 기온이 낮고 내륙은 사하라 사막보다 더 건조하며 매우 독특한 기후군을 형성하고 있다.
해안지역은 눈을 동반한 강한 블리자드가 부는데, 이 특유의 강풍은 심한 경우 1m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라 '풍극'이라 불리기도 한다.
1913년 데니스곶에서는 90m/s의 강풍이 불었고, 아데리랜드에서는 연중 100일 이상 초속 50m이상의 블리자드가 부는걸로 기록되어 있다.
1983년 7월 남극에 위치한 구소련의 보스톡 기지에서 영하 89.6도가 기록되었고, 평균기온은 영하 49.6도이다.
남극은 영어로 Antarctica이며, 반대를 의미하는 Ant와 곰을 의미하는 Arctos의 두 단어가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동남극 대륙의 경우 고원을 이루며 서남극 대륙은 낮은 곳으로 현재의 해수면 이하인 곳도 많다.
등반역사 초등은 미 국립과학재단의 후원에 의해 내셔날 지오그래픽사와 아메리칸 알파인클럽 합동등반대가 1966년 10월20일 이뤄냈다.
우리나라에선 1985년 한국해양청소년단연맹이 한국남극관측탐험대를 파견했다. 탐험대를 이끌었던 윤석순 단장은 16명을 2개조로 편성,
킹조지섬과 빈슨매시프산을 탐사했고 허욱,이찬영,허정식 대원이 11월29일 세계에서 6번쨰로 등정에 성공했다.
이어 1994년 1월11일 허영호가 이끄는 4명의 남극도보탐험대가 패트리어트힐을 출발한 지 44일만에 남극점에 도달했다.
당시 한국대의 남극점 도보탐험은 영국,이탈리아,일본에 이어 4번째이며 1993년 초 일본 탐험대의 67일 기록을 23일이나 단축한 것이었다.
2. 히말라야 8,000m 14봉
히말라야 산맥은 아시아의 인도아대륙과 티베트 고원 사이에 놓여있다. 에베레스트 산과 14개의 8,000m 봉우리가 모두 이곳에 모여있다.
히말라야 밖에서 가장 높은 산은 남미의 아콩카구아(6,959m) 산이며, 7,000m가 넘는 산들은 모두 히말라야 산맥에 속해 '세계의 지붕'이라
일컬어지는 곳이다. 히말라야는 산스크리트어로 "눈이 사는 곳"이란 뜻이다.
히말라야 산맥은 파키스탄, 인도, 중국, 부탄, 네팔에 걸쳐 있으며, 인더스 강, 갠지스 강, 브라마푸트라 강, 창 강 등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히말라야 산맥은 인도가 섬이었다가 아시아에 다가가 합쳐질 때 생겨났다. 인도가 밀면서 그 힘으로 만들어진, 젊으면서도 높은 산맥이다.
- < 위키백과사전 >
▲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들의 위치.
▲ 우주에서 내려다 본 히말라야 산맥의 모습. 그 웅장함과 눈부신 만년설은 우주에서 내려다보아도 인상적이다.
수많은 세계의 산악인들이 히말라야의 '8,000m급 14봉 완등'을 목표로 오늘도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14봉 혹은 14좌라고 표현하는데, 흔히들 8천m 14(座)로 불리우기도 하지만 14(座)라는 표현은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한자로 사용될 뿐이다.
보통 산악인들은 '14좌'라는 표현이 일본식이라 하여 잘 사용하지 않는다.
영어로는 8000er 또는 8000ers(복수형)로 표현되며 "8,000m를 넘는 산" 정도로 표현된다.
그리고 현대 히말라야 등반의 의미를 부여함에 있어 단순한 8,000m 등정은 더이상 대단한 평가를 받지 못하며,
"얼마나 어려운 루트를 올랐는가"로 등반의 성과를 평가한다. 2009년 7월 기록된 8,000m 14고봉 완등자는 다음과 같다.
1. 라인홀트 메스너(이탈리아) : 1970년 시작 1986년 끝냄. 16년 걸림. 당시 나이 42세.
2. 예지 쿠쿠츠카(폴란드) : 1979년 시작 1987년 끝냄. 8년 걸림. 당시 나이 41세.
3. 에라르 로레탕(스위스) : 1982년 시작 1995년 끝냄. 13년 걸림. 당시 나이 36세.
4. 카를로스 카르솔리오(멕시코) : 1985년 시작 1996년 끝냄. 11년 걸림. 당시 나이 33세
5. 크리스토프 비엘리키(폴란드) : 1980년 시작 1999년 끝냄. 16년 걸림. 당시 나이 46세.
6. 후아니토 오이아자발(스페인 바스크) : 1985년 시작 1999년 끝냄. 14년 걸림. 당시 나이 43세.
7. 세르지오 마르니티(이탈리아) : 1976년 시작 2000년 끝냄. 24년 걸림. 당시 나이 49세.
8. 엄홍길(한국) : 1988년 시작 2000년 끝냄. 12년 걸림. 당시 나이 43세.
9. 박영석(한국) : 1993년 시작 2001년 끝냄. 8년 걸림. 당시 나이 40세
10. 알베르토 이누라테기(스페인) : 1991년 시작 2002년 끝냄. 11년 걸림. 당시 나이 34세. 14봉 무산소.
11. 한왕용(한국) : 1994년 시작 2003년 끝냄. 9년 걸림. 당시 나이 37세.
12. 에드 비에스터(미국) : 1989년 시작 2005년 끝냄. 16년 걸림. 당시 나이 47세. 14봉 무산소.
13. 앨런 힝크스(영국) : 1987년 시작 2005년 끝냄. 18년 걸림. 당시 나이 51세.
14. 실비오 몬디넬리(이탈리아) : 1993년 시작 2007년 끝냄. 14년 걸림. 당시 나이 49세.
15. 이반 발레오(에콰도르) : 1997년 시작 2008년 끝냄. 11년 걸림. 당시 나이 50세. 14봉 무산소.
16. 데니스 우룹코(카자흐스탄) : 2000년 시작 2009년 끝냄. 9년 걸림. 당시 나이 36세. 14봉 무산소.
17. 랄프 두이모비츠(독일) : 1988년 시작 2009년 끝냄. 21년 걸림. 당시 나이 47세. 14봉 무산소.
18. 베이카 구스탚슨(핀랜드) : 2009년 7월 끝냄. 14봉 무산소.
스크랩해온 이 자료는 2009년 7월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며, 현재는 더 많은 완등자들이 배출되었을 것이다.
그 중엔 세계 여성 최초로 14좌를 완등한 한국 산악인 오은선 씨도 있다. 스페인의 에드루네 파사반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등반경쟁 끝에,
지난 2010년 세계 21위로 완등했다. 이로써 총 4명의 한국 산악인이 완등에 성공, 세계의 완등자 중 한국인의 비중이 가장 크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경쟁을 부추긴다는 논란이 있기도 했으며, 그 중 칸첸중가 등정여부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각설하고, 그럼, 이번에는 이 14봉들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역시 출처는 대산련(대한산악연맹) 홈페이지다.(http://www.kaf.or.kr)
역시 이번에도 그림의 떡이구나.......OTL 하긴 돈도 돈이지만, 히말라야 14봉은 하래도 못할것 같다. ㅎㅎ
8,000m 최고봉 14개를 모두 정복한다라...... 그간 얼마나 많은 산악인들의 희생이 있었을까. 다시한번 완등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알파인 스타일, 무산소 등정, 단독 등정 이런 모든 기록을 떠나서 그저, 모든곳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존경받을만 하다고 본다.
1. 에베레스트 (Everest, 8,848m)
위치 네팔히말라야 쿰부산군과 중국 티베트 경계 (네팔/중국)
위도 27도59'17"N
경도 86도55'31"E
고도 8,848m
1921년 봄 제3의 극지라 불리는 에베레스트에 역사적인 도전의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하워드 버리가 이끈 이 정찰 원정의 목적은 티베트쪽 접근로와 등정 가능한 루트를 찾는 것이었는데,
4개월간 에베레스트 북동릉의 노스콜(6,985m)까지 정찰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2차대전이 시작되기
직전인 1936년까지 7차례나 도전을 했으나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그떄까지 인간이 오른 최고높이는
8,572m였다. 2차대전이 끝나고 네팔왕국이 외국인에 문호를 개방한 후로 에베레스트에 대한 도전은
다시 시작된다. 미국과 스위스,영국원정대가 각축을 벌였으나 몇년간 계속 패퇴를 거듭했다.
1953년 프레몬순기에 영국은 제9차 원정대를 파견했다. 존 헌트 대장은 이때까지 원정 중에 기량이 가장 뛰어난 대원들을 선발했다.
원정대는 힐러리와 텐징 셀파를 최종공격조로 정했고 이들은 1953년 5월28일 오전11시30분, 인류 최초로 '제3의 극점'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선다. 세계 최고봉임이 밝혀진지 100년만의 일이다. 그 뒤로 에베레스트는 산악인들의 동경의 대상으로 매년 원정대가 끊이질 않았다.
우리나라는 1977년 9월15일 대한산악연맹원정대의 고상돈 대원과 셰르파 1명이 남동릉 루트로 등정해 세계 8번째 등정국이 되었다.
2. K2 (8,611m)
위치 카라코람 발토로산군 (파키스탄/중국)
위도 76도30'51"N
경도 35도52'55"E
고도 8,611m
K2는 그 높이에서뿐만 아니라 등반에 있어서도 많은 어려움을 갖고있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이 산이 세계 2위봉으로 알려진 건 1858년의 일이다. 에베레스트와 같은 식으로 이 산을 측정한 결과
8,611m라는 숫자가 나온 것. 이떄까지 이 산은 K2(카라코람 제2봉이란 뜻)란 기호로 쓰여왔던 것인데
우연하게도 세계 2위의 고봉으로 밝혀지자 그대로 K2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후에 이 산은 원주민들이 '초고리'라 부르는게 알려졌으나 이미 K2란 이름이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초고리'는 '큰 산'을 뜻한다.)
발토로 빙하 깊숙이 위치한 콩코르디아 북쪽 끝에 우뚝 선 K2는 크게 북릉,북서릉,서릉,남릉,남동릉,남서릉,북동릉 7개 능선으로 이뤄진
삼각뿔형 독립봉이다. 이 산을 처음 오르려 한 사람은 영국인 엑켄스타인이다. 그는 1902년에 5명의 대원과 이 산에 들어와 11개의 캠프를 전진시키며 등반하나, 6,812m에 도달하는 것으로 그쳤고, 이 원정은 K2가 만만한 산이 아니라는 걸 알리게 된다.
그 후로 1909년 당시 이태리 왕의 사촌형이던 아브루찌가 등정에는 실패했지만, 그가 발견한 남동릉은 '아브루찌 릉'으로 명명되었고 그의뜻을 이어 1954년 이 루트로 초등하게 된다. A.데지오가 이끄는 이탈리아 원정대가 7월31일 아브루찌릉을 통해 정상등정에 성공한 것이다.
세계 2위봉으로 판명된지 96년만이었다. 아브루찌의 대규모 카라반, 조직적 등반방식은 후에 히말라야 고산원정의 패턴으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는 1986년 8월3일 대한산악연맹원정대의 장봉완, 김창선, 장병호대원이 아브루찌 릉을 통해 정상등정에 성공했다.
3. 캉첸중가 (Kangchenjunga, 8,586m)
위치 네팔히말라야 동부와 시킴히말라야 (네팔/인도)
위도 27도42'09"N
경도 88도09'00"E
고도 8,586m
네팔히말라야의 최동단에 솟아있는 캉첸중가는 히말라야 고봉 중에도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산이다.
1899년 영국의 더글라스 일행이 이 산을 탐험하고 <캉첸중가 일주>란 탐사기를 남기며 서구세계에
알려졌다. 인도의 유명한 피서지인 다즐링으로부터 불과 50km밖에 떨어져있지 않아 장관을 이루는
이 산은 에베레스트가 발견되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알려져 있었다.
캉첸중가란 이름은 티베트어로 눈을 뜻하는 '다섯 개의 위대한 눈의 보고'란 합성어다.
이는 캉첸중가가 주봉 외에 서봉(8,505m), 중앙봉(8,473m) 등의 연봉으로 이루어진 데서 연유한 것.
이 산은 1955년 에반스대장이 이끈 영국대가 얄룽빙하를 경유하여 남서면으로 초등정했다. 1905년 등반이 시작된지 반세기만의 업적으로
10개팀의 실패와 11명의 희생자를 낸 끝에 이룬 인간승리였다. 그 후 1977년 인도대가 북동릉으로 두번쨰 등정하고, 1978년엔 스페인대가
중앙봉, 폴란드대가 남봉 초등을 해냈다. 그 후 북면으로 영국,일본이 새 루트를 뚫었으며 1982년에는 메스너 일행이 최초로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고 1984년에는 일본대가 남봉,중앙봉,주봉을 종주하는 기록을 세웠다.
한국에선 부산 대륙산악회의 87~88동계 캉첸중가 원정대가 캐러반 도중 대원 1명의 사망으로 인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등정에 성공했으나
정상사진이 없어 의혹이 제기되었고, 후에 1999년 봄 동국산악회의 박영석 대원이 사실상 한국초등을 기록했다.
4. 로체 (Lhotse, 8,516m)
위치 네팔히말라야 쿰부산군의 중북부
위도 27도58'00"N (네팔/중국)
경도 86도56'00"E
고도 8,516m
로체는 에베레스트에서 남쪽으로 3km정도 떨어져있으며 에베레스트 사우스콜을 기점으로 분리되어
있어서 에베레스트의 위성봉으로 인식이 되어선지 다른 8,000m봉에 비해 등반이 그리 많지는 않으나
성공률 역시 매우 낮은 봉우리이다. 산이름인 로체는 '에베레스트의 남쪽 봉우리'를 의미한다.
최초의 등반은 1955년 N.다이렌퍼스의 국제원정대가 시도했다. 프리몬순에 남쪽에서 정찰 등반을
하고 E.슈나이더가 지형도를 제작했으며 몬순 후에 웨스톤 쿰으로부터 본격 정상등정을 시도했지만
8,100m 지점에서 철수하는데 그쳤다.
초등정은 1956년 5월18일 A.에글러의 스위스대에 의해 이뤄졌는데 F.루이징거와 E.라이스가 서벽을 경유하여 정상에 도달했다.
현재 히말라야 고봉의 벽 중에 가장 등반이 어려운 벽 중 하나로 로체 남벽이 꼽히는데, 라인홀트 메스너가 '21세기에나 가능한 벽'이라고
표현했다. 8,000m급 14봉을 모두 오른 폴란드의 세계적인 등반가 예지 쿠쿠츠카가 1989년 로체 남벽을 오르던 중 추락사하기도 했다.
한국은 1988년 10월2일 대한산악연맹원정대의 정호진, 임형칠, 박희동, 박쾌돈 대원이 최초등정했다.
로체는 에베레스트와 인접한 관계로 로체봉 단독등반보다는 에베레스트와 로체를 연결하는 등반이 시도되는 경우가 많다.
5. 마칼루 (Makalu, 8,463m)
위치 네팔과 중국 국경, 쿰부히말라야의 동부 (네팔/중국)
위도 27도53'23"N
경도 87도05'29"E
고도 8,463m
마칼루는 네팔과 티베트의 국경을 이루는 중부히말라야 쿰부산군 동쪽에 위치, 에베레스트의 관문인
남체바자르에서 불과 38km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세계 5위의 고봉이다.
산 이름은 힌두교 사바신의 화신 '마하카라'에서 비롯된 것으로 산스크리트어로 '검은 신'이란 뜻을
갖고있다. 실제 마칼루는 밑에서 보면 흑갈색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다른 산에 비해 검게 보인다.
우리나라에는 '검은 귀신'이라고 발표하여 이 산의 인상을 더욱 무시무시하게 만들었다.
마칼루의 모습은 1921년 영국 정찰대가 북카르마 계곡에서 웅장한 자태를 촬영하여 처음 알려졌다.
첫 등반은 1954년 미국대에 의해 이뤄졌는데 이들은 동남릉 등반을 시도해 7,200m까지 올랐고, 다음해 프랑스대가 북서릉을 초등정했다.
이들은 5월15일,16일,17일 3회에 걸쳐 9명의 대원 전원이 등정해 세계 산악계를 놀라게 했다.
1970년 봄엔 일본대가 동남릉 루트를 뚫고 2등을 기록, 1971년 프랑스대가 서릉에 새 루트를 내며 등정했다. 1975년엔 유고슬라비아대가
수직의 남벽을 통해 4등을 이루고, 1976년 체코대가 남서 버트레스, 스페인대가 동남릉으로 각각 5,6등을 기록했다.
우리나라에선 1982년 5월10일 한국산악회 원정대의 허영호 대원이 셰르파 2명과 함께 등정에 성공했다.
6. 초오유 (Cho Oyu, 8,201m)
위치 네팔 히말라야 (네팔/중국)
위도 28도05'37"N
경도 86도39'43"E
고도 8,201m
초오유는 네팔과 티베트의 국경에 걸쳐 있다. 초오유는 산스크리트어로 '청록여신이 거주하는 산'
이란 뜻이다. 대부분의 히말라야 고산이 그렇듯 남면은 2km에 달하는 넓고 긴 급경사벽을 형성하며,
북면은 비교적 완사면이다. 정찰기록은 1952년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에릭 쉽튼에
의해 북서릉 6,800m까지 접근한 것뿐이다. 이 후 1954년 오스트리아 등반대에 의해 초등이 이뤄진다.
당시 이들은 네팔과 티베트간의 교역로이자 남체바자르에서 가까운 낭파라를 넘어서 북서릉을 통해
등정에 성공했다. 당시 이들은 8,200m가 넘는 고소에도 불구하고 산소보급 없이 등정에 성공했다.
티베트쪽 등반은 네팔 하이웨이를 경유, 티베트의 팅그리에서 차량으로 5,100m까지 접근 후 다시 야크 등으로 5,750m의 벽 하부까지 접근,
전진 베이스캠프를 설치한 후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하게 된다. 초오유 등반은 중국정부에 의해 등반이 허가되는 현재도 접근로나 비용문제
때문에 네팔 쿰부지역에서 낭파라를 넘어 티벳 영토에서 등반이 많이 이뤄진다.
현재 네팔 쪽에는 2km에 달하는 급준한 장벽에 2개 루트가 개척되어 있고, 티베트쪽엔 4개의 루트가 있다.
한국대는 1989년 대구경북연맹팀이 네팔쪽에서 낭파라를 넘어 서면으로 등정했다고 발표했지만 의혹이 제기되었고,
확실한 등정은 1992년 정식으로 중국정부의 입산허가를 받아 도전한 울산-서울합동대의 남선우,김영태조가 등정에 성공했다.
7. 다울라기리 (Dhaulagiri, 8,167m)
위치 네팔히말라야 중부, 다울라기리 산군 (네팔)
위도 28도41'48"N
경도 83도29'42"E
고도 8,167m
다울라기리는 고대 티베트와의 교역로인 칼라간다키 강을 끼고 안나푸르나 산군과 마주보고 있다.
산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 '흰 산'을 의미한다. 다울라기리 산군은 동쪽의 투크체피크(6,920m)에서
서쪽 푸타히운출리(7,426m)까지 40km에 걸쳐서 주산맥과 지맥들로 이루어졌는데, 이 안에
다울라기리 1봉부터 6봉이 연이어 있고, 그밖에 추렌히말,구르자히말 등이 솟아있다.
다울라기리는 프랑스원정대의 7회에 걸친 도전에도 정상을 허락하지 않다가 1960년 이 산에 3번째로
찾아온 스위스합동대에 의해 초등되었다.
북동릉 루트를 선택한 스위스대는 카라반 대신 경비행기로 타파고개(5,200m)와 북동릉(5,877m)에 물자를 수송하는 등 치밀한 등반활동을
펼쳐 5월13일 6명의 대원이 무산소로 정상을 밟은 것이다.
한국에선 1962년 경희대팀에 의해 최초로 정찰되었으며, 1988년 11월14일 부산합동대의 최태식 대원과 셰르파 2명이 등정에 성공했다.
8. 마나슬루 (Manaslu, 8,156m)
위치 네팔히말라야 중부 (네팔)
위도 28도33'00"N
경도 84도33'43"E
고도 8,156m
마나슬루는 네팔 제2의 수도 포카라에서 북동쪽으로 약 60km 떨어진 마나슬루 산군의 최고봉이자
세계 제 8위의 고봉이다. 주위에 북봉(7,154m), 서봉(7,571m)과 피크29(7,835m), 추렌히말(7,371m)
등을 거느리고 있다.
인도측량국의 측량기호로 P30이던 마나슬루는 산스크리트어로 '영혼의 산'이란 뜻을 갖고있다.
현지인들은 이 산을 신성시하여 초등정을 노린 일본대의 등반을 수년간 집요하게 방해하기도 했다.
마나슬루에 대한 인간의 도전은 네팔왕국이 개국한 직후인 1950년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영국대가 북서면을 답사했고, 이어서 1952년부터 일본대가 3회에 걸쳐 북측과 동릉에 등반이 가능한 루트를 관찰했다.
마침내 1956년 5월9일에 마키대장이 이끄는 일본대에 의해 이마니시와 셀파 강첸 노르부가 정상등정에 성공했다.
그 후 1971년 다까하시가 이끄는 일본대가 북서벽을 경유하는 새롭고 험난한 루트로 2등을 기록, 이 산이 '일본인의 산'임을 재확인했다.
이어서 1972년에는 메스너가 남벽에 새 루트를 뚫었다.
마나슬루는 한국산악인들에겐 비극의 산이기도 하다. 1971년 최초원정에서 김기섭대장이 추락사한데 이어 1972년에는 김정섭대장이 이끈
원정대가 6,950m 지점에서 눈사태로 4명의 한국대원과 1명의 일본인, 그리고 무려 10명의 셀파가 사망하는 히말라야 등반사상 두번째로 큰 조난사고를 당했다. 결국 1980년 봄에 결국 이인정 대장이 이끄는 동국산악회에 의해 세계에서 8번째로 등정에 성공했다.
9. 낭가파르밧 (Nanga Parbat, 8,125m)
위치 파키스탄 푼잡히말라야 (파키스탄)
위도 35도14'21"N
경도 74도35'24"E
고도 8,125m
'산중의 왕'이라 불리는 낭가파르밧은 약 2500km에 달하는 협의의 히말라야 산맥 서쪽 끝에 위치한
푼잡히말라야의 최고봉으로, 북쪽으론 인더스강 상류를 경계로 카라코람과 떨어져있으며, 동쪽으론
캐시미르를 이어 히말라야로 통한다. 다섯개의 큰 빙하 위에 수직의 루팔벽이 남쪽으로, 서쪽으로는
디아미르벽, 북동쪽으로 라키오트벽이 내리뻗고 그 위에 북봉,주봉,남봉이 사다리꼴 모양으로 400m
정상벽을 이루며 장엄하게 솟아있다. 낭가파르밧은 인도측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으로 '벌거벗은 산'
을 의미하고, 디아미르는 산의 서측 탈트계 사람들이 '정령의 산'이란 의미로 부른다.
세계 9위의 고봉 낭가파르밧은 일찍이 알프스에서 등로주의를 선창하고 나선 머메리가 1895년 히말라야 등반사의 첫 장을 열었던 산이다.
머메리는 불행히 이 등반에서 조난사하고 만다. 그 58년 뒤인 1953년 7월3일 독일-오스트리아 합동대의 헤르만 불에 의해 초등정되기까지 독일인에게 6차례나 실패를 안겨주고 그 과정에서 31명의 희생자를 냈다. 초등정시 본부 명령을 어기고 단독으로 정상도전에 나서 3일만에
살아 돌아온 헤르만 불은 '8,000m의 위와 아래'라는 유명한 책을 남겼다.
보다 높고 어려운 등반을 추구하는 머메리즘의 실현 대상으로써의 낭가파르밧은 8천미터급 산 중에서 가장 많은 희생과 고통을 요구한다.
대표적인 벽은 디아미르벽과 루팔벽인데, 특히 남동쪽 루팔벽은 수직 고도가 4,500m로 세계 최대의 벽이며 그 등반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1990년 7월 광주전남합동대가 정상을 노렸으나 정성백 대원이 7,900m지점에서 실종되고, 1992년 우암산악회가 등정했다.
10. 안나푸르나 (Annapruna, 8,091m)
위치 네팔히말라야 중부, 안나푸르나 산군 (네팔)
위도 28도35'44"N
경도 83도49'19"E
고도 8,091m
세계 10위 고봉 안나푸르나는 서쪽으로 칼리간다키 강과 동쪽으로 마르산디 계곡까지 수많은 연봉을
거느린 안나푸르나 산군 최고봉이다. 안나푸르나 2봉,3봉,4봉의 위성봉과 닐기리틸리쵸,강가푸르나,
마차푸차레 등 아름다운 7,000m급 산들을 거느리고 있다.
모리스 에르조그의 프랑스대는 본래 공격목표였던 다울라기리에서 안나푸르나로 진입해 등반로를
정찰했는데 등반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과감하게 등반을 시도하여 6월3일 정상에 서는데 성공했다.
산명은 '풍요의 여신'이란 뜻이며 인류 최초로 등정됐다하여 'Premier 8000'이란 별칭도 갖고 있다.
1949년 네팔왕국이 오랜 쇄국정책 끝에 문호를 개방했는데 이에 세계 각국 원정대가 미답사의 8,000m급 봉우리를 등정하기 위해 몰렸고,
그 서두를 화려하게 장식한 것이 프랑스대의 안나푸르나 등정이었다.
그러나 성공과 달리 하산 때는 처참한 상황이 벌어졌는데 등정도 모리스 엘조그와 루이 라슈날이 3도 동상을 입고 후송되어 내려왔는데,
그는 여러날 걸린 무더운 카라반 끝에 결국 손가락과 발가락을 절단해야만 했다.
이후 1970년 영국의 크리스 보닝턴이 이끄는 원정대가 험난한 남벽을 통해 등정하여 히말라야 등로주의 시대를 열었다.
이후 안나푸르나에는 10여개의 루트가 개척되었으나, 이산 특유의 눈사태로 수많은 산악인이 희생되었다.
우리나라도 지금까지 14명의 대원과 셰르파가 사망했다. 한국대는 1984년 겨울 여성최초,동계최초 등정성과를 이뤘으나 의혹이 제기됐고,
공식 최초 등정은 1994년 남벽으로 오른 경남산악연맹의 박정헌 대원과 4명의 셰르파에 의해서다.
11. 가셔브룸 1봉 (Gasherbrum1, 8,068m)
위치 카라코람 발토로산맥, 중국 신강자치구 경계 (파키스탄/중국)
위도 35도43'30"N
경도 76도41'48"E
고도 8,068m
가셔브룸산군은 콩코르디아 남동쪽 아브루찌 빙하에 들어서면 만나는 남가셔브룸 빙하를 1~6봉까지
말굽형으로 둘러싸고 있다. 가셔브룸 1봉은 아브루찌 빙하에 도착할 때까지 다른 산들에 의해 숨겨져
있어 일찍이 1892년 이 산군 정찰에 나선 독일의 콘웨이가 '히든피크'라 불렀다.
가셔브룸은 발티어로 '빛나는(아름다운) 산'을 의미한다.
1889년부터 1929년 사이의 히말라야 카라코람 개척사의 초기에 영국,이탈리아인들이 가셔브룸 1봉을
측정하고 탐사활동을 펼쳤다.
1934년 스위스의 디렌푸르트가 이끄는 국제원정대가 가셔브룸 1봉에 대한 대규모 탐사를 했는데 H.에르틀과 A.로흐가 남서쪽 스퍼를 올라
6,300m지점까지 도달했고, 1936년엔 H.드 세고뉴의 프랑스원정대가 수송문제와 포터의 파업으로 남쪽의 스퍼를 통해 6,900m까지 올랐다.
2차대전이 끝나고 1958년 미국대가 이 '숨겨진 봉우리'를 찾아왔다. 그리고 7월4일 쇼닝과 카프만 대원이 강추위와 심설을 헤치고 마침내 정상에 도달했다. 이로써 미국은 8,000m급 초등정 대열에 끼게 되었다.
히든피크는 알파인스타일로 등정된 최고의 8,000m봉이다. 1975년 8월 베이스캠프까지 불과 12명의 포터만 동원한 2인조 원정대 라인홀트 매스너와 피터 하벨러가 가셔브룸 1봉의 북벽을 경유하여 등정했는데 이것은 히말라야에서 이루어진 최오의 알파인스타일 등정이었다.
우리나라에선 1990년 충남산악연맹 원정대의 박혁상 대원이 처음으로 등정에 성공했다.
12. 브로드피크 (Broad Peak, 8,047m)
위치 카라코람 발토로산군, 중국 신강 자치구 경계 (파키스탄/중국)
위도 35도48'35"N
경도 76도34'25"E
고도 8,047m
발토로산군의 고드윈 오스틴 빙하 우측으로 솟아있는 세계 12위의 고봉. K2와 남동쪽으로 이웃하며
북봉(7,537m), 중앙봉(8,006m)을 거느린다. '넓은 눈의 산'이란 뜻의 '팔첸 캉리(Falchen Kangri)'가
원래 이름이었으나 1892년 콘웨이가 이끄는 영국탐험대의 정찰 때 '폭 넓은 봉우리'란 뜻으로 현재의
이름 브로드 피크로 붙여졌다. 1954년 헤어리히코퍼가 이끄는 독일-이탈리아 원정대가 처음 도전해
남서사면의 위험한 빙벽을 오르려 시도하다가 6,900m지점에서 결국 포기했고, 1957년에 M.슈무크의
지휘 아래 헤르만 불, 디엠베르거, 빈터슈텔리 등 강력한 4인조가 전원 초등정에 성공했다.
이들은 고소포터와 산소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장비를 3개의 고소캠프를 전진시킨 후 두차례의 정상공격으로 간단히 등정에 성공했다.
또한 낭가파르밧 등정자 헤르만 불은 이 등정으로 세계 최초로 8,000m 2개봉 등정자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1988년 악우회가 서릉으로 정상 등정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일본대에 의해 전봉임이 밝혀져 오랫동안 미등정으로 남아있다가
가장 늦게 등정됐다. 1995년 스페인 바스크 원정대와 합동 등반한 엄홍길, 광주전남의 빛고을 원정대가 몇시간 차로 정상에 서게 되었다.
13. 가셔브룸 2봉 (Gasherbrum2, 8,035m)
위치 카라코람 발토로 산맥, 중국 신강자치구 경계 (파키스탄/중국)
위도 35도45'31"N
경도 76도39'15"E
고도 8,035m
가셔브룸 산군 최북단에 자리잡고 있는 세계 13위 고봉 가셔브룸 2봉은, K4의 측량부호가 붙여진 것
외에는 특별히 다른 이름이 없다. 그리고 8,000m급 봉우리 중에선 가장 등정이 쉬운 산으로 꼽힌다.
1909년 아브루찌가 이끌은 원정대와, 동행한 이탈리아 사진사 V.셀라가 가셔브룸 산군을 정찰했다.
그리고 1934년에는 스위스의 G.O.디렌푸르트의 지휘 아래 파견된 국제원정대가 가셔브룸 2봉의
등반 가능한 루트를 살피며 6,250m까지 올랐었다. 그 후로 1956년에 오스트리아의 프리츠 모라벡의
지휘 아래 6명으로 구성된 원정대가 남서릉을 경유하여 가셔브룸 2봉의 초등정에 성공했다.
우리나라는 1991년 8월19일 성균관대 원정대의 한상국, 김창선, 김수홍, 유석재 등 대원 전원이 등정에 성공했다.
14. 시샤팡마 (Shishapangma, 8,027m)
위치 중국 티베트 남서부, 시샤팡마 산군 (중국)
위도 28도21'07"N
경도 85도46'55"E
고도 8,027m
시샤팡마는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중 가장 낮은 산으로, 동쪽 순코시 강과 서쪽으로 트리술리 강을
끼고 있는 랑탕-쥬갈 지역 최고봉이다. 14좌 중 유일하게 중국 국경 안에 위치한 관계로 14좌 중 가장
늦은 1964년 중국대에 의해 초등됐다. 산명은 티베트어로 '황량한 땅' 즉, 기후가 나빠 작물과 가축이
살수없는 장소를 뜻한다. 네팔에선 '고사인탄'이라 하는데, 이는 힌두어로 '성자의 거주지'를 뜻한다.
시샤팡마는 티베트의 수도 라사에서 서쪽으로 무려 420km나 떨어진 반면,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는
불과 85km밖에 떨어져있지 않아 네팔서 티베트 국경 잠무를 거쳐 티베트로 들어가는 팀이 많다.
정찰은 1921년 영국 에베레스트 정찰대에 의해 동면에서 관찰되었고, 하인리히 하러 일행의 인도 포로수용소 탈출 후 티베트로 망명 중
북서면에서 관찰되었으나 본격적인 정찰은 1949년 틸만에 의해 랑탕계곡 쪽에서 시작되었다. 중국은 공산화의 성공 후 최후의 8,000m급
초등을 위해서 1961년부터 3회의 정찰로 현재의 주접근로인 북면 야북캉칼라 빙하를 통해 7,160m까지 도달한 후 1964년 10명의 중국인을
정상에 올리는데 성공했다. 한국은 1991년 대한산악연맹의 김창선, 김재수 대원이 남서벽을 통해 최초로 올랐다.
이름처럼 시샤팡마의 가장 곤란한 점은 극심한 기상변동으로 인한 바람인데, 10월부터 시작되는 티베트고원의 폭풍은 바람을 피할 것조차 없는 평야지대 위에 우뚝 선 시샤팡마로 불어와 등반가들에게 고통을 준다.
15. 히말라야 14좌? 16좌?
◀ 엄홍길 대장(좌)과 라인홀트 메스너(우)
히말라야 14좌 등정에 처음으로 성공한 산악인은 1986년 이탈리아의 라이홀트 메스너이며, 한국인으로는 2000년 엄홍길, 2001년 박영석, 2003년 한왕용씨가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그런데 요즘 세계 산악계에선 해발 8,000m가 넘으면서도 주봉과 산줄기가 같은 위성봉이라고
하여 14좌에서 비공인되어 제외된 얄룽캉(네팔/8,505m)과 로체샤르(네팔,중국/8,400m)를 기존 14좌와 합쳐 16좌라고 부르는 추세다.
이 16좌 완등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의 엄홍길 대장이 2007년 5월에 성공했다.
3. 지구 3극점
1. 남극점 (The South Pole)
위치 남위 90˚의 지점. 지구 자전축(自轉軸)의 남단으로 남반구의 극에 해당하며,
남극점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을 말하기도 한다.
남극점 탐험에는 유명한 두명의 인물이 있다. 바로 스코트와 아문젠.
그는 1868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1880년 해군에 입대하여 1901년부터 4년간 디스커버리호를 이끌고
떠난 1차 탐험에 참가하였는데, 자남극(磁南極)을 밟고 남위 88°23′까지 나아갔으나 식량 부족으로
남극점을 155km 남기고 되돌아온다. 이 일은 영국인의 남극점 정복이 결코 불가능이 아니란 생각을
하게 했고, 1910년 6월 스코트는 남극점을 정복을 위한 탐험대를 이끌고 영국을 떠났다.
이는 북극점의 정복을 미국에 빼앗긴 영국으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한판의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남극은 제임스 쿡 선장이 처음 발견했고 뒤이어 웨들(Waddell), 비스코(Biscoe), 로스
(Ross) 등의 영국인들이 개척해왔기 때문.
그런데 또 하나의 탐험대가 남극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바로 노르웨이의 아문젠이다. 1872년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15세때부터 북극탐험을
꿈꾸며 난센과 함께 북극해를 탐험한 일이 있었다. 또 1906년 47톤짜리 '요아'호로 처음 북서항로를 개척하고 자북극(磁北極)을 발견하여
탐험가로 이름을 떨쳤으나, 미국의 피어리에게 북극점 정복을 뺏긴 후 "피어리에게 북극점을 돌려달라 할 수는 없으니 남극으로 갑시다!"
라고 대원들을 달래며 탐험 준비를 시작했다. 그는 노르웨이의 영웅 난센이 사용하던 '프람호'를 물려받고 난센이 이룩한 명예를 더럽혀선 안된다는 생각과 북극점을 피어리에게 빼앗긴 생각만이 가득했다.
1910년 6월 아문젠은 "남극으로 떠나오"라는 1통의 전보를 스코트에게 보냈는데, 이는 남극점을 둔 세기의 대결의 시작 신호였다.
아문젠은 1911년 1월14일 남극점에서 1,300km 지점에 전진기지를 세웠고 스코트도 4일 뒤인 1월 18일 바닷가에 상륙해 기지를 건설했다.
남극 탐험에는 식량과 장비를 군데군데 파묻어두는 데포(depot)를 준비하는게 중요했다. 아문젠은 2월14일 위도 80°에 첫 데포를 세우고
550kg의 식량을 저장한 후 제2,3의 데포를 만들며 '썰매가 무겁다','스키 구두가 작고 딱딱하다','데포를 찾기 어렵다'등 대원들로부터 들은
얘기를 기초로 75kg이던 썰매를 22kg으로 줄이고, 데포를 설치한 좌우 8km씩 깃발을 찾기 쉽게 세우고 흰 텐트를 빨강으로 바꾸고 썰매에
수례를 달아 거리를 알 수 있게 준비했다. 그 후 개썰매와 스키를 이용해 1911년 12월7일 10번째 데포를 88°16′ 지점에 만들었으며,
12월14일 점심때가 지난 후 관측기의 바늘이 90°에서 멎었다. 여기는 남극점. 노르웨이 국기를 꽂고 남극점 위에 서서 국가를 부르게 된다.
2.북극점 (The North Pole)
위치 북위 90˚지점. 지구 자전축(自轉軸)의 북단으로 북반구의 극에 해당한다.
북극점을 가장 먼저 밟은 사람은 공식적으로 미국의 피어리다. 피어리는 1856년과 1891년 2회에 걸쳐
그린란드 북극권 2,000km 이상을 탐험하기도 했다. 1902년에는 북극해의 84°17′까지 나아갔으나
발가락 8개가 동상에 걸려 잘리는 바람에 포기하고 말았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피어리는 1905년에도
루즈벨트호를 타고 다시 도전했으나 북극점을 300km 남긴 87°6′에서 식량과 연료부족으로 돌아온다.
피어리는 분을 삭일 수 없었고 머리에 북극점 정복이란 무거운 짐으로 짓눌려 있었는데, 기회만 나면
북극점을 정복하기 위한 궁리를 했다.
마침내 50세가 넘어 기회가 주어지는데, 1908년 7월6일 20년 북극탐험의 종지부를 찍기위해 22명의
대원과 함께 뉴욕을 떠나게 된다. 7월 26일 북극권인 66°33′을 넘었으며 8월 1일엔 그린랜드 북서쪽
요크곶에 닺을 내리고 에스키모 22명과 썰매개 250마리와 함께 본격적인 탐험에 나선다.
9월 5일에는 북위 82°30′에 위치한 세리단곶 북쪽 끝에 있는 콜롬비아곶에 전진기지를 만들고 그곳에서 겨울을 나게된다.
거기서 북극점까지는 직선거리 660km지만 얼음산과 골짜기, 살을 찢는 추위, 빙산사이로 출렁이는 바닷물이 있는 험난한 코스이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마지막 660km가 가장 중요한 도전이었다. 1909년 3월1일 "극지법"이란 공격방법을 고안하여 출발하게 되는데
이는 전 대원을 6팀으로 나누어 1조가 길을 개척하여 캠프를 설치하고 나머지 다섯조는 뒤를 따르고 다음은 2조가 길을 열면 나머지 4조가
바통을 잇는 식으로 마지막 공격조가 힘을 아꼈다가 북극점에 도달할 수 있게 짠 계획이었다.
3월 27일에는 3년 전 눈물을 머금고 되돌아섰던 87°06′에 도달했으며 4월 1일엔 87°47′에 다다라서 마지막으로 버틀렛 선장이 이끄는 팀도
돌려보내고 흑인 핸슨과 에스키모 4명으로 극점 공격계획을 수립한다. 공격조를 태운 개썰매는 남은 94km를 하루 20~25km씩 전진했으며
4월 6일 아침에는 북극점을 5km 남겨둔 지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오후에 북극점에 도달, 북극점에 성조기를 꽂게 되었다.
3. 에베레스트 (Mt.Everest)
위치 네팔히말라야 쿰부산군과 중국 티베트 경계 (네팔/중국)
위도 27도59'17"N
경도 86도55'31"E
고도 8,848m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은 대기권을 지나 성층권 2/3지점까지 솟아 있기에 산소부족,강풍,혹한이
생명체의 존립을 불가능하게 한다 하여 남극과 북극에 이어 '지구 제 3의 극지'로 꼽힌다.
지구상 최남쪽과 최북쪽의 극지점에 이은 최고도 지점으로 에베레스트가 손꼽히는 것이다.
이 제3의 극지에 첫 도전을 한 것은 1922년, 영국대의 조지 핀치와 제프리 브루스는 산소통을 사용해
8,320m까지 올라섰다. 그리고 1924년 영국대의 조지 말로리, 앤드류 어빈이 8,450m이상 진출하고
실종됐다. 그의 시체는 1999년 발견됐고, 등정 여부가 논란이 되었다.
1953년 5월29일, 영국원정대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게이 세르파가 남동릉을 통해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선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한국은 1977년 대산련원정대의 고상돈이 남동릉 루트로 정상에 올라 세계 최고봉 8번째 등정국, 한국 8천m급 등정기록을 동시 이뤘다.
에베레스트는 세븐 서밋과 히말라야 14봉, 그리고 3극점 모두에 속해 있는 단연 '세계 최고봉'임에 틀림없다.
4. 지구 3극점? 5극지?
남극점,북극점과 에베레스트를 '지구 3극점'으로 일컫는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에 그린란드 북극권 종단, 베링해협 횡단 이 두가지를 묶어 '지구 5극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린란드 북극권 종단은 북극의 축소판이라는 그린란드의 북극권을 개썰매를 이용해 종단하는 것을 말하며,
극지탐험의 하이라이트라는 베링해협 횡단은 횡단 중에 얼음이 녹아 바다가 나와 육로가 막히면 선봉자가
동계슈트를 입고 헤엄을 쳐 다음 얼음에 도착해 썰매를 끌어당기는 식으로 횡단이 이뤄진다고 한다.
그냥 걷기에도 추운 곳을 썰매를 끌고 수영을 해 가며...
게다가 이 탐험에서는 추위와 강풍, 크레바스 같은 위험 외에도 '북극곰의 공격'이 큰 위험요소라고 한다.
귀엽게만 보이는 흰 북극곰은 사실 성격이 굉장히 난폭하여 사람을 죽여서 잡아먹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만약에 대비하여 총기를 소지해야 한단다.
우리나라의 홍성택 씨(사진)는 이 5극지를 모두 탐험한 세계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4. 기타 - 7대륙 준최고봉
7대륙 최고봉 정복은 이제 장비와 등반기술의 발달로 인해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산악인들에게도 문호가 열려졌다.
그렇기에 많은 산악인들이 7대륙 최고봉 정복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7대륙의 최고봉보다는
7대륙의 준최고봉이 등반 난이도에 있어서 훨씬 어렵다고들 말한다. 왜 그런지 알아보자.
위치 |
최고봉 |
준최고봉 |
분석 |
아시아 |
에베레스트(8,848m) |
K2(초고리)(8,611m) |
어떤 산도 K2의 난이도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K2는 위험하고 어렵다. |
유럽 |
엘브루즈(5,642m) |
다이크타우(5,204m) |
엘브루즈가 기술을 요하지 않는데 비해 다이크타우는 쉬운 루트가 없다. |
아프리카 |
킬리만자로(5,895m) |
마운트 케냐(5,199m) |
킬리만자로가 트레킹인데 비해 Mt 케냐는 암벽 클라이밍 등반이다. |
북미 |
매킨리(6,194m) |
마운트 로간(5,959m) |
Mt 로간이 아주 위험한 어려운 등반인데 비해 데날리는 얌전한 편이다. |
남미 |
아콩가구아(6,959m) |
오조스 살라도(6,893m) |
아콩카구아가 비기술적 피크인데 비해 오조스 살라도는 기술을 요구한다. |
남극 |
빈슨 매시프(4,892m) |
마운트 티리(4,852m) |
마운트 빈슨이 비기술을 요하는데 비해 Mt 티리는 쉬운 루트가 없다. |
오세아니아 |
칼스텐즈(4,884m) |
푼칵 트리코라(4,730m) |
둘다 암벽등반인데 푼칵 트리코라가 바위가 날카로워 더 어렵다. |
위 도표에서 살펴 보았듯 7대륙 최고봉보다는 아이러니 하게도 7대륙 준최고봉들이 휠씬 어렵고 위험하다고 한다.
따라서 '7대륙 최고봉 정복'이란 명예에 집착하기보다 내면에 담겨 있는 실질적 질을 추구하는 알피니스트 산악인들은
오히려 7대륙 준최고봉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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