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서비스의 시장화. 장애인의 권리를 해치고 있다!
※ 사회서비스란 최근 확대되고 있는 영유아·노인·장애인에 대한 지원서비스를 말합니다. 주로 바우처 방식과 시장경쟁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장애분야에서 대표적인 사회서비스는 활동보조·장애아동재활치료서비스가 있습니다.
❍ 나쁜 일자리.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의 증언
지난 3월 6일,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대학로에서 보육교사·요양보호사·간병인·활동보조인 등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의 집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노동자들은 저임금·장시간근로·열악한 근로환경 등을 성토하며, 시장에만 내 맡겨진 사회서비스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활동보조인으로 일하고 있는 한 노동자는 “시급 6000원을 받고 있지만 노동 강도에 비해 결코 많은 금액이 아니며, 주말이나 공휴일에 일을 하게 돼도 시급은 똑같고, 아무리 경력이 쌓여도 시급은 6000원이라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한 노동자는 “시급제인 요양보호사들의 급여는 월평균 55만원이다. 요양 이외에도 내가 담당해야 하는 잡무가 너무 많다”며 “실제로는 설거지에서부터 속옷 다림질까지 다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간병인으로 집회에 나선 한 노동자는 “유료소개소를 통해 환자·보호자에게 고용된 처지라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한다. 최저임금에 턱없이 못 미치는 시급 2500원을 받으며 24시간 노동을 견디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지 않는 동료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일은 보람이 있지만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정부 정책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사회서비스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 부모연대와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
위와 같은 사회서비스는 최근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활동보조·재활치료서비스이며 기타 특수교육보조원, 장애보육교사 등도 이에 해당된다. 장애인들은 아동이든 성인이든 보육시설에서든 학교에서든 복지기관에서든 이미 일상적으로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사회서비스 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장애인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부모연대는 지금까지 사회서비스 확대를 위해 노력해 왔다. 장애인교육권보장을 위해 보조인력의 확대를 요구해왔고 활동보조와 재활치료바우처의 확대를 요구해왔으며, 그 결과 지난 몇 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서비스 일자리로 고용되어왔다. 이러한 과정은 분명히 장애인의 권리 확대에 기여했다.
그러나 현재의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일자리에 대해 여러 가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은 이제 노동조합을 통해 본격적으로 권리운동을 펼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인의 권리확대와,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개선되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인가. 장애인의 권리확대를 위해 열악한 사회서비스 일자리가 확대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인가. 부모연대는 지금처럼 우리아이들을 위한 사회서비스의 확대만을 요구해도 되는 것인가.
❍ 사회서비스의 질은 노동자의 근로조건과 직결되어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회서비스 중 하나인 활동보조서비스의 경우를 살펴보자. 활동보조인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105시간에 평균임금 67만8천인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67만원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이것만 보아도 활동보조인은 직업으로 선택하기 어려운 직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많이 일하려고 해도 쉽게 가능하지 않은 조건이다. 이유는 현재 활동보조인 서비스는 이용자에 비해 활동보조인이 과도하게 모집되어 있어 (2008년 기준 활동보조인의 수는 전체이용자의 절반을 넘어서 있는 상황) 제공기관이 특정 활동보조인에게 독점적으로 이용자를 연결해 주지 않는 이상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전체 활동보조인 중 퇴직금이나 4대 보험의 적용을 받는 사람은 30%대에 머물고 있다. 활동보조인은 일하고 있는 도중에도, 일을 그만둔 다음에도 여러 가지 권리가 박탈되어 있는 상태에 있다. 활동보조인은 상당히 나쁜 직종중의 하나로 볼 수밖에 없다.
만약 내가 활동보조인으로 일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러한 노동조건에서 항상 장애인을 웃는 얼굴로 대할 수 있을까. 이용자들의 입장을 항상 고려해 줄 수 있을까. 사명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을까. 한번 시작한 일을 꾸준히 할 수 있을까. 무리하다고 생각되는 일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까. 안정적인 노동조건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상태의 활동보조인에게는 어려운 질문들 일 수밖에 없다. 또한 활동보조인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본의 아니게 장애인당사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용자의 다양한 요구에 화를 낼지도 모르고, 이용자가 원하는 어려운 업무는 기피하려 할 수 있고, 중증장애인 남성 이용자는 활동보조인 구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시간만 대충 채우려는 활동보조인도 있을 수 있고, 서비스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는 활동보조인이 있을 수도 있다.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해 있는 활동보조인에게 우리가 서비스 질의 향상을 기대하기란 참 어려운 일인 것이다.
활동보조서비스와 같은 사회서비스는 직접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서비스 이므로 노동조건의 문제로부터 촉발되는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불안정성은 필연적으로 서비스 이용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보다 제대로 된 사회서비스의 확대를 위해
아직 장애인에게 필요한 사회서비스도 제대로 보장되어 있지 않은 지금의 현실에서, 서비스의 양도 늘려내기 어려운 처지에 사회서비스노동자의 문제까지 함께 고민하자라고 하는 주장은 그냥 ‘아름다운’ 주장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지금 당장도 부모연대는 장애아동의 돌봄서비스 부족문제를 가지고 보건복지부를 향해 요구하고 있는데 요구안의 쟁점은 현행 활동보조서비스보다 서비스의 양을 확대하라는 것 뿐 그것을 통해 도입되는 새로운 돌봄서비스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대해선 고민할 여유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현재 활동보조서비스를 쓰고 있는 자녀의 부모들은 이제 서비스의 양 뿐만 아니라 질이 향상될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고 있다. 이용자의 욕구에 부합되지 않는 서비스는 아무리 양이 늘어나더라도 별반 쓸모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부모연대도 사회서비스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나씩 짚어볼 때가 된 것이다.
❍ 사회서비스 시장화의 문제
현재 사회서비스는 모두 바우처 수수료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결국 서비스제공기관은 이용자로부터 받은 바우처 별로 일정금액을 떼어 운영비로 충당해야 한다는 것인데, 제공기관중 이용자가 많지 않아 영세한 곳은 운영비충당도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그런데 정부가 사회서비스를 시장화 한다는 방침아래 제공기관의 난립을 조장하고 있어 대다수의 제공기관은 영세한 상태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이러한 제공기관들은 기관 운영비 이외에 사회서비스노동자에게 보험가입, 퇴직금 적립, 수당지급 등은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우처 금액 중 사회서비스노동자의 시급과 바우처 수수료를 제외하면 남는 금액이 없다.) 또한 이용자에 비해 제공기관이나 노동자의 수가 너무 많아, 제공기관은 상호 저임금경쟁이 가능한 조건이기도 하다. 이는 제공기관 입장에서 이용자가 별로 없으니 운영비를 어떤 형태로든 조달해야 하는 상황과 저임금이라 해도 일할 사람은 아직 많이 있기에 발생하는 문제인 것이다. 결국 사회서비스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사회서비스시장화에서 상당부분 기인하고 있는 것으로, 이는 사회서비스 노동자뿐만 아니라 장애인에게도 결코 좋지 않은 정책인 것이다.
❍ 사회서비스 공공성을 강화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공공성, 즉 정부책임을 강화하는 방법밖에 없다. 사회서비스노동자의 노동조건은 개별 제공기관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정부가 나서 노동자의 보험가입 등을 보장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당장은 보험가입 등을 의무화하고 이에 필요한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전담 기구를 통해 사회서비스노동자들을 고용·관리하고 제공기관은 이를 이용자와 연결하는 업무만 담당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또한 서비스제공의 지속성이 필요한 경우, 이를 테면 24시간 활동보조가 필요한 중증장애인을 이용자로 한 활동보조인은 업무의 강도와 지속성을 고려해 정규직으로 채용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아동재활치료서비스와 같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도 마찬가지 일 수 있다. 특히 재활치료서비스는 노동조건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보다 전문성 있는 인력의 확보가 가능할 것이다. 기타 이용자 단체와의 논의를 통해 정부가 사회서비스노동자들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는 이용자의 측면에서는 필요한 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어디서나 무상으로 (혹은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할 것이다.
사회서비스는 이용자가 필요로 하는 시간과 장소, 즉 야간이든 주말이든 30분이든 10시간이든 이용자의 상황과 욕구에 맞게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노동조건에서 이용자는 이렇게 서비스를 받기 어려울 수 있다. 당장 활동보조인이 “30분씩 하면 시급이 제대로 책정 안돼요”, “수당도 없는데 야간엔 일 못해요”라고 하는데도 끝까지 요구를 관철시킬 이용자는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용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은 반드시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부모연대와 같은 이용자단체가 사회서비스노동자들과 만나고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될 수 있겠다. 우리에겐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라는 동일한 목표가 있으므로 상호 공동 활동은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