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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추가 : 2019년 4월 13일.
[세경대학교 윤병화 교수 동강문학회 월례문집 2019년 4월호 기고문, 삼생옥초화전(三生獄樵花傳)]
온양방씨 열녀각(溫陽方氏 烈女閣)
● 시대 : 조선시대
● 위치 : 영월읍 하송리 학당골
● 문의 : 영월군 문화관광 1577-0545
● 정문(旌門) : 孝 烈婦 學生 嚴秉秀 之妻 溫陽方氏 之閭. 癸酉 三月 二十七日 建閣
효 열부 학생 엄병수 지처 온양방씨 지여. 계유 3월 27일 건각
● 비문(碑文) : 嚴秉秀 之妻 溫陽方氏 烈女碑 엄병수 지처 온양방씨 열녀비
○ 온양 방씨는 17세에 14세 된 엄병수(嚴秉秀)에게 시집왔다. 그러나 네 달만에 남편을 여의고 과부로서 평생을 수절하였다. 뿐만 아니라 시부모까지 봉양하면서 살았다. 고종 10년(1873) 3월 27일에 정문이 내려 정려각이 세워지게 되었다.
정려각은 군청 옆 학당골에 있다. 건물 안에 열녀문과 열녀비가 있다.
계유년( 1873)에 이상호(李祥鎬)가 쓴 ‘효열각기(孝烈閣記)’와 1929년에 쓴 ‘정규문(丁奎文)’과 이규진(李揆眞)이 쓴 기문이 있다. 또한 온양방씨 열려기를 소설화 한 ‘삼생옥초화전(三生獄樵花傳)’이 발견되었다. 현재 민용대 교수(한남대)가 소장하고 있으며, 김구용은 ‘삼생옥초화전’(三生獄樵花傳 硏究-한남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1)을 대상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01년 8월 13일 재건축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삼생옥초화전’의 앞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三生獄樵花傳
각설이라잇예광무헌황즉위야평천풍등고관무사촌평에요지일월순지건곤이라잇강원도영월군서면상용이에엄이가충신지로서즉으로경기도에올나가서참봉공을지다가자석에환장어자탈관즉고강원도을러와서수삼십년지이라원수낫육십이요공도타니백발이라실아히들은남녀간에전혀업고무정월은추월춘풍얼는얼는자탄으로월을보적에연간람펀으로사람마다일르기을심심산중에들어갓서공부을여보시갸거늘그말듯고이시분인과이논야왈션현인과영융달사도산정기로나여우리도입산야위분이삼일기도을집이서온후에장을러서죽장마혁단포자로만첩산중들어간이시못은울울고송은창창후먼을들너보니마치우난아호가안저잇고전먼을바라보니홍안이안저울거놀잇는어용구시월낙업시라삼일을고칠성당을모흔후에정화수을밧처놋고복지고왈영월군서먼상용이사난엄이가육십에무자식야펑소원자식으로산실영님자식을비난이라산지고영심으로소인으몸에아들을점지주소서고을온후에이너나보니일낙서산고월출동영지라화갓든종자에유등을발커놋고진지을지어머근후에단두리안저스니인적은적막고밤은깁퍼고요월낙고봉고상만천이요단풍졍화을칠성단을드라근성심을로일맛에그날밤야삼경에인지시지를홀연히잠이들언후에운에안자욱고오운일어나며여산호압와서팔안치든니잠시에청용여이인몸을감드니두날퍽트러서잠시에등천거늘마음이상쾨야잠시에놀나니정신이점점말고이기양양거날위뿐안저서몽사을이논왈비상지몽이라고날이발저오집으로도라와서그날이후로몸이달나열두달을지후에몸을푸니기화요호만만중에월화용옥동자라두노인반가워서하날에러저난에소사난나어히할줄몰르고서난말이추수정친옥의골니공파석시치포송인가여보부인보시오아달이요이오다시다시보시오부인난말이아들이닌다그트먼산실영님이영험도단다춘위지춘과몽위지몽으로아들을점지주시니일홈은병수라만만지락을일구낫설이라사독자양자화로실와서는자손이나니얼나나즐거울리오.....
이 논문에 보면 영월 엄씨문중에서 긍지로 여기던 방상영(1886~1959, 작품에서는 방상연 또는 방옥휘로 등장)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있고, 이 논문에서는 엄인원(1905~1988)이 구전되던 이야기를 소재로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문에 대한 미화의식과 작가적 창작충동, 그의 상상력을 보태어 창작한 작품으로 보고 있다.
■ 참고문헌
● 한림대학교박물관·강원도·영월군, 1995, 《영월군의 력사와 문화유적》.
● 영월지역의 루정과 효자각 조사. 영월문화원.2004년
● 현장 탐방. 사진기록. 2013.01.08
[세경대학교 윤병화 교수 동강문학회 월례문집 2019년 4월호 기고문]
<옛글>
삼생옥초화전(三生獄樵花傳)
영월 온양방씨 열녀와 관련된 내용이다. 온양 방씨는 17세에 엄병수에게 시집와 4달만에 남편의 여의고 시부모까지 봉양하면서 살았다. 1873년 3월 27일 정려문이 세워졌으며 건물안에는 열녀비가 있다.
한편, 온양방씨 열려기를 소설화 한 『삼생옥초화전(三生獄樵花傳)』이 발견되었다. 한남대 국문과 민영대교수는 1984년 5월 영월 지역을 답사하면서 한글소설 『삼생옥초화전(三生獄樵花傳)』의 필사본을 구입하였다. 엄인원옹을 만나 단종의 일화와 단종과 관련이 있는 영월 엄씨 집안의 이야기를 채록하던 중 방씨의 이야기가 기록된 필사본이 있다고 하여 그 필사본을 구입하였다고 한다. 이후 제자인 김구용이 1999년 영월에 방문했을 때에는 이미 고인된 다음이고, 모든 자료는 처분되거나 유실된 상태였다.
『삼생옥초화전(三生獄樵花傳)』은 작가가 정확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엄병수의 부인인 방씨를 비롯한 엄택, 엄택의 부인 이씨, 엄택의 두 아들 병수와 병하, 엄택의 형수 원씨 부인, 방씨 부인의 부모인 방기숙과 김씨 부인, 병하의 부인 문씨, 영월부사였던 정기안 등이 실존인물이기에 엄씨 집안에서 누군가 기술했을 것으로 보인다.
『삼생옥초화전(三生獄樵花傳)』은 20세기 이후에 지어졌음에도 신소설이나 근대소설의 영향보다는 이전 고소설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 받았던 작품으로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아 1930년대 이후에 나타났던 고소설이다.
현재 민영대 교수는 퇴직한 상태이고, 제자인 김구용(한남대 박사, 『三生獄樵花傳 硏究』)은 사망하였기에 그 원본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이에 김구용의 박사학위논문을 중심으로 『삼생옥초화전(三生獄樵花傳)』의 서사 단락을 여기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1) 발단
(1) 1~9쪽
① 회장제목(回章題目) : 第一回 嚴公(엄공)과 李氏夫人(이씨부인)이 太白山(산) 드러가서 百日祈禱(일기도)야 아들 兄弟(형)어더
② 필사내용 : 각설이라 잇예 광무천황(光武天皇) 즉위(卽位)야 평천(泰平天下) 풍등 ( 豊登)고 관무사(官無事) 촌평(村泰平)에 요지일월(堯之日月) 순지건곤(舜之乾坤)이라 … ‘영월군 서면 상용이에 엄참봉은 입산 공부야 자제 형을 두고 가 부귀거 맛자은 미성전치라 노인 선 발천시스니 그런 사람 무슨 팔자로 간잇고 자석죠화 첨만금심며 이스리 우리는 무슨 팔자가 자석업고 빈한고 우리는 무슨 팔자로 웨론은 치치디 딴 놈은 주잡기 오윤을 그르치자석으로 칠것업고 지차놈은 불학무식하야 낫놋코 기역자도 몰나 보고 밤이면 자줄 알고 날이 발그 오밤만 머글줄 알아서 불이면 풍년이오 고푸면 흉연이라 지 보모 걱정 소눈긋튼 두 눈을 힐근힐근 불루고 북두구리 갓튼 손구락은 일이삼사 몬부니 가탄지심이라 그 다 타시라’ 불여하고 탄식는 사람이 촌촌면 면이 비비다다 드라
③ 내용요약 : 광무천황이 즉위하여 천하가 태평하던 시절, 강원도 영월군 서면 쌍용리에 사는 참봉 엄택이 스스로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부인 이씨와 세월을 보내는데 슬하에 자식이 없어 부인과 함께 태백산 신령에게 자식을 발원한다. 이들은 태몽을 꾸고, 그 후 12달만에 이씨 부인이 아들 병수를 출산하고 몇 년이 지나 다시 태몽을 얻고 병하를 출산한다. 한편 영주에 사는 엄택의 친구 방기숙은 늙도록 자식이 없음을 한탄한다.
(2) 9~25쪽
① 회장제목(回章題目) : 第二回 嚴公 西山(서산) 나귀 처모라 萬兆(만됴)놈 압우고 方起淑(방기숙) 집 차저가니 方進士(방진사) 의 許婚言(허혼언) 先懇請(선간청)다
② 필사내용 : 잇에 참봉공은 금옥갓튼 아들 형 칠서 숙독시겨 놋코 팔도강산 구경간다… 이리저리 허혼바더 사주단자 오멀에 능변천지야도 불변차약이라 자로 크 서셔 인장을 칫근 후에 장 진사가지고 장은 참봉가진 후에 천지요 피여녹코 두리 서로 마죠 안저 쵸일날을 바더보니 금연 시월 십오일을 다정 골나녹코 담보을 털고 벽장소 하드라
③ 내용요약 : 엄택이 두 자식을 얻은 후 팔도강산을 유람하기 위해 집을 나서 제천, 충주, 탄금대, 진천, 청주, 광주를 거쳐 서울의 남대문, 삼각산을 두루 구경하고 귀향하는 길에 조령의 산성을 지나 풍기, 영주에 이르러 친구인 방기숙을 수십년 만에 찾아간다. 방기숙도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와 살다가 자식을 얻지 못하자 태백산에 들어가 불공을 드린 지 백일만에 태몽을 꾸고, 10달만에 딸을 얻는다. 방기숙은 엄택의 아들이 훌륭하게 장성하였다는 소리를 듣고, 병수를 사위로 삼고 싶어 한다. 방기숙이 부인 김씨에게 친구인 엄택의 아들에게 청혼한 사실을 알린다. 방기숙이 엄택과 의논하여 10월 15일로 길일을 잡는다.
2) 전개
(1) 25~67쪽
① 회장제목(回章題目) : 第三回 參奉公(참봉공) 回馬(회마)야 歸家(귀가)니 李氏夫人(이씨부인) 別世(별셰)야 訃告片紙(고편지) 왕 방진사(方進士) 바더보고 눈물만
② 필사내용 : 참봉공왈 ‘나는 집난지 근 달포에 집각 간절니 속히 가야 소’ …‘죽은 사람은 이왕 죽어건이와 산사람은 엇지 나 형수시는 글역업시 실십여 오날만 일만 고 아히들은 어리지 사부득 팔자는 오도가도 못리라 그르나마 고고지 나도 사오연만 지나가면 나는 영화을 볼런이와 죽는 사람 불상토다’…참봉 ‘그곳에서 무슨 말삼하든야’ ‘예 시급하야도 기일용이라 옵디다’ 하로 잇틀 얼는얼는 삼회라
③ 내용요약 : 엄택이 방기숙과 혼사를 결정하고, 귀가하던 부인 이씨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는다. 집으로 돌아온 엄택은 사경을 헤매고 있는 부인을 보고 놀라며, 부인에게 방진사 댁에서 병수에게 청혼한 사연을 알린다. 이씨 부인은 아들의 성례도 보지 못하고 죽는다. 엄택이 어린 두 아들을 거느리고 홀로 된 형수, 원씨 부인을 모시고 산다. 한편, 엄택이 영주에 있는 방기숙의 집에 부고를 보낸다. 방진사집에서는 이 소식을 듣고 놀라는데, 방씨 부인이 집안의 소동을 보고 아버지에게 자세한 사연을 알려달라 하자 시어머니가 될 이씨 부인이 죽었음을 일러준다. 어머니가 딸을 위로하고 방씨 부인은 영월을 향해 명복을 빈다. 시집도 오기 전에 시어머니가 될 이씨 부인의 상사를 들은 방씨 부인은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행한다. 방기숙이 엄택에게 애도의 뜻을 담은 편지를 보낸다. 엄택의 집에서 상사를 마치자 방기숙이 엄택의 집을 찾아와 위로하고 병수를 만난다.
(2) 68~114쪽
① 회장제목(回章題目) : 第四回 이월 요도(夭桃)진 佳約(가약) 禮狀(예장)드린 후에 사웨보고 사랑타 가 병(病)이 들 萬萬愁色(만만수)으로 님 新行(신)
② 필사내용 : 각설 잇 참봉공 거동보소 능나수 접옷 이복 불불이 골여 여 마음로 깃 워입고 시나 소창옷 사폭 도포 걸처 입고 이관관망 듯 차려 닙고 도령님 거동보소 황금갓큰 초롭에다 일잔망건 돈여 스고…금지옥엽 자식이 봉황에 을 지어 연로 금실우지 논은 양을 눈 압 볼든이 영 글넛고 틀구나 자석 사외야 사상병 웬 일이오 눈을 고 귀을 저 죽 합당지 아이아이 천마한디하 마한년이 망 늙근년이 무남독여 하을 사위가 오감어서 사위좃차 영별니 마한년의 팔자로다 아이아 이’
③ 내용요약 : 엄택의 형수 원씨 부인이 25세 때 홀로 되어 77세가 되도록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엄택의 큰아들 병수를 양자로 삼는다. 엄병수와 방씨부인의 결혼을 삼년상 이후로 미룬다. 삼년상을 마치고 10월 15일 혼례를 치른다. 친영을 갔던 병수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얼마동안 조리한 후 병수는 본 집으로 돌아온다. 방씨 부인이 원씨 부인을 양시어머니로 섬긴다. 친정에 머물고 있던 방씨 부인이 영월의 병수에게 편지를 보낸다. 방씨 부인이 12월 25일 시집으로 오고 2년이 지나자 병수와 함께 처가를 갔는데 그사이 병하가 가출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병하는 집을 나와 상경, 병조판서였던 이완서의 집에서 그의 아들을 가르치면서 의탁한다. 엄택은 가산을 정리하여 하송리로 집을 옮긴다. 이때 병수는 병하를 생각하다가 병이 들고,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3) 114~139쪽
① 회장제목(回章題目) : 第五回 龍雲風虎(용운풍호) 兄弟(형) 離別(이별)야 風虎(풍호) 서울가서詩書工夫(시서공부) 힘슬 時(시)에 용운(龍雲)이 別世(별셰)니 方玉暉(방옥휘) 단지관혈(斷指灌血)다가 목달려 自結(자결)다
② 필사내용 : 박정 월은 우수갓치 흘너간 진사 말을 타고 울며 불며 올너 와서 영월 하송이을 도착야 문 안에 들어서며 큰 소로 통곡 왈… ‘가여 죽지 말고 그리그리 지다가 뒤큭치나 보고 죽지 여자 마음이 알 수 업시나마 지가 그러치는 아니컬’
③ 내용요약 : 방씨 부인은 자결하려다 실패, 꿈에 저승에 가서 죽었던 시어머니와 남편을 만나고 돌아온다. 영월에 정기안이라는 부사가 부임한다. 영월부사는 문장도 잘 하고 일색이라는 방씨 부인의 소문을 듣고 흑심을 품고는 아전을 시켜 데려오도록 한다.
3) 절정
(1) 139~153쪽
① 회장제목(回章題目) : 第六回 양侍母(시모) 元氏夫人(원시부인) 別世(별) 方娘子(방낭자)에 급마음 斷右指(단우지) 灌血(관형)온 후(後)에 淚送歲月(루송셰월)다가 新官(신관)이 到臨(도임)야 獄中(옥중)에 娘子歸魂(낭자귀혼)
② 필사내용 : 이 낭자 보교을 타고 관가에 도착야 이놈들이 보교을 문 압 고히 서 노으 낭자 이러나지 안히하고 발발 고 안저스니 청령 급창이 나서며… 낭자 즉고 잠시에 여나니 여몽여면니 눈을 고 혀보니 구관양반이 안저서 반가하고 참봉양반이 여차여차야 왓다고 말시거 낭자 급히 나가 문밧 사 고 수영부을 정드라 이르물로 부와 일치로 성기드라
③ 내용요약 : 방씨 부인이 부사 앞에 이른다. 부사 앞에서 부사의 처사가 잘못되었음을 이르고 행패를 부리다가 하옥되고 이를 안 참봉과 구관이었던 염상진이 관가로 온다. 방씨 부인이 옥중에서 자결한다. 낭자의 시신을 집으로 옮기자 소생하는데 방씨 부인은 그동안 시어머니와 남편이 있던 저승에 다녀오는 꿈을 꾼다.
(2) 153~163쪽
① 회장제목(回章題目) : 第七回 京城(경셩)인난 嚴道令(엄도령)은 翰林御士(한임어)야 出道(출도) 再次(차) 參奉(참봉) 舅婦(구부)가 下獄花(옥화)
② 필사내용 : 이 병하 경서 올나가서 놀지 안코 공부야 과거을 고터니 알성(謁聖)별과을 보이거 엄도령 거동 보소 장중에 드러가서 현(懸)판(板) 등ㅅ 고 장전을 바라 보니… 소식이 적적야 사람종적 어젓다 처창 홀노 안저 탄식으로 눈물 흘이다가 각니 면일날지사을 인야 옥으로 못 가옵고 금강정을 건너간 자옥자옥 눈물이라
③ 내용요약 : 무단가출한 후 상경했던 병하는 알성과에 장원급제하고 강원과 경상 양도의 암행어사로 특차를 받고 남하한다. 모든 포졸들에게 15일 금강정에 집결하도록 명하고 영월로 향한다. 병하가 남하하는 도중에 부사의 학정을 풍자하는 백성의 노래를 듣는다. 옥중에 있던 방씨 부인과 엄택이 꿈을 꾸고 염상진(방씨 부인의 수양아버지)이 해몽한다. 이때 영월로 오던 병하도 중도에서 잠시 졸다가 꿈을 꾼다.
(2) 164~177쪽
① 회장제목(回章題目) : 第八回 御士(어) 退職(퇴즉)고 嚴公別世(엄공별셰) 娘子(낭자) 無端(무 단) 갓치 죽어 侍父魂靈(시부혼령) 시압고 萬里(만리) 저生() 드러갓다 還生(환)니 侍(시)동은 酒色放蕩(쥬방탕)
② 필사내용 : 터거리 당도야 한 노인 ‘여보 옥에 가신 참봉양반 구부 살어소 죽어소’… 칭찬이 자자시며 상필에 담상이 드러온다 로 린 후에 낭자상을 바더노으니 속눈물 절노나며 심회심정 다다야 먹을 정왕 업난이라 상을 마친 후에 풍악을 설야 연풍성덕 자랑다
③ 내용요약 : 병하는 15일 암행어사로 출두하여 영월부사의 죄를 다스린 후 아버지와 형수인 방씨 부인을 반갑게 해후하고, 경상도로 떠난다. 온 마을을 두루 다니며 치리하고 상경, 사직한 후 고향으로 돌아온다. 엄택이 와병 중 사망하고, 방씨 부인이 기절했다가 또 다시 저승으로 가서 시어머니와 남편을 만나고 돌아온다. 시아버지의 삼년상을 치른다. 방씨 부인이 국왕으로부터 정절이 뛰어나다 하여 포상을 받는다.
4) 대단원
(1) 177~188쪽
① 회장제목(回章題目) : 第九回 風虎(풍호) 日本(일본) 銀行書記(은서기) 辭職(사즉) 歸家(귀가) 方氏夫人(방시부인) 文氏夫人(무시낭자) 동(同)깃리 초용다 逢春風(봉춘풍)의 花發(화발)
② 필사내용 : 낭자 보교타고 관가로 나오 구름갓치 모힌 사람 뉘 안이 칭찬며 뉘 안이 부러리오 집으로 도러와서 상바든 걸 시부 혼 압 드러노코…수지기 전답사서 압 뒤에 버러노코 로비권속 다시 두고 남여 잘 길와 여막자는 형수시에 양자바처 무우무 환 평할 국왕이 칭찬하야 공부자 성적도와 효열 방시 이문 두 권을 송시드라
③ 내용요약 :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병하는 주색잡기에 빠져 방탕한 생활로 일관한다. 갑작스레 집을 떠나 일본으로 가서 은행의 서기로 일한다. 집안에는 방씨 부인과 손아래 동서인 병하의 부인이 함께 지낸다. 두 동서가 나무해서 연명하는 구차한 삶을 6~7년 동안 영위한다. 전통적인 양반으로서의 모습이 아닌 개화된 인물로 변한 병하가 일본에서 많은 돈을 벌어 귀국한다. 동서와 함께 구차한 생활을 하던 방씨 부인은 국왕의 포상도 받고, 만년에 고향으로 돌아온 시동생의 도움으로 부귀영화를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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