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 글을 쉬었습니다. 단순한 생활의 반복이 이렇듯 낯선 사고를 갉아먹는 듯 합니다. 어찌됐든 파열과 고통과 후회와 죄스러움과 불안이 다가오지 않으면 내 몸과 마음의 어느 한편이 시적 가동을 멈춰 버리기 때문에 늘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자신을 호흡해야 합니다.
아래 글은 지난 정초에 써내려간 것인데 핸드폰 기기조작 미숙으로 사진이 다운로드 되지 않아서 멈춘 글입니다. 이제야 올리게 되었으니 미안할 따름입니다.
해가 바뀌어도 마음만은 바뀌는 게 아니라서 그저 강물처럼 흘러가는 날들입니다. 뭐랄까, 일상에 젖어버리게 되면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또 사물을 바라보는 눈도 새롭지 못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늘 자신을 경계하지 않으니 이렇듯 감동의 대상을 놓치기 일쑤입니다.
허무는 사물을 통해서도 오지만 아무래도 느낌이 먼저 반응하게 되지요. 감각이 무뎌진다는 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쯤되면 펜을 놓아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글쓰는 이는 누구보다도 예민해서 사소한 것에도 마음이 다치고 혼자 울고 괴로워하고 분노하고 불안해하고 나아가 몽상과 망상 속에서 몸을 해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자의식이 매우 강해서 위험한 상황까지 도달하기도 합니다. 이럴수록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또 정서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가까운 이가 곁에 있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위기상황을 간신히 극복할 수 있는 겁니다.
헤밍웨이는 새로운 사랑에 빠질 때마다 대작을 남긴 걸로 유명하지요. 그의 첫번째 베스트셀러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부인 해들리 몰래 폴린 파이퍼와 연애 중이었습니다. 결혼 후 폴린과 이혼하고 마사 겔혼과 세번째 결혼을 올린 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후 마사와 이혼하고 메리 웰시와의 결혼생활 시절에 아드리아나 이반치치를 사랑하면서 <노인과 바다>를 펴냈고, 결국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지요. 헤밍웨이 본인도 인정했지만 "사랑에 빠졌을 때는 가만히 있어도 문장이 번뜩이듯이 떠올랐다"고 말했다고 해요. 물론 그뿐만이 아니라 유명한 화가나 소설가나 시인들에게도 이런 현상은 넘쳐납니다. 로뎅이니 고갱이니 피카소니 괴테니 디킨스니 피츠제럴드니... 굳이 열거할 필요도 없이 대작가들 곁에는 거의 뮤즈가 존재했다는 사실이지요. 고흐를 생각하면 마음 아프지만요...
제가 닻을 내리고 생활하는 이곳도 벌써 다섯달째를 넘기고 있습니다. 이건 생활의 방편을 마련하기 위한 궁여지책이기도 하지만 시집 출간을 위한 간절한 선택이기 때문에 자신을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적당한 스트레스와 적당한 억압과 적당한 감금생활이 저로 하여금 시를 발산하도록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시는 옥죄는 상황 속에서도 불쑥 튀어 나와서 나를 놀라게 하기도 하지만 산문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호흡 문제입니다. 시는 몇초 내의 티브이 광고처럼 순간적인 영감이 찾아옵니다. 허공의 잠자리를 체로 낚아채듯 찰라의 순발력으로 메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산문은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아무리 붓가는 대로 쓴다고 하여도 어느 중간에 멈출 수는 없기 때문에 마음의 평온과 대지의 잔잔한 바람이 가슴을 흔들어 주어야 합니다.
두서가 없습니다. 짧은 글이어서 허전하기만 합니다. 미발표작 한편을 올립니다.
-젊은 애인과 백석과 아름다운 석인상
눈이 와서, 젊은 애인은
정신을 놓고 백석만 찾는다
백석의 시를 읊으며 산으로 가잔다
나도 아니고 나타샤는 더욱 아니어서
그가 산으로 데려가 살고 싶은 이는
눈밭에 앉은 까마귀만큼이나 많겠지만,
내가 모르거나
내가 알아도 착한 이는 아닐 것이다
지금쯤 그는
어느 산에 들어서
백석도 없이 혼자 앙앙 울 것이다
새벽 눈을 밟으며 운주사로 들어간 나는
와불 아래의 한 석인상 앞에서 몸이 굳었다
머리와 눈썹과 콧등과 입술과 목과 어깨와 발등, 그리고
길게 흘러내린 물결 같은 가사袈裟 위에 눈이 고였다
눈이 와서,
잃어버릴 뻔한 젊은 애인을
거기서 다시 만났다
- 2021. 12. 19. 미발표
간밤에 다소곳이 눈이 내려서 아침 출근길의 차량 속도가 한가로웠습니다. 눈덮힌 이곳 운주사의 정경들이 고즈넉해서 오늘은 모처럼 여유를 갖겠구나 싶었지만 오히려 관람객들의 발길이 분주해집니다. 저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다행히 여러분을 다시 찾아뵙게 되어 기쁩니다. 아침 샤워를 마친 후의 새로운 기분입니다. 눈쌓인 대숲을 바라보며 이 글을 마칩니다.
첫댓글 사랑과 애정에 궁핍한 자가 뭔 여인이 있겠습니까마는
눈이라도 여인처럼 왔으면 좋겠습니다
구례는 겨울이 다 지나가기까지 눈다운 눈이 한번도 안내렸습니다
시인님이 글이 눈이구나 그리 해석할랍니다
시에서 느끼는 감정이 백석을 떠올리게 하고
그 여인이 그 여인이 아님을 떠올리게 하고 석상을 통해
비로서 거기서 젊은 애인을 만났다고 합니다
시집 잘 준비하시고 건강하고 순조롭길 바랍니다
근디,미말표작인데 누가 도용을 하거나 훔쳐갈지도 모르겠습니다
문학가에선 그런 일이 간혹 일어나기도 한다는디요 말이죠(가벼운 염려)
뵌지 오래여서 반갑습니다. 갑자기 방장님 마당에서 삼겹살에 쇠주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드는군요..
@물방울 언제라도 오케이!
곧 그리 하십시다
하얀 물위에 꽃잎이 결따라 흐릅니다^^
꽃잎이 물결따라 흐르는 걸 보았군요..우리네 삶도 그처럼 자연스러워졌으면 좋겠어요.
외딴곳에서 혼자아파하는
매화를 보셨나요.
올해도,,,,
아직 매화는 나오지 않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