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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여행] 소림무술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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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가 한때 아니 지금도 좋아하는 중국 정통무술 영화 본산지인 소림사를 찾아간다. 젊은 시절부터
유난히도 좋아했던 무술영화는 학창시절 태권도를 했던 관계로다가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유가
휘나. 성룡. 이연걸등의 소리사 영화를 보면서 언젠가는 꼭 소림사를 가보리라 마음 먹었던게 십수년
이 지난 오늘에야 비로소 소림사를 방문할수 있었던 유랑자는 먼저 가슴이 벅차 오름을 느끼면서 기대
에찬 마음에 밤잠을 설칠 정도로.......
지금으로부터 약 1500년 전, 인도에 '불타선사'라는 승려가 있었다. 이 승려가 중국으로 넘어가 불법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소림사는 496년 ‘북위’의 효문제라는 황제가 당시에 고승이었던 불타선사를 위해
서 절을 세우라고 명하면서 시작된 절이 오늘날의 그 유명한 소림사란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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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국가중점풍경명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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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국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지은 절이다보니 그 이후로도 내내 정치인들이 들락날락하면서 흥망성
쇠를 거듭하게 된다. 자고로 종교든.어느 집단이든. 사회든 머리에 똥만들고 사기치고 거짓말만 하는
정치꾼들이 끼면 거센 바람을 탈수밖에 없는것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현상이다.
그때도 마찬가지 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그 유명한 당태종도 소림사와 인연이 있었다. 쫓겨 다니던
시절에 소림사와 달마굴에서 피신하여 목숨을 건져 후일 황제가 되었다고 하니 사찰에 대한 정치적 배
려가 얼마만큼 컷겠는가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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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입구에 커다란 무술동상이 앞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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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류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뒤 강택민 주석의 친필을 새겨 넣은 바위 '소림문화 인류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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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먼저 소림사하면 떠오르는 것이 소림무술이다. 소림무술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에 대해선 여
러 가지 설이 있다. 달마대사가 참선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무술 연마를 도입했다는 얘기도 있고, 체격
이 작았던 한 주지스님을 통해 시작됐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전자의 이야기가 맞는것 같다. 이 유명한 소림권법은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들여온 행의 일종으
로 선승의 수행법, 인도의 의성 기파가 연구한 경맥비공, 즉 인체의 급소의 원리에 따라 발생한 이 격기
를 불교에서 받아들여 발달시켰는데, 불교도들의 심신단련과 호신에 크게 도움이 되었으며, 소림사는
불교의 수양도량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중국 고유무술의 커다란 발원지로 그 명성을 세계에 떨치고
있는게 또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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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주변 상업지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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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달마대사는 면벽 수행하는 승려들의 건강을 위해 소림오권이라고 하여
동물의 모양을 따서 간단한 체조형식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것이 후에 소림 무술로 발전하게 된 동기가 되는데. 당시 달마대사가 승려들에게 무예를 가르치며
그 전통을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는 중국 소림사의 근세사 기록에는 늑대인간을 연상시킨 소림무예
최고수 고승이 등장하는데요.
그는 온 몸에 털이 나는 희귀병을 앓아 다른 승려들처럼 삭발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1849년 중
국 푸키엔에서 태어났는데, 불행하게도 늑대인간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선청성 취모 다모증이라는 질
병을 앓았는데 당시엔 마귀가 태어난 것으로 오인한 부모에 의해 깊은 산중에 버려지고 말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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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석에도 무술형상이....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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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때 숲을 지나던 푸키엔 소림사 스님이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를 발견해 아기를 절로
데려와 승려들의 손에서 자랄 수 있도록 했답니다. 이 아기에게 선천적이면서도 특이한 무예 능력이 있
는 것을 발견한 소림사 고승들은 수콩 타이드진이라는 이름을 그에게 지어주고 다른 승려들 처럼 한 가지
무예를 가르치는 대신 여러가지 권법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는 무려 200가지가 넘는 각종 맨손 쿵푸
권법과 140가지가 넘는 무기 사용 권법을 전수 받고 사람을 건드리는 것 만으로도 죽게 할 수 있는 치마
기술까지 연마했죠. 그는 결국 소림사 여러 절의 모든 무예 고수들의 추대를 받아 소림 무예 최고수가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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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인천 차이나타운 입구 건조물이 소림사 일주문에서 모방한것을 알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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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소림사 고승이 된 수콩 타이드진은 현지 정부에서 소림사를 부수고 승려들을 모두 죽이려 한다
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는데......수콩 타이드진과 승려들은 수백 년이 넘게 전해온 고서들과 각종 귀
중품들을 챙겨 깊은 산중으로 도피할 수 밖에 없었죠. 끝내 소림사 절들은 종교 탄압을 벌인 정부 관헌
들에 의해 불에 타게 되었고. 수콩 타이드진과 승려들은 푸키엔에 있는 깊은 산중에서 무술을 연마하며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답니다. 그게 오늘날의 소림 권법 이지요. 암튼 수콩 타이드진은 소림사의 역사에
서 유일하게 홀로 모든 권법을 깨우친 고승이라는 명성을 남기고 1928년 79세의 나이로 타계했답니다
그후 소림사의 무술은 지난 1985년 최고 지도자인 덩샤오핑이 복원에 관심을 쏟은 뒤로 중흥되고 있는
소림 무술인 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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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 학생들의 무술 연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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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사는 서기 496년 중국 하남성 숭산에 창건된 본산 외에도 태국과 독일에도 한 곳 씩 위치해 있다
고 합니다. 암튼 뭐~ 여하튼 아주 오래 전 수.당시대부터 소림사 승려들이 무술을 연마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유랑자를 비롯 하여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중국 무술이 소림사에서 시작됐다고
믿고 있는게 사실 입니다.
암튼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도 중국 대륙의 소림무술은 여전히 신기하고 흥미로울수 밖에 없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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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나 영화등을 통해서 보면 스님들이 진의를 깨우치기 위해 수련하면서 여러 관문을 거쳐 득도를
하게 된다는 소림영화에서 보면 사람들은 미지의 세계에서 소림무술에 대한 환상을 키워 온것이 아닌
가도 싶다. 암튼 '소림사 18동인', '소림삽십육방', '이연걸의 소림사' 등등 많은 영화들를 보고 마당으로
뛰어나가 친구들과 무술대결을 펼첫던 옛 추억이 있는 이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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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6번~7번 공연 한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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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올라가는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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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유랑자 또한 한때는 이소룡의 쌍절곤을 배워 밤거리를 휩쓸기도 했었고. 도장에 나가 권투하는
칭구들과도 대련을 붙기도 했었고. 또한 원정을 가 강변 모래 밭에서 그 지역 애들하고 맞짱을 뛰었던
기억들이 마치 영화속의 스크린 처럼 한장면 한장면들이 생생 하게도 스처 지나간다.
그때는 그게 재미 있었고 칭구들과 만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흉내를 내면서 격투를 벌이기도
했던 지난날의 무용담들은 지금도 술자리에서 칭구들 만나면 밤새 이어지곤 한다.
암튼 소림 무술은 내공과 외공을 기르고 경공과 기공도 연마한다. 창술, 도술, 검술, 곤술 등 무기를 이
용한 무술들이 다양하다. 여기에 통배권, 나한권 등 97개의 권법이 있다고 하니 소림무술의 방대함과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그래서 더욱 소림 무술은 신비할 뿐이다.
그렇게 신비하게만 느껴지던 소림 무술들이 최근에 들어와 그 위상이 위협받고 있는게 또한 사실이다.
왜냐면 무술이란 실전에 대비해서 소림 권법이 필살기가 떨어 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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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으로 오르는 길 양 옆으로 무술 형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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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입구 각종 무술 형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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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말해서 '실전성 논란'에서 소림무술의 효율성은 의심받고 있다. 요즘같이 격한 실전같은 UFC나 프
라이드 등 종합격투기대회와 K-1 등 입식 격투기대회는 어떤 무술이, 어떤 사람이 강한가를 놓고 시험
하는 무대가 됐는데 여기서 동아시아의 전통무술의 결과가 별로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실전과 스포츠의 묘한 경계선 위에 있던 이종격투기 경기에서 무에타이나 가라데, 레슬링이나 주짓수
등이 빛을 봤지만 중국무술은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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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자존심인 소림무술의 대표주자로 누가 세계 여러 파이터들에게 승리를 거둘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은게 사실이다. 왜냐면 전 세계의 쟁쟁한 파이터들을 누루고 정상에 선 소림 무술
의 파이터는 단 한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이게 현주소의 소림 무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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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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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무술 영화 이연걸 배우도 소림사 출신 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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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시작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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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성은 돋보이나 실전에서는 나약하기 그지없고 별로 써 먹을수 없다는 논리다. 몰론 무술이란 사람
을 해하기 위한것이 목적이 아니라 내적 심심 수련이 목적이 있는만큼 순순성을 보아야 한다.
무술을 배운다는게 남을 밟고 그 위에 서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후자의 논리가 맞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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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상대를 제압하고 나를 지키기 위해 시작한 것이 무술의 본질이라고 본다면 '이 무술이 진짜 강
한가 또는 효율적인가?'라는 질문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암튼 무술의 효율성에서 본다면 브라
질 주짓수가 높게 평가받는 것도 이런 이유 에서다.
요즘의 무술은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제압술이다. 한방이면 끝장나는 총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무술이
란 별볼일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총이 통제된 공간 이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총의 실탄은 갯수의 한계가 있다. 하지만 무술은 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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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생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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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오늘 유랑자는 중국 정통 무술의 공연을 보러 왔다. 중국의 TV에서 자주 방영되는 소림사 관련 무
술영화는 그런 입장에서 세간의 이목을 끌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예로부터 소림사 스님들이 무술을 배
우고 익히며 전승해 온 사실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곳 소림사 스님들은 하루에 서너 차례 관광객들을 상대로 무술시범을 보여 준다. 어떤 이들은 소림
사 안에서는 무술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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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공의 차력 모습이다. 창끝을 목에 대고 창을 구부리는 차력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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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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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우리 나라도 절에가면 인근 주변에 상업적인 가계들이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고 있는것을
볼수 있잔아요. 그러고 보면 하나의 절이 지역 경제를 살리고 죽이는 영양력이 크다는것을 볼수 있지요.
아무튼, 소림사 무술은 중국 전체를 대표하는 특징을 가지면서 소림사가 속해 있는 정주시 전체를 무
술 도시로 만들었다. 도시 전체가 무술 학교요. 무술인들로 북적이고 있었고. 또한 이곳 사람들의 무술
에 대한 자부심또한 대단하다.
잠깐의 무술 시범을 보고난 유랑자는 이제 역사깊은 소림사를 향해 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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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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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수만명이 소림사 안에서 무술을 연마하고 있고 그 연마 생들이 소림사를 찾은 관광객들을 상대
로 무술 공연을 하며 앵벌이 즉 돈벌이를 하고 있다. 나이가 초등생 3학년쯤 되어 보이는 학생에서 부
터 성인에 이르기 까지 공연을 하고 있는데 역시 예술성이 돋보이는 무술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본시 중국 예술이 그런것 아닌가. 유연성과 과장성이 가미된 예술을 넘나드는 소림무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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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사 안에만 약 25,000여명이 무술 을 배우고 있다니 실로 어마어마한 수련생등이 아닌가. 그리고도
소림사 경내를 벗어난 인근 83개 학교에만도 100.000여 만명 이상이 무술 학교에서 무술을 배우고 있다
니 정주 사람들은 소림사 때문에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싶다.
여기엔 우리나라 학생들도 수련을 하고 있다고 하니 과연 소림 무술의 본고장 다운 소림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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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소림무술의 본산지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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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림무술~~
멋져요~~감사합니다~~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