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강과 다뉴브 강의 크루즈 낭만여행
제27화 보헤미안의 불타바 “프라하4”
-2106년 7월3일-
우린 프라하 성을 다 관광하고 나서
세계에서 제일 작은 스타박스 커피점을 지나 내리 막길로 들어서니
네루도바(Nerudova)거리가 나온다 원래 프라하 성으로 이어지는
“왕의 거리”라는 별칭도 있지만 네루다 거리라고도 부르며 19세기 부터
30년을 이곳에서 살며 집필 활동을 한 체코의 국민 작가 얀 네루다
(Jan Neruda)의 이름을 따서 네루다 거리로 명명했다고 한다
이 거리가 유명한 이유는 1857년 네루다가 살았을 당시에는 이곳의 번지수가
없었기 때문에 문위에 부조나 조각 화화등을 장식하여 주소를 대신했다고 한다
얀 네루다가 살았든 47번지에는 “두개의 태양”의 집이며 “황금 열쇠의 집”
“붉은 사자의 집“ ”세계의 바올린의 집“ ”백조의 집”등 문장들은 집의
주소를 대신했을 뿐 아니라 집 주인의 직업을 나타내기도 했다고 한다
네루다 거리가 끝나는 지점인 말라 스트라나 광장엔 성 니콜라스 성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프라하에는 성 미쿨라세 성당이 두 군데 나 있다 또 하나는 오전에 보았든
구시가지 광장에 있는 성 미클라세 성당이다
12세기에 처음 지어진 이 성당은 18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되었으며
1746년 제작된 올간이 있고 중앙제단에는 성 니콜라스의 동상에 세워져 있다
천장 돔에는 프란츠 팔코 (Franz Palko)가 그린 천정화 “성 삼위일체”가 화려해
보였고 1765년에 세워진 설교단은 바로크 예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1787년에는 모차르트가 이곳에서 오르간 연주를 했으며 1791년 모차르트가
사망하자 400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엄숙한 장례 미사를 치룬 곳으로도
유명하다고 하며 매주 음악회가 열린다고 한다
성당 바로 건너편 인도에는 사람 형상을 한 부조물들이 보이는데 구시가지
광장에서 30년 종교 전쟁 후 발트슈테인 황제 군에게 참수 당한 체코의
신교도 프로테스탄트 귀족들 27명의 얼굴을 부조 한 것이라고 한다
광장 중앙에는 20M의 삼위일체 탑 (Column of the Holy Trinity) 세워져 있었다
성 니콜라스 성당에서 조금 내려 오면 유명한 체코 맥주집들이 줄지어 있고
조금만 더 내려오면 프라하의 낭만을 느끼는 카롤교가 시작 된다
1170년 성과 구 시가지를 연결해 주는 돌다리 유디스 다리를 만들어 사용했으나
1342년 대홍수로 유실되자 체코의 최고 전성기 시대를 만든 카롤 4세의 명에
의하여 1357년 9월 7일 5시 31분에 착공 건축하기 시작하야 1406년 돌다리가
완공하였다고 한다
착공일(135797531)을 의도적으로 맞추어 "하늘이 내리 신 다리라 영원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리를 만들때 우유와 개란을 섞어 와인까지 넣어 반죽으로 만든 돌다리이며
유럽에서도 가장 오래된 다리라고 한다
520M의 길이와 폭 9,6M의 돌다리에 독일 레겐스부르크 (Regensburg) 다리를
모방하여 30개의 체코 성인과 예수 상을 조각하여 세움으로서 프라하의 명물로
자리잡았고 1870년에 카를교라고 처음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 다리는 프라하 성과 구시가를 연결하는 유명한 `왕의 길'의 한 부분이기도
했기 때문에 더욱 이 다리의 건축에 심혈을 기우렸다고 한다
다리 건축과 함께 “거룩 거룩 거룩한 주”라고 금박으로 조각한
“예수의 수난 십자가 상“이 제작되어 오른쪽 3번째에 설치되어 있었다
두 번쩨의 조각은 성 얀 네포무츠키 상이 1683년에 제작 되었으며 그의
순교 장면을 담는 청동 부조화를 손으로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전설
때문에 어김없이 우리 집사람도 만져 보고 소원을 빌었다
바츨라프 4세는 카롤 4세의 아들로써 난폭한 군주였으며 출정이 잦은 탓에
왕비가 외도를 하고 고해성사를 했지만 신부 네포무츠키를 불러 고해 성사
내용을 말하라고 하나 끝내 입을 열지 않아 화가 난 바츨로프 4세는 혀를
잘라 이곳에서 불타바 강으로 던져 버렸든 곳이기에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죽어 있는 성인의 심장에 왼손을 대고 기도하면 소원이 성취된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곳이 광택이 나 있었다
성 루드밀라 (Ludmila 860~921)은 이교도인 며느리에게 죽음을 당한 체코 최초의
성녀이며 프라하 성안의 이르지 성당에 안치된 성 루드밀라 상으로 원작은 다른곳에
보관되어 있고 모작으로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성 노르베르트 (sv.Norbert),성 바츨라프(sv.Václav) 성 지크문드(sv.Zikmund)은
1853년에 제작된 동상으로 원작이라고 한다
예수님 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나 요단강에서 회계의 세례를 베풀 든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도 요단강에서 세례를 드린 세례 요한 (St.John the Baptist)의 1857년 제작된
작품이라고한다
성 치릴(sv.Cyril)과 성 메토데이(sv.Metoděj)
1928~1938년에 제작된 최후의 동상으로 슬라브 민족의 사도로 숭배 받았으며
1980년 교황 바오로 2세는 그들을 유럽의 공동 수호성인으로 추서헀다고 한다
성녀 바르보라(sv.Barbora)성녀 마르케타(sv.Markéta)성녀 알췌베타(sv.Alžběta)는
광부들의 수호 성인으로 존경받고 있는 성인들의 조각은 1707년 제작힌 것
이라고 한다
그 외 다른 조각상들은 1698년에서 1713년에 만들어 졌고 파손의 위험이
있는 조각상은 17세기에 세워진 성벽 아래의 비밀 장소인 비셰흐라드 포대
에 보관하고 모조품을 만들어 새워 놓았다고 한다
다리가 끝나고 구시가지로 통하는 곳에는 올드 타운 브릿지 타워가 세워져있다
타워 문 바로 위에는 카롤 4세, 성 비투스, 바츨라프4세의 황금색 부조가
새겨져 있고 그 위에는 성 보이테흐와 성 지그문트 성인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고 한다
이 처럼 카를교는 거리의 악사는 물론 초상화가까지 합세해 마치 조각전시장
같은 분위기 때문에 관광객은 물론 젊은이들도 이곳에서 불타바 강과 함께
낭만을 즐기기 위해 항상 다리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우린 1357년 만든 카롤 4세의 동상과 맞은 편에 보이는 커롤성당이 있는
광장에서 자전거나라의 워킹투어를 끝내고 나머지는 자유투어를 시작했다
체코 프라하는 오스트리아외 같은 문화권이기 때문에 예술의 도시이다
체코 음악의 아버지 베드르지 스메타나와 이 있고
아르누보 작가 알폰소 무하 그리고 조각가 라디슬라프 샬로운이 있으며
문호로는 카랠치펙과 얀 네루다등이 있다
우리 프라하의 마지막 투어로 카롤교 아래에 있는 스메타나 기념관을 찾아 갔다
1863년부터 1869년까지 스메타나가 머물렀던 곳으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기념관으로 조성한 것이다
1984년 그의 사망 100주년 기념일에 세워진 스메타나동상은 불타바 강을
바라보며 애수에 젓은 얼굴을 하고 있다
베드리치 스메타나(Bedrich Smetana 1824~1884)는 소년시절부터
억압받는 나라의 서러움을 몸소 느끼고 그는 음악에 체코의 혼을 불어
넣으면서 보헤미아 음악의 창시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은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은 총 90분의 연주시간이
소요되며 <비세흐라트>는 체코 건국의 신화 리부셰의 전설을 노래하며
<볼타바>는 유유히 흐르는 볼타바 강은 체코의 아픈역사를 노래하며
<샤르카>라는 순정의 여 전사는 사랑과 열정으로 충성심을 노래하고
https://www.youtube.com/watch?v=IoSVGd6EPLE
<보헤미아의 들과 숲으로 부터>는 축복받은 보헤마아 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으며 <타뷰르>는 종교개혁가 얀 후스 전사들이 세운 도시를 노래했으며
<블라닉>은 애국지사들의 전설이 서린 산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1874년 2번째 곡까지 창작하고 나서 그는 베토벤처럼 청력을 완전히
상실하였지만 1879년에 6편의 나의 조국을 완성하고 1884년 정신병동에서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내일은 작은 프라하 "체스크 크롬로프"를 관광하기 위하여 예약해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것으로 프라하의 관광을 모두 마쳐야 헀다
그러나 기회가 있으면 체코의 유명인들이 뭍힌 비세흐라트를 관광해보기 바란다
체코 민족의 전설과 역사가 깃든 언덕으로 600명이 넘는 체코의 지도자가 안치
되어있으며 체코의 역사가 시작된 리부세 여왕과 프르제미슬의 동상도 만날수
있다고 한다
체코와 프라하 이야기
체코는 최초로 겔트계의 보이족이 정착하여 보헤미아 왕국을 이루어
신성 로마제국의 선제후 중의 하나로 1346년에는 카렐 1세가 왕위에 올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선출되어 카를 5세가 되었다.
그는 보헤미아는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이후 함스부르크 왕가의 소속으으로 되었다가 1차대전후 독립된 보헤미아 왕국이다
그로 인하여 이테리 독일 오스트리아의 영향을 많이 받아 왔으며
유럽 문화를 함께 공유하면서 보헤미안의 특성을 살리고 볼타바 강과 어울려
그들만의 보헤미안의 문화를 만들어 왔다고 생각된다
특히 음악적인 면에서는 국민 음악가 스메타나는 “볼타바”를 작곡함으로
체코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노래했으며 드보르작(Antonín Dvořák)의
“슬라브 무곡”이나 ”신세계“는 보헤미안 음악을 완성할 정도로 뛰어난
예술인을 가졌기 때문에 지금도 예술의 도시로써 각광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기에 어느 시인은 말처럼 프라하를 보고 “아름다운 도시”라기보다도
“표현할 수 없는 뻬어난 미모의 여인과 같은 도시”라고 하였다고 한다
특히 프라하는 혁명의 도시로써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도시이다
종교개혁의 지도자 얀 후스의 순교지이며 공산주의와 맞선 프라하의 봄은
민주화의 도화선으로 세계 각국의 민주화 바람을 일으켰으며
1989년에는 벨벳 혁명으로 무혈로 민주화를 이룬 역사적인 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