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라라.>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주님 따라 하늘을 향한 순례
그때에 18 예수님께서는 둘러선 군중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다.
19 그때에 한 율법 학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스승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21 그분의 제자들 가운데 어떤 이가,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마태오 8,18-22
연중 제13주간 월요일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예수님의 이 말씀이 어떻게 느껴지십니까? 아버지의 장례조차 허락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따르라는 이 말씀이 너무하게 여겨지지는 않나요? 살아가다 보면,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세워지기 마련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일은 자녀에게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할 수 없는 절대 가치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이것을 말씀하고 싶어 하십니다.
많은 신앙인이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하면서도, 믿음보다 자신들이 정해놓은 가치들을 좇으며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저마다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가치와 예수님의 말씀이 서로 부딪치게 될 때,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기가 너무 어려운 말씀’이라고 하며 그분을 따르는 것을 포기하여 버리기도 합니다. 신앙보다 자식들에 대한 기대가, 정치적인 의견이, 물질에 대한 욕심이 더욱 앞섭니다. 체면과 자존심, 다른 이들의 평가가 더욱 앞섭니다. 과연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까?
신앙을 먼저 선택하고, 예수님을 따르기 힘들다고 느껴질 때마다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하고, 무엇과 타협하면 안 되는지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 곳으로 우리를 이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에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함께 계시고, 그 길의 마지막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이 약속이 모든 이에게 소중하면 좋겠습니다. 신앙이 가장 소중한 가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는 나를 따라라.” 아멘.
(김재덕 베드로 신부님「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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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신부님 글 드립니다~~
「인디언의 날씨예보(‘사랑밭 새벽편지’ 중에서)」
예전에 인터넷에서 본 재미있는 글입니다.
한 영화감독이 사막 한가운데에서 영화를 찍게 됐다. 영화 촬영이 한참 진행되던 어느 날, 어디선가 늙은 인디언 한 명이 찾아와서 말했다.
“내일은 비.”
그리고 그 다음 날 정말 비가 내렸다. 일주일 뒤 인디언이 다시 찾아왔다.
“내일은 태풍.”
다음 날 정말 태풍이 와서 촬영을 못 했다. 감독은 조감독에게 말했다.
“그 인디언 정말 대단한 사람인데? 그 사람에게 돈을 주고, 계속 날씨를 알려 달라고 해야겠어.”
그 뒤 인디언은 몇 번 돈을 받고 날씨를 알려 줬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며칠째 인디언이 나타나지 않았다. 감독이 조감독에게 말했다.
“그 인디언 요즘 왜 안 나오지? 내일 중요한 촬영이 있으니 날씨를 알려 달라고 해.”
조감독이 인디언을 찾아가 날씨를 묻자 인디언은 이렇게 대답했다.
“몰라. 라디오 고장 났어.”
이제까지 이 인디언은 라디오를 통해서 듣는 일기예보를 말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인디언의 신비로운 힘으로 정확하게 예보하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이런 착각 속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우리는 아닐까요?
*<소유물의 부족은 개선할 수 있으나 영혼의 가난은 해결하기 쉬운 것이 아니다(몽테뉴)>
연중 제13주간 월요일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마태오 8,18-22)
「主よ、まず、父を葬りに行かせてください」
「わたしに従いなさい。死んでいる者たちに、
自分たちの死者を葬らせなさい。」
(マタイ8・18-22)
"Lord, let me go first and bury my father."
"Follow me,
and let the dead bury their dead."
(Mt 8:18-22)
福者ペトロ岐部司祭と一八七殉教者殉教者記念日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너는 나를 따라라.
"ノヌン ナル タララ。
죽은 이들의 장사는
チュグン イドレ チャンサヌン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チュグン イドリ チネドロッ ネボリョ ドオラ。"
(마태오 8,18-22)
「主よ、まず、父を葬りに行かせてください」
슈요 마즈 치치오 호오무리니 이카세테쿠다사이
「わたしに従いなさい。死んでいる者たちに、
와타시니 시타가이나사이 신데이루 모노타치니
自分たちの死者を葬らせなさい。」
지분타치노 시샤오 호오무라세 나사이
(マタイ8・18-22)
"Lord, let me go first and bury my father."
"Follow me,
and let the dead bury their dead."
(Mt 8:18-22)
Monday of the Thirteenth Week in Ordinary Time
Mt 8:18-22
When Jesus saw a crowd around him,
he gave orders to cross to the other shore.
A scribe approached and said to him,
"Teacher, I will follow you wherever you go."
Jesus answered him, "Foxes have dens and birds of the sky have nests,
but the Son of Man has nowhere to rest his head."
Another of his disciples said to him,
"Lord, let me go first and bury my father."
But Jesus answered him, "Follow me,
and let the dead bury their dead."
2024年7月1日 (月曜日) 記念日
福者ペトロ岐部司祭と一八七殉教者記念日
2024-06-30「わたしに従いなさい。」
+福者ペトロ岐部司祭と一八七殉教者記念日に、神に賛美をささげよう。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福者ペトロ岐部司祭と一八七殉教者記念日です。
愛の主・イエス・キリストと主の御母聖母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福者ペトロ岐部司祭と一八七殉教者、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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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タイによる福音
<わたしに従いなさい。>
そのとき、8・18イエスは、自分を取り囲んでいる群衆を見て、弟子たちに向こう岸に行くように命じられた。19そのとき、ある律法学者が近づいて、「先生、あなたがおいでになる所なら、どこへでも従って参ります」と言った。20イエスは言われた。「狐には穴があり、空の鳥には巣がある。だが、人の子には枕する所もない。」21ほかに、弟子の一人がイエスに、「主よ、まず、父を葬りに行かせてください」と言った。22イエスは言われた。「わたしに従いなさい。死んでいる者たちに、自分たちの死者を葬らせなさい。」(マタイ8・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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キム・ジェドク ペトロ神父『今日の黙想』です。
「わたしに従いなさい。死んでいる者たちに、自分たちの死者を葬らせなさい。」イエス様のこの御言葉をどのように感じますか?お父さんの葬式さえ許さず、イエス様について来なさいと言われるのは厳しすぎると思いませんか?人生で誰にでも、絶対的に重要な価値があるものです。亡くなったお父さんの葬式を行うことは、子供にとって他の何物とも妥協できない絶対価値です。しかし、私たちは信仰者です。イエス様について行く道を通して永遠の命を得る人々です。その私たちに決して妥協できない価値とは何でしょうか?それは、イエス様を信じて従うことです。イエス様は今日、私たちにこれを伝えたいのです。
多くの信者がイエス様に従うと言いながらも、信仰よりも自分たちが設定した価値を追い求めて生きています。それゆえ、それぞれが絶対的に重要だと考える価値とイエス様の御言葉が衝突する時、イエス様の御言葉を「守るのがあまりにも難しい」として従うことを諦めてしまうことがあります。信仰よりも子供たちへの期待、政治的な意見、物質への欲望が先立ちます。体面やプライド、他の人の評価が先立ちます。果たして私たちはイエス様に従っているのでしょうか?
信仰を最優先に選び、イエス様について行くことが難しいと感じるたびに、神の国を見つめるべきです。そうすれば、私たちが守るべきもの、妥協してはならないものが明確にわかるでしょう。主に従う道は、「枕する所もない」場所へと導くことがあるかもしれません。しかし、その道には依然としてイエス様が共におり、その道の終わりには神の国があります。私たちは永遠の命を約束された人々です。神のこの約束がすべての人に大切でありますように。信仰が最も大切な価値となりますように。
「あなたはわたしに従いなさい。」アーメ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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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よりもイエス様のことがいつも最優先でありますように聖霊、き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