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이란 무엇인가.
대자연계의 만상(萬象) 만물(萬物)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인 에너지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
대우주의 항성군을 비롯하여, 혹성, 그 위성, 성운도,
어느 것이나 에너지 입자의 집중에 의해 고체화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들의 운동은,
에너지 입자가 빽빽하게 깔린 공간 속에서,
열, 빛, 전기력, 자기력, 중력의 상호작용에 의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대우주체는, 에너지 입자의 신축에 의해 생기는 현상과 똑같이.
은하계 우주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짐에 따라,
소우주로 되어 바깥쪽으로 팽창하고 있다.
태양계는, 은하계 우주에 속해 있어,
화성, 수성, 금성, 지구, 목성, 토성, 해왕성, 명왕성, 천왕성의 9 혹성과,
위성 소천체를 포함하여, 태양을 중심으로,
자전 공전의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태양은 열과 빛의 에너지를 1초 동안에, 9.3×10²²㎉를,
우주 공간으로 방사하고 있다.
지구는 이 태양으로부터,
1초 동안에 약 200만 톤의 석탄을 연소시킨 것과 같은 열량을 받고 있다.
이 열에너지는, 해양, 하천, 호수의 물을 증발시켜,
육지에 자우(慈雨)를 내린다.
식물은 이 은혜에 의해, CO₂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광합성에 의해 ( C 탄소를 이용하여 ) 전분, 단백질, 지방을 만들고
(O₂ 산소를 내뿜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식물은 우리들의 식량으로 되고, 산소의 공급원이 된다.
또 동물은 탄산가스랑 비료의 성분을 생산하여,
식물에게 주어 상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산소도 탄산가스도, 동물과 식물의 생존은 보호하고 있는데,
특히 지구 표면의 탄산가스를 일정량 유지하기 위해서의 상호관계를 갖고 있다.
상부상조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의 존재는, 그 모든 것이,
생물에 대해서 조화로의 신리로 살아있는 교재가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생물은 전생 윤회를,
광물은 물리적, 화학적 변화의 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고 하는 것이다.
우리의 육체도 또, 이러한 만상 만물이
서로 관련한 환경에서 보존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지상에 있어서도,
동물, 식물은 종족보존의 본능을 갖고 조화를 꾀하고,
인류는 만물의 영장으로서, 일체를 지배하고 있다.
이와 같은 대우주체의 일사분란한 운동이랑
만상(萬象)의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에너지에는
그 지배자가 존재하고 있을 터이다.
그 지배자는 무엇인가.
이것이야말로 대우주체의 " 의식 "이며,
그 의식의 의지에 의해, 대우주체의 만상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왜, 태양은 한 무리의 혹성과 소천체랑 위성을 이끌고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태양은 열 빛의 에너지를 우주공간으로 방사하고 있는 것일까
왜, 태양은 지구에 대해서 만생(萬生)에 적응한 열 빛의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는 것일까.
왜, 지구는 우리들에게 생존 가능한 만생(萬生)을 주고 있는 것일까.
왜, 만상만물(萬象萬物)이 상호작용에 의해 공존하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 왜 " 에 대해서, 누가 정확히 대답해 줄 수 있을까,
그것은, 대우주의 의식이 작용하고 있으니까 라고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왜 육체를 갖고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에 대해,
대답은, 의식의 의지에 의해,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라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잠자고 있을 때,
눈도, 귀도, 코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의 기억조차 없다.
잠에서 깨어, 의식이 각성해서,
비로소 의지의 힘에 의해 모든 것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의지의 작용이 없어서는 인간도 로봇과 다름없다.
우리의 육체도 이 지구 표면의 원소와 같은 물질로 되어 있어,
60조로 이루어진 세포 집단은,
약 30종류로 구성된 원소에 의해 만들어져 있다.
산소 65%, 공기 3%, 칼슘 2%, 탄소 18%, 수소 10%, 인 1%,
그밖에 칼륨을 비롯해서 24 종류 가까운 원소가 1%라고 하는 비율이다.
또 육체 물질을 크게 나누면,
수분이 65%, 단백질 17%, 지방 14%, 염류 5%,
탄수화물 소량과 산소, 탄소, 수소, 질소 등의 원소에 의해 성립되어 있다.
이처럼 우리의 육체도 대자연과 상호관계를 갖고 있고,
의지의 작용에 의해 사고(思考)하고, 행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결국 물질은, 에너지 입자의 집중에 의해
이 공간 속에 체적과 질량을 갖고 있다고 하는 것이며,
그 질량은, 에너지와 공존하며 불이일체인 것이다.
질량도 에너지도 불멸인 것은 이미 물리적으로 증명되어 있다.
이처럼 우리도 눈으로 보이지 않는 의식과,
물질적인 육체와 공존하며 불이일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우주체에 있어서의 실증적인 불이일체성(不二一體性)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우리도 의식이 육체를 지배하고 있을 때는,
그 의지에 근거하여 생활하고 있다.
육체적인 오관, 혹은 감촉을 통해 대뇌, 소뇌에 신호를 보내,
뇌파의 전기적 신호가, 그 의식에 전달된다고 하는 구조이다.
뇌세포는, 일체의 기억을 저장하고 있는 창고가 아니다.
기억의 저장은, 의식의 상념대(想念帶),
필름의 기억 연합령이라고도 해야 할 곳에 충전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이 현상계에서 경험해 온 것만의 기억뿐이라면,
뇌세포에 기억되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겠지만,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의식이,
옛날의 지구상에서의 생활을 과거세라고 해서 생각해 내는 것이 가능한 사실은,
현재의 뇌세포에 기억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영도(靈道)가 열린 자의 대다수가, 왜 과거세의 생활을 상기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현재(一代) 육체에는, 이 같은 과거세의 경험은 없을 터이다.
(신약성서, 사도행전 참조)
(주; 난자와 정자가 만나 세포 분열을 시작하여
두뇌등 장기가 만들어 지는 것이니까,
뇌세포가 만들어지기 전의 과거세의 기억은 없을 것이 아닌가.)
질량과 에너지가 불멸인 것처럼,
우리의 의식(혼) 즉 생명도 불멸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이 과거세에서 무엇을 해 왔는가를,
그 의식은 기억하고 있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이 실증적 사실로서, 인도에서, 석가가 신리를 설(說)하고 있었던 당시,
자신의 과거세의 생활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교전 속에 기록되어 있다.
또 이스라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리를 깨달은 사람들,
바우로, 베데로 등도, 스스로의 과거세의 말을 기억해 내어,
타국어(他國語)로 설법했다, 고 성서 속에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