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례 문화원 교육과정에 매천사로 현장견학을 다녀왔다.
매천 황현은 1855년생의 전라도 광양 출신이다.
28세에 과거에 응시해 초시에서 1등으로 뽑혔으나 시골 출신임을 안 시관이 2등으로 낮추어 버리자, 그 뒤의 시험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구례의 간전면 만수동으로 이주했다.
그는 그곳에 구안실(苟安室)이라는 작은 초가집을 짓고 독서와 시작에 전념하면서 은거했다.
48세에 광의면 월곡마을로 이사해 1910년 자결할 때까지 살았다.
현재의 매천사는 그가 마지막 8년간 살았던 생가터다.
1910년 음력 8월 5일, 그는 한일합병의 소식을 전해 듣고 절명시 4수와 함께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유서에서 그는 “내가 꼭 죽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나라에서 선비를 길러온 지 500년이 됐는데 나라가 망하는 날에도 책임을 지고 죽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어찌 통탄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지식인으로서의 의리를 이야기했다.
그는 소주에 아편을 타서 마셨다.
동생에게 그 사실을 전할 때 약을 마시면서 세 번을 멈췄다가 다시 먹었다고 한다.
약기운이 퍼지는 데 하루가 걸렸다.
향년 56세였다.
그는 지식인으로서의 올곧은 삶을 살려고 몸부림쳤다.
난작인간 식자인(難作人間識字人). 인간 세상에 지식인 노릇 하기 정히 어렵구나!
구한말 흥서대원군 집권시기부터 경술국치까지 47년간의 조선에서 일어난 일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그 기록은 유명한 매천야록이다.
구한말 당시의 소문과 풍속, 인물평을 선비의 시선으로 소상하게 기록하였다.
매천사
구안실
2.
완두콩이 여무는대로 수확한다.
보석 같다.
3.
저녁을 먹고 곡성 장미축제장을 다녀왔다.
더운 낮에 비하여 시원하고 한가로워서 좋았다.
4.
감나무 하지전정도 하였다.
밤꽃
고추는 이제 부쩍 크고 있다.
고구마도 죽지 않고 잘 살고 있다.
탱자씨는 90% 싹을 틔워서 건강하게 자란다.
감나무 농장 2차 제초작업
관리기 제초기가 있어 한결 도움이 된다.
호박
대봉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