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수필문예대학 2014.5.12.)
거꾸로 보는 세상
천장이 발아래 있고, 방바닥이 머리 위로 솟았다.
무릎에 발을 올리고, 날개 같은 손잡이를 잡고, 머리를 아래로 젖히면 친구는 나를 안고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처음 ‘꺼꾸리’라는 이름으로 우리 집에 온 이 친구는 허리가 아픈 나를 위해 왔지만, 덩치가 커서 아이들 방이며 베란다를 전전긍긍했다. 결국, 가족들의 구박이 심해 이젠 아예 안방을 차지하고 내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으라차차!” 친구에게 안겨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보니 천장에 있어야 할 등이 바닥에 붙어있고, 벽에 걸린 달력과 사진이 모두 거꾸로 걸려있다. 집채만 한 옷장마저 한 뼘 높이로 부양되어 거꾸로 붙어있다. 십자가에 걸려 돌아가신 예수님이 거꾸로 매달려 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지켜보자니 안타까워 가슴이 찡해진다. 목이 메서 침을 삼키려 하는데 침마저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는다. 그 옆에서 고통받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어머니 마리아도 아들의 힘든 모습을 거꾸로 지켜보며 애써 힘든 표정을 감추고 있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너무 강한가! 햇살이 눈으로 빨려오더니 이내 눈물샘을 자극한다. 눈물이 개미 기어가듯 이마 옆으로 슬금슬금 내려오니 눈이 따갑다. 다행히 베란다 건조대에 거꾸로 걸려도 흘러내리지 않는 옷들이 바람을 일으켜 눈물을 훔쳐간다.
50년 넘도록 몸에 모아둔 피가 한순간에 머리로 모여든다고 아우성이다. 아래로 뻗은 팔을 휘저어 보고 엉덩이도 좌우로 살짝살짝 흔들어 본다. 친구에게 발목이 잡힌 탓에 발은 자유롭지 않지만 씰룩거리는 엉덩이 덕분에 팔다리와 허리가 시원해지고 키가 커지는 느낌이다. 발목이 조이긴 하지만 다리며 허리는 오히려 시원해진다. 친구에게 매달린 내 모습이 신랑 다룰 때의 모습 같아서 웃음이 난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친정에 갔을 때 형부들과 사촌 오빠가 남편의 발을 함지고 올 때 사용한 기저귀 끈으로 묶어 짊어지고 다듬이 방망이로 마구 치셨지. 그런데 휴일인데도 이불 속에 있어야 할 남편은 보이지 않고 베개만 덩그러니 이불 속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니 아직도 가을 추수가 한창일 무렵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구에 유학 와서 생활하고 있던 나는 제대로 연애도 해보기도 전에 여동생의 삼엄한 감시에 걸려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엄마가 대구까지 오셔서 어떤 남자며 어떤 집안이냐며 심문하시듯 꼬치꼬치 물으셨다. 엄마의 표정에 압도당해 가난한 집안에다 어른들은 평소 한복을 입으시고 연세도 많다고 했다. 엄마는 하늘이 무너지라고 한숨을 쉬시며 연애도 그렇게도 못했느냐며 내 머리를 쥐어박으셨다. 지팡이가 있어야 짚고 일어나는 법이라고 하신다. 소식을 들은 남편은 결혼 허락을 받겠다고 처음으로 우리 부모님을 찾아갔다. 대구에 살던 딸이 시골까지 남자를 데리고 왔으니 눈치를 채셨는지 들일을 마치고 들어오시던 아버지는 얼굴빛이 하얗게 변하셨다. 큰절 올리는 예비 사윗감의 집이 못 산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돌아앉으시고, 엄마도 내키지 않는 모습으로 겨우 절을 받으셨다.
부모님께 허락 아닌 허락 받고 한 달반 만에 올린 결혼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부업이란 부업은 다했다. 첫딸을 낳고, 늦은 나이에 남편은 경상북도 소방공무원을 시작하면서 3개월 동안 시외버스를 타고 포항을 오가며 근무를 했다. 그러다 대구 소방공무원 시험을 본 것이 합격하여 다시 발령을 받게 되었다. 월급보다 몇 배나 더 들어가는 신혼의 생활비에 아이까지 있으니 내 몸과 마음은 이유 없는 병에 매일 시달렸다. 약을 먹고 물리치료도 받았지만, 머리를 들고 걸을 수가 없었다. 마침 이사를 한 공무원 임대아파트에 사는 이웃의 소개로 한의원에 갔다. 의사선생님께서는 기가 너무 부족하다며 한약과 침을 겸해서 치료를 해주셨다. 일반운동은 힘이 드니까 아파트 안을 걷다가 힘들면 아무데나 앉았다가 일어나는 것을 반복해보라고 하셨다.
힘들다고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쓰레기통 앞에서 주운 책 한 권은 나에게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불어넣어 주었다. 김우중 회장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책에서 저자는 운동하는데 일을 하면서 바쁘게 다니면 자동으로 운동이 된다고 했다. 생활이 어려운 우리 형편에 안성맞춤인 셈이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 신문 배달이었다. 처음 남편은 힘 든다며 반대했지만 쉬는 날은 어김없이 신문 배달을 도와주었다. 자전거를 타고 이웃 아파트까지 가서 하는 신문 배달은 힘들었지만 내 건강을 지켜주고, 처음으로 작은 아파트까지 마련하게 해주었다.
새로운 보금자리에 이사를 가서 신문 배달을 한지 두 달이 지나자 동네 사람들의 얼굴도 기억할 정도가 되었다. 여느 때와 같이 우리 아파트 위층 00호에 신문 배달을 하고 돌아서려는데 “아주머니”하고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젊은 아저씨가 신문을 넣지 말라고 하는데 자꾸 넣느냐며 고함치며 신문을 복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순간 대형 딱지보다 큰소리를 내며 신문은 내 가슴에도 사정없이 내리쳤다. 아파트 입주 때 이삿짐을 옮겨주는 조건으로 1년간 신문 구독 계약을 하는데 구독한 지 두 달 만에 중지해달라는 것이었다. 지국으로 연락 좀 해보라는 말도 무시한 채 아저씨는 돌아서서 가는 내 등에 대고 계속 소리를 질렀다.
다음 날 다시 배달하려고 그 집 앞에 멈췄는데 밖에서 어제 듣던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주차장에는 아저씨가 하얀 승용차를 세워놓고는 “여보, 브레이크 밟아봐”하며 경상도 남자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냥한 말을 하면서 차의 브레이크 등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제와는 너무 다른 아저씨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도 주위에 있는 걸 보니까 차 안에는 아저씨의 아내인 모양이다. ‘자기 아내는 사람이고 남의 아내는 사람도 아니란 말인가!’ 난 요즘도 남편이 퉁명스럽게 말하거나 여동생과 제부가 토닥거리며 싸울 때는 어김없이 이 말을 이용한다. “여보, 브레이크 밟아봐. 이렇게 부드럽데 말해야지”라고 말이다.
친구가 잡고 있는 발목이 차츰 아프기 시작한다. 심장의 피가 온통 머리로 몰리는 것 같아 팔을 위로 하여 머리를 서서히 위로 들어 올려본다. 잡혔던 발을 빼는 순간 친구는 ‘철커덕’ 기합소리를 내며 최면상태인 나를 원상태로 되돌려 준다. 머리에 몰렸던 피가 서서히 심장을 통해 손과 발의 모세혈관으로 제자리를 찾아간다. 십자고상도, 사진도, 옷장도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감기 몸살로 힘들었던 4월의 달력만이 5월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4월을 보내고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로 돌려본다. 거꾸로 보는 세상보다 바로 보는 세상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칙칙 소리와 함께 아침밥이 다 되었음을 알리는 알람소리가 들린다. 사라진 남편이 요란한 물소리를 내며 설거지하는 모습이 열린 방문사이로 살짝 보인다. 저 남자 27년이 넘도록 가족들에게 발목이 잡혀 여태 거꾸로 매달려 힘들게 버텼구나.
“친구야, 네 덕분에 거꾸로 보는 세상 알게 되어서 고마워.”
첫댓글 젊은 시절에 고생을 많이 하셔서 허리가 아픈가 봅니다. 저는 고놈의 뱃살땜에...ㅋㅋㅋ 허리 아픈데는 꺼꾸리만한게 없지요. 제가 써봐서 안답니다. 꺼꾸로 메달려서 바라보는 세상,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아이 한둘 낳으면 여자들은 다 골병드네요.
남자들의 배 둘레는 인격입니다.
한국 사람은 뱃심으로 산다고 하잖아요.
'등 따시고 배부르면 장땡이'라고 하니까 샘도 장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