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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회복 : 정체성14.
제3부 하늘의 상이 정체성이다.
5. 하늘의 영원한 상
● 보상종교인가 은혜종교인가?
기독교 복음은 인간의 전적인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절대은혜에 의해서 오직 믿음으로만 성립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그 어떤 행위를 바친다고 해서 구원이 성립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의해 그 사실을 믿음으로써만이 구원이 이루어지며 그 은혜에 사람의 공로가 개입될 수 없다.
그렇다면 하늘의 상이란 무엇인가?
분명한 것은 하늘의 상은 행위로 인한 보상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늘의 상은 믿음의 결과로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하늘의 상은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고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돕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다 보면 하늘의 상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하늘에서는 우리의 상이 차곡차곡 쌓여지는 것이다.
이것을 식물로 비유한다면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햇볕이 비치면 자연스럽게 싹이 나오고, 벌레나 바람에 해를 입지 않도록 가꾸면 줄기가 나오고 마침내 꽃이 피는 것처럼 하늘의 상 또한 단번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씨앗을 심는 행위를 따라 곧바로 꽃으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보상 종교나 행위 종교가 아닌 절대적으로 은혜 종교이다. 그리스도인은 그 어떤 보상도 필요 없을 만큼 복되고 복된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세를 받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그 위에 덤으로 상을 주신 것이 하늘의 상이라는 말이다. 하늘의 상을 받는 여러 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는 간절함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깊은 심령을 보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헌신에 대한 보상으로 하늘의 상이 주어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다만 분별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능력과 이 땅의 복에서 눈을 떼어 하늘을 쳐다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상은 행위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
하늘의 상이라고 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천국의 상속자'라는 개념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상속자란 무슨 뜻일까?
상속자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얻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예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면서 예수님 마음의 통로가 되어 세상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참 믿음이다.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3:7)
초대 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자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는 인생의 큰 결단이었다.
각자의 믿음에 따라 '주님'도 다양한 모습들로 나타난다. 마음에 평안이나 문제 해결이나 사업을 흥하게 해주시는 주님일 수도 있고, 기꺼이 고난을 함께할 수 있는 주님이거나, 생명이 위협받을 때도 결코 떠나지 않을 주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어디까지 주님으로 생각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19:29)
주님은 마지막 날에 영광의 자리에 앉으실 때에 오른편에 있는 자들을 칭찬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예수님의 상속자의 조건을 말씀하셨다. 굶주린 사람들과 목마른 사람들과 나그네들과 헐벗은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과 옥에 갇힌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다. 즉 소외된 이웃들을 돌봄으로 말미암아 상속자가 되는 이것이 바로 주님을 돌본 것이기 때문에 상속자로 삼아 주신다고 하신 것이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25:34-36)
하지만 이런 행위들은 상속자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나타내는 표지이며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드러내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마음을 잘 아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주님의 판단에 따라 상속자를 결정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상속자로 삼으신 것은 율법의 행위나 헌신에 대한 보상으로 결정하신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만약에 우리가 행위로서 상을 받고 행위로서 상속자가 된다면 우리는 믿음을 가질 필요도 없다. 이것이 선행과 고행으로 극락에 가려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무엇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롬4:13-14)
우리는 이 땅의 복이 아니라 저 하늘의 상 즉,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려면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에 함께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상속자가 되기 위한 고난이 아니라 상속자라서 당연히 주님과 함께 받을 고난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무엇을 하지 않아도 당연히 상속자이다. 우리가 부모에게 상속을 받으려고 효도를 다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은혜에 감사해서 효도를 다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7)
우리는 상속자가 되기 위하여 이 땅에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인하여 주님이 주신 계명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행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하늘 나라의 상속자임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스스로 하늘의 상속자임을 드러내 볼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 하늘의 상의 내용
예수님은 똑같은 상속자라도 천국에서 여러가지 형태의 역할을 주실 수 있음을 말씀하신다.
첫째로 상속자로서 모든 환난에서 끝까지 승리한 사람은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주신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3:21)
예수님은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보좌에 앉아 열두 지파를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신다고 하셨다.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22:30)
또한 보좌에 앉아서 심판하는 권세와 천 년 동안 왕 노릇을 하게 하신다. 성도들은 왕이 아닌 왕 노릇 하게 될 사람들이지만 왕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을 생각하기 전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왕으로 다스리실지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은 죄를 다스리시고, 불의와 온갖 악을 다스리시며, 무엇보다 마귀를 다스리신다. 성도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게 된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다스림에 동참하는 권세를 주신다는 말이므로 우리는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한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롬5:17)
둘째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삶을 끝까지 이겨낸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늘의 상은 천국에서 주어질 면류관이다. 이기는 자에게는 여러가지 상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에베소 교회에서 이기는 자에게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서머나 교회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하시고, 버가모 교회에는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을 주시겠고, 두아디라 교회에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새벽 별을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사데 교회에는 흰 옷을 입게 하실 것이고, 이미 면류관을 가진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성전의 기둥이 되고 거기에 주의 이름을 새기겠다고 하셨으며, 라오디게아 교회에게는 주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 주겠다고 하셨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1)
천국의 면류관이란 이기는 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시는 상이다. 이 면류관의 가장 값진 열매는 영혼구원의 열매라고 바울은 말씀하고 있다. 복음을 전하여 믿음을 갖게 만들고 교육과 훈련을 통해 변화와 성장하게 만들었다면 그것은 그냥 그대로 면류관 들이다. 성경에도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등의 면류관이 있지만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과 종류에 따라 표현은 다르지만 다양한 명칭의 면류관이 예비된 것은 틀림이 없다. 우리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으로 무장하고 끝까지 이기게 만들려면 이런 상을 향한 소망이 반드시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8)
셋째로 성경은 천국에는 우리의 보물, 보화가 쌓여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 특별히 자기 소유, 재물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에게 더욱 많은 보화가 쏟아질 것이다. 어쩌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소유인 그 돈을 이웃에게 나눠준다는 것은 인생의 많은 것을 내려놓고 포기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하늘에서 상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복음전파와 신앙 성장을 위해 온갖 힘을 다하는 거기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하셨다.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2:2-3)
● 하늘의 상의 등급?
하늘의 네 번째 상은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것 것인데 어떤 사람이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게 되는가? 이 땅에서 예수님의 계명을 실천하면서 사람들을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천국에서 모든 백성 가운데 큰 사람이라고 될 것이라고 하셨다. 또 한 경우는 어린아이들처럼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사람도 천국에서 큰 사람이 된다고 하셨다. 완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들처럼 하나님만을 완전히 의지하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 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름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4)
하늘에서의 큰 자란 하나님이 보시기에 큰 자가 된다는 것이다. 천국에서의 큰 자와 작은 자의 개념은 계급적인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더 큰 상을 바라보고 달려갈 필요는 없다. 그 이유는 천국에서 상이 주어지든 그렇지 않든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 주시고 영생을 보장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충성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천국에서는 모든 백성들에게 똑같은 특권만 주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천국에 가기만 하면 된다. 단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하늘의 상의 정체를 파악해 둘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려면 끝까지 인내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눅 7:28)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므로 제도와 계급을 두실 수 있으시다. 다만 그 제도와 계급 속에 백성들을 억울하게 만들 수도 있는 모순은 전혀 없다. 어떤 상이 주어지더라도 그 만족도는 동일해야 한다. 천국에서 상으로 억울하거나 소외된 백성들이 단 한 사람도 없어야 한다. 그것이 천국이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4)
분명히 천국에서는 사람마다 다른 상들이 주어질 것이다. 공로를 따라 주는 것이든 심령의 상태를 따라 주는 것이든 각 사람에 맞는 상이 주어진다고 상정할 수 있다. 이 권위는 오직 예수님께만 있다. 천국에서의 상의 크기는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님께 대한 겸손함에 대한 영향력의 크기나 방향의 차이가 각각 다른 상으로 오는 것이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계 2:26)
● 상을 받기 위한 마지막 조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건강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행사되도록 하기 위하여 하늘의 상을 바라보면서 더욱 애쓰고 힘써서 끝까지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몰라서 이 땅의 번영만을 꿈꾸거나, 그 정체성을 단지 관념상으로만 알고 있어서 실제 삶에서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사람들, 너무 많은 환난과 박해로 자주 패배하고 넘어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건강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그 정체성대로 세상에서 행함으로써 하나님 중심적으로 세상을 이겨 나간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승리한다. 하늘의 상은 분명히 우리가 지킨 믿음에 걸맞는 것으로 채워주실 것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하늘에서 받을 상은 행위의 결과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의 심령은 늘 진심이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진심이 아니면 아무리 열심을 다해도 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자랑하고 나타내 보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신앙의 훈련이 필요하고 거듭되고 반복되는 삶이 필요하다. 자랑은 주님으로부터 오히려 멀어지는 길일뿐임을 항상 생각하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마 6:1)
하나님은 언제나 성도의 진심에 대해 크게 기뻐하신다. 가난한 어떤 과부의 진심을 담은 헌금같은것 말이다. 사람은 사람의 속을 잘 모르지만 하나님은 잘 아신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일에 진심이어야 한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막12:22)
가장 명확하게 그 의미를 보여주는 기사가 바로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린 마리아의 이야기이다. 마리아는 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금은 보화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치일 뿐 진정한 사랑 앞에 돈이나 보화의 가치는 전혀 아무런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 때에 항상 진심으로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진심이 믿음이고, 진심이 기도 응답이고, 진심이 사랑이다. 하늘의 상도 그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자.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정체성인 것이다.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막 1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