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6년 7월 12일 언약형통교회 주일오전예배
<농담으로 여겼더라>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창세기 19장 14절 말씀을 중심으로 **「농담으로 여겼더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모든 말을 똑같이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말은 진지하게 듣고, 중요하지 않은 말은 가볍게 넘깁니다.
예를 들어 의사가 “지금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합니다.“라고 말하면 아무도 웃지 않습니다.
기상청에서 “오늘 태풍이 상륙합니다.“라고 하면 미리 창문을 닫고 대비합니다.
은행에서 “대출금을 갚지 않으면 경매가 진행됩니다.“라고 하면 농담으로 듣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말이 사실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그건 옛날 이야기야.”
“나중에 믿어도 늦지 않아.”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하지만 아직도 안 오셨잖아.”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심지어 농담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 본문도 바로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롯은 장난을 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놀라게 하려고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천사에게 직접 들은 말씀을 그대로 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성을 멸하실 것이다.
어서 이곳을 떠나라.”
그런데 성경은 너무나 안타까운 한마디를 기록합니다.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단지 소돔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 시대를 그대로 보여 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보다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성경 말씀이 나의 생각과 내가 배워온 것과
다르면 나의 생각과 내가 배워온 것을 버리고 성경의 말씀을 믿고 따라가야 하는데 도리어 성경 말씀을 저버리고 성경과 반하는 교단교리나 신학이나 이단 사설을 좇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죄를 버리라고 합니다.
회개하라고 합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합니다.
재림이 있다고 합니다.
심판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심판에도 상급 심판도 있고 행위 심판도 있는데 행위 심판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벧전1:17, 롬2:6-10, , 고후11:14-15, 요일3:12, 계20:11-15).
[벧전1:17]
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롬2:6-10]
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고후11:13-15]
11:13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그러나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렇게까지는 아닐 거야.”
“설마 하나님이 심판하시겠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진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사람은 모두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처럼 여긴 사람은 모두 심판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창세기 19장 14절을 본문삼아 그 사실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문 : 창세기 19장 14절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1>본론
<1>소돔과 고모라는 왜 멸망했는가?
소돔과 고모라는 당시 매우 풍요로운 도시였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발전했습니다.
문화도 발달했습니다.
사람들은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이 하늘에까지 가득 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가 쌓여도 사람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죄를 지어도 당장 심판이 오지 않으니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갑니다(전8:11).
[전8:11]
8:12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늦어질 뿐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심판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두 천사를 롯에게 보내셨습니다.
천사들은 말합니다.
“네 가족을 데리고 당장 이 성을 떠나라.”
“우리가 이 성을 멸하러 왔다.”
얼마나 급박한 상황입니까?
롯은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밤중에 급히 사위들을 찾아갑니다.
<2>롯의 사위들은 왜 멸망했습니까?
롯은 숨이 가쁠 정도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어서 일어나라.”
“하나님께서 이 성을 멸하기로 하셨다.”
“빨리 떠나자.”
그런데 사위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성경은 아주 짧게 기록합니다.
“농담으로 여겼더라.”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장인어른,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어디 있습니까?”
“소돔이 하루아침에 망한다고요?”
“걱정이 너무 많으십니다.”
그들은 웃었습니다.
비웃었습니다.
그리고 평소처럼 잠을 잤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하늘에서 유황과 불이 쏟아졌습니다.
그때서야 장인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늦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에서 가장 무서운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이미 늦었다.”
회개도 때가 있습니다.
구원도 기회가 있습니다.
문이 닫히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심판이 시작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늘이 은혜 받을 때라고 말씀합니다.
오늘이 구원의 날이라고 말씀합니다.
<3>오늘날에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말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2천 년 동안 안 오셨는데 이제 오시겠습니까?”
또 누군가는 말합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나중에 하지요.”
또 성경은 말합니다.
“죄를 버려라.”
그러면 사람들은 말합니다.
“다 그렇게 살아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롯의 사위를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미루고 있다면 롯의 사위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4>롯의 아내가 주는 교훈
롯의 가족은 천사의 인도를 받아 성을 빠져나옵니다.
그때 천사는 분명하게 명령했습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
왜입니까?
과거를 버리고 하나님의 구원만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왜 돌아보았을까요?
집이 아까웠을까요?
재산이 아까웠을까요?
친구들이 걱정되었을까요?
분명한 것은 세상에 대한 미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17장에서 아주 짧게 말씀하셨습니다.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
왜 예수님께서 수많은 사람 가운데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고 하셨을까요?
세상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끝까지 하나님을 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한 발은 하나님께 두고 다른 한 발은 세상에 두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롯의 사위는 믿지 않았습니다.
롯의 아내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심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믿음은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말씀을 믿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라.
기도하라.
예배를 소중히 하라.
말씀대로 살아라.
우리는 그 말씀을 어떻게 받고 있습니까?
혹시 “나중에”라는 말로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2>노아 시대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1>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를 설명하시면서 가장 먼저 노아 시대를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노아 시대를 말씀하셨을까요?
노아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는 것은 또한 순종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벧전3:20, 벧후2:5).
[벧전3:20]
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노아는 하루나 이틀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노아 오백세 때에 함과 셈과 야벳을 낳았고, 노아 육백세 때에 홍수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창5:32]
5:32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창7:11-12]
7:11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12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그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은 방주를 보았습니다.
노아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심판의 경고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노아를 비웃었습니다.
“비도 오지 않는데 무슨 홍수냐.”
“노인이 이상해졌다.”
“세상이 망한다니 웃기는 이야기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하늘이 열렸습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깊음의 샘이 터졌습니다.
방주의 문은 하나님께서 닫으셨습니다.
문이 닫힌 뒤에는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노아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늦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노아의 여덟 식구뿐이었습니다.
<2>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긴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시대는 달라도 공통점은 같습니다.
소돔 사람들도 평소처럼 살았습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도 평소처럼 먹고 마시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오늘은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이 예상하지 못한 때에 임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듣고도 미루지 마십시오.
회개를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순종을 다음 기회로 미루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농담이 아닙니다.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3>그러므로 우리는 노아처럼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비웃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만이 마지막 날에도 주님 앞에 기쁨으로 설 수 있습니다.
3>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만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긴 것이 아닙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같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마라에서 쓴 물을 단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능력도 경험했습니다.
하늘에서 만나와 매추라기가 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르비딤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것도 보았고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도 보았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시간이 지나자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말씀보다 자기 생각을 앞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감사보다 원망이 많아졌습니다.
순종보다 불평이 많아졌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겁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1>고린도전서 10장이 주는 경고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합니다.
“그들은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다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고,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
여기서 “다”라는 말이 계속 반복됩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고린도전서 10장 5절의 말씀이 너무나 충격적입니다.
[고전10:5]
10: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왜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셨습니까?
바울은 네 가지 죄를 말씀합니다.
첫째, 우상숭배했습니다. 금송아지 사건입니다(고전10:7)
[고전10:7]
10: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둘째, 음행했습니다. 모압왕 발람이 선지자 발락을 매수하고 광야의 이스라엘 청년둘을 모압의 그모스 신을 섬기는 자리에 참석하게 하여 간음하게 한 사건으로 하루에 이만 삼천명이 멸망을 당한 사건입니다(고전10:8).
[고전10:8]
10:8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셋째,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에게 명하여 만들어 장대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말씀에 불순종하여 멸망을 당한 사건입니다(고전10:9).
[고전10:9]
10: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넷째, 원망했습니다. 이 사건은 가나안 정탐군 사건입니다(고전10:10).
[고전10:10]
10: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도 삶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간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말씀을 믿고 순종한 소수뿐이었습니다(마22:14, 마7:13-14, 계21:7-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은 단순한 역사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울은 “이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출애굽 사건은 믿음 생활의 샘풀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향한 경고입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자동으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직분이 있다고 안전한 것도 아닙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다고 안심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2>히브리서 2장이 주는 경고의 말씀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2장 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여러분, 배는 가만히 있어도 떠내려갑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점점 식어집니다.
말씀을 읽지 않으면 세상의 생각이 들어옵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면 믿음이 약해집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더욱 유념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여기서 “등한히 여긴다”는 것은 대놓고 믿지 않는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나중에 하지.”
“오늘은 바쁘니까.”
“이번 한 번쯤은 괜찮겠지.”
이러한 태도도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롯의 사위도 그랬습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모두 “설마”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이루어졌습니다.
<3>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모습이 있지는 않습니까?
예배보다 세상일이 먼저가 되지는 않았습니까?
말씀보다 사람의 의견(성경과 반하는 교단교리나 신학이나 이단사설 등)을 더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회개해야 할 죄를 합리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보다 스마트폰을 더 가까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전도는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또한 오늘날에는 성경보다 사람의 철학을 더 믿으려는 분위기도 있습니다(골2:8).
[골2:8]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성경보다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려는 모습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기준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교단도 성경 아래 있어야 하고,
신학도 성경 아래 있어야 하며,
목사도 성경 아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4>예수님의 재림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살펴본 모든 사건은 마지막 시대를 보여 주는 예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를 말씀하시면서 노아 시대와 롯의 시대를 함께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7장입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롯의 때와 같이…”
사람들은 먹고 마셨습니다.
장가가고 시집갔습니다.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지었습니다.
이것이 죄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 없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심판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재림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갑작스럽게 심판을 맞이했습니다.
<1>베드로후서 3장의 말씀을 진지하게 들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마지막 시대를 정확하게 예언합니다.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했는데 어디 있느냐?”
“세상은 예전과 똑같지 않느냐?”
여러분, 이것이 바로 롯의 사위들이 했던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말씀합니다.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약속은 더딘 것이 아니라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이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주의 날은 반드시 도둑같이 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
<2>마태복음 24장의 교훈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재림은 준비된 사람 즉 주 맞을 준비를 한 사람에게는 가장 기쁜 날입니다.
그러나 준비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가장 두려운 날입니다.
노아는 준비했습니다.
롯은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3>누가복음 17장의 경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한 사람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
왜 그렇습니까?
구원받는 길을 걸어가면서도 세상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세상을 향한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
죄를 버려야 합니다.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경의 여러 시대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도 말씀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에도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로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순종해야 합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을 들었으면 오늘 회개해야 합니다.
전도하라는 말씀을 들었으면 오늘 전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라는 말씀을 들었으면 오늘 기도해야 합니다.
예배를 소중히 하라는 말씀을 들었으면 더욱 힘써 예배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믿음 위에 세워집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 섰을 때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듣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처럼 붙들고 끝까지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