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잠 시산맥
박수봉 장수 경기대
산 중턱에 앉아 걸어온 길을 내려다본다
아직 올라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는데
해는 서산을 기웃거린다.
어둠이 쌓인 길을 차곡차곡 밟으며
네게로 온 은유의 파편을 주워 담는 일
그것이 내 길임을 안다/2018 5월
1
꽃들의 울음 나비를/잉잉 꽃 속에서 들끓는다
흔들의자 생각을 흔들어/숨을 멈추고/흔들 수 없는 영혼/흔들리지 않으면
방 한 개 검게 탄 소리가/쪽배로/허리 아픈 동네/담벼락/오월 밥물처럼 끓는
만남 움켜쥐고만/손바닥 숱한 금/새의 부리가 찍은 손바닥 점자들
느릿한 풍경 논두렁에서 먼 내바람 배웅
염문 보리밭두렁 부끄러운 염문 번진다/
별이 빛나는 밤 찌그러진 푸른 별 귀퉁이에서 이마에 불을 켜고
소녀와 새, 그리고 나비 그림자 속 나비가 훨훨/하늘이 가벼워졌다
합장 일렁/눈 녹은 낙숫물 소리/빛의 화석으로
봄을 켜다 표정 풀며 휘어지는 가지/피가 톡톡 터지는/땅 위 땅속에서 근질
풍경, 열반에 들다 환하게 풀려난다
도시의 등대 작은 여자의 잔소리/고래 한 마리 탁자에 엎어져
오리무중 만화처럼 살고 싶어 漫畫라/안개 날씨에 五里霧中
2
봉숭아 손톱에서 다시
편안한 잠 살아 울고 죽어 웃는
시인의 집 불씨를 들이지 못해/끓어 본 적 없는 아궁이/시가 화들짝
달팽이 배밀이/침 흘리며/풀 많은 변두리로/벌벌 기는 아픔 하나
반 지하 B03호 보람빌리지 B01 게르 햇살/새의 그림자
그늘의 잠 갈라터진 발바닥/이빨을 갈고 있다
고양이 풍장 햇볓을 뺏겨 탕진/소주병의 허세에/등 비비며/마지막 별빛이
폐차 피 숨이 쿨럭/길을 버렸다// 달빛 축축한(이슬)/바람이 말아 가버린
뭉툭한 손목 조막손으로 허공을/첫 잎의 종알거림/
동구나무 그늘 모으면 소문/잘못 맞추면 오탈자로 싸움/울음 묻은 말/새순
종소리를 풀어놓다 연필보다 익숙한 호미/도시락 온기로/책상 금/
졸업사진 불러내고/세상에서 지워져, 사진 속에 갇힌/
3
박꽃 그리움을 문질러 하얗게 바랜
울력 제 그림자를 밟으며/가난이 싹을 틔우는
떨어진 신발 수없이 움츠렸을 발가락의 진로/제 몸에 길을 내느라
노인의 텃밭 몸살 트는 소리/무릎에서 싹이
闕里祠 은행나무 博施濟衆
오산천 머리채/깡동거리는 꼬리에서 햇살이 부서/갈래 천의 땟물에 몸을 섞
보리 풍으로 익어가는 사람이
그리움 마른나무로 살아도 가지 끝 잎사귀에 젖을 물리는/跫音
노인과 소 이랴! 어저저, 어디 어디/삽작문
겨울나무 뒤틀리고 휘어진/허리를 굽혀야 했던/간곡함 가지/바람의 결에 맡
전국노래자랑 시그널 송/막대풍선/실로폰/가사처럼
초원식당 누님 당신이
누님의 꽃밭 몸속에 가꾼 꽃이 이보다 더 붉지/드디어 꽃을 피웠다고
4
생강나무 생살을 찢어가며/매운 향 수혈하며//미리 눈을 내놓고
갈대의 춤 갈대처럼 뒤꿈치를 세우고/바람의 멱살을/뼛속 흐르던 눈물
꽃의 탐문 꽃잎 다섯이 차안을 들여다보고/여자의 울음과 매명한/
나무의 죽음에 대한 리포트 덩굴/나무에서 햇살을 훔쳐/나무는 무릎을 접고
노랗게 지다 놓지 못한 화두/멀미
고추밭에서 키를 늘여/눈물을 뭉쳐서/밤이슬도 맞지 않고 매운향을/비닐집
돼지 잡는 날 멱따는 소리에 새떼 강아지/곱이/구유
폐강 무너지는 것들은 등 뒤로 슬픈 무늬/틈새를 담쟁이가
포장마차 이파리 같은 사람들/우물우물 씹던 눈물도 둥글게 데워진다.
민들레 포차 희미해지는/그림이 되다만 집/마른버짐 하얗게
쉼터 방죽에 축구공 발길질/핏발선 조각들/구름 한 점이 둥둥
바람처럼 지나간 시간 수종사/낯선 사람들 시계를/녹슨 철길 너머에서
칠갑산 혼자 저무는/번지마저 희미해진/칠갑산 감자탕도 식어버린 얘기가
해설 연민에 대한 몇 개의 시선/김정수
인생은 종종 산행에 비유된다. 기억의 여러 지층에서 끌어올린 삶의 흔적과 문양들을 더듬으면서 동정과 연민의 눈길을
가족사/소외된 삶과 사물에/시적대상에 개입하지 않으면서 함축과 비유 혹은 은유를 통해
어둠은 사물의 형체를 감춰주는 동시에 상상력의 감각세포를 열게 한다. 그 여정을 따라가는 길에 사물과 사연의 실체가 빛어낸 그늘의 형상과 울음이
1. 동정과 연민은 마그마와 같다. 딱딱하게 굳기 이전에 녹아 흐르는
2. 행복한 유년을 함께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