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주제: 왕부지는 행은 지를 겸할 수 있다는 행선지후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왕수 인은 지행은 하나이기에 둘을 분리할 수 없다는 지행합일을 주장한다. 주희는 앎이 실천보다 앞서며, 먼저 이치를 알아야 행할 수 있다는 지선행후를 주장한다. 이 세 학 자의 의견 중 어떤 입장을 지지하는가?
교수님께서 마지막에 지적하셨듯, 행에 지가 있고 지에 행이 있기도 하다고 하셨기에 사실 둘 다 매우 중요한 요소이죠.
실천에는 용기가 필요하며, 앎에는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이 둘은 상극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나치게 신중하면 행동하기가 꺼려지고 지나치게 용맹하면 섣부른 행동이 큰 화를 부르기도 합니다. 신중한 사람은 겁쟁이 처럼 보일 수 있고 용기가 있는 사람은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항상 이 둘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제대로 알고 실천을 하느냐, 실천을 하고 거기서 앎을 얻느냐, 이것은 사실 순서상으로 매번 현실에서는 역동적으로 변합니다. 만일 실수를 했다면 실천에서 앎을 터득한 것이고, 조금 공부를 하고 실천으로 성공했다면 그것은 실천에 앎을 잘 녹여낸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중심이 잡힌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상대주의적 관점을 매번 취하면 본인만의 기준이 없어지기에, 또 신념으로 때로는 고집스럽게 지킬 것을 지키고 사는 것이 좋은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그러면 상대주의적 관점을 본인의 신념으로 고착화 시키면 융통적인 사고가 가능하겠네요 학우님 ㅋㅋ
사실 저는 상대주의적 관점만을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절대주의가 이 상대주의적이고 극단으로 치닫으면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에게 합리화의 명분을 제공하거든요. 본인만의 절대적인 기준으로써의 신념은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을 믿는다던지 하는 굳건한 지반이 필요하겠죠. 기회주의자들, 하이애나같은 사기꾼들만이 판치는 세상에서 누군가는 그러한 현실을 버텨내고 자신의 이상을 구축해야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진정으로 위대한 이상적 사회를 건설하는 자들이겠죠. 그럼에도 현실을 잘 알아야지만이 이상적인 방향을 구축해나갈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의 토대가 되기에 일단 현실을 알아두되 그럼에도 마음속의 이상을 놓치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