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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우석 박사팀의 연구 업적
(1) 광우병 저항소 개발
1) 2004년에 광우병 저항소인 프리온 유전자가 변형된 복제소 5두 생산 2) 이중 1두를 2005년 5월 일본 쯔꾸바의 농림수산성 동물 고도 위생 시설에 보내어 광우병 유발 물질을 혈관에 주입하여 현재 실험 중임 3) 2-3년 간의 생체실험에서 광우병 저항성이 최종 확인되면 한일 양국 연구팀의 공동 업적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 일부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광우병 저항성의 확인 여부는 실험을 통해서 검증이 될 것이며 만일 과학적인 타당성이 없었다면 일본에서 200억엔이 투입된 연구시설에서 생체 실험을 진행하고 있을리가 없다.
(2) 스누피와 동물 복제 업적
1) 텍사스 A&M 대학의 세계 최초의 고양이 복제는 황우석 박사의 제자인 신태영 박사에 의해서 수행되었다.
2) 개 복제에 거듭 실패한 A&M 대학은 개복제에 거듭 실패한 이후 신태영 박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황우석 박사팀이 연구를 하게 되었다. 3) 황우석 박사는 개 복제 연구에 관해서 인력 구성과 연구비 조달, 그리고 연구 과정의 대소사를 직접 지휘했다. 4) 늑대도 복제에 성공했으며 섀튼과 윌멋 박사도 그 제왕절개 수술에 직접 참석한 바가 있다. 5) 스너피 논문은 원래는 황우석 박사가 제 1저자였으나 후배 교수의 국제적 활동 영역 개척을 위해 양보를 해서 이병천 교수가 제1저자로 등재되었다. -> 일부 언론에서는 이병천 교수가 서울대 징계위원회에 출석해 "더 이상 황 전 교수와 아무 연관이 없으며 스너피도 황 전 교수와 무관하다"고 해명한 것으로 보도했으나 이병천 교수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즉 스너피 탄생은 명백한 황우석 박사의 업적이며 이병천 교수를 배려하는 의도에서 제1저자를 양보했을 뿐이다. (3) 이종장기 개발
1) 2001년도에 첫 복제 돼지를 생산했고 이후 EPO 물질 생산을 위한 형질전환 복제 돼지와 조기 노화 모델 복제 돼지가 연속으로 태어남. 2) 장기 이식 연구를 위해 미국 시카고 의대에서 무균 미니 돼지의 세포를 얻어 체세포 핵이식 기술을 이용해서 무균 미니 복제 돼지 생산에 성공 3) 무균 돼지에 인간 면역 유전자인 hDAF를 넣어서 이를 이용해서 hDAF 발현하는 형질전환 무균 미니 돼지를 대량으로 생산함 4) (증거로 확인서 제출됨) 황우석 박사는 모든 착상 수술이나 분만시 제왕절개 수술을 집도했고 복제 돼지 착상 수술도 대부분 시술하는 등 실질적인 실험을 주도해서 이 연구를 성공시켰다. (4) 황우석 박사팀의 핵심 기술에 관하여
1) 여러 가지 중 체세포 핵이식에 대한 복제 동물 생산이 주된 기술이다. 2) 실험에 이용된 동물 난자 수만 수백만 개에 이르고 박을순 연구원이나 김수, 박선옥 연구원은 핵이식 경험이 수십만번에 달할 정도로 독보적인 경험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3) 또한 쥐어찌기 탈핵 기술은 현재까지도 가장 뛰어난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4) 그러나 쥐어짜기 탈핵 기술은 경험과 숙련도를 강조한 것일 뿐 원천 기술의 전부가 아니다. 5) 복제 배반포 기술은 핵이식 위한 난자 활성화, 쥐어짜기로 인한 탈핵과 핵이식, 전기 자극의 시간과 횟수 등 세포 융합 위한 조건 형성, 8-16세포기를 넘어서기 위한 배양액 선정, 배합, 배양 시간 조절 등 최적화 조건을 일체화 시켜야 가능하다. 6) 뉴캐슬 대학의 스토이코비치 교수팀도 황우석 박사에게 런던에서 2회에 걸쳐 황우석 박사의 지도를 받은 후 1개 배반포 성공에 그쳤으며 이 연구 성과만으로 스페인 발렌시아 대학에 파격적 대우로 스카웃되었다. 7) 2005년도에는 스페인 카롤린스카 대학, 발렌시아 의대 연구팀이 방문 연구 했으며 2005년 12월 미국 하버드 대학과 MIT 대학이 공동 연구를 합의하고 하버드 대학 케빈 에간 교수가 방문 연구를 했다. 그러나 PD수첩 방영으로 무산되자 2006년 6월 하버드 대학 케빈 에간 교수는 거액을 투자해서 황우석식 줄기세포를 연구하겠다고 발표했다. 8) EU에서도 2006년 7월 25일 25개국 과학 장관 회의에서 2007년부터 7년간 약 60조원에 이르는 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9) 현재 황우석 박사팀은 꾸준히 배양 기술을 터득하여 돼지 체세포 핵이식을 한 후 돼지의 맞춤형 줄기세포를 수립할 정도로 자체 기술이 발전되어 있는 상태다. 2. 미즈메디와 문신용 교수와의 공동 연구 경위
1) 문신용 교수와는 2001년 세포응용사업단장이 되고 싶다고 도움을 요청해와서 교류를 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2) 황우석 박사팀의 체세포 핵이식 기술과 문신용 교수의 시험관 아기 시술 경험과 줄기세포 수립 경험, 그리고 미즈메디의 줄기세포 배양 기술이 합해지면 국가와 인류를 위해 이로운 연구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희망하에 공동 연구를 제의했다. 3) 2001년 공동 연구 합의 당시 황우석 박사팀은 체세포 핵이식 및 그 이후 배반포까지 배양을 담당하고 노성일 이사장은 난자 공급과 배반포의 부착부터 줄기세포 배양 및 이후 검증 작업을 담당하고, 문신용 교수는 의학적 문제점이나 난자 공급상의 정책적 문제점을 담당하기로 했다. 4) 윤현수 교수는 2005년 초 한양대로 전직하기 전까지 미즈메디 연구팀의 총 책임자로서 미즈메디 연구진을 지휘했고 김선종과 박종혁은 부착과 줄기세포 수립 및 배양, DNA 검사와 테라토마 형성 등 각종 특성 규명과 이에 관한 데이터와 사진 제작 등을 담당했다. 5) 결국 황우석 박사팀은 공동 연구 역할 분담한 내용에 따라서 104개의 핵치환 배반포를 형성해서 세계적인 업적을 이루는데 성공했다. -> 문신용 교수와 노성일 이사장의 미즈메디 측이 줄기세포를 배양, 검증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바꿔치기 등을 한 혐의가 있으며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불법 난자 매매로 불임 시술을 한 혐의가 드러나는 등의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는 바람에 세계적인 연구 업적이 빛을 바라게 된 것이다. 윤리 문제는 난자 공급 정책 담당이면서 2004년도 교신 저자인 문신용 교수와 난자를 제공한 미즈메디 노성일 이사장의 책임이다. 그러나 이러한 치명적인 문제가 전부 엉뚱하게도 황우석 박사팀에게 떠넘겨져 있는 상태이다. 3. 섀튼 교수와의 공동 연구 1) 황우석 박사팀의 제자인 현상환 박사가 2003년도 초에 섀튼의 연구팀에 합류했으며 섀튼은 그전에 영장류 복제가 불가능하다고 논문을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2) 섀튼은 현상환 박사로부터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 연구 내용을 전해듣고 2003년 11월 황우석 박사팀의 연구실을 직접 찾아와서 복제 배반포와 줄기세포 그리고 그 전 과정을 지켜 보았으며 자신의 사이언스 논문의 오류를 인정하였다. 3) 이후 섀튼은 2004년 논문 최종 교정 등에 지원을 해주었다. 그리고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대한 NT2 이후의 실험 설계 단계부터 최종 논문 발표와 실용화 방안 구축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이며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4) 섀튼은 2005년 1월 15일 경 인도에서 황우석 박사에게서 NT4-7번이 모두 오염되어 망가졌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도 세포는 배양 중에 죽는 일이 비일 비재하고 일단 수립된 것이 확실하니 논문 제출을 서두르자고 부추겼다. 5) 이후 섀튼은 강성근 교수가 보내준 자료로 논문을 직접 작성했을 뿐 아니라 박종혁까지 동원하여 논문을 완료하였다. 6) 또한 섀튼은 2005년 11월 8일 뉴욕에서 열린 세계 줄기세포 및 복제 전문가 정상 회의에서도 황우석 박사를 도와 16개 우선 연구 대상 질병 선정에 앞장 섰다. 7) 그러면서 섀 튼은 2003년 12월 황우석 박사팀이 제출한 특허를 거의 그대로 베껴서 2004년 12월 자신의 보정 특허를 출원했으며 황우석 박사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섀튼은 이 특허에 대해서 전혀 황우석 박사와 논의하지 않았다. 8) 서울대는 유영준의 거짓말과 변이 가능성이 노정된 DNA 검사 결과만을 근거로 NT-1이 처녀 생식이라고 발표했으며 이로 인해 황우석 박사팀의 특허의 실시 가능 요건이 불투명하게 되는 효과를 가져와 섀튼과의 특허 문제에 불리하게 작용하게 되었다. -> 섀튼은 이미 NT 4-7번이 소멸된 것을 알았고 당연히 이들의 DNA 지문 검사나 테라토마 그리고 표면 항원 표지자 등의 검사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섀튼은 사이언스에 문제가 되는 중복 사진을 직접 건네준 사실이 알려져 있으며 이는 명백히 논문 조작의 주된 책임은 섀튼에게 있음을 말해준다. 4. 2004년도 사이언스 논문 조작에 관해 (1) NT-1의 진위 여부에 관해서 1) NT-1에 대해서 서울대 조사위는 유영준, 이유진의 거짓말만 듣고 처녀 생식 줄기세포라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발표했다. 2) 이유진은 동물 핵이식을 배운지도 며칠 안되는 극히 초보 단계에 있었으므로 인간 난자를 다루도록 허용된 적도 없다. 3) 또한 이유진이 설사 몰래 인간 난자를 다루었다 해도 서울대 발표처럼 투명대 밖을 나온 핵이 다시 난자 안으로 들어갈 수는 절대 없다. 4) 또한 서울대 조사위는 황우석 박사에 대해서 조사 착수 당일 1시간 30분 밖에 질의 응답 조사를 한 것이 전부이며 그러한 결론에 대해서 어떤 의견도 물어오지 않았다. 5) 또한 검찰 발표를 통해서 NT-1은 박을순이 수립한 것으로 드러나 이와 같은 거짓말이 명확히 밝혀지게 되었다. 6) 문제가 불거진 2006년 3월 각인 검사를 다시 실시해서 부계 유전자의 발현을 확인했으며 서울대 의대 서정선 교수도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가 맞다고 시인을 했다. (2) 난자 제공자가 바뀐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경위 1) 황우석 박사는 배양과 검증에 관해서 전적으로 미즈메디 연구원들에게 의지했으며 강압을 행사한 적이 없다. 2) 유영준은 2003년 2월 3일 핵이식 실험이 있는 날 설 연휴로 고향에 내려가서 돌아오지 않아서 김선종, 박종혁이 대신 난자를 가지고 왔다. 또한 이에 대해서 황우석 박사가 언짢게 여기자 다음 핵실험이 있는 2월 9일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이에 구자민 연구원이 난자를 운반했다. 3) 2003년 3월 미즈메디에서 체세포 제공자를 물어보자 실험 노트와 컴퓨터에 정보가 있음에도 기억에 의존해서 이상아가 체세포 제공자라고 답했다고 한다. -> 실험에 참석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기억에 의존해서 이상아라는 이름을 댈 수 있는가? 실험에 참석하지 않았으므로 난자 제공자의 이름을 알 수도 없었으므로 당연히 기록된 실험 노트와 컴퓨터를 참고해야 이름을 댈 수 있었다. 4) 2003년 2월 3일 핵이식한 난구 세포가 보관되어 있지 않아서 이후 난자 제공자의 인적 사항 확보에 어려움이 많았다. -> 유독 NT1으로 오인된 공여자의 난구세포가 보관되지 않은 이유가 수상하다. 5) 체세포 제공자는 이씨가 아닌 노씨로 밝혀졌으며 2003년 3월 난자 제공자의 체세포를 확인하기 위해 소동이 벌어졌을 때 미즈메디 병원에서 이씨의 혈액을 채취해서 보관하고 있어서 체세포를 확보하게 된 것인데도 유영준은 황우석 박사가 국정원을 통해서 만나서 확보한 것처럼 거짓으로 답했다. (3) 2003년 5월 DNA 지문 분석 검사 결과 조작 경위
1) 검찰의 공소 사실 중 황우석 박사가 NT-1의 최초 DNA 지문 분석 검사의 조작을 지시하였다는 것은 오로지 박종혁과 김선종의 진술에 의존하고 있다.
2) 검찰에서의 진술 내용의 번복은 이러한 진술이 거짓임을 쉽게 알게 해주며 이들이 처음부터 황우석 박사팀의 줄기세포 연구를 방해했고 그러한 행위가 계속 그 이후에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중요한 사실이다.
3) 당시 황우석 박사팀은 배양과 그 결과 검사 상의 지식이 부족한 상태로 업무 분장상 황우석 박사가 조작을 지시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검찰이 근거로 삼고 있는 박종혁과 김선종의 진술이 시간적 상황과 번복 과정 그리고 모순된 진술에 의해서 쉽게 거짓임을 알 수 있다. 또한 NT-1의 보관 의뢰 및 분양 그리고 그 이후의 검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이들이 조작 행위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4) 줄기 세포 연구의 업무 분장 내용과 조작 지시의 원천적 불가능 이유
1) 검찰은 황우석 박사를 총책임자로 지위를 고정시키고 관련자의 추궁을 하다가 벽에 부딪치면 황우석 박사의 지시에 따랐다는 일방적 진술을 받아내는 식으로 수사했다.
2) 지시를 하려면 그 지시에 상응한 지식과 결과를 가늠하는 능력을 지닌 의시표시와 결정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단지 해당 업무 담당자인 전문가의 의견을 수용한 것을 지시하였다고 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3) 연구 당시 황우석 박사팀은 핵이식과 인공 임신등의 체내 배양에는 능숙했지만 체외 배양과 그 결과에 대한 검사 이론에는 지식이 없었으므로 이러한 결과를 조작하라고 지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4) 유영준 역시 인간 난자에 대해 전문적 지식을 습득한 적이 없어서 서울대와 한양대 의대에서 관련 지식을 습득했다.
5) 당시 미즈메디 도병록 연구원이 황우석 연구팀에 와서 인간 난자의 운반 방법과 성숙 과정, Processing 과정 등 난자를 취급하는데 필요한 기초 지식을 전수하였다. ( 검찰 제출 증거 p12240)
6) 검찰 조사에서 김선종은 2003년 당시 박종혁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그 지시를 받아들였다고 진술했고 윤현수 역시 배반포의 부착과 배양에 대해서 황우석 박사팀이 전혀 경험이 없었으므로 전적으로 박종혁과 김선종에게 의존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 검찰 제출 증거 p2812)
7) 지문 분석 검사는 미즈메디 팀에서 시행한 것이고 황우석 박사는 검사 계획과 검사 기관 선정에 관여한 바가 없다.
8) 도병록 연구원이 난자와 함께 제공되는 난구 세포는 나중 검사를 위해 보관하라고 했고 이것은 유영준이 담당했다. 그러나 2003년 3월 미즈메디에서 NT-1의 검사를 위해 난구세포를 찾았지만 당시 난자 제공자라고 생각한 이상아의 난구세포가 보관되어 있지 않았다.
9) 이에 황우석 박사가 인적 사항을 알아내어 별도의 체세포를 확보하라고 노성일 이사장에게 알려주었다. 그러나 미즈메디 병원에 채혈한 혈액이 있어서 그것으로 체세포 대신 검사에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이렇게 체세포가 아니라 혈액으로 검사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나중에 알았는데 체세포를 둘로 나누어 검사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다.
10) 당시 NT-1은 세계에서 최초로 확립된 복제 줄기세포라는 기대 속에 있는데 연구책임자가 아예 최초 검사부터 시료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검사에 임했다는 것은 상식 밖의 주장이다. 만 일 정말로 최초 검사를 조작했다면 실제 NT-1의 검사 결과가 어떤 것인지 실체를 알아보려는 후속 조치가 있어야 정상이지만 김선종, 박종혁 입에서 추가로 이러한 검사를 해보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진술이 없다는 것은 이들이 거짓 진술한 것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11) 더구나 박종혁과 김선종은 황우석 박사가 NT-1이 복제 줄기세포 수립을 확신했다고 진술했으며 이는 윤현수교수가 황우석 박사에게 DNA 검사 결과를 근거로 설명해 주었기 때문에 확신하게 된 것인데 이제와서 황우석 박사가 NT-1의 조작을 지시햇다고 진술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5) 2003년 5월 DNA 지문 분석 검사의 수행과정
1) 윤현수는 박종혁과 김선종에게 NT-1 줄기세포의 냉동을 초기 계대에서 많이 하도록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또한 윤현수는 줄기세포가 수립된 직후 박종혁에게 NT-1이 줄기세포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검증 절차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해서 2003년 4월 9일 경 박종혁으로부터 보고서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2) 김선종은 계대 배양시 상태가 좋지 않은 클럼프는 냉동고에 동결시키고 상태 좋은 클램프만 배양했다.
3) DNA 지문 분석 검사는 윤현수 주관으로 2003년 3월 경에 계획하여 시행한 것이고 황우석 박사는 DNA 지문 분석 검사 사실을 윤현수에게 들었지만 그에 대해 잘몰라서 분자 생물학을 전공한 강성근교수에게 물어보았으나 강성근 교수도 잘 모르는 형편이었다.
4) 검사 기관 역시 윤현수가 정한 것이어서 황우석 박사도 DNA 검사를 어디에서 하는지 잘 몰랐다.
5) 이후 2003년 5월 6일 윤현수 교수가 전화로 DNA 지문 분석 결과 체세포와 줄기세포가 일치한다고 보고를 듣고 NT-1이 핵이식에 의한 복제 줄기세포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6) MBC의 보도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윤현수과 박종혁 등은 NT-1이 DNA 지문 분석 검사 등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장담하여 황우석 박사는 이들의 말을 믿고 있었다.
(6) 박종혁과 김선종의 진술 변경 과정
1) 김선종과 박종혁은 2006년 2월 6일과 3월 3일 경 검찰 조사를 받았으며 이미 검찰 조사에 대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2) 김선종은 검찰 수사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서울대 조사 이전에 미즈메디 팀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 황우석 박사에 욕설을 붙여 호칭하는 등 심한 적대감을 나타냈다.
3) 2005년 12월 26일 박종혁은 황우석 박사에게 전화해 왜 멀쩡한 NT-1까지 물고 늘어지냐며 분통을 터뜨렸으며 이에 황우석 박사가 " 정말로 NT-1은 아무런 문제가 없냐고 묻자 박종혁은 2003년 5월 NT-1의 DNA 검사는 자신이 직접 주관했으므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수차 말했다.
( 통화 녹취록 증거 제시)
4) 박종혁은 검찰 수사 시 2006년 2월 6일자 진술에서 "2003년 5월의 DNA 지문 분석 검사는 정확히 수행되었기 때문에 이상이 생긴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다가 2006년 3월 3일자 진술에서는 DNA 지문 분석시 추출한 DNA 시료가 적어 김선종과 상의하여 체세포에서 추출한 DNA 시료를 나누어 보냈다고 진술했다.
5) 김선종은 2006년 3월 3일 조사에서 줄기세포 양이 적어서 DNA가 추출되지 않았고 이에 박종혁과 의논해서 체세포 DNA를 나누어 보냈다고 진술하다가 2006년 3월 4일 DNA 침전물을 잃어 버렸고 이에 박종혁에게 보고해서 잃어버렸다고 하자 박종혁이 황우석 박사와 전화를 끝낸 뒤에 황우석 박사가 체세포 DNA 튜브를 두개에 나눠 담아 보내라고 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그러자 박종혁도 2006년 3월 7일 조사에서 김선종이 DNA 침전물을 잃어 버렸고 황우석 박사에게 전화를 걸자 황우석 박사가 DNA를 나누어 보내라고 지시했다고 김선종과 말맞추기를 하면서 기존의 진술을 번복하였다.
6) 결국 이들은 처음에는 자신들은 DNA 검사 결과가 조작된 경위를 모른다고 하다가 이후 자신들이 공모해서 DNA 양이 적어 체세포를 나누어 보냈다고 하다가 결국에는 마치 갑자기 생각난 듯 황우석 박사가 지시했다라고 모든 책임을 황우석 박사에게 떠넘겼다.
7) NT-1에 대한 사상 최초의 검사를 조작하면서 그것이 자신들이 공모한 것인지 혹은 황우석 박사가 시킨 것인지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은 일이며 이는 이들이 명백히 거짓 증언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7) 박종혁, 김선종 진술의 모순 및 유도 신문
1) 박종혁은 2003년 3월 경부터 NT-1 줄기세포가 죽어 나가다 2003년 4월경 부터 안정을 찾았고
분화가 진행되어 계대 배양이 어려운 세포들을 긁어모아 DNA 지문 분석을 하였다고 진술했다.
-> 따라서 체세포를 나누어서 검사를 했다는 것은 거짓이며 줄기세포로 DNA 지문 분석을 했음을 알 수 있다.
2) 김선종 역시 박종혁이 DNA 지문검사에 사용하려고 NT-1 계대 배양 중에 발견한 분화 세포를 1.5ml 튜브에 별도로 모아서 서울대 냉동실에 보관했다고 진술했다. 따라서 2003년 5월 줄기세포 시료가 모자랐다는 박종혁 진술은 거짓이다.
-> 김선종과 박종혁의 진술이 일치하며 이들은 분화가 된 줄기세포를 가지고 DNA를 검사한 것이며 체세포를 나누어 검사하지 않았다.
3) 김선종은 그 후 줄기세포 양이 적어서 추출이 안되었다고 진술했다가 이후 DNA 침전물을 잃어버렸다고 진술 번복을 했으며 전문가들은 DNA 시료 추출 실패나 분실은 매우 예외적인 것이고 DNA 추출이 고난이도도 아니므로 정말로 잃어버렸더라도 다시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체세포를 둘로 나누어 검사할 이유가 전혀 없다.
4) 게다가 2003년 5월 줄기세포 DNA 지문 검사뿐 아니라 10월의 배아체 DNA 지문 검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누군가 NT-1 DNA 추출을 고의로 방해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5) 또한 박종혁은 NT-1의 DNA 추출물이 분실되었다고 황우석 박사에게 보고해서 체세포를 나누어 검사하라는 지시를 받으라고 했다고 주장하지만 정말로 분실되었다면 황우석 박사가 아닌 미즈메디 연구소장이자 직속 상관인 윤현수에게 보고했어야 하며 이는 업무 분장 상의 이유 뿐 아니라 검증은 황우석 연구팀이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6) 또한 검찰은 김선종이 DNA 검사를 조작한 이유에 관해서 황우석 박사가 복제 줄기 세포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진술했으나 다시 검찰이 황우석 박사가 네이쳐지에 논문 투고를 서둘렀기 때문이 아니냐고 유도 신문을 하여 이와 관련성이 있다는 김선종의 답변을 얻어 냈다.
-> 즉 김선종이 체세포로 나누어 검사했다는 거짓 진술을 하고 그에 대한 이유 역시 지어냈으며 검찰은 한술 더떠서 네이쳐지 투고 때문 아니었겠냐고 소설을 써서 김선종에게 유도 신문을 하고 답변을 얻어냈던 것이다.
7) 또한 검찰은 박종혁에게도 2003년 5월 체세포 DNA만으로 지문 검사를 시켰다고 진술하자 그 이유에 대해 묻었고 박종혁 역시 황우석 박사가 복제 줄기세포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진술하자 검찰이 중국에서 토끼 난자로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를 수립했다는 논문을 발표했기 때문에 논문 제출을 서두른 것이 아니냐는 유도 질문을 던져서 답변을 유도했다. 그러나 중국의 논문 투고는 2003년 8월에 제출한 것으로 2003년 5월에 이 논문이 제출된 사실조차 알 수 없었으므로 거짓이었다. 그러자 검찰은 다시 네이쳐 논문 투고 때문이라는 답변을 유도 신문으로 얻어냈다.
-> 결국 검찰은 논문을 빨리 내기 위해서 DNA검사를 조작했다고 시나리오를 써놓고 김선종과 박종혁에게 진술을 유도신문을 통해서 얻어 내려 했으며 이 과정 상 2003년 8월에 제출된 중국 논문 때문에 3개월도 전에 빨리 논문을 서둘렀다는 모순된 진술이 얻어지자 다시 이를 네이쳐 논문 때문이 아니냐며 재차 유도 신문을 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8) NT-1의 보관의뢰 및 후속 검사
1) NT-1은 2003년 3월 하순경 갑자기 분화해 소실 위험에 처했다가 회복한 일이 있었고 2003년 5월 미즈메디팀으로부터 DNA 지문 분석 결과가 일치하므로 복제 줄기 세포를 수립했다는 확신을 얻은 후 미즈메디팀과 문신용 교수 연구팀에 각각 보관 의뢰했다.
2) 미즈메디에 보관 의뢰된 NT-1은 처음에는 박종혁이 배양하다가 2003년 12월 김선종과 김진미 연구원에게 나누어 배양하도록 했다.
3) 미즈메디팀이 수립해 NIH에 등록한 수정란 줄기세포인 Miz-1의 염색체가 갑자기 변형을 일으키는 사고가 발생하자 미즈메디는 주기적으로 이를 탐지하기 위해 모든 줄기세포에 대해 자체적으로 DNA 검사를 실시했고 이때 보관 의뢰받아 배양하고 있던 NT-1 에 대해 함께 DNA 검사를 실시했다.
4) 이렇게 미즈메디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DNA검사에서도 2004년 2월과 2004년 9월 실시되었는데 각 검사에서도 "일치(Mstched)" 라는 검사 결과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5) 이러한 사실은 DNA 지문 분석 검사를 조작한 장본인이 미즈메디에 소속된 인물이며 황우석 연구팀과 미즈메디 연구팀 양쪽을 오가며 시료를 모두 조작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증거이다.
6) 미즈메디에서 배양하던 NT-1이 또다시 갑작스럽게 분화가 발생하자 김진미는 성실하게 이를 돌보아 분화를 진정시켰으나 김선종은 이를 소실하고 NT-1을 임의처리하고 Miz-1으로 바꿔치기를 실시했다.
7) 검찰 조사에서 미즈메디 NT-1을 지문 분석한 결과 이 사실이 발각되었고 미즈메디가 Miz-1의 핵형 검사 결과 이상이 발견되자 이를 Miz-5와 바꿔치기한 사실이 드러났다.
8) 미즈메디에서 보관되었다가 반환된 NT-1중 일부가 이상하게 잘 자라자 권대기가 2005년 10월 핵형의 변경을 의심하고 핵형 검사를 실시했다. 이 때 김선종에게 문의하자 김선종은 자신에게 샘플을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그 이후 김선종은 미즈메디 연구원인 우동훈을 통해 검사를 삼광의료재단에 맡기고 이를 우동훈에게 받아본 결과 검사를 맡긴 NT-1의 핵형검사가 2004년 변형된 핵형검사 결과와 동일하자 NT-1에 Miz -1을 섞어 심은 사실이 밝혀질까 두려워 우동훈에게 받은 결과는 폐기하고 정상적인 핵형검사가 나온 것처럼 권대기에게 보내준 사실이 밝혀졌다.
-> 김선종은 2005년 10월 이미 핵형 검사가 미즈메디1과 동일하게 나온 사실을 알고 이를 은폐하려는 시도를 했다. 검찰은 당연히 미즈메디가 NT-1을 다른 체세포 검사로 나오게 한 경위와 미즈메디 줄기세포로 바꿔치기 한 경위를 명확히 수사하고 정말로 논문과 동일한 줄기세포 존재 여부를 수사해야 했으나 엉뚱하게도 증거 인멸을 시도했던 김선종의 증언만을 채택해서 황우석 박사를 줄기세포 지문 검사 조작범으로 몰아가고 있다.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9) 각인 유전자 역전사효소중합연쇄반응 검사 결과 조작
1) 사이언스는 2003년 7월 DNA 지문 결과 이외에 별도의 처녀 생식 여부를 규명할 실험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2) 이에 처녀 생식에 의한 원숭이 줄기세포를 유일하게 수립한 미국 미시건 주립대학의 시벨리 교수가 2003년 10월 31일 황우석 박사의 실험실을 방문했다.
3) 시벨리의 도움으로 NT-1의 처녀 생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각인 유전자 RT-PCR을 강성근 교수와 전현용 연구원 등이 수행했고 이 결과를 황우석 박사는 신뢰했다.
4) 검사 결과 부계 유전자가 발현했다는 보고를 받아 처녀 생식이 아니라고 확신했으나, 사이언스 측의 요구에 따라 처녀 생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문구를 논문에 포함시켰다.
-> 일부에서는 논문에 이 문구를 포함시킨 것이 처녀 생식인 사실을 알고서 넣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지만 이것이 황우석 박사팀의 견해때문이 아니라 사이언스 측의 요구라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5) 또한 유전자 분석학을 10년 이상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외국 학자가 서울대 조사위 발표 결과를 보고 참을 수 없다며 전문가적 분석 소견서를 보내온 사실도 있다.
6) 황우석 박사는 NT-1이 처녀 생식이 아닌 복제 줄기세포임을 확신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공동 연구팀을 구성하여 이를 입증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7) 또한 서울대 주장처럼 NT-1의 일부 변형이 사실이더라도 이는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마이트라 박사팀이나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피더슨 교수의 논문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인간 줄기세포의 계대 배양 횟수가 증가하면서 배양 과정 중에 나타난 변이 현상일 수도 있다. 따라서 서울대 문신용 교수가 보관 중인 초기 계대 NT-1의 동결 시료를 돌려 받아 검사해 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8) 그러나 문신용 교수는 황우석 박사가 보관 의뢰했던 NT-1을 후배 과학자를 통해 반환 요청하자 이를 거절했고 변호인을 통해 반환을 요청하는 내용증명 서신을 발송하자 반환하겠다고 구두 답변하였다가 2회나 약속을 어기고 결국 황우석 박사가 서울대 교수 신분이 아니어서 반환할 수 없다는 궤변으로 NT-1의 반환을 거절하고 있다.
(10) 면역 염색 사진 조작
1) 2004년 1월 황우석 박사와 강성근 교수는 섀튼 교수 연구실에서 섀튼과 함께 면역 염색 사진을 검토했으며 당시 섀튼은 SSEA-1의 면역 염색 사진이 줄기세포가 2개 나타나고 해상도가 좋지 않다며 교체하는게 좋다고 조언했다.
2) 당시 강선근 교수는 황우석 박사와 섀튼이 자리에 없는 동안 한국에 있던 박종혁과 사진에 관하여 통화를 하여 "NT-1이 아닌 다른 줄기세포 사진이라도 괜찮으니 좋은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구했으며 황우석 박사는 이 사실을 검찰 수사 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
-> 면역 염색 사진을 황우석 박사 지시로 조작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섀튼이 교체 요구를 했으며 강성근 교수가 황우석 박사와 상의 없이 박종혁에게 다른 줄기세포 사진이라도 좋으니 보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11) 테라토마 DNA 지문 분석 검사 조작
1) 유영준은 2003년 5월 테라토마 실험에 앞서 배아체 형성 실험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 NT-1의 분화 능력을 확인했다.
2) 그러던 중 2003년 9월 강성근의 제안에 따라 유영준이 배양중이던 배아체의 DNA 지문 분석을 의뢰하게 되었다.
3) 공소 내용 중 배아체의 유전자 지문 검출이 되지 않아 강성근과 윤현수이 논의해 이양한에게 2003년 5월 검사 결과와 동일한 것으로 보내달라고 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황우석 박사는 이러한 과정에 대해 전혀 보고받은 사실이 없어 검사 결과가 진실한 것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4) 이후 테라토마를 충분한 시간을 두지 않고 적출하는 바람에 성공적인 결과를 얻지 못했으나 신속히 논문 제출하기 위해 부득이 배아체 지문 검사를 테라토마 지문 분석 결과로 바꾸어 제출하게 되었다.
-> 배아체에서 체세포 공여자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는데 또다시 지문 검사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지문검사 조작 의혹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12) 테라토마 사진 조작
1) 2003년 8월, 11월에 2차례 테라토마 실험을 실시 했으나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고 다른 테라토마 사진을 제출한 것은 사실이다.
2) 그러나 2003년 12월 새로이 줄기세포를 주입하여 테라토마 실험을 실시했으며 2004년 2월 김대용 교수 도움으로 테라토마 검사를 실시하였고 그 테라토마가 3배엽으로 분화된 사실을 확인했다.
-> 비록 테라토마 사진을 다른 줄기세포로 제출한 잘못은 있지만 결과적으로 테라토마 형성에는 성공했다. 또 이전에 실시했던 테라토마가 실패했다고 보고되었지만 정말로 실패했는지 여부와 테라토마 실험 횟수 등 의혹이 있는 부분이 많으므로 이 부분도 조사를 해 볼 필요가 있다.
5. 2005년 사이언스 논문 조작 관련 사실
(1) 오염된 줄기세포 포함 이유
1) 황우석 박사는 섀튼에게 NT4-7 번이 오염사고로 폐기된 사실과 관련해서 상의하자 섀튼은 분화나 오염으로 소실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므로 일단 수립된 것이 확실한 이상 논문 제출을 서두르자고 조언했다.
(2) 김선종의 섞어 심기 동기
1) 미즈메디 김선종은 복제 배반포부터 내부 세포 덩어리 분리 이후 배양의 전과정과 사진 촬영, DNA 검사 등 모든 검증 과정을 담당하였다.
2) 김선종은 황우석 박사의 기대감에 따른 압박 때문에 섞어 심기를 감했했다는 취지로 주장했지만 황우석 박사팀과 함께 일하기 전부터 논문 관련 자료와 실험 결과를 빈번하게 조작했으며 그 결과 미즈메디 연구팀이 줄기세포와 관련해 발표한 논문 12편 중 9편이 취소되었고 김선종이 제1저자로 포함된 논문도 수편 포함되어 있다.
3) 김선종은 미즈메디에서 배양 중이던 NT-1의 분화가 심해지자 Miz-1을 NT-1에 섞어 배양하였다고 밝혔다.
( 과연 분화가 심해져서 NT-1을 Miz1으로 바꿔심기 한 것인지 검찰이 철저히 재조사해야 한다. )
4) 김선종은 섞어 심기 결과가 탄로날 것을 두려워 해 2004년 2월과 9월 DNA 검사에서 NT-1의 시료가 아닌 이상아의 체세포를 제공해서 지속적으로 검사 결과를 조작했다고 밝혔다.
( 2004년 2월과 9월 검사 결과가 체세포를 제공해서 조작했다면 섞어 심기가 탄로날까 두려워서일까? 만일 그렇다면 정상적으로 섞어 심기를 하지 않고 배양 중이던 NT-1이 있었으니 그 줄기세포로 검사를 해도 되었을 것인데 굳이 체세포로 검사해야 했을까? )
5) 2005년 서울대 조사위 조사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서울대팀과 미즈메디 보관 중이던 NT-1의 DNA검사 결과에서 NT-1, Miz-1, Miz-5가 섞여 나왔다.
(Miz1과 Miz5가 모두 바꿔심기에 사용된 사실은 처음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
6) 김진미는 분화가 심한 NT-1을 적절히 계대 배양해서 분화를 막고 정상적으로 배양했으며 따라서 김선종은 배양 기술이 상당히 떨어지거나 애초부터 배반포를 배양할 생각이 없었다고 보여진다.
7) 김선종은 NT-1을 섞어 배양한 동기에 대해서 자신이 인계받아 배양하던 NT-1이 분화되어 소실되었다고 알려져 박종혁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싫어서라고 대답했다가 이후 황우석 박사의 기대감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라고 진술을 번복해서 황우석 박사에게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고 있다.
(3) 타가 핵이식 복제 줄기세포 수립 기술의 확립에 대한 확신
1) 황우석 박사는 2004년 11월 권대기 연구원으로부터 2번 줄기세포 DNA지문 검사 결과가 잘 나왔다는 보고를 받고 무척 기뻐했으며 2005년 1월 홍성 돼지 농장 실험을 마치고 귀경시 김선종으로 부터 3번 줄기세포 DNA 핑거 프린팅도 잘 나왔다는 들뜬 목소리의 보고를 받고 같이 기뻐했다.
2) 2005년 1월 9일 서울대 가건물 실험실 동시 오염사고로 안규리 교수, 윤현수, 김선종등이 살려보려고 노력했으나 NT2,3번은 복구되고 NT 4-7번은 결국 복구하지 못했다.
3) 2003년 8월부터 배반포 형성 기술및 실험 조건이 최적화되어 2005년 3월까지 104개의 배반포가 생성되었다.
4) 김선종은 2004년 12월 경 자신이 섞어 심기한 NT4-7 에 대하여 권대기에게 "황교수가 안전 문제로 NT-4-7번을 미즈메디로 보내어 보관시키려 할 거다. 계대 배양 후 남은 것이니 미즈메디로 가져가서 미리 키울게 황교수에게는 말하지 마라"라고 이야기 하고 줄기세포를 미즈메디로 옮겨 갔다.
( 이 부분에 대해서 현 변호인단은 마치 진짜 복제 줄기세포라고 믿게 하려고 연출한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줄기세포를 빼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보여지므로 이 부분도 검찰이 철저한 수사를 했어야 한다. )
(4) 박종혁, 김선종에 대한 귀국 종용 경위
1) 2005년 11월 MBC PD수첩팀이 줄기세포 검증에 협조하고 그 결과 논문과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지면 취재 중인 난자 윤리 문제에 대해 연구를 활성화시키는 긍정적 방향으로 다루겠다는 제의를 받고 황우석 박사는 줄기세포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이 제의에 응했다.
2) 황우석 박사는 2005년 11월 12일 권대기에게 MBC측에 줄기세포와 환자 모근 및 환자 체세포를 넘겨주라고 지시했으며 당시 김선종은 이 소식을 듣고 절대로 줄기세포는 넘겨주지 말고 체세포를 둘로 나누어 넘겨주라고 전화 했다.
3) 권대기가 김선종에게 "MBC 측에서도 전문가를 대동하기 때문에 금방 들통날텐데 무엇이 문제이기에 체세포만 둘로 나누어 보내야 하느냐, 떳떳하게 줄기세포를 보내면 되지 않느냐"고 했지만 김선종은 막무가내로 꼭 체세포를 둘로 나누어 보내라고 했다.
4) 권대기는 황우석 박사의 지시대로 줄기세포를 그대로 내어주었고 이와 같은 사실을 2005년 11월 12일 미국의 김선종에게 전화로 알려주었다. 이 소식을 김선종은 약을 먹고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으며 동공이 열린 채로 피츠버그 대학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5) 2005년 11월 13일 저녁 황우석 박사와 안규리, 성명훈, 이병천, 강선근 교수등이 식사중에 미국의 박종혁에게 "교수님 제가 나가서 MBC PD 한학수 이 새끼 배를 찔러 죽이고 말겠습니다."라고 울부짖는 전화를 받게 되었다. 안규리 교수는 박종혁과 통화 후 "자살시도"라고 단정하게 되었고 황우석 박사는 사람의 목숨이 중요하니 최고 의료진을 동원해 최선을 다해 달라고 부탁하고 내일 윤현수를 보내고 입원비와 치료비를 보내겠다고 했다.
6) 그 다음날 황우석 박사는 윤현수 편에 SK 후원금 중 2만 달러를 보내 치료비와 입원비로 사용토록 하였다. 윤현수는 면회가 금지되어 직접 만나지 못했고 김선종의 아버지에게 위로와 돈을 전하니 너무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7) 2005년 11월 17일 황우석 박사는 김형태 변호사 사무실에서 MBC 최승호 부장, 한학수 PD를 만났고 그들은 황우석 박사와 서울대 병원 성명훈 기조실장에게 1차 DNA 검증 결과를 보여주며 서울대 NT-2가 논문의 DNA와 불일치하며 나머지는 판독 불가라고 검사 결과를 알려주었고 황우석 박사는 신뢰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8) YTN에도 고려대 법의학 교실에 DNA검사를 의뢰한 결과 11월 18일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수록된 줄기세포 DNA와 다르다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9) 이에 황우석 박사팀은 급히 윤현수에게 결과분석을 요청했으며 윤현수는 분석 결과가 미즈메디 수정란 줄기세포 DNA와 일치한다고 알려주었다. 이에 황우석 박사와 이병천, 강성근, 이창규 교수등이 너무 황당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황에서 윤현수의 제안으로 배양 과정의 줄기세포를 국과수에 재검증해 보기로 하였다.
10) 2005년 11월 20일 윤현수로부터 국과수에서 다시 검사한 DNA결과도 미즈메디 병원의 수정란 줄기세포와 동일하다는 전화 통보를 받았다. 그 후 이병천, 강성근, 안규리, 황우석 박사 등 4명이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게 되었고 황우석 박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국민 앞에 사실대로 고백하고 자살을 하겠노라"고 울면서 말했다.
11) 이에 안규리 교수는 이것은 사고라고 규정하고 다함께 살아남고 국가도 살리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득하며 자신이 이 팀을 지휘하겠다고 말한 후 실무진과 이창규, 강성근 등을 불러 도표를 만들며 상황을 분석하고 각자에게 할 일을 부여하였다.
12) 여론이 악화되면서 상황이 악화되자 12월 1일 MBC-PD수첩팀들의 비윤리적 강압 취재 내용을 청취하여 이를 제대로 알리자는 의견이 모아졌고 안규리 교수는 윤현수와 함께 미국에 직접 가서 경위를 청취하고 녹음해 오겠다고 했다. 이에 SK후원금에서 3만 달러는 가지고 안규리 교수가 YTN과 박종혁, 김선종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였고 귀국 비용 일부를 전했다.
13) 당시 황우석 연구팀은 박종혁, 김선종의 배양 실력을 믿었으므로 이들을 귀국시켜 복제 줄기세포를 재현하면 모든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김선종과 박종혁은 귀국 의사가 전혀 없었으며 차츰 연락조차 기피하였다.
14) 노성일 이사장은 "황교수가 병실에 문병간 나에게 줄기세포는 없다"고 고백했다고 발표했지만 사실과 다랐다. 당시 황우석 박사는 노성일에게 " 일부 검사 결과 복제 줄기세포가 믿고 있던 줄기세포가 미즈메디 줄기세포로 확인되었다고 하나 아직 검사하지 않은 줄기세포가 남아 있으니 경거 망동하지 말고 좀더 정확하게 검사를 해보고 최종 결과를 노이사장과 내가 함께 발표합시다" 라고 말한게 전부였다.
15) 박종혁, 박을순의 미영주권 신청 보도가 있은 후 정부기관에서 이들의 영구체류로 기술 유출 위험성을 걱정했을 때에도 박종혁과 김선종은 배양 기술 노하우가 있으니 반드시 귀국시켜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할 정도로 이들의 줄기세포 배양 기술을 신뢰하고 있었다.
(5) 줄기세포 실용화 방안 구축
1) 황우석 박사는 복제 줄기세포 제반 특성을 규명하기 위해 뉴욕 스로암케터링 암연구소 로렌스
스튜더 박사에게 NT-1부터 4까지 줄기세포를 보내고 과학기술부 지원 최고과학자 연구비에서 매년 15만 달러씩 2년간 연구비를 지원해 분화특성 규명, 신경세포 및 췌장 베타세포로의 분화유도, 생쥐 실험등을 수행토록 했다.
-> 만일 NT 1-4 까지가 논문과 일치하는 줄기세포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것이며 또한 뉴욕 스로암케터링 암연구소에서 줄기세포를 연구하면서 논문과 불일치 여부를 사전에 몰랐다는 것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 미스테리이다.
2) 이 중 특히 NT2,4 번 줄기세포(척수 마비 환자)에 대해 특별히 부탁했으며 NT-2는 미국과 동물에서 안정성과 유효성 실험을 거쳐 2005년 10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원숭이 실험, 2006년 10월까지 행정 절차와 집도의료진 구성 완료, 2006년 10월 첫 임상 실험을 시도하겠다는 로드맵을 구성했다.
3) 이 계획의 방안으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로저 피더슨 박사에게 9개 줄기세포 펠렛을 보내 특성 규명을 의뢰하였고, 매년 10만 달러씩 2년간 지원키로 했다.
4) 국내에서는 고려대 김종훈 박사에게 분화유도를 위탁해 'oligodendrocyte' 및 베타 세포(당뇨병)로의 분화 실험을 하고 있었고 동시에 서울대 치대 조재진 이진 교수와 포항공대 서판길 교수로부터 분화 관련 연구 요청받아 일부 줄기세포를 분양해 초기 실험을 진행 중이었다.
5) 쥐를 이용한 척수마비 실험은 2005년 3월부터 2005년 9월까지 강남성모병원 신경외과 전신수 교수팀과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백선하 교수팀 및 한양대병원 정형외과 박예수 교수팀이 담당해 진행했으며 추후 원숭이 실험에 대한 구체적 시기와 방안까지 협의 중이었다.
6) 안규리 교수의 제안으로 타가 핵이식 복제 줄기세포의 임상 적용에 대비한 의학적 지식구축과 적영 영역을 설정하기 위해 서울대 성형외과 교수인 김석화를 회장으로 한 미래의료기술연구회를 발족시켰다.
7) 2005년 3월 21일경 미국 워싱턴 DC에서 미국 식약품안전청(USFDA) 줄기세포 책임자와 미국 국립 보건원(NIH) 관계자 등이 모여 줄기세포 임상 실험 허가 절차등에 대한 연석 회의를 한 사실이 있다.
8) 한국 식품 의약품 안정청 담당국장 및 과장, 담당 연구관등과 함께 임상적용을 위한 실험 윤곽과 구상을 설명하고 행정절차 등을 협의했다.
9) 황우석 박사는 서울대 팀에 배정된 서울대 교수 T.O로 김선종, 박종혁을 거론할 정도로 박종혁과 김선종의 배양 기술을 신뢰하고 있었다.
-> 김선종의 바꿔치기만 없었다면 현재 척수 마비 분야는 원숭이 실험을 마치고 임상 실험에 들어갔을 것으로 전망되며 상당한 기술적 진보와 의료 발전을 기대할 수 있었다. 또 황우석 박사가 각종 연구를 국내외 연구팀과 진행한 것은 바꿔치기를 인지하였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또 국내외로 분양된 줄기세포가 바뀐 사실을 아무도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실 또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6) 언론 인터뷰와 강연 내용 관련
1) 황우석 박사는 특정 세포로의 분화 기술 등 넘어야 할 난관도 많음을 지적했고 상용화에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분명히 지적했으나 언론들은 황우석 박사의 업적을 치켜세우느라 과장해서 보도한 적이 많았다.
2) 생명 공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미래 학문적 청사진 제시를 사기죄의 전제가 되는 기망행위로 연결시키려는 검찰의 의도는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
6. 농협및 SK 후원금 편취에 관해서
(1) SK 후원금에 대해서
1) 검찰에서 SK 박상훈 전무에게 먼저 연락했다고 한 진술은 사실이 아니다.
2) 2005년 7월 17일 오후 10시 SK측의 연락을 받고 라마다 르네상스 호텔에 가보니 SK 최고위경영자가 나와 있었으며 2000년 SK측이 연구지원을 하다가 중단된 사실에 대해서 정황을 잘 몰랐다며 지원이 중단된 점에 유감을 표했다.
3) SK 고위 경영자는 줄기세포의 연구 시작 경위와 향후 비젼들에 대해 궁금해 했으며 이에 황우석 박사는 원천 기술이 국가적 기술이 되어야 하며 사적 소유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설명했다.
4) 이에 SK 고위 경영자는 훌륭한 생각이라 치하하면서 자신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연구에 힘을 보태고 싶다며 흔쾌히 후원을 약속했다.
5) 그 다음날인 2005년 7월 18일 SK연구원의 조본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상부의 지시로 박 기술원장과 함께 피고인을 찾아뵙고 싶다고 했고 2005년 7월 26일 박 전무와 조 본부장이 연구실로 찾아와 만나게 되었다.
6) 지원에 대한 협의 후 합의서에는 ' 재단은 연구 활동의 지장을 초래하지 않도록 본 연구비 지원과 관련하여 복잡한 행정 절차와 서류 등의 제출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포함하게 되었다.
7) 검찰에서 황우석 박사가 먼저 전화했다고 한 것은 숭고한 뜻에서 황우석 박사를 후원한 SK 고위 경영자가 검찰 수사에서 거론되는 것이 그에게 누를 끼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8) 황우석 박사는 약속대로 지원받은 10억원을 소요 사안이 생길 때마다 신속하고 용이하게 집행하기 위해 이병천 교수를 통해 한국 과학 재단으로부터 이관받아 관리하도록 했다.
9) 다른 후원금과 달리 별도의 계좌에 보관해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후원회 감사가 그 경위를 물었고 이에 SK와의 합의 사항을 밝히자 합의서의 내용을 검토한 후 10억원을 일시에 집행해 주었다.
10) 이에 SK지원 사실과 금액을 연구팀 전체 회의에서 알리고 향후 적절히 사용할 것이라고 공지했다.
11) (증가 제 7호중 SK후원금 사용내역을 제시) SK후원금 중 약 1억 9천만원을 연구 관련 비용을 집행하였으며 그 내역서는 기재와 같다.
12) (증가 제 8호중 SK 후원금 통장 사본 제시) 사용 내역서와 같이 모두 연구 관련 경비로 사용되었으며 결코 개인적 용도로 집행된 사실이 없고 현재도 통장 사본과 같이 8억원이상이 원래 예금 구좌에 그대로 남아 있다.
-> 우리 나라 검찰은 통장에 그대로 남아 있는 8억원까지 포함시켜 SK에 10억원을 편취했다는 주장을 폈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기소 내용이다.
13) 2005년 12월 김선종과 박종혁 등의 치료비와 여비 제공은 이들이 향후 줄기세포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고 다시 연구팀에 참여? 수 있기 때문에 연구와 관련된 사항이라고 생각해서 후원금에서 집행한 것이다.
-> 결론적으로 SK후원금은 SK측에서 먼저 제공 의사를 밝혀 사기죄가 성립될 수 없고 행정절차나 서류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합의 정신에 의거해 연구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연구비의 범주에서 사용되었으며 10억원 중에 1억 9천만원 만이 집행되었다. 그러나 검찰은 SK 10억원을 횡령죄로 기소했는 데 이는 통장에 그대로 있는 8억원까지 포함된 것으로 사용된 금액도 편취 의사가 전혀 없이 연구비로 사용되었으므로 사기나 횡령죄 모두 성립되지 않는 잘못된 기소 내용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2) 농협 후원금에 관하여
1) 황우석 박사는 2005년 8월 이전에 농협 유통 사장을 알았거나 만난 사실도 없으며 후원을 부탁하거나 상의한 사실도 없다.
2) 2005년 8월 17일 농협 유통 사장이 전화를 걸어와 자신이 서울 농대를 나온 선배인데 모교 방문시에 차 한 잔 나누고 싶다고 해 2005년 8월 23일 연구실에서 만났다.
3) 방문시 연구팀의 열악한 연구 환경을 둘러보고 농협에서 황우석 박사를 돕도록 제안하겠다고 해서 황우석 박사는 농협이 무슨 돈이 있어 저를 돕겠냐고 사양했으나 지원 자체는 사전에 협의가 끝난 상태라면서 "축산 발전 기금으로 후원하기로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 농협에서 이미 지원을 결정해 놓은 상태에서 황우석 박사를 만나자고 연락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축산 발전 기금은 광우성 저항소와 무균 돼지 연구가 있어 성격에 부합되어 받게 되었으며 개인 후원은 받을 수 없으니 한국과학재단을 통한 정식 후원금으로 지원해 달라고 말했고 2005년 9월 1일 농협 중앙회 강당에서 열린 축산 발전 기금 후원금 전달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 편취 의사가 있었다면 번거로운 정식 후원금이 아닌 개인 후원금 형식으로 받았을 것이다.
5) 실제로 후원회에 기부하는 과정에서 실무 책임자로 모든 과정을 담당한 농협 중앙회 경제 기획팀 공형식 차장은 검찰 수사과정에서 후원금의 성격에 관하여 "축산 발전을 위한 연구에 사용해서 축산업계의 가장 큰 관심거리인 광우병과 조류 인플렌자 질병을 막아주고 축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해 달라는 취지로 기부금을 전달했다." (검찰 제출 증거 목록 p11458)
-> 농협 담당자의 증언만 보아도 검찰의 농협 후원금에 대한 사기 횡령 혐의는 명백히 날조된 사실임을 알 수 있다.
6) 이 후원금은 접수된 이후 단 한푼도 집행하지 않은 상태로 현재에도 한국과학 재단 후원회 계좌에 그대로 예치되어 있다.
-> 상식적으로 한 푼도 집행되지 않은 농협 후원금에 대한 사기 횡령 혐의 기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 농협 담당자가 이미 후원금 지원을 결정한 상태에서 황우석 박사와 약속해서 만났고, 후원 내용도 줄기세포와 관계없이 광우병과 조류 인플렌자 질병을 막아주고 축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해 달라는 취지로 기부금을 전달했다고 명백히 밝혔고, 후원금도 한푼도 집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기 횡령죄 적용으로 기소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며 개인이라면 검찰이 오히려 무고죄에 해당한다고 할 만 하다.
(3) 편취 의사와 관련해서
1) 그동안 공동 연구 형식만 수용해 준다면 포스코와 CJ의 경우 향후 필요한 모든 관련 경비를 후원해주기로 했고 삼성으로부터는 수백억원을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받은 사실도 있다.
-> 사기 횡령죄의 편취 의사가 있었다면 이러한 제안을 거부했을리가 없다.
2) 황우석 박사는 복제 줄기세포 수립에 대한 원천 기술이 한 개인이나 기업에 귀속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국가적 기술이라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3) 줄기세포 연구가 조금 앞섰다고 해도 과학적 인프라와 자본력에 모두 뒤지는 우리로서 조만간 원천 기술을 강대국에게 빼앗길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걱정했으며 이에 한국을 중심으로 세계 복제 줄기세포 허브를 구성함으로써 줄기세포 연구와 경험이 한국에 집결되도록 하고 그것을 통해서만 줄기세포에 관한 지식이 제공되도록 하는 것이 선결 과제라고 생각했다.
4) 그러나 이러한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비용이 국가나 기업으로부터 지원되는 경직성 연구비로 충당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5) 이에 황우석 박사는 부득이 연구자로서뿐만 아니라 줄기세포 시스템 구축의 행정가 역할도 담당하게 되었고 이를 이해 못하는 이들에게 "과학자냐 인기인이냐?" 라는 조소와 질시 섞인 비아냥 거림도 당했다.
6) 그러나 황우석 박사는 매일 새벽 6시에 세포 관찰을 시작으로 랩미팅을 통해 연구 활동을 점검한 후에 밤늦도록 시간을 쪼개어 위 시스템 구축을 위한 활동을 하느라 사생활도 없이 전력을 다했다.
7) 황우석 박사는 연구를 위해 경기도 화성시 양갈면에 상당한 규모의 농장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 주위가 공장 지대로 개발됨으로써 지가가 폭등했다. 그러나 주위 환경의 변화로 생명 공학 연구를 위한 농장으로서 적격성을 상실했고 이에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구 과정에서 취득한 재산적 이익은 다시 과학 연구 등 공익적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서 이분해서 신산업전략 연구원과 21세기 방송 연구소에 각각 기부하게 되었다.
8) (증가 제 9호 1내지 2각 등기부 등본 제시)
등기부에 기재된 화성시 143번지 임야 38,064m2 및 810번지 임야 38,064m2 는 2002년 12월 6일에 무상으로 기부한 것이다. 이 토지는 현재 평당 50만원을 호가하고 있어 그 재산적 가치만도 대략 100억원 이상이라 평가된다.
9) 또한 각종 단체에서 수상한 상금을 자신을 위해 사용한 바가 없이 이를 모아서 3억 9천 500만원을 모아서 과학 시술부 산하 기초 기술 연구회에 기부한 사실이 있다.
-> 얼마전에 인촌 기념회가 황우석 박사에게 인촌상을 수상하면서 준 상금 4725만원을 취소하고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상금을 모아서 기부했던 과학 기술부 산하 기초 기술 연구회에 4725만원을 돌려달라고 요청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언론들은 '황우석씨 기부금 4725만원을 돌려달라" 라는 이름의 기사를 일제히 보도했다. 3억 9천 만원 기부사실도 감추고 그 중 극히 일부인 4725만원을 그것도 상금을 수여한 곳에서 취소해서 돌려달라고 했는데 이를 악의적으로 보도한 언론들은 올바른 언론들인가?
7. 신산연 후원금과 기타 횡령 혐의 관련 부분
(1) 신산연 후원금 관련 사실
1)서울대 부총장 송병락 교수를 통해 SK그룹 경영진을 알게 되었고 2000년 초 초청을 받아 SK 사옥에서 손회장과 주요 간부들을 대상으로 생명 공학에 관한 강연과 간담회를 한 사실이 있다.
2) 이 때 손 회장이 SK그룹에서 황우석 박사의 연구를 지원하겠다는 제의를 했고 그 이후 SK 그룹 간부들과 식사 자리에서도 연구 지원에 대한 말이 있었으며 이후 논의를 거쳐 최종 결정을 하게 되었다.
3) 2000년 6월 서울대 부총장 임기를 마친 송교수가 이후 연구 생활을 위해 생명 공학 기술을 비롯한 새로운 산업의 미래 연구를 하려고 한다며 황우석 박사에게 연구소 설립에 동참하고 이사를 맡아 달라고 해서 수락했다.
4) 이에 따라 신산업전략연구원이 설립되었고 송병락 이사장이 취임했다. 송 이사장은 황우석 연구팀을 위한 기업 후원금 유치에 협력하겠다면서 당시 SK그룹 후원금 관리를 신산연에서 하면 어떻겠냐고 제의해 동의했다.
5) 황우석 박사는 (1)맘모스 복제, 백두산 호랑이 복제 및 개 복제 같이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하고 고도의 보안을 요하는 연구나 (2) 돼지 복제 같이 초기에 정부 지원비가 없었던 연구과제 (3) 연구 경비 내역을 외부에 공개하기 적합하지 않은 부분에 사용하기 위해 비교적 형식과 절차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후원금을 집행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해 송병락의 제의를 수락했다.
6) 그러나 SK 에버텍 김사장과 실무진의 협의 과정에서 기업에서 후원금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형식적이라도 계약서가 있어야 한다며 공동 연구 계약을 체결하기를 요청해와 황우석 박사는 이를 거절했다. 당시 황우석 박사는 연구 결과는 국가 소유가 되어야 하고 개인 기업에 줄 수 없다는 생각에 거절한 것이다.
7) 그러나 송이사장이 계약서 작성은 형식에 불과하니 지원을 받자고 하여 계약서에 서명 날인했고 이어 SK측으로부터 후원금을 받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SK에버텍 측에서 연구 진행 상황을 알려달라고 하거나 연구팀 회의에서 SK직원을 참석하게 해달라는 등의 요구를 해와서 SK측의 요구를 거절했고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8) 2000년 여름 경 이학수 실장, 송병락 이사장 등과 삼성 본관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으며 이후 이실장의 요청으로 삼성 본관에서 사장단 회의에 참석해 동물 생명 공학 기술에 대해 강의하고 질의 응답을 했다.
9) 이때 삼성 전자 윤 부회장을 알게 되었고 윤 부회장은 2001년 황우석 박사팀이 이끄는 이종장기 연구 현장에서 무균 미니 복제 돼지를 보았고, 돼지 심장 이식과 폐 이식 실험 전과정을 보았으며 자신의 사비 1억원을 연구 후원금으로 전달했다.
10) 황우석 박사는 윤 부회장이 기부한 1억원을 서울의대 학장인 왕규창 교수와 안규리 교수에게 전달해 후에 이종장기 이식 실험에 필요한 바분 원숭이 구입비용에 사용하도록 했다.
11) 이후 삼성 그룹 측에서는 후원금이 아닌 공동 연구 계약을 체결할 경우 약 400억원을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송이사장이 받아들이자고 권유했으나 연구 결과는 국가 소유라는 평소 소신에 따라서 끝까지 거절했고 결국 연구비 지원이 아닌 후원금 지원으로 결정이나서 신산연에서는 기부금 영수증을 삼성에 발행했다.
12) 이와 같이 SK와 삼성측이 신산연을 통해 지원한 연구후원금은 대학과의 정식 계약을 거쳐 이루어진 공동 연구비가 아니므로 포괄적으로 관련 연구를 수행하거나 촉진시키는 용도로 사용해도 된다고 인식했다.
13) 송이사장은 황우석 박사의 주거가 전세 아파트인 점을 알고 생활 환경이 안정되어야 연구에 전념할 수 있다며 SK나 삼성측 지원금은 포괄적 후원금이므로 아파트를 하나 사라고까지 권유했으나 황우석 박사는 거절했다.
-> 세계적인 업적을 이룩하고 각국이 침을 흘리는 체세포 복제 원천 기술을 개발한 세계적인 학자인 황우석 박사는 전세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국가적으로 볼 때 외국의 연구 지원을 생각해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엄청난 연구 지원금을 거부하고 청렴하게 살려는 학자를 지원은 못해줄 망정 사기 횡령 혐의로 기소하는 국가가 제대로 된 국가인가?
14) 황우석 박사는 연구 내용을 수시로 송이사장과 협의했으며 이에 따라 보안이 요구되는 맘모스, 개, 돼지, 호랑이 등 복제 연구와 인간 복제 줄기세포 연구에 사용되는 연구비 및 관련 경비를 이 재원에서 상당 부분 충당했다.
15) 또 정부 연구비로 부족한 연구팀의 인건비와 정부 연구비로 지급이 불가능한 석박사 과정의 입학금, 등록금, 국내, 국외 여비, 실험실 실험 차량 구입, 연구원 숙소 임차 및 운영, 이병천 강성근 교수의 전세 보증금 및 해외 연수비 지원, 이병천, 강성근 교수의 연구 촉진비 지원 등을 신산연의 재원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 정부는 2005년에야 법을 정비해서 2006년부터 이러한 간접 연구비를 연구비에 포함시켰으며 그 이전까지 모든 연구자들은 연구비 유용이라는 범죄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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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대학 연구실 운영경비 내년부터 연구비에 포함
[전자신문 2005-11-29 08:53] 내년부터 대학들이 연구 도중 발생하는 각종 연구실 운영 경비를 연구비 항목에 포함할 수 있는 규정이 마련된다. 또 연구시설 확충, 연구지원 서비스 등 대학이 연구를 위해 지출한 간접경비 역시 현재 연구비의 15% 이내에서 앞으로는 실제 소요원가 수준에 맞게 현실화된다. 과학기술부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대학 연구비 관리제도 선진화 방안’을 내년부터 본격 추진키로 하고 연말까지 관련 부처의 소관 규정 개정 작업을 모두 마무리하겠다고 28일 밝혔다. ‘대학 연구비 관리제도 선진화 방안’은 △연구실 공통운영경비와 간접경비를 인정하고 △부처별로 상이했던 학생의 인건비 단가를 등록금 납부가 가능한 수준으로 상향 조정한 것이 특징이다. 이밖에 △연구자 행정부담 완화 △연구자 사기진작을 위한 보상 강화 등 대학 연구현장의 오랜 애로 사항을 해결했다.
지금까지는 연구실 운영경비에 관한 명문화된 규정이 없어 연구실 경비를 연구비에서 전용하는 등 연구자들을 사실상 ‘범법자’로 만들어 왔다. 그러나 연말까지 개정 작업이 완료되면 연구실 운영 경비는 수용비 및 수수료 항목에 포함돼 ‘합법적인’ 연구비로 인정받게 된다.
과기부는 또 대학의 연구력 향상을 위한 대학 차원의 연구지원 서비스, 연구시설 확충 등의 연구 인프라 구축이 쉽도록 교육인적자원부와 함께 대학의 간접경비 비율을 실제 소요원가를 토대로 현실화하는 규정을 마련키로 했다. 이에 따라 인건비와 직접비를 합친 전체 연구비의 15% 이내로 제한됐던 대학 간접경비가 실제 지출된 만큼 반영된다.
이 밖에도 과기부는 연구비 공동관리규정 개정을 통해 연구실에 근무하는 학생들의 인건비도 박사 과정 월 200만 원, 석사과정 월 150만 원, 학사과정 월 80만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과기부는 개선된 연구비관리제도를 일선 대학에서 적극 도입하도록 앞으로 매주 수요일 전국 210개 대학 산학협력단장 및 연구처장에게 e메일로 연구비관리제도 관련 정책을 홍보할 예정이다.유성수 과학기술혁신본부 연구개발조정총괄담당관은 “정부 연구비관리제도 개선방안이 대학 내 합리적인 연구비관리 정착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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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외에 도축장에서 소, 돼지, 개 등의 난소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비공식적 비용이 상당히 소요되는데 이를 신산연 연구 후원금으로 충당했다.
17) 송이사장은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으며 이런 경비를 명목대로 신청할 수 없어 소 구입비라는 재료비로 청구해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멸종된 매머드 복제 등은 허황된 시도가 아니다. 2006년 8월에 세계 일보에서 "미국, 일본, 영국 연구진 멸종 매머드 복제에 나선다" 고 보도된 바가 있듯이 일본, 영국 미국 연구진이 15년 동안 냉동시킨 생쥐 정자와 정소를 이용해서 정상적인 생쥐들을 탄생시킨 바 있다. 이를 성공시킨 일본의 오구라 박사는 멸종된 포유동물의 정자를 채취할 수 있다면 매머드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며 동결된 매머드에서 채취한 정자를 코끼리 난자에 수정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찬가지 원리로 체세포 역시 동결로 핵이 파괴되지 않은 상태로 있을 수 있다면 복제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러시아에서 이러한 매머드 조직을 얻어야 하고 비밀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면 이러한 무역을 대부분의 건실한 합법적인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마피아와 거래를 할 수 밖에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또 이러한 거래에 연구팀이 직접 움직였을리도 만무하다. 이에 대해 무분별한 기사를 쓰는 이들은 이러한 연구 시도 사실과 러시아에서 마피아가 경제 활동에 미치는 영향에 전혀 무지한 이들일 것이다.
(2) 연구비 및 후원금 총괄
1) 피고인의 고연구원이 연구비를 11년간 관리해 왔으며 2000년 9월에서 2005년 12월까지 5년 3개월간 연구팀에서 관리한 연구비와 기업 후원금 총액은 71억897만 7964원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또 위 기간 중 황우석 박사 연구팀에서 집행한 총액은 75억 4613만 5631원으로 수입 총액에 비해서 지출액이 4억 3715만 7667원으로 초과되었다고 기재되어 있다.
이는 황우석 박사의 수입과 개인적 후원금을 모두 연구실 운영 통장에 입금해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 즉 황우석 박사는 연구비를 횡령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 수입 4억 4천만원 정도를 연구비로 기부한 것이다.
2) 황우석 박사는 연구원들의 월정액의 인건비를 비롯, 등록금, 여비, 인센티브를 지급했으며 연구원들로부터 확인서를 받아 검찰에 제출했으나 검찰은 이를 법원에 제출하지 않아서 시본으로 법원에 제출해야 했다.
(검찰은 황우석 박사에게 유리한 증거는 법원에 제출조차 하지 않았다 )
3) 황우석 박사는 연구원 남녀 숙소 운영과 실험실 운영에 필수적인 차량 3대 구입과 운영, 후배 교수들의 연구 촉진비등 연구와 관련된 비용을 후원금으로 충당했다.
4) 황우석 박사는 서울대 교수직을 사퇴한 후에도 연구기금으로 관리하던 모든 비용을 동원해 2006년 8월까지 인건비와 등록금 및 필수 운영 경비를 선지급해 주었고 7241만원을 구연구원에게 맡겨 향후 운영비로 사용케해 마지막까지 연구팀을 배려했다.
5) 이러한 개인적 수입과 모든 비용을 들여가며 실험에만 전념케해 세계적인 원천 기술 보유 연구팀으로 육성했는데 사기와 횡령등 파렴치범으로 기소한 것은 너무나 마음 아픈 일이다.
(3) 정부 연구비 횡령 기소 부분
1) 황우석 박사는 연구비 청구나 집행은 큰 틀만 정해 지시하고 나머지는 각자 맡은 대로 처리했다.
2) 고연구원의 검찰 조서(14292쪽)나 이병천 교수의 진술 조서(19407쪽)에 기재된 바와 같이 연구비 청구 절차를 직접 챙긴 적이 없어서 행정적으로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조차 황우석 박사는 알지 못했다.
3) 기자재 구입이나 소모품, 시약 구매는 이병천, 강성근 교수와 조교에게 맡겨 황우석 박사는 거래처나 직원을 만나는 경우도 없었다.
4) 2004년 6월 황우석 박사는 과기부에서 지원한 돼지 복제 연구비 중 실험 돼지 구입분의 일부를 기술 정보 활동비와 인건비, 여비로 집행하도록 해 총 1억9266만원을 김씨 명의 통장으로 지급받았다.
5) 이중 5천 만원은 2004년 11월13일, 12월 31일, 2005년 1월 7일, 3월 3일, 3월 8일 경 각각 천만원씩 5차례에 걸쳐 돼지 구입비로 김씨에게 지급했다. ( 김연욱 확인 조서와 고연구원 확인서, 검찰 조서에 나옴)
6) 2004년 7월 황우석 박사의 고교 선배인 남회장등이 황우석 박사를 돕겠다며 남회장 명의의 하나은행 통장을 개설해 총 1억 5천 만원을 입금해 황우석 박사에게 주었다.
7) 당시 하나 은행 서울대 입구 지점은 다른 은행보다 환율을 싸게 교환해주겠다고 제의가 있어서 고연구원이 하나은행 서울대 입구 지점을 이용했다.
8) 국제적 네트워크 구성을 위해 2004년과 2005년 해외 학자들 초청 사례가 급증했으며 황우석 연구팀의 해외 출장 건수가 늘어나 달러 교환 수요가 많아 하나 은행에 계좌를 개설해 달러 교환시 이용하라고 지시했다.
9) 그러나 고 연구원은 이미 하나은행 구좌가 있으니 그 계좌를 이용하겠다고 해서 알아서 하라고 했다. 이에 고 연구원은 돼지 구입비 5000만원을 제외한 1억 1941천만 6400원을 남회장 계좌에 입금 후 달러로 교환해 외국 학자들의 초청 경비와 황우석 박사팀 해외 출장 여비로 사용했다.
10) 고연구원 확인서와 검찰 조서에서 그외 579만 400원은 황우석 연구팀 운영 통장에 입금시켜 인건비로 집행했고 1014만원은 관악구 후원회 통장에 입금시켜 연구원들의 난소 채취나 복제 돼지 착상 수술을 위한 농장 방문 등의 여비로 집행했으며 998만원은 현금으로 인출해서 국내 여비로 집행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11) 따라서 검찰이 정부 연구비 편취 혐의로 기소한 1억 9268만원 중 5천 만원은 돼지 구입비로, 1억 1941만 6400원은 기술 정보활동비로 579만 400원은 인건비로 2012만원은 연구비 여비로 집행했는데 이를 사기라고 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 정부에서 이러한 간접 연구비를 법적으로 연구비에 포함시킨 것은 2006년 부터라는 것은 이미 지난 기사에서 설명한 바 있다. 이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용도로 집행할 수 밖에 없었다.
(4) 신산연 횡령 혐의 부분
1) 신산연 실험축 구입비 중 4억7550만원은 임씨 명의 계좌에 입금시켰다가 연구비 및 연구관련 경비로 집행했고 같은 신산연 실험출 구입비 중 1억 554만 8000원은 남씨 계좌에 넣어 숙소 임대 보증금과 기술 정보 활동비로 집행했으며 구씨 계좌로 출금된 신산연 실험축 구입비 115만원을 신산연 이사장 송교수의 딸 결혼식 식대로 지불했다.
2) 임씨 계좌로 입금시킨 4억 7750만원 중 총 3억 5천 만원은 맘모스, 백두산 호랑이, 개와 늑대 복제 등 보안이 요구되는 연구비와 공표할 수 없는 용처에 사용한 것이다.
3) 그외에 3200만원은 연구팀 운영 통장에 입금시켜 고연구원이 연구팀의 인건비와 출장 여비로 집행했다.
4) 또한 2001년 3월 29일 3천만원은 이 병천 교수의 뉴올리언즈 대학 1년 파견 연구기간중의 연구비로 이교수 계좌에 입금시켰다.
5) 또 3250만원은 강성근 교수 아파트 임대 보증금으로 지원키 위해 2004년 3월 강성근 교수 농협 통장에 입금해 주었고 강성근 교수도 인정하고 있다.
6) 그외 2백만원은 고연구원에게 지급해 연구팀 국내 여비로 지출했다.
7) 비록 거래 계좌가 바뀌기는 했으나 검찰에서 기소한 4억 7550만원 중 3억 5천 만원은 보안이 요구되는 연구 및 관련 경비로 그외 6300만원은 연구비로 6250만원은 이병천, 강성근 교수 장기 해외 출장비나 숙소 임대 보증금 지원 등 연구 관련 경비로 모두 집행했다.
8) 비록 송이사장의 장녀 결혼식에 축의금을 받지 않기로 했지만 그동안 도움을 주신 것을 생각해서 식대로 집행했고 당시 개인적인 돈을 모두 연구비 통장에 넣어 사용했으므로 개인적인 용도 사용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5) 이병천 교수와 공모 여부
1) 황우석 박사는 2000년 10월 경 이병천 교수를 시켜 신산연의 SK 연구 지원금 중 5000만원을 재료비로 청구해 연구팀 운영 경비로 사용한 사실이 있다.
2) 당시 돼지 복제 연구 사업은 별도로 지원 받는 정부 연구비가 없었으나 연구 소요 비용이 적지 않게 지출되었다.
3) 당시 연구비로 기자재 구입이나 시약 및 소모품을 구입하기 위해 황우석 박사가 직접 거래처를 선정하거나 관련 업체 직원들을 만난 사실이 전혀 없다.
4) 2000년 10월 당시 연구팀의 통상 운영 경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SK 지원금이 입금되었다고 통보 받자 이교수에게 이 연구 후원금으로 연구팀 운영 경비를 마련해 보라고 했다.
5) 이병천 교수도 검찰 조사(P19408) 에서 황우석 박사가 당시 후원금이므로 어떻게 처리하라고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 않았는데 자신이 정부연구비 처리와 유사하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하고 있다.
6) 이와 같이 마련한 5000만원은 연구비 인건비 등 통상적 연구팀 운영 경비로 지출되었다.
7) 이병천 교수가 이 운영비를 청구하는 과정에서 허위 세금 계산서나 거래 명세서를 이용한 사실은 검찰 수사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8. 불법 난자 이용 혐의 관련 사실
1) 황우석 박사는 장상식 원장에게 과배란주사비를 지급한 사실이 없으며 다만 연구 협조에 감사한 마음으로 호르몬제를 구입하여 보내준 사실이 있다.
2) 황우석 박사는 장원장으로부터 난자를 제공받던 초기에 장원장이 난자 제공자에게 인공수정 시술비나 과배란 주사비를 감면해준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3) 이에 장원장이 난자를 제공하는 불임여성에게 인공수정 시술비 및 과배라 주사비를 감면해주고 있으며 이로인해 금전적 부담까지 진다는 사실에 감사해서 호르몬제를 구입하여 보내주게 된 것이다.
9. 공동 저자 등재 경위
1) 2004년과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저자로 등재된 일부 인사가 자신들이 어떻게 저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2) 2004년 사이언스 논문 발표 후 문신용 교수팀 오선경은 황우석 박사를 찾아와 자신이 저자에서 빠진 것을 지적하며 난자 윤리 위반을 들먹이면서 기자에게 폭로하겠다고 위협했다.
3) 황우석 박사는 오선경 박사를 저자에 포함시키자고 문신용에게 제의했으나 문신용이 오선경이나 김희선이 실험에 기여한 바가 별로 없고 그전에도 그들에게 돈으로 처리해 왔으니 자신이 경제적 인센티브를 얼마씩 줘서 해결할테니 저자에서 제외시키자고 주장했다.
4) 그럼에도 오선경 위협이 있자 문신용은 자기도 어쩔 수 없으니 '황교수가 잘 달래봐 달라'고 하면서 황박사에게 처리를 떠넘겼다.
5) 문신용 연구팀의 오선경과 김희선 등은 자신들이 2005년 사이언스 논문 저자가 되었는지 의아스럽다고 말했지만, 노성일이 자신은 교신저자를 맡고 미즈메디 연구팀의 5인과 문신용 및 그 연구원들을 저자로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
6) 이에 섀튼에게 교신저자를 맡아달라고 통보했다고 하자 서운해 하면서 미즈메디 연구팀에서 노성일과 김선종, 이정복, 김진미 연구원 등을 공동 저자로 넣어 달라고 했다. 또 노성일은 문신용 교수가 교신저자를 맡지 못한 사실에 언짢게 생각한다며 문신용 교수팀 중 공동 저자 이름을 이메일로 보낼 것이라 전했다.
7) 그날 문신용 교수는 오선경, 김희선 영문 이름 표기와 소속 기관 영문명 및 타가 핵이식 복제 줄기세포 연구를 자신이 과학기술부로부터 수주받은 국가연구비에 의해 수행되었다고 사이언스 논문에 표기해 달라며 해당 연구 과제명과 고유 번호를 보내왔다.
8) 이에 황우석 박사가 노성일 이사장에게 거부 의사를 밝히고 설득을 부탁하자 자신이 설득해 보겠다고 했으며 이후 최소한 문신용 자신과 오선경, 김희선은 저자로 꼭 넣어 달라고 한다고 전했다.
9) 이 후 문신용 교수는 "2005년 유럽생식의학회 특별 초청 강연"에서 자신이 직접 수행한 업적으로 소개했고 2004년 논문을 교육인적 자원부 BK21 사업 일환인 인간 생명과학연구단 우수 연구자로 선정되어 2000만원의 인센티브를 받았으며 2004년 논문을 세포응용사업단의 업적으로 제출해 우수사업단으로 선정되어 매년 2억 5천 만원의 예산을 추가로 받은 사실이 있다. 글쓴이: 서미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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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구름산의 易 安 齋 원문보기 글쓴이: 구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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