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부 운문부문 장원
노래
진천여자중학교 3학년 조현경
길을 거닐다보니
노래가 흘러나와요
그 노래는 당신과 닮았어요
아무런 이유 없이
나를 보듬어주니까요
어떠한 이유 없이
나의 편에 서있으니까요
자잘한 변명 없이도
나의 모든 걸 용서해주니까요
노래가 끝나니
미안한 마음이 올라와
오늘 하루 당신과 흥얼거렸어요
중등부 운문부문 차상
노래
진천여자중학교 3학년 최양다음
왜 더 이상 노래는 들리지 않는가
창백한 하늘 아래
울려 퍼지는 총성
혀로 칼을 가는
사람들의 웃음
모두 누가 데려왔는가
우리가 불러야 할
무지갯빛 합창
눈동자로 전하던
달콤한 휘파람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가
쓰러져가는 사람들과
대답 없는 세상 틈 사이
왜 아무도 노래를 부르지 않는가
중등부 산문부문 장원
어르신
진천여자중학교 3학년 김수지
우리 가족은 봉사 가는 것을 좋아해 시간이 날 때마다 봉사를 간다. 자주 가는 곳은 요양원인데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과 같이 있으면 기분이 나빴던 것도 사라질 만큼 너무 좋다. 어르신들은 우리가 봉사 갈 때마다 환하게 웃어주시며 반겨주신다. 많이 편찮으셔서 가만히 계시는 어르신들, 기억이 안 좋아지셔서 내가 어르신들의 손녀인줄 아는 어르신들 등 증세가 참 다양하다. 그런데 다른 날과 똑같이 요양원에 봉사하러 갔는데 너무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발걸음이 떼어지질 않았다. 왜냐하면 요양원에 우리 왕할머니라 부르던 증조할머니가 방에 누워계셨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 본 건 아닐까 이름을 확인해보니 우리 증조할머니가 맞았다. 부모님도 귀신에 홀린 듯 아무 말도 못하셨다.
증조할머니는 내가 어릴 때부터 치매가 있으셨는데 요양원에서 ‘순자’라고 날 부르셨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워 외할머니께 여쭤보니 내가 증조할머니 친구인 순자할머니와 닮아서 그렇다고 하셨다. 나는 그래서인지 재밌어서 증조할머니를 잘 따랐다. 그런 내가 요양원에서 할머니를 보게 되니 충격이 가시질 않았다. 증조할머니께 인사를 하니 나를 귀신 보듯 쳐다보셨다. 예전 나를 보는 눈빛은 온데 간데 없고 경멸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셨다.
나는 진짜 우리가족을 요양원에서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예전까지는 치매가 그렇게 심각한 병인지 몰랐다. 봉사를 하며 치매 걸리신 어르신 분들도 많이 뵀는데 이렇게 치매가 심각한지 처음 알았다.
우리가족은 평소처럼 봉사를 하려했지만 평소와 다른 상태의 기분으로 요양원 봉사를 시작했다. 우선 청소부터하고, 어르신분들 핸드 마사지 해드리고 할머니분들은 네일아트까지 해드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르신분들 말벗해드리는 시간이 있었는데 난 우리 증조할머니 옆으로 가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보며 놀라시며 피하셨고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억 안 나시냐며 몇 번이나 여쭸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있던 도중 도우미분께서 좀 기다리면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고 기다려 보라고 나한테 말해주셨지만 나와 가족들은 증조할머니를 볼 자신이 없어 그냥 인사를 하고 요양원을 빠져나왔다.
요양원을 빠져나온 우리는 외할머니댁으로 가 외조부님께 가서 왜 우리한테는 상의도 없이 증조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냈는지 여쭤봤다. 할머니는 1시간 마다 밥을 달라 하시고 귀신이 있는 듯이 혼자 대화를 하기도 해 왕할머니가 부담스럽고 무서워서 보냈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은 우리가족은 할 말이 없었다. 그러던 중 시간이 좀 흐른 뒤 내가 3학년이 돼서 나는 증조할머니를 보기위해 요양원에 갔다. 예전 할머니댁에 있을 땐 살집이 많으셨는데 살이 훌쩍 빠지셔서 뼈밖에 안남아 계셨다. 그 날 나는 속옷가게에 들려 할머니의 내복을 사왔다. 예전에 어디에서 들었는데 나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추위를 더 많이 느낀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부모님 몰래 자주 갔던 탓인지 이제는 증조할머니는 날 좀 기억해 주신다. 그리고, 순자라고 안 부르시고 그냥 내 이름을 부르신다. 증조할머니께 내복을 드렸다. 할머니는 고맙다며 내 손을 꼭 붙잡아주셨다. 그러시고는 나에게 선물이라며 사탕을 주셨다.
의사선생님이 증조할머니가 많이 좋아지셨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증조할머니 기분이 좋아 보인다.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조금 더 많이 110세 시대가 됐으면 좋겠다. 할머니, 할아버지 뿐 만 아니라 지금까지 봉사하며 만나는 어르신들 모두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게…….
중등부 산문부문 차상
이웃
광혜원중학교 3학년 최하늘
우리집은 얼마 전 이사를 갔다. 그 전 집에서는 이웃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 이번에는 이웃과 친해지기 위해 이사도 한 겸 인사를 드리려 과일을 깎아 가져다 드렸다.
이웃집엔 내 나이 또래의 친구와 언니, 동생이 있었다. 처음에는 낯을 가리는 편이라 오다가다 만나면 인사하는 정도였다. 서로가 어색해서 아파트 엘리베이터도 같이 타면 눈도 마주치지 못해서 친해지기 참 어렵다고 생각을 했다. 시간이 지나니 엄마와 아줌마끼리는 친해지셨는데 우리끼린 서로 인사도 안하고 지낼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일이 있고 나니 서로 친해지고 장난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중 엘리베이터 안에 나와 이웃언니가 갇혀버렸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울먹거리고 있었는데 언니는 비상벨을 누르고 경비아저씨를 불렀다. 그 사이 언니는 날 안심시켜주고 괜찮다며 위로도 해주었다. 언니는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집에 들어갈 때까지 날 지켜봐주었다. 항상 낯설기만 하고 어렵기만 한 언니였는데 날 도와주고 걱정해주는 모습을 보고 나니 더 친해지게 된 것 같다. 나중에 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언니도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서 당황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날 도와주었다고 생각하니 너무 고마웠다. 처음으로 이웃의 소중함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이웃이 되었다.
또 어느 날은 집에 엄마가 안계셨는데 하필 그 날 열쇠를 잃어버려서 기다려야 해서 집 앞에 서있는데 이모가 집에서 간식도 주고 언니가 나랑 놀아주어서 혼자 기다리지 않아도 돼 너무 고마웠다. 게다가 우리집은 친척과도 거리가 멀어서 오갈수도 없었고 무언가 필요하거나 부족한 걸 도와줄 사람이 주위에 없었는데 이웃이 생기고 나니 든든해졌다. 그런데 며칠 전 가족같던 이웃이 이사를 가버렸다. 이유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이사를 간다고 하니 서운하고 아쉬웠다. 다행히 멀리 가지 않고 우리 동네 근처로 간다하니 다행이긴 했는데 정말 우리가족이 처음 사귄 이웃이라 정이 많이 들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슬펐다.
도덕책에서 보고들은 이웃은 사실 그저 와 닿지도 않고 필요 없을 것만 같았는데 막상 이런 이웃을 사귀고 보니 가족 같은 이웃이 뭔지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