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우리 시대의 아이콘들
맨 처음 집에 왔던 컴퓨터 286은 담을 수 있는 용량이 고작 20메가바이트였다. 얼마 뒤 새 기종이 나와 40메가바이트로 바꿀 때는 뭐 굳이 바꿔야 할까 서로 얘기가 오가기도 했던 것 같다. 1메가 단위인 플로피 디스켓에 넣을 수 있는 문서만도 얼마나 많은데, 40메가면 너무나 크다 싶었다. 꼬마 눈으로 보는 학교 운동장 같았다.
그 뒤로 사양은 순식간에 더 더 높아져 지금은 본체 용량도 몇 십 기가바이트 수준이고, 휴대용 저장장치마저 몇 기가 짜리가 수두룩하다. 덩달아 저장하는 내용물 크기도 커졌다. 그림이며 음악이며 영화며 안 되는 게 거의 없다. 저장량도 엄청나게 커졌다. 방마다 자료들이 그득하다. 물론 그중에는 쓰레기도 무진장이다. 흔하니 귀하지가 않다. 무한 재생 무한 복사가 가능한 그대의 음성 그대의 모습은, 더 이상 애틋하지가 않다. 널린 게 정보이니 살뜰히 챙겨지지가 않는다.
이처럼 변한 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린 걸까. 개인 컴퓨터 역사 자체가 고작 이십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때로는 머리가 혼란스럽기조차 하다. 이제 머잖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자판도, 책상 위 네모난 컴퓨터도, 마우스도, 기억 저편으로 다 사라져 갈 거다. 이조차 벌써 번거롭고 너무 복잡하게 느껴진다. 아닌 게 아니라 이것들을 맨 처음 고안했던 잡스는 이미 세상을 떠나기 전 몇 개의 새 물건들을 내보이며 자신이 열어젖혔던 피시의 시대에 종언을 고했다. 그리고 그 시대가 수명을 다하자 자신도 함께 퇴장해 버렸다. 이제 우리는 다시 새로운 세계의 문 앞에 서 있다.
누군가는 이런 기계들을 혐오하거나 거부할지도 모르겠다. 이러다간 마침내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상상물들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우리는 이런 기계들을 더 이상 부정할 수는 없게 되었다. 과거로는 돌아가지 못한다. 이런 기계들이 없는 세상은 이제 없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들 또한 열리고 있다. 우리들이 하고 있는 이 ‘책’ 일들을 더는 지구의 목숨을 갉아먹으며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는 것. 또, 지금 세계체제 심장부인 월가에서 태동된 외침이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가 더 큰 울림이 되고 있는 움직임이 무엇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외국의 어떤 미술 평론가는 잡스의 애플을,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세잔의 사과에 이은 ‘네 번째 사과’라고 했다는데, 이야기 세계에 사는 주민인지라 세 여신과 파리스의 황금사과도, 백설공주의 사과도 그에 못지 않은 문제적 ‘사과’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한 입 베어 물고 떨어뜨린 백설공주의 사과가 이야기 밖으로 굴러 나가 먼 후세계 사람 잡스의 손에 들어간 건지도 몰라.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영화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첫 장면에서 원인류가 높이 내던진 뼈 망치가 먼 우주로 날아가 미래의 최첨단 우주선으로 바뀌던 것처럼. 그럼 잡스의 사과는 이제 또 언제 어디서 누구의 무엇으로 변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게 될까. ‘사과’ 하나로도 생각은 백 갈래로 가지를 뻗쳐간다.
사과와 잡스를 떼어서 생각할 수 없게 된 것처럼, 어떤 아이콘은 또 다른 아이콘을 스스로 생성한다. 우리 가까이에서도 이러한 아이콘들이 생겨나고 있다. 떠나면서 새삼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던 잡스와 함께 공교롭게도 한국의 아이티계 상징인 안철수 씨 역시 얼마 전 나라 안에 큰 이야깃거리로 떠올랐다. 지금 젊은 세대들이 이만큼 마음을 터주고 열렬히 응원하며 누군가를 따르려고 한 적이 있었던가. 또 이와 관련해 맺어진 몇 사람의 최근 움직임들은 분명 세상과 우리들 삶에 어떤 영향이든 변화든, 새로운 무언가를 몰고 오려 한다. 평가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재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변화한 세상은 새로운 대응을 요구한다. 세상에 없다 생겨난 컴퓨터가 이롭기만 한 게 아니라 실상 쉴 새 없이 우리 삶에 위해를 가하는 바이러스 덩어리기도 하기에, 맞서는 백신의 싸움도 끝이 없다. 그 치료약에 삶의 아픔까지도, 우리 사회의 문제까지도 고칠 희망을 거는 아이콘의 확장 양상을 보며, 다시 사람에게서 길을 찾는다. 비록 ‘사람’이 문제일지라도 사람들에게서 희망의 빛이 사라지면 세상도 암전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조지 오웰이 암울한 전체주의 사회를 미래 소설로 풍자해 그린 『1984』는, 바로 그 1984년 잡스가 매킨토시를 세상에 내놓으며 광고로 재현한 영상물 속에서 통쾌하게 부서진다. 화면 속 빅 브라더에게 날아간 애플의 망치는, 첫째로야 우선 경쟁사부터 겨냥한 것이었겠지만, 고정관념과 그것으로 지탱되는 낡은 세계 인식에 잡스가 던진 질문이자 도전장이기도 했을 것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명령 언어로만 몇몇에게 문이 열리던 난공불락의 성, 그렇던 컴퓨터가 그때부터 문자 대신 간단한 그림 모양만 누르면 누구나 쓸 수 있는 쉽고 편리한 물건으로 바뀌어졌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런 새 눈들, 우리는 그런 아이콘들을 바라고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만나려 한다. 곳곳에서, 지금 우리에게서도 그 눈들을 본다.
임어진 (본지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