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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19) 이민 목회 시작(산호세 영락교회)
Sunnyvale은 필자가 살던 곳이며 산호세 영락 교회가 있던 곳.
Palo Alto : Stanford University가 있는 곳
San Francisco 바로 아래에 있는 San Bruno는 김인식 동문이 삼환 건설(?) 샌프란시스코 지사장 시절 살던 곳이다.
1985.9.23일에 LA 공항을 거쳐 산호세 공항에 도착했다.
곧장 교회에서 준비한 아파트로 가서 짐을 풀었다.
도착하자 마자 주일 예배를 인도했다.
1.취임식
산호세 영락교회는 당시 미주한인장로회 서 노회에 소속되어 있었다. 서 노회는 LA를 중심으로 서부지역에 있는 교회들이 소속되어 있었다.
LA에서 노회장과 여러 목사님들이 오셔서 취임식을 진행하며 축하해주었다.
필자가 부임한 이후 산호세와 북쪽 씨에틀까지를 서북노회로 나뉘어졌다. 그때 필자는 서북노회 노회장을 역임하기도하였다.
취임식
한국에서 듣기로는 당시 산호세 영락교회는 약 80 여명 모인다고 했다
그 당시 미국에서 80 여명 모이면 큰 교회라고들 했다.
그런데 막상 현지에 와보니 어린이 성인 합해서 약 30 여명이 모였다.
전임 목사는 세미나에 참석하러 왔다가 교회에서 요청하여 눌러 앉은 케이스였다. 가족은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혼자 있다 보니 목회자가 골프와 여자 스캔들에 휘말려 교회가 분열되었다. 지면 관계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약 200 여명 모이던 교회가 3 등분되어 일부 교인은 다른 교회로 가고 100 여명이 목사를 따라갔다고 했다.
필자도 혼자 먼저 왔기 때문에 홀아비 신세가 되었다. 여러 교인들이 혼자 있다고 반찬을 준비해주었다.
필자는 전임자의 문제도 있고 해서 교인들에게 “여자는 절대로 혼자 저의 집 방문을 하지 말라. 만일 혼자오면 마귀로 여기겠다”고 광고했다. 광고 후에는 반찬을 문 앞에 놓고 가곤 했다.
한국을 떠나 올 때 산호세에 살고 있는 자녀나 친족들이 살고 있는 영락교회 교인 들이 공항에 나와 배웅하면서 “산호세에 가면 자기 자녀들과 친족의 신앙을 잘 지도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하였다.
떠나간 교인들 중에는 영락교회 교인들의 자제 분들과 친족들이 많았다. 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가 다시 돌아오기를 권했다.
그러나 떠나간 교인들은 남아 있는 교인들을 비난 하고 남은 교인들은 나간 교인들을 비난했다. 당시 필자의 생각에는 한경직 목사님이 오셔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혹자는 필자가 잘 살아보려고 이민 간다고 비난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민 목회가 한국에서의 목회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또한 한국에서 교인들이 목사를 대하는 것과는 많아 달랐다.
예를 들면 아이들은 목사를 만나면 손을 흔들며 Hi~하고 그냥 지나갔다.
토요일인 어느 날 결혼식을 마치고 식사하는 자리에서 어느 교인이 “목사는 주말 Job이니까 토요일이 되면 주일 준비로 바쁘시죠 ?”하고 주저함 없이 말하기도 했다.
2.신학교 입학 좌절
학교를 방문하여 입학 절차를 문의 했더니 토플 성적이 550점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하루는 김장로님이 필자가 박사학위 좌절 되자 “목사님 박사학위 필요하시면 제가 준비해 드릴께요”하시면서 법학박사 학위증은 7-8백불, 신학박사 학위증은 4-5백 불이면 살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내 놓고 학위증 장사를 하는 곳이 있다고 했다. 한국 목사들 중엔 이런 박사가 많다고 했다.
가짜 대학 세운 후 학위 장사로 17억 챙겨 2018.01.18
다음 기사는 한국언론에 보도된 내용이다.
미국에 가짜 유령 대학을 설립한 후 사이버 대학으로 학위 장사를 해 온 템플턴 대학교의 관계자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3일 미국 템플턴 대학교 이사장인 김모(45)씨를 구속하고 경영학부 학장 박모(36)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2015년 5월부터 템플턴 대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학생을 모집해 왔으며, 정식 학위를 발급해 준다고 속여 199명이나 되는 학생에게 17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템플턴 대학 측은 사이버 대학의 온라인 수업만으로도 미국의 학위를 쉽게 딸 수 있다고 홍보했으며, 이 대학에서 유학 비자를 받아 미국 현지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이곳에서 받은 학위가 있으면 국내 4년제 대학 편입과 대학원 진학도 가능하다고 속여왔다.
그러나 이 대학은 미 연방 정부의 인가도 받지 않은 ‘유령 대학’으로, 이들은 캘리포니아에서 학교의 상호명인 ‘템플턴 대학교’를 ‘일반 회사’로 법인 등록해 국세청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홈페이지에 올려 있는 미국의 학교 건물 사진도 학교가 아닌 교회 사진인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 중에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A씨(60)도 있었다. A씨는 템플턴대학교에서 받은 상담심리대학원 상담심리학 박사 학위를 최종학력으로 기록했다가 공직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다. 그러나 수사를 맡았던 서울 북부지검은 정식 학위가 아닌지 몰랐다는 A씨의 진술을 받아들여 수사를 종결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이 같은 대학의 명칭으로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정보를 입수함에 따라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출처] 가짜 대학 세운 후 학위 장사로 17억 챙겨 - CENC-가주교육신문
© 제공: The Seoul Shinmun
대학·대학원 분교 승인 없이 학생 모집 수강료 수백만원대 최고위 과정 운영 美·캐나다 의사 자격·개원 허위 광고도 미국에 캠퍼스가 없는 이름뿐인 대학을 설립한 뒤 국내에서 학위 장사를 하는 사례가 또 드러났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일반대학보다 간소한 절차와 적은 비용으로 종교특례대학을 설립할 수 있다. 고등교육기관(BPPE)에 신고하고 교회음악과 같은 종교 관련 학위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씨 등은 경영·교육·예술 등 일반대학처럼 학생을 모집했고, 지난 3월에는 자연의학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을 개설했다.
6월부터는 자연의학 석·박사과정(침구사·약사·의사)을 개설해 학생을 모집했다. 수업은 서울에서만 이뤄지며, 대부분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이들은 미국 국무부에 등록된 재단법인이라며 또 다른 단체도 만들어 수강료가 수백만원대인 글로벌 리더 최고위 과정도 국내에서 운영한다. 특히 박사과정을 수료할 경우 미국과 캐나다의 자연의학 의사(NMD) 자격을 취득,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개원할 수 있다고 허위 광고도 했다
미국에 유령대학 설립 한국서 학위장사 한인 중형
2019-08-15 (목) 조진우 기자
미국에 정체 불명의 ‘유령 대학’을 설립한 후 한국에서 학위 장사를 해 십수억원을 가로챈 한인 남성에게 중형이 선고 됐다.
김씨 등은 홈페이지와 커뮤니티 등을 통해 “템플턴대학교에 입학해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으면 학위를 받을 수 있고, 이 학위로 국내 4년제 대학 학사 편입과 대학원 진학도 가능하다”며 학생을 모집했다.
경찰 수사 결과 템플턴대는 대학이 아닌 ‘일반회사’로 등록된 가짜 학교임이 밝혀졌다. 학위도 아무 효력이 없는 휴지 조각에 불과했다.
연방교육부는 지난 2017년 “학사와 석?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있는 핸더슨 신학대학과 템플턴 대학은 연방당국으로부터 어떠한 인가를 받은 적이 없다”며 “두 학교에서 제공받은 학위나 교육 프로그램은 어떠한 효력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밝힌 바 있다.
<조진우 기자>
3.목회
서북 노회 소속 교회들이 주로 San Jose. 북쪽으로 오리곤주(유진)
워싱톤주( Tacoma. Seattle)에 있었기 때문에 노회관계로 자주 자동차 여행을 하기도 했다. 당시 서북 노회 노회장 . 장로교협의회 회장. 교회 협의회 총무를 역임하기도하였다.
오로지 목회에만 전념한 결과 1년 6개월 만에 장년만 187명 장로가 11 명 출석하는 교회가 되었다. 급성장하는 교회로 소문났다.
당시 한국 교회와 미국 교회를 비교해서 일 당 백이라는 말들을 했다. 즉 여기서 교인 한 명은 한국에서 100 명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대광 동문들이 많이 출석했다.
김계훈장로(1회). 김종수 안수집사(1회). 6 회와 9회 15회 각 1명 그리고 14회 동문 중엔 김인식.최완근, 강석경(영 ?)등이 출석하기도 했고 김갑웅의 여동생 부부가 출석하기도 했다.
당시 김인식 집사는 삼환 건설(?) 샌프란시스코 지사장으로 주재하며 샌프란시스코 바로 아래에 있는 SAN BRUNO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어서 자주 만나곤 했다.
세례식 김계훈 장로(대광 1회)
근처 호수에서 필자가 잡은 대어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
5.한인들의 생활
산호세에는 실리콘 벨리로 유명하다. 이곳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전자회사가 있었는데 건강한 여성들에게는 일자리가 많았다.
이곳에는 한국에서 말하는 공돌이 공순이들이 많은 곳이다.
이곳에서는 한국에서 아무리 유명대학 출신이라도 공돌이 공순이 신세가 되었다.
숙대, 이대 출신도 모두 공순이 이었다. 소위 전자 칩을 땜질하는 사람을 땜순이, 칩을 꽃는 사람을 꽃순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3부제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주로 새벽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민자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필자 아내도 잠시 다녔다.
이외에 세탁소를 운영하거나, 식당을 운영하거나 과일 장사를 하는 교포들도 있었다.
산호세와 Half Moon Bay 사이의 산 속에 있는 집사님의 미니 마켓
6. Half Moon Bay의 추억
Half Moon Bay State Beach Walking Trails 여기서 파도를 바라보며 큰 소리를 내며 설교 준비를 하고 기도하기도 했다. 가끔 낚시도 했다.
한국에서 필자는 Lobster를 먹어보았지만 가족들은 한국에서는 너무 비싸서 먹어보지 못했는데 난생 처음으로 Half Moon Bay 식당에서 1인당 한 마리 씩 시켜 먹었다.
7..해변 기도회
남선교회 회원들이 새벽에 낚시를 해서 오전 11시에 교인들이 해변으로 모여 기도회를 마치고 여전도회 회원들이 잡은 고기로 회외 매운탕을 준비하여 즐겁게 먹으며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8.고속도로에서 타이어 펑크
좌측으로부터 세 번째 박희민 목사(LA.영락교회)우측 부부는 서울 영락교회 집사와 권사
한 번은 나성 영락교회 박희민 목사님 부흥 강사로 오셨다. 부흥회를 마치고 샌프란시스코를 구경하러 가던 중 차가 이상해서 급하게 정지하여 길가에 차를 세웠다.
타이어가 펑크났 던 것이다. 빠르게 운전하던 중이었 영락교회)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다.
9.언어 소통 문제
어느 날 전화가 불통이었다. 집사님 댁으로 달려가서 전화기가 고장 났다고 했다.
조금 있다가 김계훈 장로님에서 전화가 왔다. 김목사가 전화를 안 받는 다는 것이었다.
집사님이 “전화기가 고장 난 모양입니다.” “김목사님은 지금 저희 집에 있습니다.
조금 있다가 장로님이 오셔서 집에 들어서자 마자 “목사님 도망 간줄 알았잖아요 ?”하고 말했다. 그 이후에도 이런 경우가 여러 차례있었다.
후에 알 사실이지만 미국에 오래 살면 한국에서 사용하던 곱던 말들은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들이 좀 거칠어진다고 했다.
장로님은 결혼하자마자 유학와서 UC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NASA에 근무 중이었다.
11.대 지진
난생 처음으로 지진을 겪었다.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시간에 필자는 집안의 책상에 앉아 어느 권사님하고 통화 중이었다. 갑자기 첵상 위의 전기 스탠드가 흔들렸다. 순간 벽에다 벽돌을 놓고 그 위에 판자를 놓고 만든 책 꽂이 필자의 오른쪽 어깨 위로 쓰러졌다. 운동 신경이 발달해서인지 순간적으로 피했다. 그러나 오른 쪽 어깨에 약간 부딪쳐 얼마 동안 통증을 느꼈다.
그 지진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건너편 오클랜드를 잇는 긴 다리가 끊겨 차 한대가 끊긴 다리 위에 걸치기도 하였고 오클랜드에서는 이층으로 된 도로가 내려 앉는 바람에 다리 밑에 신호를 기다리던 차량에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기도 했다.
교회는 계속 은혜롭게 부흥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시련은 어디에나 있는 것
어린이와 성인이 300여 명 모이다 보니 교회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겼다.
큰 시련이 닥쳐왔다. 이 문제는 (회고록)(19-1)에서 이야기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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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SF에서
이럴 수가 ?
통 기억이 안 나는구나.
두 딸의 성장한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구.
언제 ? 어떻게 ? 이 사진을 찍었는지를 설명을 좀 해다오.
@김창기 애들하고 미 서부 여행하고 마지막날 sf공항 근처 호텔에서 만났지.
여행기는 카톡으로 보낼께.
@이명홍 Thank You !
@김창기 1993.ㅇ1 이면 회갑 전이었으니 한 창 때이구나.
모두가 영계들이구나(실례).
난 1993년 4월에 산호세 영락교회를 사임하고 샌디에고로 왔지.
세월이 유수같다더니 지나고보니 참 세월이 빠르게 지나가는구나.
아~~~ 세월은 잘~~~ 간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세월 후회 없는 삶이 되기를 소원한다.
코로나 19'와의 치열한 전쟁에서 온 가족이 반드시 살아 남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