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암면 금학리琴鶴里 유래
안동군 임동면의 대곡리와 사이를 하고 있으며 흰 소나무, 곧 백송이 자생하고 있다. 비교 적으로 교통이 불편하고 지대가 높아서 가물 때에는 물이 모자라기도 한다. 본래 영양군 남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을 고칠 때 금대동고 학산동을 합하여 금학리라고 부르게 된다. 금대(琴大)와 학산(鶴山)의 이름을 따다가 합하여 지은 이름이다.
[마을의 특징]
마을에서 널리 알려진 것은 학산(鶴山)이다. 금학 남쪽에 있는 산인데 학이 춤을 추는 모습을 하였다고 붙인 이름이다. 어떤 이가 조상의 묘를 썼을 때에 무덤에서 학이 날아 갔다고 해서 학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학은 상서로운 날 것으로 보아 많은 땅 이름에 학- 이 들 어가 쓰인다. 앞에서도 풀이하였거니와 이는 새-해로 이러지는 뿌리 깊은 믿음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보아 틀림 없을 것이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유래]
*가정기(柯亭基)
점마 북서쪽에 있는 마을로서 동네에 있는 정자나무가 가죽나무라 하여 가정기라 하였다 한다. 가정기는 장가정기와 옛가정기로 나우어진다(남만술(51) 제보).
이와 같이 나무 이름 을 따서 정자의 이름을 붙이는 일은 많이 있으나 이르자면 느티나무 괴를 쓰는 괴정(槐亭) 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곰지기ㆍ웅지(熊地)
대뜨무 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서 옛날에는 이 곳에 곰이 서식했다는 말도 있고 산의 형상이 곰같이 생겼다고도 하여 곰지기라 부르게 되었다(이병일(46) 제보).
『신증동국여지 승람』의 경우 곰 웅(熊)자가 들어 가는 마을의 이름이 전국에 약 40여 군데나 나온다. 예로 부터 곰은 단순하게 짐승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조상신 혹은 영혼이라는 토템의 뜻으로 쓰였으니 고조선의 단군설화가 그 대표적이라고 할 것이다. 곰을 적을 한자가 없다. 하여서 그와 비슷한 소리를 지닌 한자를 썼기에 곰-검-감-금과 같은 한자가 쓰이었다고 생각한다.
*금대(琴臺ㆍ琴擡)ㆍ금대동(琴臺洞)
금학리(琴鶴里)에서 제일 큰 마을이며 약 500년 전 금씨(琴氏) 성을 가진 사람이 처음 이 마을을 개척하였다 하여 금대(琴臺) 또는 금대(琴擡)로 불렀다(우수암(63) 제보).
앞에서도 풀이 하였지만 곰을 숭배하는 신앙이 농경생활로 넘어 오면서 물신과 땅신으로 섬김의 대상 이 달라진다. 하면 여기 금대도 예외는 아니라고 본다. 어쩌면 금대는 다른 지역에서도 널리 나오는 땅 이름으로서 물신 혹은 땅신을 모시기 위한 단이나 당이 있었음을 가늠하게 해 준다. 땅 이름의 분포로 보아서 금-검 계열의 땅 이름을 거의가 북쪽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이 있다.
*댓드무ㆍ대뜨무ㆍ대등기(大登基)
금대 북서쪽 등성이에 있는 마을로 본동에서 산뒤쪽으로 높이 올라간 곳에 마을이 있다 하여 대등기라 불렀다 한다(천도선(60) 제보)
*미누실ㆍ면우실(眠牛室)
양지 북서쪽에 있는 마을이며 산의 형상이 소가 잠자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면우실이라 하였다(남용섭(38) 제보). 면우의 소리가 바뀌어 며누로, 다시 단모음이 되어 미누로 된다. 이 소리가 궅어져서 미누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양지(陽地)금대
마을이 차츰 번성하여 양지쪽으로 조그마한 마을이 생겼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김 순석(68) 제보).
금대의 금(琴)은 땅 이름의 분포로 보아서 거의 북쪽을 가리킨다. 하면 뒤 에 산이 바람을 막아 주고 앞에는 내가 흘러 돌아 이른바 양지를 이루게 되니 양지마을의 뿌리는 금대 마을이라고 하겠다.
*옛가정기ㆍ바른골
점마 서쪽에 있는 마을로 가정기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다. 가정기의 원래 마을이 된 다 하여 옛가정기라 했다 한다(김오한(34) 제보).
*새못ㆍ음지(陰地)
양지 마을이 점차 번성하여 금대의 응달쪽에 새로 마을이 들어섰으므로 음지 또는 새못 으로 부르게 되었다(김수진(65) 제보). 음지에 생겨난 마을이라고 본다.
*잿곰지기
곰지기에서 서쪽 방향으로 약 1.5 킬로 위에 산등성이에 위치한 마을로 산세가 수려하고 새와 짐승이 많이 깃들여 산다. 곰지기 마을의 위쪽 재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이 상섭(52) 제보).
*점마ㆍ점촌(店村)
금대 북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조선 시대 쟁기를 만들어 팔던 유기점(鍮器店)이 있었던 곳이어서 점촌이라 불렀다. 점촌을 지나 대등기를 지나는 길이 옛날 안동을 잇는 길이었다 (이차형(34) 제보).
*학산(鶴山)ㆍ학산동(鶴山洞)
금대 남동쪽에서 있는 마을이다. 앞산인 무학(舞鶴)이 춤을 추는 형국인데 묘를 썼다가 학 이 날아간 곳이라 하여 학산이라 이름지었다(이상섭(52) 제보).
[참고문헌; 영양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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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말캉 역사 알고 가시더/창태115, 192) 입암면 금학리(琴鶴里)가 궁금니껴?
※되집어 보는 영양말(사투리)※
이사져(이까져), 소낭구, 만디, 쇈지, 쬐메, 맹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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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학리(琴鶴里)는
안동시 임동면(대곡리)캉 이사져(이까져) 있꼬
지대가 높아 교통이 디게 불편한데로
과거부터 흰 소낭구인 백송이 자랐니더.
금학(琴鶴)이라는 마실이름은
1914년 행정구역 바낄때
금대(琴臺)의 "금"캉 학산(鶴山)의 "학"을
엄체가 금학(琴鶴)라 카게 된니더.
(금대)
금학리(琴鶴里) 중심지 마실 이시더.
1400년경 전 금씨(琴氏) 성을 가진 사람이
맹처음 이 마실을 맹글었따꼬
금대(琴臺ㆍ琴擡)라꼬 카니도 하고.
지대가 높따란데 있으면서
땅이 약깐 검은빛을 띠고 있따꼬
금대(琴臺)라꼬 카기도 하니더.
(학산)
금대(琴臺) 남동쪼구에 있는 마실이시더.
풍수지리상 마실 앞산은
무학(舞鶴)이 춤을 추는 형국인데.
그기에 묘를 써게 되어가꼬
학이 멀리 날아 가뿐 산이라 케가
학산(鶴山)이라꼬 카니더.
(가정기)
점마(店村) 북서쪼구에 있는 마실로
마실에 있는 정자낭기
가죽낭구로 맹글어져 있따꼬
가정기(柯亭基)라 카니더.
(곰지기ㆍ웅지)
댓드무 남쪽 골짜기 마실로
옛날에 곰이 서식했따꼬
곰지기라 카기도 하고.
산의 형상이 곰가꺼러 생겼따 케가꼬
곰지기라꼬 카기도 하니더.
웅지(熊地)는 곰지기를 한자로 쓴거시더.
(댓드무ㆍ대뜨무ㆍ대등기)
금대 북서쪼구 산 만디에 자리 잡고있는
마실이라꼬
댓드무 혹은 대등기(大登基)라 카니더.
(미누실ㆍ면우실)
양지 북서쪼구에 있는 마실로
산의 형상이 쇈지(소)가 잠자는거 가꺼러
생겼따꼬 면우실(眠牛室)이라꼬 카다가
면우가 며누로 바뀐 뒤 다시 미누로
바까 부르게 된니더.
(양지)
금대마실이 쬐메씩 크지다 보께네
금대마실 양지쪼구에 새로운 집들이
맹글어 져가꼬
양지(陽地)라 카게 된니더.
(옛가정기ㆍ바른골)
점마 서쪼구에 있는 마실로
가정기에 맹처음 맹글어진 마실이라꼬
옛가정기라꼬 카니더.
(새못ㆍ음지)
양지마실이 점차 크지다 보께네
응달쪼구 모티에 새로운 집들이
맹글어지면서
음지 또는 새뫁(못)이라꼬 카게 된니더.
(잿곰지기)
곰지기 서쪼구 산등성이에 있꼬
곰지기 마실 우(위)쪽 잿만디에 있따고
잿곰지기라꼬 카니더.
(점마ㆍ점촌)
금대 북서쪼구에 있는 마실로
옛날에 쟁기를 맹글어 팔던
유기점(鍮器店)이 있었던 곳이라꼬 케서
점촌(店村) 또는 점마라 카니더.
옛날에는 점촌캉 대등기를 지나는 길은
안동캉 이사져 있었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