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구려의 멸망
668년(고구려 보장왕 27년) 9월 나당 연합군에 의해 고구려 평양성이 함락되면서 고구려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강이식 장군이 타계한 후 반세기 쯤 지난 세월입니다. 당나라는 고구려 옛 땅을 지배하기 위해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 유민 3만여 호를 강제로 당나라 영토 안 요서지방 지금의 조양 영주(營州) 땅으로 옮겨 살게 했습니다. 이들 유민 속에는 28년 후 발해를 건국한 젊은 대조영도 있었으며, 강이식 장군의 아들 손자들도 함께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2 고구려 패망 후 당에 억류, 일부는 신라에 귀화
고구려가 멸망하자, 대동강 이남의 지역은 신라가 지배하였으나, 만주 지역은 당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고구려의 유민들은 여러 갈래로 분산되었습니다. 일부 귀족층은 신라와 당으로 끌려갔습니다. 만주 일대에 머물러 있던 유민들은 고구려 부흥 운동과 당에 대한 저항 운동을 끈질기게 전개했습니다.
신라에서는 고구려 귀족 안승(安勝)과 유민 4000여 명을 신라에 귀화시키고 이듬해 안승을 고구려 보덕왕(保德王)으로 삼는 등 고구려 유민을 받아 들이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때 몇몇 우리의 선조님들이 이들에 섞여 신라에 귀화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3 발해 멸망과 유민의 향방
발해의 마지막 왕인 대인선(大諲譔, 907?∼926)이 통치하던 시기에는 동아시아 각국의 정세가 매우 복잡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중국은 5대 10국 시대로 그야말로 군웅이 할거하던 시대로 북방민족이 득세하고 있었습니다. 발해는 북방민족인 거란의 침략에 제대로 응전하지 못하고 926년 정월에 마침내 무릎을 꿇었습니다. 발해 유민은 금나라 초기까지 200여 년간 요동지방을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서서히 중국 속으로 흡수었습니다. 일부는 요나라 또는 금나라 지배층으로 들어갔고, 일부는 이들 지배에 저항하면서 부흥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멸망 직후 서경압록부에서 일어난 후발해국(後渤海國, 926∼?)과 그 뒤를 이은 정안국(定安國, ?∼980년대), 원래의 발해 중심지에서 일어난 오사국(烏舍國, 10세기 후반∼11세기 전반), 요나라의 동경에서 일어난 흥료국(興遼國, 1029∼1030)과 대발해국(1116년) 등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고려로 망명해와 한국사의 한 부분을 이룬 부류도 있으니, 이들은 멸망 직전부터 들어왔고 때로는 부흥운동이 좌절될 때마다 피신처를 찾아 망명해왔습니다. 국내의 노씨(盧氏), 대씨(大氏)들은 발해 왕실의 후예로서 그러한 망명자의 후손들입니다.
우리 강문이 고구려가 망한 후 한반도에 정착하게 된 경로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뉘어 볼 수 있습니다.
4 강씨 한반도 유입(流入) 경로(經路)
염재 신농씨를 강씨 원시조로 본다면, 강씨의 원류는 중국 산시성 천수(天水)가 발원지가 됩니다. 신농씨는 삼황 중 한 분입니다.
삼황오제의 시대는 하(夏)나라 건국(기원전 2070년 경) 이전이기 때문에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원전 3000년 경부터 강씨들이 동으로 동으로 이동하여 지금의 중국 산동성 일대에서 기원전 1000여 년 경 강여상(姜呂尙)이 주나라의 도움으로 제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391년(동주 안왕 11)에는 제나라 강공이 대부인 전화(田和)에게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제나라 강씨가 한반도에 가장 가까운 곳에 살았던 셈이고, 陝西省(섬서성) 천수에서 산동성까지 온 것은 동쪽이 서쪽보다 더 온난하다는 기후 여건 때문입니다. 이들 중 일부가 한반도로 건너갔습니다. 한반도로 이주할 수 있는 길은, 두 방면으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첫째 육지를 통해서, 둘째, 바다를 통해서입니다. 바다를 건너는 방법도 두 가지입니다. 산동성과 중국 남부 광동성 두 방면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이중 광동성에서 이동한 사람들은 제주도를 거쳐 한반도 남해안 쪽으로 유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다를 건너 이동한 사람들은 누구나 건너올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적어도 재정적으로 넉넉해야 가능합니다. 대신, 며칠 만에, 한반도에 도달할 수 있는, 잇점이 있습니다. 반면에, 요하를 건너 고구려를 거쳐, 육지로 진주까지 오기까지는, 수 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어떤 한 곳에서, 수십 년에서, 수백 년 이상, 정착한 다음에, 한반도 남쪽까지, 왔을 것입니다.
<표 1> 한반도에 정착하게 된 경로
고구려 멸망 | 발해 건국 | 발해 멸망 | 고려 |
당에 억류 ⇒ | 발해에 귀속 ⇒ | 고려에 귀속 ⇒ |
한반도에 정착 |
신라에 귀속 ⇒ | 고려에 상주 ⇒ |
신라에 귀화 ⇒ | 신라에 상주 ⇒ |
첫댓글 본문중 고구려는 668년9월에 망하였다고 하며
강이식장군이 타계한 후 반세기쯤 지난 세월이라 함은
시조님께서 618년경 졸(卒)하셨을거라 추정하신 것인데
<국로추사> 618년조에는 귀화하신 시점인 것 같습니다
어떤이는 550년? 태어나서 640년?에 돌아가셨다(壽 91세)고도...고증되지 못한 이야기 같고요
인재 강희안 선조의 1451년 연원보 서문에는 시조님의 손자 강행본(姜行本)과 후손들 대대로 당(唐)나라 안동도호부의 총병을 지냈다 합니다만
언제 누가 우리나라에 귀화했다는 말씀은 남기지 않으셨어요
저만의 가설, '귀화'라는 단어는 현대인들의 관점이 아닐까요. 어찌 보면 "'귀화'가 아니라 고대에는 우리 민족이 현 중국영토에서 살다가 전쟁 및 정치적 이유로 점차 현 중국의 동북방향 쪽으로 영역이 축소되었고, 결국에는 한반도로 축소된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상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