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 보경쌤이 이사하셨어요. 탄원서 내용을 변경해 새로 올립니다! (업데이트 날짜 : 2010년 8월 31일)
여러분 안녕?
보경쌤 재판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표출하기 위해 하고있는 많은 활동들과 함께
좀더 효력있는 방법인 탄원서 작성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의견을 재판장님께 직접 호소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인지 조금 까다로운 면이 있지만, 보경쌤을 위해 우리 함께 달립시다!
자! 방법은 이러합니다.
1. 아래 있는 '최보경탄원서용지(새것)'을 살포시 다운받습니다.
2. 다운받은 '최보경탄원서용지(새것)'을 양면으로 예쁘게 인쇄합니다. 꼭! 양면이어야만 합니다!
3. 인쇄한 '최보경탄원서용지(새것)'에 자신만의 글씨체로 정성을 다해 서명을 합니다.
4. 서명이 된 '최보경탄원서용지(새것)'을 편지봉투에 고이 접어 넣습니다.
5. 편지봉투에 주소를 적습니다.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 외송리 122 간디학교 / 받는이 : 최보경)
6. 우표를 붙여서 빨간우체통에 넣습니다.
-끝-
선고가 있을 때 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시면 좋겠어요..
(2010년 10월 12일 재판에서 구형이 있을 예정 입니다! 선고는 그 이후에...)
한번 보내실때 주위 분들의 탄원서도 받아서 함께 보내면 더 좋을 듯 하네요~
그럼! 우리 한번 더 달려 봅시다!
최보경탄원서용지(새것).hwp
<예시>
탄 원 서
탄원인 성명 : 길원옥
주소 : 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3가 4번지 나동 [우리집]
소속 :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연락처 : 02-365-4016
피탄원인 성명 : 최보경
주소 : 경남 진주시 신안동 27-1 대경강변맨션 906호
연락처 : 017-530-2015
존경하는 재판장님,
간디학교 최보경 선생님은 우리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참 좋은 청년이었고,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역사교사였습니다. 저는 최보경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계속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로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랜 세월, 참 외롭게 살아왔습니다. 어린 소녀의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수년 동안 성노예로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이 끝나서 다른 친구들, 언니들은 모두 죽었지만, 그래도 목숨이 질겨서 그 지옥 같은 전쟁에서 살아남았는데, 그렇게 구사일생 살아남아 돌아온 고국이었지만 저는 고개 들고 남들처럼 그렇게 살수가 없었습니다.
몸이 더렵혀진 여자라고 손가락질하고 비웃는 것 같아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는 것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악착같이 살아 돌아온 고국이었지만, 죽고 싶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남의집살이, 식당주방일, 술집에서 술따르고 노래부르는 일, 아이돌봐 주는 일, 리어카로 물건 파는 일 등 정말 안해 본 일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돈은 벌자마자 ‘위안부’ 후유증으로 안 아픈 곳 없는 제 몸에 다시 고스란히 다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50년이 흐른 후, 한 여성단체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1992년 1월부터 지금까지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 가서 정대협과 함께 수요시위도 하고, 해외에 나가서 제가 당한 일을 하소연도 하고, 일본정부에게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활동들을 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 피해자들이 당한 문제가 세계에 알려지게 되고,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서 문제해결을 위해서 아주 열심히 활동한다는 소문이 여러 나라들에게 알려지게 되자 이제 우리 피해자를 보는 사람들의 인식과 시선이 달라져 갔습니다. 피해자들을 따뜻하게 대해주고, 우리를 통해서 우리의 역사를 다시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아이들도 생겼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최보경 선생님과 그 선생님이 가르치던 학생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수요시위에 오는 날은 우리 피해자들은 어김없이 아주 행복하게 웃을 수가 있었습니다. 결혼도 못해보고, 내가 직접 아이도 낳지 못해서 늘 외롭고 서러웠지만 그 날만큼은 우리 피해자들에게도 아주 예쁘고, 희망이 보이는 손주들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율동을 준비해서 노래를 부르며 춤도 추고, 아주 정성스럽게 편지도 써오고, 수필도 써서 우리 앞에서 당차게 읽는 모습들을 보노라면, 우리가 힘든 삶을 이겨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인가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아이들은 우리가 만난 학생들 중에서 가장 역사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그렇게 훌륭한 미래세대로 자라고 있었던 뒤에는 바로 최보경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 아이들은 절대로 좌로나 우로 치우침이 없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요즈음 아이들 같지 않게 진심으로 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학생들이었고, 역사를 통해서 겸허함을 배우고, 어떻게 미래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학생들이었습니다.
다시, 저는 수요시위에서 그 학생들과 최보경 선생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저는 다른 것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문제를 열심히 배우고 우리들에게 힘과 희망을 주려고 했던 최보경 선생님과 그 학생들이 참으로 선하고, 훌륭한, 늙은 저 조차도 본받고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든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최보경 선생님이 어려움에 처해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정대협 여성들에게서 들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까워졌습니다. 우리 할머니들을 진심으로 위하고, 지원하고, 힘이 되어주는 젊은 사람이 생겨서 참 좋았는데, 그런 청년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저는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지금 여든을 지나 아흔을 바라보는 늙은이입니다.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살지 모르지만 제가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제가 당한 일들을 우리 후세대들에게 알릴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하나도 자랑스런 일은 없고 부끄러운 일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슬프고 아픈 역사를 다시는 우리 후세대들은 당하지 않아야 하겠기에 저는 그렇게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이들에게 저처럼 참혹한 경험을 했지만 이렇게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산다는 것 또한 아이들에게 제가 사는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이 늙은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젊은이들이 저같은 피해자들과 함께 손잡고 힘이 되어줘야 저도 힘을 잃지 않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재판장님께 최보경 선생님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훌륭한 손주들을 많이 배출시킬 수 있도록, 계속해서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학교 강단에서 우리의 역사를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탄원합니다.
저의 이 탄원을 부디 진심으로 받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008년 10월 12일
탄원인(서명) 길원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