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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김씨촌로공파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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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산김씨 이야기 스크랩 흥천사종 제조 중추원사 김개 할아버지
희망나라 추천 0 조회 179 12.04.04 09:1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465년 원각사 제조(圓覺寺 提調)로서 원각사의 조성을 지휘하시고

숭정대부(崇政大夫) 1467년 의정부 좌참찬(議政府左參贊),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임명되고 계사년에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제수되신 김개 할아버지의 흥천사종 제조관련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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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종(興天寺鍾)은 흥천사동종 (興天寺銅鐘) 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지정종목 : 보물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제1460호

문화재 지정일 : 2006년 1월 17일

유형 : 유물

시대 : 조선/조선 전기

성격 : 불구, 종류/분류 : 범종

제작시기/일시 : 1462년(세조 8)

수량 : 1구

재질 : 구리

소장 : 덕수궁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덕수궁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5-1

크기 : 높이 2.82m, 지름 7m, 두께 3㎝

 

 

 

덕수궁은 원래 성종(成宗)의 형인 월산대군(月山大君)(1454~1488)의 집이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때 왕궁이 모두 불타서 1593년 행궁(行宮)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혜군(光海君)은 1608년 이곳 행궁에서 즉위한 후 1611년 행궁을 경운궁(慶運宮)이라 고쳐 부르고 7년동안 왕궁으로 사용하다가 1615년에 창덕궁(昌德宮)으로 옮기면서 이곳에는 선왕인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仁穆大妃)만을 거처케 하였다. 1618년에는 인목대비의 존호를 폐지하고, 경운궁을 서궁(西宮)이라 낮추어 부르기도 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廢位)되고, 인조(仁祖)가 이곳 즉조당(卽祚堂)에서 즉위하고 창덕궁으로 옮긴 이후 270년 동안은 별궁(別宮)으로 사용되었다.

 

1897년 고종 황제가 러시아 왕관에 있다가 환궁하면서 이곳을 다시 왕궁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다시 경운궁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 규모도 다시 넓혔다. 그리고 고종 황제는 1907년 순종(純宗)에게 양위(讓位)한 후, 왕궁이 창덕궁으로 옮겨진 후에도 이곳에 거처하였는데 이때부터 고종 황제의 장수를 비는 뜻에서 덕수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종 황제는 1919년 1월 21일 이 덕수궁 함녕전(咸寧殿)에서 돌아가셨다. 덕수궁에는 지난날 많은 건물들이 있었으나 현재 18,635평의 경내에 남아 있는 것은 대한문,중화전,광명문,석어당,준명당,즉조당,함녕전,덕홍전,및 석조전 등이 있다.

 

덕수궁은 특히 구한말 비운의 황제 고종이 일제의 압박으로 양위를 강요 당하고 한 많은 여생을 보내다가 돌아가심으로 3.1운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곳이다.

 

 

  광명문 흥천사 종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5-1번지 덕수궁에 있는 조선시대의 범종으로 덕수궁 광명문 안에 있으며 높이 2.82m, 지름 7m, 두께 3㎝이다. 흥천사명 동종이라고도 한다.

 

1462년(세조 8) 7월 조선 태조의 후비(后妃) 신덕왕후(神德王后)의 원찰이었던 흥천사용으로 제작된 조선시대의 종.

 

높이 282㎝. 보물 제1460호. 서울 덕수궁 소장. 조선 초기에는 강력한 전제왕권의 확립을 상징하듯 국가의 발원과 재력을 동원한 대형의 범종이 많이 제작되었다.

 

이 종 역시 그러한 시기적 경향을 잘 보여 주는 작품으로서, 음통(音筒) 없이 두 마리의 용으로 구성된 용뉴(龍?)와, 종신 중단에 2줄의 융기선 횡대(橫帶)를 두른 전형적인 중국종 양식을 갖추고 있다.

 

 

불룩히 솟은 천판(天板) 외연에는 상대(上帶)처럼 꾸며진 연판문대(蓮瓣文帶)를 두르고, 종신은 중단에 돌려진 횡대로 상·하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도록 구성되었다. 종신 상부의 횡대 조금 아래로 방형의 유곽대(乳廓帶)를 네 곳에 배치하였는데, 내부에는 연화좌(蓮花座) 위에 돌기된 종유(鐘乳)를 9개씩 장식하였다.

 

 

이 유곽과 유곽 사이마다 원형 두광(頭光)을 갖추고 합장한 모습의 보살입상(菩薩立像)이 유려하게 부조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이후 제작되는 조선 범종의 하나의 전형 양식으로 자리잡게 되며, 유곽과 보살상은 고려말에 유입된 중국종 양식과 또 다른 한국 전통형 종의 잔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종구(鐘口)에서 위로 올라온 부분에는 하대(下帶)처럼 묘사된 파도문대가 장식되어 있으며, 횡대와 이 문양대 사이에 장문(長文)의 명문이 돋을새김되어 있는데, 이 종이 왕실의 발원에 의해 세조 8년에 흥천사용으로 제작된 사실과 종을 제작할 당시의 수공업(手工業) 분업 상황 및 직제(職制) 등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처음에는 덕수궁 부근에 유폐된 신덕황후의 무덤 근처인 흥천사에 있었으나, 흥천사가 1510년(중종 5)에 화재로 소실되자, 1747년(영조 23)에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으로 옮겼다. 경술국치 이후에는 일제에 의해 창경궁으로 옮겨졌고 나중에야 현 위치로 옮겨왔다.

 

이 종은 규모와 문양, 주조기술이 탁월하며, 종에 새겨진 명문(銘文)을 통해 주성시(鑄成時)의 조직체계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고려 말부터 들어온 중국 종의 요소를 첨가하여 새로운 조선 전기의 종으로 정착되는 과정을 보여주어 이후 만들어지는 조선 전기 범종의 기준이 된다. 2006년 1월 17일 보물 제1460호로 지정되었으며 덕수궁에서 관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韓國)의 미(美) -금속공예(金屬工藝)-』(, 정영호 감수, 중앙일보사, 1993)

「조선전기(朝鮮前期) 범종고(梵鐘考)」-정영호(정영호 -단국대학교, 『동양학』1,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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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172권, 15년(1484 갑진 / 명 성화(成化) 20년) 11월 25일(무신) 4번째기사

 

판중추부사 김개의 졸기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김개(金漑)가 졸(卒)하였다. 철조(輟朝)15579)

 

조제(弔祭)·예장(禮葬)하기를 예(例)와 같이 하였다. 김개의 자(字)는 선택(宣澤)이며 본관이 안산(安山)인데 연성군(蓮城君)김정경(金定卿)의 아들이다.

 

영락(永樂) 임인년에 음직(蔭職)으로 처음에 남부 녹사(南部錄事)에 제수되어 전농시 주부(典農寺主簿)를 거쳐서 여러 번 올라 대호군(大護軍) 겸 판통례문사(兼判通禮門事)와 상서원 소윤(尙瑞院少尹)이 되었다.

 

경태(景泰)) 계유년에 뛰어올라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에 임명되고 을해년에 가선 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에 올랐으며, 천순(天順)) 기묘년)에 세조(世祖)가 동교(東郊)에서 열무(閱武)) 하면서 김개를 장(將)으로 삼았는데, 세조가 진(陣)을 설치한 형세를 바라보고 그 남다름에 크게 감탄하여 특별히 가정 대부(嘉靖大夫)에 올렸다.

 

신사년에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오르고 또 정헌 대부(正憲大夫)에 올랐으며, 성화(成化)) 을유년에는 숭정 대부(崇政大夫)에 오르고 정해년 의정부 좌참찬(議政府左參贊)에 제수되었다.

 

무자년에 숭록 대부(崇祿大夫)에 가해지고 계사년에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제수되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졸(卒)하니, 나이가 80세이다. 평호(平胡)라고 시호(諡號)하니, 다스림에 사고가 없은 것을 평(平)이라 하고, 오래 수(壽)한 것을 호(胡)라 한다. 김개는 용모가 아름답고 해서(楷書)를 잘 썼으며, 성품이 정교(精巧)하고 민첩하여 국가에 영선(營繕))이 있으면 감독하여 관장한 것이 많았다.

 

성종 184권, 16년(1485 을사 / 명 성화(成化) 21년) 10월 15일(임진) 6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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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의 새로 주조한 종명과 서

 

가정대부 이조참판 신 한계희(韓繼禧) 왕명을 받들어 지음

선교랑 수이조좌랑 예문봉교 겸 승문원부교리 신 정난종(鄭蘭宗) 왕명을 받들어 씀

 

생각건대 우리 승천(承天) 체도(體道) 열문(烈文) 영무(英武) 전하(세조)께서 태어나면서 천명(天命)을 받아 부록을 잡고 운세를 여시니 강역이 편안하고 비바람이 때에 맞아 화평했다.

 

이에 단정히 지내며 맑고 화목하고 삼가 조용히 도를 생각하여 지극한 성인의 덕이 큰 상서로움을 응하였다. 이에 7년 신사년(세조 7, 1461년) 여름 5월 임자일에 회암사(檜巖寺, 경기도 양주에 있던 큰 절)에서 석가여래의 사리가 분신(分身)하여 상서로운 빛과 기운이 하늘에 피어 오르고 특이한 향기가 크게 일어나 산골짜기에 가득 찼다.

 

효령대군(孝寧大君) 보(補)께서 절에 계시다가 사리 25과를 얻어 올렸다. 왕과 자성왕비께서 내전에서 예를 올렸더니 또 분신하였다. 함원전(含元殿)에 안치하였더니 다시 분신하였다.

 

지난 병진년(세종 18, 1436년)에 효령대군이 또 분신사리를 얻어 왕비께 올렸다. 내전에서 예를 올렸더니 또 분신하였다. 정사년(세종 19, 1437년)에 왕께서 친히 게송을 지으시어 악곡으로 작곡하여 왕비와 함께 함원전에서 공양하였더니 또 분신하였다. 이렇게 하여 전후해서 분신한 사리를 얻은 것이 모두 102과였다. 회암사 법회에서 사람들이 각자 가져간 것은 또 몇 개인지 알 수 없다.

 

왕께서는 크게 기뻐하여 사면을 내리고 대서원(大誓願)을 내서 친히 능엄경(楞嚴經)을 번역하시고 종친과 정부 육조와 대성(臺省)의 제장을 거느리고 국가와 일체의 영혼을 위하여 여래상 1구를 만들었다. 또 중궁 세자를 위하여 불상 1구를 만들고 다시 꿈에 관음보살과 지장보살 두 보살이 서로 응대하는 이적을 보이는 꿈을 꾸고 두 보살상을 만들어 조성이 끝나자 각각 그 가운데 사리를 봉안하고 선종 흥천사(興天寺, 서울에 있던 절. 선교 양종 시대에 선종의 으뜸 도량) 사리각(舍利閣)에 봉안하였다.

 

왕께서 왕비와 함께 보좌에 예배하고 향을 사르어 공양하고 대종을 만들어 항상 경계하고 미혹한 중생을 인도하도록 하고 이 연기를 새겨 영원히 밝히라고 명하시었다. 명에 이른다.

 

저 우리 성신께서 일찍이 부처의 수기를 받아

손으로 금륜을 잡고 하늘을 이어 나와 다스렸네.

 

엄숙하고 공경하여 크게 두려워하고 차분하고 느긋하게 잠이 들었네.

신과 인간이 화합하여 신령한 하사품이 나란히 이르렀네.

우러러 저 부처는 인연있는 무리를 널리 포용하여

사리 분신을 시설하는 드문 일을 보여주었네.

 

보고 들음에 크게 놀라 천지를 환히 비추었네.

신령한 서기가 진동하니 광겁 동안 견줄 바 드물었네.

천심을 기쁘고 즐겁게 하고 큰 서원을 정성스레 발원하여

빼어난 불상을 조성하고 뜻깊은 경전을 강연하였네.

 

우리 역대 조상님을 복되게 하고 일체 중생에까지 미치게 하여

종묘가 영원토록 굳건하여 억만세에 이르기를 도모했네.

 

저 부처의 도리는 커서 중생들의 괴로움을 없애주고,

저 성스러운 불상은 대자대비로 크게 구제하시네.

쇠를 녹여 종을 부어 만들어 일체 중생의 깨우침을 열게 하고,

고통을 그치게 하고 혼탁함을 경책하여 미래 세상까지 그침이 없네.

 

천순 6년 임오년(세조 8, 1462년) 10월 일.

 

감주(監鑄)

도제조(都提調)

효령대군(孝寧大君) 신 보(補)

임영대군(臨瀛大君) 신 구(?)

영응대군(永膺大君) 신 염(琰)

 

제조(提調)

추충좌익공신(推忠佐翼功臣) 정헌대부 호조판서 총중외탁지사(摠中外度支事) 창녕군(昌寧君) 신 조석문(曹錫文)

정헌대부 중추원사(中樞院使) 신 김개(金漑)

가정대부 중추원부사 경기도관찰출척사(京畿都觀察黜陟使) 겸 병마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 감창안집전수관농관학사(監倉安集轉輸觀農管學事) 제조형옥공사(提調刑獄公事) 지초토영전사(知招討營田事) 겸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 신 김종순(金從舜)

추충정난공신(推忠靖難功臣) 가정대부 중추원부사 오성군(筽城君) 신 유자환(柳子煥)

가선대부 병조참판 신 김국광(金國光)

 

부제조(副提調)

통정대부 승정원(承政院) 도승지 겸 상서윤(尙瑞尹) 지제교(知製敎) 충춘추관수찬관(充春秋館修撰官) 겸 판봉상시사(判奉常寺事) 지이조내직사준원사(知吏曹內直司樽院事) 신 홍응(洪應)

가선대부 행동판내시부사(行同判內侍府事) 신 신운(申雲)

가선대부 행동판내시부사 신 이존승(李存承)

출납(出納)

낭청(郞廳)

절충장군(折衝將軍) 행충좌위대호군(行忠佐衛大護軍) 간판내직사준원사(幹辦

內直司樽院事) 신 김석제(金石梯)

봉정대부 행호조정랑 신 우해(禹垓)

현신교위(顯信校尉) 행충좌위중부사용(行忠佐衛中部司勇) 신 김석산(金石山)

승의교위(承義校尉) 행충무위좌부사용(行忠武衛左部司勇) 신 조준(趙?)

도화원(圖畵院) 별좌(別坐)

절충장군 행의흥위호군(行義興衛護軍) 최경(崔涇)

감역(監役)

봉승대부(奉承大夫) 액정서(掖庭署) 사약(司?) 김덕생(金德生)

아전(衙前)

군기감(軍器監) 권지직장(權知直長) 김귀동(金貴同), 유득해(兪得海), 학생

(學生) 오맹손(吳孟孫)

주성장(鑄成匠)

정길산(鄭吉山), 이장수(李張守), 이산(李山), 안성로(安盛老), 방내은산(方內

隱山), 백산보(白山寶)

노야장(爐冶匠)

김몽총(金蒙寵)

주장(注匠)

이만(李萬), 장오마지(張吾?知) 홍복훈(洪福熏), 박효(朴孝), 구지금(仇知金)

조각(彫刻)

봉승대부 양춘봉(梁春奉), 장금동(張今同), ▨덕중(▨德中), 양오마지(梁吾?

知)

목수(木手)

지상(智尙), 김우길(金尤吉), 진▨동(秦▨同)

수철장(水鐵匠)

이득방(李得方), 박천길(朴千吉), 박▨▨(朴▨▨), 양생(梁生), 차영수(車永

守)

각자(刻字)

전악(典樂) 김귀생(金貴生),

전사(典事) 유자고미(劉者古未), 이칙삼(李則三), 강명산(姜命山), 김보대(金

寶代), 정춘발(鄭春發), 김금재(金今才), 오올미(吳吾乙未)

사령(使令)

김삼(金三), 하귀동(河貴同), 김자흥(金渚興), 작은올미(小斤吾乙未)

 

 

 흥천사종에 평호공 휘 개 자가 음각된 부분

                 음각내용 : 정헌대부 중추원사 신 김개

          (正憲大夫 中樞院使 臣 金漑)

 

 

 

 

京城 興天寺鐘銘

興天寺新鑄鐘銘 ?序

            嘉靖大夫吏曹?判臣韓繼禧奉 敎」

            宣敎郞守吏曹佐郞藝文奉敎兼承文」

院副校理臣鄭蘭宗奉 敎書恭惟我」

承天體道烈文英武殿下誕膺」

天命握符開運疆宇妥帖風雨時順於是端居」

淸穆恭默思道至聖之德景瑞以應乃於」

七年辛巳夏五月壬子」

釋迦如來舍利分身於檜巖寺祥光瑞氣熏灼于」

天異香勃?遍滿山谷孝寧大君補在寺」

進二十五枚」

上與」

慈聖王妃禮於」

內殿又分身安于」

含元殿又分身越丙辰大君又得又進」

王妃禮於」

內殿又分身丁巳」

上親製伽陀被之管絃偕」

王妃供養於」

含元殿又分身前後所得分身」

舍利總一百又二檜巖會中人自取去又不知其」

幾」

上大歡慶肆赦發大誓願」

親自?譯楞嚴經」

率宗親政府六曹臺省諸將爲」

祖宗及一切含靈造」

如來像一軀又爲」

中宮世子造」

一軀又夢」

觀音地藏二菩薩相對之異乃造」

二像旣成各安」

舍利於中妥靈于禪宗興天寺之」

舍利閣」

上同」

王妃禮拜於寶座燎香供養」

命鑄鴻鐘以警六時以導幽滯刻此緣起昭」

示無窮焉銘曰」

惟我」

聖神夙受」

佛記手執金輪繼天出治嚴恭寅畏不遑暇寐神」

人協和靈??至」

仰惟」

大覺廣攝緣類」

設利分身現希有事驚動耳目晃曜天地靈瑞震」

動曠?罕比」

天心悅豫弘誓發誠像設」

?容演了義經福我」

烈祖延及含靈」

宗圖永固彌億萬齡」

惟」

佛道弘普拔幽滯惟」

聖體」

佛大悲曠濟冶金鑄鐘開覺一切息苦警昏窮未」來際」

天順六年壬午十月 日監鑄」

都提調孝寧大君臣補 臨瀛大君臣?」

永膺大君臣琰」

提調推忠佐翼功臣正憲大夫戶曹判書」

摠中外度支事昌寧君臣曹錫文 正」

憲大夫中樞院使臣金漑 嘉 靖大夫」

中樞院副使京畿都觀察黜陟使兼兵」

馬都節制使監倉安集轉輸觀農管學」

事提調刑獄公事知招  討營田事兼開」

城府留守臣金從舜 推忠靖難功臣」

嘉靖大夫中樞院副使筽城君臣柳子」

煥 嘉善大夫 兵曹?判臣金國光」

副提調通政大夫承政院都承旨兼尙瑞」

尹知製敎充春秋館修撰官兼判奉」

常寺事知吏曹內直司樽院事臣 洪應」

嘉喜大夫行同判內侍府事臣申雲」

嘉善大夫行同判內侍府事臣李存承」

出納」

郞廳折衝將軍行忠佐衛大護軍幹辦內」

直司樽院事臣金石梯 奉正大夫行」

戶曹正郞臣禹垓 顯信校尉 行忠佐」

衛中部司勇臣金石山承義校尉行」

忠武衛左部司勇臣趙?」

圖畵院別坐折衝將軍行義興衛護軍崔」

涇」

監役奉承大夫掖庭署司?金德生」

衙前軍器監權知直長金貴同 兪得海」

學生吳孟孫」

鑄成匠鄭吉山 李張守 李山 安盛」

老 方內隱山 白山寶」

爐冶匠金蒙寵」

注匠李萬 張吾?知 洪福熏 朴孝」

仇知金」

彫刻奉承大夫梁春奉 張今同 ▨德」

中 梁吾?知」

木手智尙 金尤吉 秦▨▨」

水鐵匠李得方 朴千吉 朴▨▨ 梁」

生 車永守」

刻字典樂金貴生 典事劉者古未 李」

則三 姜命山 金寶代 鄭春發」

金今才 吳吾乙未」

使令金三 河貴同 金渚興 小斤吾」

乙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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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13권, 3년(1455 을해 / 명 경태(景泰) 6년) 2월 13일(기축) 2번째기사

이선·성승·김개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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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李渲)을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로, 성승(成勝)을 중추원 사(中樞院使)로, 김개(金漑)를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로, 조어(趙?)를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로, 이흥상(李興商)을 계림군(?林君)으로, 조상치(曹尙治)를 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으로, 이종목(李宗睦)을 충청도 병마 절제사(忠淸道兵馬節制使)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7책 1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세조 12권, 4년(1458 무인 / 명 천순(天順) 2년) 3월 19일(병오) 4번째기사

최항·박원경·어효첨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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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항(崔恒)을 형조 판서로, 박원형(朴元亨)을 중추원 사로, 어효첨(魚孝瞻)을 호조 참판으로, 민건(閔騫)을 형조 참판으로, 조효문(曹孝門)을 예조 참판으로, 유수(柳洙)를 공조 참판으로, 이순지(李純之)를 동지중추원사로, 송처관(宋處寬)을 중추원 부사로, 김세민(金世敏)을 인순부 윤으로, 홍원용(洪元用)을 한성부 윤으로, 강희안(姜希顔)을 호조 참의 겸 황해도 관찰사로, 김개(金漑)를 행 첨지중추원사로, 김담(金淡)을 예조 참의로, 한계희(韓繼禧)를 병조 참의로, 김질(金?)을 승정원 우부승지로, 권환(權?)을 첨지중추원사로, 이교연(李皎然)을 겸지병조사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7책 263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세조 43권, 13년(1467 정해 / 명 성화(成化) 3년) 7월 28일(신묘) 1번째기사

김개·김겸광·이내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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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金漑)를 의정부 좌참찬(左參贊)으로, 김겸광(金謙光)을 겸 의금부 지사(兼義禁府知事)로, 이내(李徠)·임자번(林自蕃)을 겸 도총부 부총관(兼都摠府副摠管)으로, 윤흠(尹欽)을 병조 참판(兵曹參判)으로, 한치의(韓致義)를 훈련원 도정(訓鍊院都正)으로, 선형(宣炯)·강윤범(姜允範)을 중추부 첨지사(中樞府僉知事)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8책 103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세조 47권, 14년(1468 무자 / 명 성화(成化) 4년) 8월 13일(경자) 3번째기사

이조에 전지하여 윤사분, 성봉조, 이변, 김개 등의 자급을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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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吏曹)에 전지(傳旨)하기를,

 

“윤사분(尹士昐)·성봉조(成奉祖)·이변(李邊)·김개(金漑)·황치신(黃致身)·어효첨(魚孝瞻)·김수온(金守溫)·정척(鄭陟)·정발(鄭發)·김연지(金連枝)·김세민(金世敏)·이효상(李孝常)·조관(趙寬) 등에게 1자급(資級)을 더하여 주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8책 20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세조 47권, 14년(1468 무자 / 명 성화(成化) 4년) 8월 13일(경자) 5번째기사

오백창, 정자영, 이영은, 이파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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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창(吳伯昌)을 예조 참판(禮曹參判)으로 삼고, 정자영(鄭自永)에게 가정 대부(嘉靖大夫)를 더하여 주고, 이영은(李永垠)을 이조 참의(吏曹參議)로, 김수령(金壽寧)을 호조 참의(戶曹參議)로, 이파(李坡)를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으로, 이극배(李克培)를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로, 김영유(金永濡)를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로, 이덕량(李德良)을 평양 부윤(平壞府尹)으로, 이의견(李義堅)을 행 귀성도호부사(行龜城都護府使)로 삼고, 윤사분(尹士昐)·이변·성봉조(成奉祖)에게 보국 숭록 대부(輔國崇祿大夫)를 더하여 주고, 조관(趙貫)·황치신(黃致身)·김개(金漑)·김수온(金守溫)에게 숭록 대부(崇祿大夫)를 더하여 주고, 김세민(金世敏)·어효첨(魚孝瞻)·구종직(丘從直)·정발(鄭發)에게 숭정 대부(崇政大夫)를 더하여 주고, 정척(鄭陟)·김연지(金連枝)·김예몽(金禮蒙)에게 정헌 대부(正憲大夫)를 더하여 주고, 이효상(李孝常)에게 가정 대부(嘉靖大夫)를 더하여 주고, 한치례(韓致禮)를 중추부 첨지사(中樞府僉知事)로, 윤말손(尹末孫)을 평안중도 절제사(平安中道節制使)로 삼았다. 이때 이극배는 평안중도 절도사로서 임기가 차서 마땅히 체임해야 하였으므로, 이에 이르러 오백창을 대신하여 본도(本道) 관찰사(觀察使)로 삼았다. 이극배에게 유시(諭示)하기를,

 

“경(卿)의 노고(勞苦)를 알고, 그 직임(職任)을 대신하게 하고자 한 지가 오래되었으나, 중국 사신의 행차로 인하여 능히 체대(遞代)하지 못하였다가 이제 오백창과 체임한 것이다. 또 그 마땅한 사람을 얻지 못하였고, 또 일시(一時)에 아울러 대체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경이 몇 달간 머무는 수고로움을 하게 된 것이니, 경은 이를 모두 몸받으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8책 20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성종 172권, 15년(1484 갑진 / 명 성화(成化) 20년) 11월 25일(무신) 4번째기사

판중추부사 김개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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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김개(金漑)가 졸(卒)하였다. 철조(輟朝)15579) ·조제(弔祭)·예장(禮葬)하기를 예(例)와 같이 하였다. 김개의 자(字)는 선택(宣澤)이며 본관이 안산(安山)인데 연성군(蓮城君) 김정경(金定卿)의 아들이다.

 

영락(永樂)15580) 임인년15581) 에 음직(蔭職)15582) 으로 처음에 남부 녹사(南部錄事)에 제수되어 전농시 주부(典農寺主簿)를 거쳐서 여러 번 올라 대호군(大護軍) 겸 판통례문사(兼判通禮門事)와 상서원 소윤(尙瑞院少尹)이 되었다.

 

경태(景泰)15583) 계유년15584) 에 뛰어올라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에 임명되고 을해년15585) 에 가선 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에 올랐으며, 천순(天順)15586) 기묘년15587) 에 세조(世祖)가 동교(東郊)에서 열무(閱武)15588) 하면서 김개를 장(將)으로 삼았는데, 세조가 진(陣)을 설치한 형세를 바라보고 그 남다름에 크게 감탄하여 특별히 가정 대부(嘉靖大夫)에 올렸다.

 

신사년15589) 에 자헌 대부(資憲大夫)에 오르고 또 정헌 대부(正憲大夫)에 올랐으며, 성화(成化)15590) 을유년15591) 에는 숭정 대부(崇政大夫)에 오르고 정해년15592) 의정부 좌참찬(議政府左參贊)에 제수되었다.

 

무자년15593) 에 숭록 대부(崇祿大夫)에 가해지고 계사년15594) 에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제수되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졸(卒)하니, 나이가 80세이다.

 

평호(平胡)라고 시호(諡號)하니, 다스림에 사고가 없은 것을 평(平)이라 하고, 오래 수(壽)한 것을 호(胡)라 한다. 김개는 용모가 아름답고 해서(楷書)를 잘 썼으며, 성품이 정교(精巧)하고 민첩하여 국가에 영선(營繕)15595) 이 있으면 감독하여 관장한 것이 많았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10책 645면

【분류】 *인물(人物) / *왕실-의식(儀式) / *역사-사학(史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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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5579]철조(輟朝) : 임시로 조회(朝會)를 정지하던 일.☞

[註 15580]영락(永樂) : 명(明)나라 성조(成祖)의 연호.☞

[註 15581]임인년 : 1422 세종 4년.☞

[註 15582]음직(蔭職) : 조상의 음덕(蔭德)으로 하는 벼슬.☞

[註 15583]경태(景泰) : 명(明)나라 경제(景帝)의 연호.☞

[註 15584]계유년 : 1453 단종 원년.☞

[註 15585]을해년 : 1455 단종 3년.☞

[註 15586]천순(天順) : 명나라 영종(英宗)의 연호.☞

[註 15587]기묘년 : 1459 세조 5년.☞

[註 15588]열무(閱武) : 임금이 몸소하는 사열.☞

[註 15589]신사년 : 1461 세조 7년.☞

[註 15590]성화(成化) : 명나라 헌종의 연호.☞

[註 15591]을유년 : 1465 세조 11년.☞

[註 15592]정해년 : 1467 세조 13년.☞

[註 15593]무자년 : 1468 세조 14년.☞

[註 15594]계사년 : 1473 성종 4년.☞

[註 15595]영선(營繕) : 건축물 따위를 신축하거나 수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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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헌대부 (正憲大夫)

조선시대 정이품(正二品) 동서반(東西班) 문무관(文武官)에게 주던 품계(品階)이다. 정이품의 상계(上階)로서 자헌대부(資憲大夫)보다 상위 자리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 이후로 문무관에게만 주다가, 대전회통(大典會通)에서는 종친(宗親: 임금의 4대손까지의 친족)과 의빈(儀賓: 임금의 사위)에게도 이 품계를 주었다.

 

해당 관직으로는 종친부(宗親府)의 군(君)·지종정경(知宗正卿), 의정부(議政府)의 좌참찬(左參贊)·우참찬(右參贊), 충훈부(忠勳府)의 군(君), 의빈부(儀賓府)의 위(尉), 돈령부(敦寧府)·중추부(中樞府)·의금부(義禁府)·경연청(經筵廳)·성균관(成均館)·춘추관(春秋館)·훈련원(訓練院)의 지사(知事), 홍문관(弘文館)·예문관(藝文館)의 대제학(大提學), 규장각(奎章閣)의 제학(提學), 육조(六曹)의 판서(判書), 한성부(漢城府)의 판윤(判尹),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좌빈객(左賓客)·우빈객(右賓客), 수원부(水原府)·광주부(廣州府)의 유수(留守),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의 도총관(都摠官), 제언사(堤堰司)·비변사(備邊司)·선혜청(宣惠廳)·준천사(濬川司)·교서관(校書館)·승문원(承文院)·봉상시(奉常寺)·종부시(宗簿寺)·사옹원(司饔院)·내의원(內醫院)·상의원(尙衣院)·사복시(司僕寺)·군기시(軍器寺)·사섬시(司贍寺)·군자감(軍資監)·장악원(掌樂院)·관상감(觀象監)·전의감(典醫監)·사역원(司譯院)·훈련원(訓練院)·선공감(繕工監)·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사도시(司寺)·사재감(司宰監)·전함사(典艦司)·전연사(典涓司)·소격서(昭格署)·종묘서(宗廟署)·사직서(社稷署)·경모궁(景慕宮)·제용감(濟用監)·평시서(平市署)·전생서(典牲署)·내자시(內資寺)·내섬시(內贍寺)·예빈시(禮賓寺)·전설사(典設司)·장흥고(長興庫)·빙고(氷庫)·장원서(掌苑署)·사포서(司圃署)·사축서(司畜署)·조지서(造紙署)·혜민서(惠民署)·도화서(圖畵署)·활인서(活人署)·와서(瓦署)·귀후서(歸厚署)·문소전(文昭殿)·연은전(延恩殿)·영희전(永禧殿)·화령전(華寧殿)·장생전(長生殿)·훈련도감(訓鍊都監)·양향청(糧餉廳)·금위영(禁衛營)·어영청(御營廳)의 제조(提調), 용호영(龍虎營)의 별장(別將), 총리영(總理營)·수어청(守禦廳)의 사(使) 등이 있었다.

 

돈령부·중추부지사를 제외한 지사, 양관대제학, 도총관, 좌우빈객, 제학, 제조, 총리영·수어청사는 모두 예겸(例兼)하였다. 처(妻)에게는 정부인(貞夫人)의 작호(爵號)가 주어졌다.

 

숭록대부 (崇祿大夫)

고려시대에는 1298년(충렬왕 24)에 문종 때 제정한 문산계(文散階)를 개정하면서 종1품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를 숭록대부로 고쳤다. 당시에는 정1품의 관등이 없어 숭록대부는 최고의 관등이었다.

 

1308년에는 중대광(重大匡)으로 개칭되었고, 종1품을 상 ·하로 구분하였을 때는 상을 삼중대광, 하를 중대광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초에 동반관계(東班官階)를 제정하면서 종1품 상을 숭록대부라 하였는데, 관직으로는 의정부의 좌 ·우찬성, 돈령부 ·의금부 ·중추원의 판사 등을 맡았다.

 

조선시대 종일품(從一品) 동서반(東西班) 문무관(文武官)에게 주던 품계(品階)이다. 종일품의 상계(上階)로서 숭정대부(崇政大夫)보다 상위 자리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 1466) 이후로 문무관에게만 주다가, 대전회통(大典會通, 1865)에서는 종친(宗親: 임금의 4대손까지의 친족)과 의빈(儀賓: 임금의 사위)에게도 이 품계를 주었다.

 

해당 관직으로는 종친부(宗親府)의 군(君)·지종정경(知宗正卿), 의정부(議政府)의 좌찬성(左贊成)·우찬성(右贊成), 충훈부(忠勳府)의 군(君), 의빈부(儀賓府)의 위(尉), 돈령부(敦寧府)·중추부(中樞府)·의금부(義禁府)의 판사(判事), 규장각(奎章閣)의 제학(提學),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이사(貳師), 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의 사(師)·부(傅), 제언사(堤堰司)·비변사(備邊司)·선혜청(宣惠廳)·준천사(濬川司)·교서관(校書館)·승문원(承文院)·봉상시(奉常寺)·종부시(宗簿寺)·사옹원(司饔院)·내의원(內醫院)·상의원(尙衣院)·사복시(司僕寺)·군기시(軍器寺)·사섬시(司贍寺)·군자감(軍資監)·장악원(掌樂院)·관상감(觀象監)·전의감(典醫監)·사역원(司譯院)·선공감(繕工監)·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사도시(司寺)·사재감(司宰監)·전함사(典艦司)·전연사(典涓司)·소격서(昭格署)·종묘서(宗廟署)·사직서(社稷署)·경모궁(景慕宮)·제용감(濟用監)·평시서(平市署)·전생서(典牲署)·내자시(內資寺)·내섬시(內贍寺)·예빈시(禮賓寺)·전설사(典設司)·장흥고(長興庫)·빙고(氷庫)·장원서(掌苑署)·사포서(司圃署)·사축서(司畜署)·전생서(典牲署)·조지서(造紙署)·혜민서(惠民署)·도화서(圖畵署)·활인서(活人署)·와서(瓦署)·귀후서(歸厚署)·문소전(文昭殿)·연은전(延恩殿)·영희전(永禧殿)·화령전(華寧殿)·장생전(長生殿)·훈련도감(訓鍊都監)·양향청(糧餉廳)·금위영(禁衛營)·어영청(御營廳)의 제조(提調) 등이 있었다.

 

돈령부와 중추부판사를 제외한 판사, 이사, 사, 부, 제학, 제조는 모두 예겸(例兼)하였다. 처(妻)에게는 정경부인(貞敬夫人)의 작호(爵號)가 주어졌다.

 

從一品官

숭록대부(崇祿大夫). 숭정대부(崇政大夫)-문.무반,

소덕대부(昭德大夫). 가덕대부(嘉德大夫)-종친,

광덕대부(光德大夫). 숭덕대부(崇德大夫)-의빈,

유덕대부(?德大夫). 의덕대부(宜德大夫)-종친,

정덕대부(靖德大夫). 명덕대부(明德大夫) -儀賓

군(君), 위(尉), 좌찬성(左贊成), 우찬성(右贊成), 판사(判事), 제학(提學=규장각의 관직),

사부(師傅=세손 강서원의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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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라고도 불리는 흥천사는 정릉(貞陵), 신덕왕후 강씨의 명복을 비는 원찰

(願刹)이다.

 

흥천사는 태조 6년(1397) 신덕왕후 강씨의 능침사찰로 오늘날 중구 정동에 창건되었던 170여 간의 대사찰로 조계종의 본산(本山)이었다.

 

태조 이성계는 1396년에 정릉을 조영하고 나서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흥천사를 건립하도록 하였다. 이리하여 이듬해인 정월부터 정릉 동쪽에 절터를 닦고 김사행(金師幸)이 건축 책임을 맡아 그해 8월에 170여간이나 되는 대가람을 완공하였다. 태조는 흥천사 건립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몇 차례나 공사 현장에 들러 일꾼들을 격려하고, 재물과 식량을 지급하는 등의 관심을 기울였다. 이어서 태조7년에 태조는 절 북쪽에 사리전(舍利殿)을 짓기 시작하였다.

 

이 전각은 안에 석가여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안치한 4-5층의 건물로 태조가 조성에 특별한 정성을 기울였다. 공사 기간 중에 왕자의 난이 일어났지만 드디어 정종 원년(1398) 10월에 완성 되었다. 개성에 머물고 있던 태조는 사리전 완공 소식을 듣고 바로 한성에 달려왔다. 그리하여 사리전의 낙성을 기념하는 수륙재(水陸齋)를 열어 선왕(先王)과 조상들의 명복을 빌었다.

 

태종 9년(1409)에 정릉을 현재 자리인 북한산 기슭으로 옮겼지만 흥천사는 계속해서 도성 안의 주요 사원으로 지위를 누렸다. 태종은 불교를 억압하는 정책을 시행하여 사찰의 토지와 노비를 제한하고, 전국의 242개 절만 남겼으며 사찰 재산을 몰수하였다. 그러나 흥천사를 잘 보호하라는 태조의 유언을 좇아 흥천사는 그대로 법등을 밝혀 나갔다.

 

그 후 세종도 이 절의 사리전을 중수하게 하고 관아 건물처럼 정기적으로 중수하도록 하였다. 세종 31년(1449)에 가뭄이 계속되자 이 절에서 기우제를 지냈는데 며칠 후에 비가 내리자 세종은 승려 140명에게 상을 내렸으니 이 절의 규모가 얼마나 큰 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조선왕조의 유학 장려로 왕실의 지원이 줄어들면서 흥천사는 쇠락하기 시작 하였다.

 

연산군 10년(1504)에 화재로 전각이 거의 타 버리고 사리전 만이 화재를 피하였지만 복구는 되지 않았다. 폐허로 방치되었던 흥천사는 중종 5년(1510) 3월에 중학(中學)의 유생들이 이단(異端)을 쓸어버린다고 부르짖으며 밤을 이용하여 불을 질렀으므로 보물, 불경과 통도사에서 전해오는 우리나라 유일의 석가여래의 사리를 안치한 사리전 마저 불에 타버려 완전히 폐사(廢寺)되었다.

 

세조 7년(1461)에 제작한 흥천사 대종(大鐘)은 동대문을 거쳐 종루(鐘樓)에 걸려 시각을 알려 주었다가 일제 때 덕수궁에 옮겨져 현재까지 걸려 있다. 흥천사가 역사에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은 선조9년(1576)에 정릉이 복원되면서 부터 였다.

 

태종 9년에 정릉을 북한산 아래로 옮겼을 때 능 가까이에 신흥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었다. 그러나 신흥암은 정릉과 너무 가깝다 하여 현종 10년(1669)에 석문(石門)밖 합취정(合翠亭) 터로 이건하고 신흥사(新興寺)라고 개칭 하였다.

 

그 후 정조 18년 (1794)에 승려 성민(聖敏),경신(敬信) 등의 뜻에 따라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았고, 고종 2년(1865)에는 흥선대원군의 지원으로 각도에서시주를 받아 절을 중창하였다. 이때 흥선대원군은 흥천사라는 이름으로 복원 하도록 하고, 흥천사(興天寺)라는 휘호를 내렸으므로 지금도 만세루에 그 현판이 걸려 있다. 이 절은 왕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였던 영친왕이 다섯 살 때 쓴 글이 이 절에 남아 있고, 조선왕조의 최후의 왕비 윤비가 6.25전쟁 때 피난 갔다가 돌아와 이곳에서 매우 어렵게 살았다. 하루 양식 한홉으로 두 끼 밖에 먹지 못했는데, 그 한 홉에서 매일 한 줌씩을 아꼈다가 향과 초를 사들고 흥천사에 올랐다.

 

흥천사 내에는 이 절의 중심 건물인 아미타여래를 모신 극락보전이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66호로 지정되어 있고, 그 오른편에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67호로 지정되어 있다.

 

 

# 흥천사종명(興天寺鍾銘) 글씨

 

정난종(1433~1489)선생의 자는 국형,호는 허백당, 본관은 동래이다.

 

일찌기 과거에 급제한 이후 세조 13년(1467) 황해도 관찰사로서 재직하던 중,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고, 성종 1년(1470년)에 동지중추부사로 사은사의 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이듬해 순성좌리공신 4등에 올라 동래군(東萊君)에 봉해졌다. 관작은 평안도 병마절도사, 우잠찬,이조,공조,호조의 판서등을 역임했고 시호는 익혜(翼惠)이다. 성리학에 밝고 서예에도 일가를 이루어 성임(成任)과 함께 세조,성종대 최고의 서예가로 일컬어 졌다. 초서,예서를 잘쓰고 특히 조맹부체에 뛰어났다.

 

서울 탑골공원의 [원각사비음(圓覺寺碑陰)], 경기도 양주의 [고령부원군신숙주묘표(高靈府院君申叔舟墓表)], [윤자운신도비(尹子雲神道碑)],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종명(洛山寺鐘銘)]과 고성의 [유점사종명(楡岾寺鐘銘)], 서울 덕수궁의 [흥천사종명(興天寺鍾銘)]등의 그의 글씨이다.

 

흥천사 (興天寺)에 대하여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에 있는 절. 조선 태조 4년(1395) 신덕 왕후가 죽자 1396년 능지()를 정릉()에 정하여 짓고 그 명복을 빌기 위하여 동쪽에 세운 절로, 조계종의 본산()으로 삼았다. 후 여러 차례 소실된 절을1794년에 지금의 위치에 창건하여 신흥사()로 하였다가 고종 2년(1865)에 흥천사(興天寺)로 이름을 고쳤다.

 

 

 

흥천사 종각의 편액. 위창 오세창의 글씨

 

흥천사는 조선 태조 이성계에 의해 정릉(貞陵)의 능사(陵寺)로 창건된 절이다. 절은 원래 지금의 중구 태평로 1가 서울시의회 건물 자리에 있었다.

 

 

▲ 옛 흥천사가 있었던 자리. 태평로 서울시의회 건물(2009.5.29 촬영)

정릉이 바로 그 옆, 지금의 중구 정동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릉은 태조의 비 신덕왕후 강씨를 모신 능이다.

 

흥천사 (興天寺)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의 말사이다. 1395년(태조 4) 왕이 신덕왕후 강씨가 죽자 능지를 정릉에 조영()하고, 왕비의 명복을 빌기 위해 1396년 창건하기 시작하여 1397년에 170여 칸이나 되는 대가람이 완성되었다. 창건과 함께 조계종의 본산이 되었고, 승당을 설치하여 항시 선()을 주관하는 참선 도량으로 발전하였다. 1398년 왕명에 따라 절의 북쪽에 사리전을 세웠다.

1410년(태종 10) 절의 탑을 보수하고, 1416년 기신재()를 지냈다. 1429년(세종 11)에는 왕명으로 절을 크게 중창하고, 1437년에 다시 사리전을 중수하면서 이 절을 관아 건물처럼 정기적으로 보수·수리하도록 법제화했다.

이처럼 흥천사는 창건 이후 억불의 시대적 조류 아래에서도 왕실의 지원과 장려를 받으며 꾸준히 법통을 이어갔다. 왕실의 제사나 왕족이 병들면 치병을 위한 기도가 이루어졌고, 가뭄에는 기우제가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성종 이후 왕실의 지원이 줄면서 퇴락하기 시작했다.

1504년(연산군 10)에는 화재가 일어나 전각이 완전히 소실되었다. 사리전만이 화재를 면했는데 당시는 연산군의 악행과 폐불이 자행되던 때라 복구하지 못하고 불상과 기물만 경기도 양주의 회암사()로 옮겼다. 1510년(중종 5) 사리각까지 불타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절터는 대신들에게 분배되었다.

그뒤 1569년(선조 2)에 왕명으로 함취정유지()로 절을 옮겨 짓고 신흥사()라 이름을 고쳤다. 1794년(정조 18)에는 승려 성민()·경신() 등이 새롭게 중창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1846년(헌종 12) 구봉화상()이 칠성각을 세우고, 1849년 승려 성혜()가 적조암()을 창건하였다.

1853년(철종 4)에는 법당을 중수하고 1855년 명부전을 새로 지었다. 1865년(고종 2)에는 흥선대원군의 지원으로 요사를 짓고 절을 중창한 뒤 다시 흥천사라 하였다. 1885년 대방을 중수하고, 1891년에 42수() 관음상을 봉안하였으며, 1894년에 명부전을 중수하였다.

근대에 들어와 새롭게 전각이 들어서면서 가람이 크게 확장되었다. 1933년 독성각이 불타자 이듬해에 재건하였고, 1942년에는 종각을 새로 지었다. 1959년에 칠성각을, 1967년에 용화전을, 그리고 1970년에는 연화대를 중수·신축하였다.

사찰 내에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이 5세 때 쓴 글씨가 남아 있고, 조선의 마지막 왕비인 순정효황후가 6·25전쟁 때 피난생활을 한 곳이기도 하다.

마지막 황태자 영왕의 글씨. 왼쪽 2번째 줄에 작은글씨 내용 '영친왕전하오세서'

순정효황후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일주문·종루·대방(만세루)·연화대·명부전용화전·북극전·독성각과 노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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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덕왕후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본 블로그의 다음주소를 검색해 보시면

되겠습니다. 서울 청계천 광통교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설명해 놓았습니다.

청계천 광통교(廣通橋) 이야기  :  http://blog.daum.net/yescheers/8597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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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 (提調)

 

시대 : 조선(朝鮮)

분류 : 관직>동반>문관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조선시대에 각 사(司)·원(院)의 관제(官制) 상 우두머리가 아닌 종일품(從一品), 또는 정·종이품(正·從二品)의 품계(品階)를 가진 사람이 겸직으로 임명되고, 그 관아(官衙)의 일을 지휘·감독하게 했다.

 

제조(提調) 위에 도제조(都提調)를 둘 때에는 정일품(正一品)으로 임명하고, 제조 밑에 부제조(副提調)를 둘 때에는 정삼품(正三品) 당상관(堂上官)으로 임명하였다.

 

또,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 임시로 설치한 기구에도 도제조·제조 및 부제조를 두어 그 일을 총괄하게 하였다.

 

비변사(備邊司), 선혜청(宣惠廳), 제언사(提堰司), 준천사(濬川司), 주교사(舟橋司), 교서관(校書館), 승문원(承文院), 봉상시(奉常寺), 종부시(宗簿寺), 사옹원(司饔院), 내의원(內醫院), 상의원(尙衣院), 사복시(司僕寺), 군기시(軍器寺), 사섬시(司贍寺), 군자감(軍資監), 장악원(掌樂院), 관상감(觀象監), 전의감(典醫監), 사역원(司譯院), 선공감(繕工監), 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 사도시(司導寺), 사재감(司宰監), 전함사(典艦司), 전연사(典涓司), 소격서(昭格署), 종묘서(宗廟署), 사직서(社稷署), 경모궁(景慕宮), 제용감(濟用監), 평시서(平市署), 전생서(典牲署), 내자시(內資寺), 내섬시(內贍寺), 예빈시(禮賓寺), 전설사(典設司), 장흥고(長興庫), 빙고(氷庫), 장원서(掌苑署), 사포서(司圃署), 사축서(司畜署), 조지서(造紙署), 혜민서(惠民署), 도화서(圖畵署), 활인서(活人署), 와서(瓦署), 귀후서(歸厚署), 문소전(文昭殿), 연은전(延恩殿), 영희전(永禧殿), 화령전(華寧殿), 장생전(長生殿), 능마아청(能?兒廳), 장용영(壯勇營), 훈련도감(訓鍊都監), 양향청(糧餉廳), 금위영(禁衛營), 어영청(御營廳) 등에 두었다.

 

비변사제조는 재신(宰臣)으로서 군려(軍旅)를 아는 자를 골라서 임명하였으며 정수(定數)는 없었으니, 의정부(議政府)의 동벽(東壁: 左贊成·右贊成), 서벽(西壁: 左參贊·右參贊), 이조(吏曹)·호조(戶曹)·예조(禮曹)·병조(兵曹)·형조(刑曹)의 판서(判書), 오군문(五軍門)의 대장(大將: 訓鍊大將·禁衛大將·御營大將·守禦使·摠戎使), 양관(兩館: 弘文館·藝文館)의 대제학(大提學), 양도(兩都: 開城·江華)의 유수(留守)가 예겸(例兼)하였다. 비변사에는 제조 외에 도제조와 부제조가 있었다.

 

선혜청제조는 3원으로 1인은 호조판서(戶曹判書)가 예겸하였으며 위에 도제조 3원이 있었다. 제언사제조는 2원으로 비변사의 당상관 중에서 겸임(兼任)하였으며 위에 도제조 3원이 있었다. 준천사제조는 6원으로 병조판서·한성판윤(漢城判尹)·삼군문대장이 예겸하고 1인은 비변사의 당상관 중에서 계차(啓差: 임금에게 아뢰어서 임명)하였다. 주교사제조는 6원으로 병조판서·한성판윤·삼군문대장이 예겸하고 1명은 비변사의 당상관 중에서 계차하였다.

교서관제조는 2원으로 규장각제학(奎章閣提學)이 예겸하였고, 아래에 부제조 2원이 있었다. 승문원제조는 정수는 없었으며 위에 도제조 3원과 아래에 부제조 1원 또는 2원이 있었다.

 

봉상시제조는 1원 또는 2원으로 위에 도제조 1원이 있었다. 종부시제조는 1원 또는 2원으로 위에 도제조 1원이 있었다. 사옹원제조는 4원으로 1인은 문재(文宰: 文官 宰臣), 3원은 종반(宗班: 임금의 本宗)이었다. 위에 도제조 1원, 아래에 부제조 5원이 있었다.

 

내의원제조는 1원으로 위에 도제조 1원, 아래에 부제조 1원이 있었다. 상의원제조는 2원으로 아래에 부제조 1원이 있었다. 사복시제조는 2원으로 1인은 의정(議政)이었다.

 

군기시제조는 2원으로 1인은 병조판서나 병조참판(兵曹參判) 중에서, 다른 1인은 무장(武將) 중에서 의수(擬授: 선발하여서 임명)하였다. 사섬시제조는 1원이다. 군자감제조 1원으로 호조판서(戶曹判書)가 예겸하였으며 위에 도제조 1원이 있었다. 장악원제조 2원이다.

 

관상감제조 2원은 영사(領事)의 아래에 있었다. 전의감제조 2원이다. 사역원제조 2원, 위에 도제조 1원이다. 선공감제조 2원으로 1인은 호조판서가 예겸하였다. 수성금화사제조 2원으로 병조판서와 공조판서 또는 한성판윤이 예겸하였다. 사도시제조는 1원, 사재감제조는 1원, 전함사제조는 2원, 전연사제조는 1원으로 선공감제조가 겸임하였다.

 

소격서제조 1원이고, 종묘서제조 1원으로 위에 도제조 1원이다. 사직서제조 1원으로 위에 도제조 1원이다. 경모궁제조는 2원으로 호조판서와 예조판서가 예겸하였으며 위에 도제조 1원이 있었다.

 

제용감제조 1원, 평시서제조 1원, 전생서제조 1원, 내자시제조 1원, 내섬시제조 1원, 예빈시제조 1원, 전설사제조 1원, 장흥고제조 1원, 빙고제조 1원, 장원서제조 1원, 사포서제조 1원, 사축서제조 1원, 조지서제조 2원 중 1인은 총융사(摠戎使)가 예겸하였다.

 

혜민서제조 2원, 도화서제조 1원으로 예조판서(禮曹判書)가 예겸하였다. 활인서제조 1원, 와서제조 1원, 귀후서제조 1원, 문소전제조 2원, 연은전제조 1원으로 문소전제조가 겸직하였다. 영희전제조 1원, 화령전제조 1원으로 수원유수(水原留守)가 겸직하였다. 장생전제조 3원으로 호조·예조·공조판서가 예겸하였다.

 

능마아청제조는 1원으로 병조판서(兵曹判書)가 예겸하였다. 장용영제조 1원으로 호조판서를 지낸 사람과 선혜청당상(宣惠廳堂上)을 지낸 사람 중에서 골라서 시켰다. 훈련도감제조는 2원으로 호조판서·병조판서가 예겸하였고 위에 도제조 1원이다. 양향청제조 1원으로 호조판서가 예겸하였다. 금위영제조 1원으로 병조판서가 예겸하고 위에 도제조 1원이 있었다. 어영청제조 1원으로 병조판서가 예겸하였고, 위에 도제조 1원이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김개 할아버지 기록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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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1권, 1년(1455 을해 / 명 경태(景泰) 6년) 윤6월 28일(임신) 2번째기사

황수신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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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신(黃守身)을 의정부 우참찬(議政府右參贊)으로, 권맹손(權孟孫)을 예문 대제학(藝文大提學)으로, 노숙동(盧叔仝)을 제학(提學)으로, 김순(金淳)을 형조 참판(刑曹參判)으로, 이호성(李好誠)·유응부(兪應孚)·안숭직(安崇直)·우효강(禹孝剛)을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로, 조완벽(趙完璧)·이사명(李思明)·김구(金鉤)를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로, 안숭효(安崇孝)를 덕녕 부윤(德寧府尹)으로, 홍원용(洪元用)을 경창부 윤(慶昌府尹)으로, 유수(柳洙)를 호조 참의(戶曹參議)로, 홍윤성(洪允成)을 예조 참의(禮曹參議)로, 윤사윤(尹士?)을 형조 참의(刑曹參議)로, 김개(金漑)·김억지(金億之)·박거겸(朴居謙)·조어(趙?)를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로, 윤자운(尹子雲)을 지사간원 사(知司諫院事)로, 민건(閔騫)을 경기 관찰사(京畿觀察使)로 원효연(元孝然)을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로, 이석형(李石亨)을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로, 유규(柳規)를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로, 김광수(金光?)를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7책 67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세조 2권, 1년(1455 을해 / 명 경태(景泰) 6년) 12월 27일(무진) 3번째기사

의정부에 전지하여 연창위 안맹담 등을 원종 공신에 녹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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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에 전지(傳旨)하기를,

 

“연창위(延昌尉) 안맹담(安孟聃)·성원위(星原尉) 이정녕(李正寧)·좌찬성(左贊成) 권제(權?)·전의위(全義尉) 이완(李梡)·지돈녕(知敦寧) 성봉조(成奉祖)·도절제사(都節制使) 이윤손(李允孫)·동지돈녕(同知敦寧) 이숭지(李崇之)·민공(閔恭), 경창부 윤(慶昌府尹) 홍원용(洪元用)·인순부 윤(仁順府尹) 권총(權聰)·청성위(靑城尉) 심안의(沈安義)·예조 판서(禮曹判書) 김하(金何)·동지중추(同知中樞) 우효강(禹孝剛)·부윤(府尹) 김돈(金墩)·중추원 사(中樞院使) 안지(安止)·동지중추 권맹손(權孟孫)·처치사(處置使) 이행검(李行儉)·지중추(知中樞) 이중지(李中至)·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 김구(金鉤)·동지중추 마변자(馬邊者)·행 상호군(行上護軍) 박경(朴炯)·상호군(上護軍) 김방귀(金方貴)·첨지중추(僉知中樞) 윤사분(尹士昐)·첨지중추 노중례(盧仲禮)·첨지중추 민발(閔發)·첨지중추 이준생(李俊生)·부윤(府尹) 윤보로(尹普老)·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 최득룡(崔得龍)·상호군 이비(李?)·첨지중추 이원기(李元寄)·도호부사(都護府使) 구문신(具文信)·호군(護軍) 정차량(鄭次良)·행 상호군(行上護軍) 정종(鄭種), 상호군 전순의(全循義)·임지의(林之義), 행 상호군 이효지(李孝智)·지사역원사(知司譯院事) 김자안(金自安)·첨지중추(僉知中樞) 고득중(高得中)·첨지중추 하우명(河友明), 직제학(直提學) 김문(金汶)·상호군 이장(李場)·전광의(全光義), 내시부사(內侍府事) 안충언(安忠彦)·상호군 최숙정(崔叔井)·목사(牧使) 김담(金淡)·행 호군(行護軍) 배상문(裵尙文)·상호군 이연손(李延孫)·목사 홍익생(洪益生)·동판내시(同判內侍) 지덕수(池德壽)·응교(應敎) 서강(徐岡)·사예(司藝) 김유(金?)·훈련 부사(訓鍊副使) 송중문(宋仲文)·응교(應敎) 주소(朱邵)·동지 내시(同知內侍) 윤언행(尹彦行)·교리(校理) 한계희(韓繼禧), 행 호군 이흥덕(李興德)·김이(金?), 도절제사(都節制使) 박호문(朴好問)·판전의감사(判典醫監事) 조경지(曹敬智), 호군 배맹달(裵孟達)·김유례(金有禮), 정랑(正郞) 윤사흔(尹士昕)·판관(判官) 이징규(李澄圭)·호군 평순 만호(平順萬戶) 맹준(孟峻)·정언(正言) 최선복(崔善福)·감찰(監察) 정침(鄭沈), 사직(司直) 안유(安愈)·최적(崔適)·하호(河浩), 행 사정(行司正) 박성손(朴星孫)·사직 이팔동(李八同)·현감(縣監) 정영통(鄭永通)·사직 임원준(任元濬)·훈련 녹사(訓鍊錄事) 김교(金嶠)·사정(司正) 김대래(金大來)·상호군 박불동(朴佛同)·사약(司?) 문금종(文金鍾)·사직 임어을운이(林於乙云伊)·학생(學生) 황양(黃良)은 원종 공신(原從功臣) 1등에 녹(錄)한다.

 

예조 판서(禮曹判書) 김조(金?)·호조 판서(戶曹判書) 이인손(李仁孫)·지돈녕(知敦寧) 강석덕(姜碩德)·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하연(河演)·예조 판서 이승손(李承孫)·동지돈녕(同知敦寧) 노물재(盧物載)·대사헌(大司憲) 노숙동(盧叔仝)·판중추원부사(判中樞院副使) 김순(金淳)·동지중추(同知中樞) 황치신(黃致身)·부윤(府尹) 안숭효(安崇孝)·좌참찬(左參贊) 안숭선(安崇善)·도절제사(都節制使) 김윤수(金允壽)·부윤 마승(馬勝)·도절제사 이종목(李宗睦)·행 첨지중추(行僉知中樞) 김개(金漑)·도절제사 하한(河漢)·행 첨지돈녕(行僉知敦寧) 김한(金澣)·판중추(判中樞) 조혜(趙惠)·판한성(判漢城) 기건(寄虔)·판한성 이견기(李堅基)·좌참찬(左參贊) 이숙치(李叔?), 행 상호군(行上護軍) 이령(李齡)·연경(延慶), 동지돈녕(同知敦寧) 심회(沈澮)·동부지돈녕(同副知敦寧) 심결(沈決)·증 사헌부 감찰(贈司憲府監察) 심준(沈濬), 도관찰사(都觀察使) 김연지(金連枝)·조서안(趙瑞安), 지중추(知中樞) 김청(金聽)·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 김황(金滉)·도절제사(都節制使) 한서룡(韓瑞龍)·행 상호군(行上護軍) 박거겸(朴居謙)·부윤(府尹) 이호성(李好誠)·중추원 부사 이사명(李思明)·관찰사(觀察使) 김광수(金光?)·동부지돈녕(同副知敦寧) 유자해(柳子偕)·동지돈녕(同知敦寧) 박거소(朴去疎)·동지중추(同知中樞) 설순(?循)·제학(提學) 유효통(兪孝通)·참판(參判) 유의손(柳義孫)·처치사(處置使) 이사평(李士平)·도관찰사(都觀察使) 정척(鄭陟)·부윤(府尹) 변효문(卞孝文)·판목사(判牧使) 이수의(李守義)·파원 위(坡原尉) 윤평(尹坪)·첨지중추(僉知中樞) 이휴(李携)·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 송복원(宋復元)·첨지중추 맹효증(孟孝曾)·부윤 이명겸(李鳴謙)·처치사(處置使) 유강(柳江)·참판(參判) 신석조(辛碩祖)·참의(參議) 어효첨(魚孝瞻)·지돈녕(知敦寧) 이선(李渲), 부제학(副提學) 김예몽(金禮蒙)·송처관(宋處寬), 중추원 사(中樞院使) 이승평(李昇平)·절제사(節制使) 이종효(李宗孝)·판도호부사(判都護府事) 변효경(卞孝敬)·절제사 유익명(兪益明)·관찰사(觀察使) 유규(柳規)·참판 이보정(李補丁)·관찰사 이석형(李石亨)·행 목사(行牧使) 김억지(金億之)·행 상호군(行上護軍) 박소(朴昭)·부제학(副提學) 김신민(金新民)·중추원 사 이변(李邊)·도절제사 이화(李樺)·절제사 강순(康純)·상호군 이효례(李孝禮)·첨지중추 마흥귀(馬興貴)·직제학 양성지(梁誠之)·첨지중추 낭이승거(浪伊升巨)·상호군 선석년(宣錫年)·사헌 집의(司憲執義) 이예(李芮)·겸 군기 감정(兼軍器監正) 심중은(沈仲恩)·직제학 강희안(姜希顔)·부정(副正) 주상례(朱尙禮)·우사간(右司諫) 이영견(李永肩)·지승문원사(知承文院事) 김득례(金得禮)·장령(掌令) 신영손(申永孫)·경력(經歷) 심치(沈?)·주부(主簿) 강자의(姜子儀)·판사(判事) 매우(梅佑)·상호군(上護軍) 조지당(趙之唐)·직집현전(直集賢殿) 이승소(李承召)·판관(判官) 유균(柳均)·사직(司直) 이임미(李林美)·부사직(副司直) 민운(閔?)·직제학(直提學) 김지경(金之慶)·행 사직(行司直) 김길호(金吉浩)·호군(護軍) 김유선(金有銑)·군사(郡事) 윤기견(尹起?)·양운석(梁雲石), 행 내시부사(行內侍府事) 이중근(李重斤)·부지승문원사(副知承文院事) 김인민(金仁民)·부정(副正) 권효량(權孝良)·호군(護軍) 김문달(金文達)·행 사정(行司正) 서수(徐綬)·정랑(正郞) 강희맹(姜希孟)·검상(檢詳) 김위(金瑋)·사예(司藝) 김질(金?)·정랑 홍연(洪演)·응교(應敎) 조근(趙瑾)·서령(署令) 김경손(金慶孫)·정랑 최사로(崔士老)·소윤(少尹) 장계증(張繼曾)·군사(郡事) 김윤복(金閏福)·소윤 강로(姜老)·판내시(判內侍) 홍득교(洪得敎)·행 동첨내시(行同僉內侍) 임동(林童)·행 동첨내시 이득부(李得富)·판내시 안노(安?)·행 지내시(行知內侍) 윤득부(尹得富)·정랑(正郞) 김서진(金瑞陳)·군사(郡事) 전가생(田稼生)·주부(注簿) 홍일동(洪逸童)·응교(應敎) 서거정(徐居正)·군사 이유약(李有若)·도관찰사(都觀察使) 민건(閔蹇), 정랑 이문형(李文炯)·성임(成任)·강미수(姜眉壽), 좌랑(佐郞) 이계손(李繼孫)·행 부사직(行副司直) 오연(吳衍)·좌랑 배효숭(裵孝崇), 도사(都事) 강효문(姜孝文)·직강(直講) 이익(李翊)·좌랑 이윤인(李尹仁)·부정(副正) 최효생(崔孝生)·판사(判事) 선형(宣炯)·사직(司直) 이득림(李得霖)·호군(護軍) 지유원(池有源), 사직 맹득미(孟得美)·석자의(石子議), 좌랑(佐郞) 김덕원(金德源)·직강(直講) 이계전(李季專)·좌랑 안초(安?)·교리(校理) 정문형(鄭文炯)·좌랑 오백창(吳伯昌)·사직(司直) 구문로(具文老)·행 사정(行司正) 허형손(許亨孫)·참군(參軍)·이숙기(李淑琦)·주부(注簿) 노경신(盧敬信)·행 사직(行司直) 황석생(黃石生)·행 부사정(行副司正) 유종화(柳從華)·행 사직 김일용(金日容)·사직 김효조(金孝祖)·호군(護軍) 민형손(閔亨孫)·행 사정(行司正) 양처공(梁處恭)·판관(判官) 홍귀해(洪貴海)·사정(史正) 홍백연(洪伯涓)·부사정(副司正) 김기(金耆)·직장(直長) 이인규(李仁畦),

 

부사직(副司直) 유산보(兪山寶)·조주(曹柱)·이종경(李宗慶)·이순경(李順慶), 행 사용(行司勇) 유포(柳?), 현감(縣監) 이계중(李繼重)·이계중(李係重), 행 사직(行司直) 김경손(金敬孫)·상호군(上護軍) 이중윤(李中允)·직장(直長) 송숙기(宋叔琪)·호군 안운수(安雲壽)·주부(注簿) 안의(安義)·봉훈랑(奉訓郞) 김득문(金得門)·부지사(副知事) 민희(閔僖)·선무랑(宣務郞) 이옥림(李玉林)·행 판관(行判官) 박지(朴枝), 사직(司直) 홍효손(洪孝孫)·이중말(李仲末), 군사(郡事) 김증(金曾)·박종대(朴宗大), 호군 박훤(朴萱)·행 사정(行司正) 이윤약(李允若)·판사(判事) 조유신(趙由信), 군사(郡事) 이전수(李全粹)·조원희(趙元禧), 사인(舍人) 이효장(李孝長)·부사정(副史正) 최계근(崔繼根), 사정 이미성(李美成)·하숙전(河叔傳), 대호군(大護軍) 이거을다개(李巨乙多介)·행 호군(行護君) 김가신(金可伸), 행 사직(行司直) 장평(張平)·마우기(馬右其), 호군 낭삼파(浪三波)·사직 배우문(裵珝文)·대교(待敎) 이문환(李文煥)·사직 남치효(男致孝)·주부(注簿) 김석제(金石梯), 사알(司謁) 조이생(趙異生)·최유지(崔有池), 부사정(副司正) 이득행(李得行)·부사정 원처중(元處中)·사용(司勇) 김의지(金義智), 부사정 전습(田濕)·김순거(金舜擧)·김상미(金尙美), 직장(直長) 박서창(朴徐昌)·호군 조경지(趙敬智)·부사직(副史直) 주비(周備)·부사정 이숭무(李崇茂)·사약(司?) 진수(陳守)·사용 강자흥(姜子興)·판관 주호(朱瑚)·행 호군(行護君) 박수미(朴壽彌), 겸교리(兼校理) 전동생(田?生)·조변안(曹變安), 교리(校理) 홍응(洪應)·군사(郡事) 나치정(羅致貞)·부사직(副司直) 정충원(鄭忠源)·겸교리(兼校理) 이상(李相), 현감(縣監) 임숙(任淑)·김호인(金好仁), 좌랑(佐郞) 정종주(鄭宗周)·부교리(副校理) 정효항(鄭孝恒)·겸박사(兼博士) 임효검(林孝儉)·정자(正字) 조지(趙祉)·권지 정자(權知正字) 구치동(丘致?)·지사(知事) 최사유(崔士柔)·부교리 조안정(趙安貞)·박사(博士) 허적(許迪)·권지 정자(權知正字) 이극기(李克基)·저작(著作) 윤효손(尹孝孫), 권지 정자 박숙진(朴叔?)·양순석(梁順石)·김자정(金自貞), 검열(檢閱) 윤민(尹?), 권지 정자 윤기반(尹起磻)·정자(正字) 정이아(鄭以雅)·사직(司直) 김유지(金有智)·장령(掌令) 이함장(李?長)·판관(判官) 임효선(林?善)·사예(司藝) 박인(朴璘)·행 사정(行司正) 김경장(金慶長)·지형조사(知刑曹事) 최중겸(崔仲謙)·도사(都事) 민순손(閔順孫)·판관 김영유(金永濡)·목사(牧使) 황보공(皇甫恭), 정랑(正郞) 최한경(崔漢卿), 이한겸(李漢謙), 대교(待敎) 유지(柳?)·소윤(小尹) 민효열(閔孝悅)·부사(府使) 조계팽(趙季?)·행 지사(行知事) 조상치(曹尙治)·판사 민원(閔瑗)·주부(注簿) 신자교(申子橋)·군사(郡事) 모순(牟恂)·겸 종학 박사(兼宗學博士) 이뇌(李賴)·직집현전(直集賢殿) 남수문(南秀文)·현감(縣監) 김한계(金漢啓)·좌랑(佐郞) 윤배(尹培)·사정(司正) 권경행(權景行)·군사(郡事) 김수온(金守溫)·감정(監正) 박제함(朴悌?)·현감 김영전(金永?)·정랑(正郞) 우계번(禹繼藩)·상호군(上護軍) 안위(安位)·겸 종학 박사(兼宗學博士) 원자직(元自直)·직제학(直提學) 안지귀(安知歸)·판사(判事) 이형(李逈)·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 김말(金末)·중추원 부사 조어(趙?), 교리(校理) 이파(李坡)·박건(朴楗), 수찬(修撰) 김수령(金壽寧)·행 주부(行注簿) 이우(李?)·군사(郡事) 김숙검(金叔儉)·행 정자(行正字) 권징(權徵)·저작(著作) 신의경(辛義卿), 부지승문원사(副知承文院事) 이계선(李繼善)·행 부정자(行副正字) 권제(權悌), 좌랑(佐郞) 윤필상(尹弼商)·강복(姜輻), 저작 정충기(鄭忠基)·감찰(監察) 유계번(柳季潘)·정자(正字) 이근(李覲), 권지 정자(權知正字) 최응현(崔應賢)·성수린(成壽?)·백사수(白思粹)·신말주(申末舟)·고태익(高台翼), 부정자(副正字) 강기수(姜耆壽)·경력(經歷) 하길지(河吉之)·좌랑(佐郞) 권지(權至), 부수찬(副修撰) 노사신(盧思愼)·성간(成侃)·정효상(鄭孝常), 좌사간(左司諫) 신전(愼詮)·동부지돈녕(同副知敦寧) 조무영(趙武英)·동첨지돈녕(同僉知敦寧) 이서(李墅)·승훈랑(承訓郞) 안훈(安訓)·승의랑(承議郞) 정심(鄭深)·부사직(副司直) 정윤각(鄭允恪)·통선랑(通善郞) 안극사(安克思)·주부(注簿) 송문림(宋文琳)·행 호군(行護軍) 허곤(許?)·소윤(少尹) 송처검(宋處儉)·판사 이종검(李宗儉)·행 사용(行司勇) 함귀(咸貴)·동부지(同副知) 윤흠(尹欽)·수사직(守司直) 이계정(李季町)·행 사용 윤사례(尹思禮)·감찰(監察) 이증석(李曾碩)·지통례(知通禮) 김수(金脩)·행 부사직(行副司直) 조숙생(趙肅生)·호군(護軍) 김효온(金孝溫)·부사직 원자정(元自貞)·소윤 나인(羅寅)·직강(直講) 조추(趙秋)·소윤 신후갑(愼後甲)·교리(校理) 권절(權節)·주부(注簿) 이지행(李?行)·능직(陵直) 이철견(李鐵堅)·사직(司直) 고수겸(高守謙)·행 호군(行護軍) 손계조(孫繼祖)·승의랑(承議郞) 신수지(申守祉)·부윤(府尹) 이심(李審)·부사(府使) 이언(李堰)·사예(司藝) 홍경손(洪敬孫)·현감(縣監) 정명응(丁明應)·헌납(獻納) 고태필(高台弼)·군사(郡事) 김호(金湖)·판관(判官) 윤영의(尹永義)·녹사(錄事) 서중성(徐仲誠)·행 부사직 장맹도(張孟道)·사정(司正) 여근도(呂近道)·행 사정(行司正) 김산해(金山海)·사정 김사일(金思一)·주부(注簿) 박근(朴瑾), 학유(學諭) 박계성(朴繼姓)·남승보(南勝寶), 저작 김성원(金性源), 훈도(訓導) 김구영(金九英)·김지(金祗), 감찰(監察) 이질(李?)·권지 학유(權知學諭) 박치명(朴致明)·권지 정자(權知正字) 김부필(金富弼)·훈도(訓導) 김병문(金炳文)·군사(郡事) 이계수(李桂遂)·좌랑(佐郞) 김용(金勇)·행 호군(行護軍) 이갑충(李甲忠)·만호(萬戶) 이종덕(李宗德), 부사직(副司直) 유숙(柳塾)·유양(柳壤), 부사정(副司正) 이창(李昌), 사직 유인효(兪仁孝)·이손경(李孫景), 행 사정(行司正) 우효선(禹孝先)·부사직 김석산(金石山)·소윤(小尹) 조철산(趙鐵山)·행 사직(行司直) 박지(朴之)·호군(護軍) 이계흥(李季興), 사직(司直) 차석견(車石堅)·전숭제(全崇悌), 부사직 설순조(薛順祖)·사용(司勇) 양사제(楊斯悌)·진용 교위(進勇校尉) 설창신(薛昌新)·행 사정(行司正) 설성(薛成)·사직 홍지(洪漬)·호군 장이생(張二生)·사직 송석순(宋碩孫)·사용 이효명(李孝明)·사직 권마(權摩)·사정(司正) 윤사지(尹思智)·행 사용(行司勇) 유인습(柳仁濕)·군사(郡事) 서조(徐遭)·현감(縣監) 이순백(李淳伯)·부사정(副司正) 손효윤(孫孝胤)·승훈랑(承訓郞) 신선경(愼先庚)·

 

대호군(大護軍) 윤오(尹塢)·참의(參議) 나홍서(羅洪緖)·행 사직(行司直) 조욱(趙頊)·만호(萬戶) 한자침(韓自琛), 호군(護軍) 이후(李逅)·한상완(韓尙完), 상호군(上護軍) 김효당(金孝當)·훈도(訓導) 민우증(閔友曾)·좌랑(佐郞) 조원지(趙元祉), 훈도 조서정(趙瑞廷)·인순부 승(仁順府丞) 정극인(丁克仁)·권지 학유(權知學諭) 김영벽(金映璧)·훈도 하한근(河漢根)·교수관(敎授官) 최수지(崔水智)·감찰(監察) 정침(鄭?)·훈도 김효신(金孝新)·판관(判官) 김계원(金繼元)·감찰(監察) 김한(金漢)·호군(護軍) 오익창(吳益昌)·대호군(大護軍) 윤신우(尹莘遇)·행 사용(行司勇) 전계원(全繼元)·훈련 녹사(訓鍊錄事) 이수붕(李壽朋)·행 부사정(行副司正) 하기린(河起麟)·행 사용 신흥례(申興禮)·사직(司直) 이근효(李近孝), 권지훈련녹사(權知訓鍊錄事) 최명전(崔命全)·강근손(姜謹孫), 사정(司正) 한계사(韓繼思)·권지훈련 녹사 김석종(金錫宗)·사정(司正) 강전(姜專)·권지 참군(權知參軍) 권효신(權孝信)·권지 훈련 녹사 노지(盧祉), 사정 박유손(朴有孫)·이지정(李之楨)·인진행(印珍行)·전자완(全自完), 권지 훈련 녹사 황진손(黃振孫)·사직(司直) 이청신(李淸新), 권지 훈련 녹사 김효손(金孝孫)·정승중(鄭承重), 행 녹사(行錄事) 이종연(李宗衍)·사직 남지(南贄)·사용(司勇) 이종생(李從生)·과의 장군(果毅將軍) 연수염(延壽恬)·부사(府使) 조규(趙珪)·현령(縣令) 조유(趙瑜)·행 주부(行注簿) 김명중(金命中)·사직 이찬원(李贊元)·사용 이효손(李孝孫)·만호(萬戶) 이승명(李承命)·군사(郡事) 이염의(李念義)·사정(司正) 노덕기(盧德基)·판통례문(判通禮門) 윤삼산(尹三山)·영평위(鈴平尉) 윤계동(尹季童)·부윤(府尹) 홍심(洪深)·행 상호군(行上護軍) 조연(趙憐)·행 사용(行司勇) 이세량(李世樑)·판관(判官) 이형손(李亨孫)·행 상호군 신자수(申自守)·부교리(副校理) 홍약치(洪若治)·교수관(敎授官) 유자문(柳子文)·도사(都事) 이유의(李由義)·지평(持平) 안중후(安重厚)·감찰(監察) 전효우(全孝宇)·좌랑(佐郞) 박찬조(朴纘祖)·정랑(正郞) 한서봉(韓瑞鳳)·부사직(副司直) 김상진(金尙珍)·주부(注簿) 윤자영(尹子濚)·봉례(奉禮) 이제림(李悌林)·감찰 최한보(崔漢輔), 봉교(奉敎) 권이경(權以經)·김겸광(金謙光), 대교(待敎) 민정(閔貞), 검열(檢閱) 안신손(安信孫)·김이용(金利用), 행 사정(行使正) 박부(朴?), 사정 정종아(鄭從雅)·판관 이계창(李繼昌)·훈도(訓導) 정지소(鄭至韶), 권지 정자(權知正字) 유천(柳阡)·김윤종(金潤宗), 현감(縣監) 김서(金?)·권지 정자 신복륜(申卜倫), 권지 학유(權知學諭) 이삼산(李三産)·최청(崔?), 훈도(訓導) 김해(金咳)·권지 학유 김적복(金積福)·훈도 남기(南?), 권지 학유 조호지(曹好智)·박맹지(朴孟智)·훈도 문소조(文紹祖)·감찰(監察) 이원효(李元孝), 권지 학유 조극치(曹克治)·이문요(李文饒), 검열(檢閱) 김영견(金永堅)·소윤(小尹) 한치인(韓致仁)·부사(府使) 양인백(楊仁伯)·주부(注簿) 유오(柳塢)·군사(郡事) 정결(鄭潔)·유수(留守) 김세민(金世敏)·부사정(副司正) 김삼산(金三山)·부윤(府尹) 이순지(李純之), 녹사(錄事) 김신조(金愼祖)·오창(吳彰)·박종무(朴宗武)·최치당(崔致?)·홍범(洪範)·문자수(文自修)·전세적(錢世積), 현감(縣監) 이수생(李壽生), 지인(知印) 문한생(文漢生)·유효지(柳孝池), 녹사(錄事) 안계의(安季毅)·호군(護軍) 장서(張瑞)·상호군(上護軍) 동간고(童干古)·사정(司正) 손계온(孫繼溫)·행 사정(行司正) 조계손(調繼孫)·행 현감(行縣監) 조맹손(曹孟孫)·행 부사정(行副司正) 박철산(朴鐵山)·사용(司勇) 김계종(金繼宗), 녹사(錄事) 김익륜(金益倫)·하맹산(河孟山)·김종(金鍾)·조순경(趙順敬)·강정(姜精)·염순(廉淳)·나달선(羅達線), 현감 박거명(朴居明)·녹사 박계종(朴季宗)·행 부사직(行副司直) 박한생(朴漢生)·훈도(訓導) 손차면(孫次綿), 권지 학유(權知學諭) 임수경(林秀卿)·김계금(金係錦)·곽자용(郭自容), 권지 정자(權知正字) 구자평(仇自平)·행 사용(行司勇) 박순달(朴順達), 권지 훈련 녹사(權知訓鍊錄事) 최계한(崔季漢)·이황진(李黃振), 사직(司直) 노윤필(盧允弼), 진의 부위(進義副尉) 조윤하(曹允夏)·이담(李聃), 경창부 승(慶昌府丞) 이숙함(李淑?)·사정(司正) 이철명(李哲命)·진의 부위 윤원동(尹元同)·사정 박사형(朴思亨)·진의 부위 박종문(朴宗文)·우군 사용(右軍司勇) 이규(李珪)·우군 사정(右軍司正) 허인(許麟), 권지 훈련 녹사 조경치(曹敬治)·오자경(吳子慶), 알자(謁者) 장말동(張末同)·사정 최함(崔涵)·사용(司勇) 인경(印卿)·호군(護軍) 김숭해(金崇海)·승의 교위(承義校尉) 김인지(金靷之)·수의 교위(修義校尉) 나문수(羅文繡), 돈용 부위(敦勇副尉) 최신지(崔信之)·최한지(崔漢之), 진용 부위(進勇副尉) 이말봉(李末奉)·승의 부위(承義副尉) 김계돈(金繼敦)·수의 부위(修義副尉) 김말손(金末孫), 진의 부위(進義副尉) 장영진(張永珍)·김자유(金自柔), 수의 부위 최준(崔浚)·이우(李遇)·김효생(金孝生)·백귀령(白龜齡)·이효량(李孝良)·백신손(白信孫)·유태종(劉泰從)·한후생(韓厚生)·신한생(申漢生)·이시영(李時濚)·이맹정(李孟禎), 진의 부위 정중손(鄭仲孫)·김자옥(金自玉)·이형(李衡)·유귀(柳龜)·최자청(崔自淸)·엄유경(嚴有敬), 승의 부위(承義副尉) 남치목(南致睦)·돈용 부위(敦勇副尉) 최림(崔霖), 사정(司正) 성장(成章)·견중달(甄仲達), 수의 부위 정기효(鄭起孝)·한상문(韓尙文)·진척(陳滌)·오준동(吳峻童)·봉극순(奉克純)·김경희(金敬熙)·조맹손(曹孟孫)·서민(徐敏)·황보종(皇甫種)·김여인(金汝仁), 진무 부위(進武副尉) 김자하(金自河)·전호인(全好仁), 진의 부위(進義副尉) 이종수(李從遂)·이산택(李山澤)·최장(崔章)·오변은(吳變殷), 승의 교위(承義校尉) 최급(崔汲), 사정(司正) 이덕유(李德裕)·승의 부위(承義副尉) 정문치(鄭文治)·부사정(副司正) 예인호(艾仁浩), 사용(司勇) 신치복(申致復)·정지주(鄭至周)·박치명(朴致明)·이맹근(李孟根)·이원양(李原壞)·황신지(黃信之), 수의 부위 박재문(朴載文)·김자렴(金自廉)·주계생(朱繼生)·윤처신(尹處信)·정덕행(鄭德行)·이종실(李種實)·권효(權曉)·장계창(張季昌)·안극유(安克柔), 돈의 부위(敦義副尉) 박맹손(朴孟孫)·부사정(副司正) 최경의(崔景義), 수의 부위(修義副尉) 공명선(孔明善)·김욱(金澳)·이초(李貂)·안효문(安孝文)·황무(黃茂)·나귀정(羅貴貞)·이계선(李季善)·손중혁(孫仲赫), 승의 교위(承義校尉) 조경소(曹敬所)·수의 교위(修義校尉) 윤흔(尹昕),

 

사정(司正) 이시(李蒔)·안승조(安承祖), 부사정(副司正) 소균(蘇鈞)·신한(辛澣), 행 사용(行司勇) 오유현(吳惟顯), 수의 부위 오윤생(吳尹生)·이복동(李復東)·정사(鄭仕)·최택(崔澤)·김계주(金季珠)·이응선(李應善)·장경지(張敬之)·강연(姜演)·한승조(韓承祖), 진의 부위(進義副尉) 손효정(孫孝貞), 사직(司直) 박문회(朴文會)·전실(田實)·박초(朴超), 부사직(副司直) 원효정(元孝貞)·오사하(吳事夏)·배경량(裴敬良), 사정(司正) 김경의(金敬義)·신효의(申孝義)·강유지(康有智)·김극경(金克敬)·이효공(李孝恭)·백분(白墳), 부사정(副司正) 최중수(崔仲水)·염포(廉抱)·정복례(鄭卜禮)·오치지(吳致智)·유순손(柳順孫)·유춘기(柳春寄), 사용(司勇) 심말생(沈末生)·최영하(崔永河)·임해산(林海山)·이득부(李得夫)·김하창(金河昌)·

 

이온(李溫), 사직 홍우전(洪禹傳)·조숭헌(趙崇憲), 부사직(副司直) 이수인(李守仁)·고의지(高義智)·배문욱(裵文郁)·안근(安謹), 사정(司正) 김효검(金孝檢)·손경종(孫敬宗)·박안지(朴安止)·박승무(朴升茂)·윤신손(尹信孫), 부사정(副司正) 민척지(閔滌之), 사용(司勇) 신가흠(辛可欽)·박거형(朴居亨)·장효생(張孝生)·배유인(裵有仁)·강극명(姜克明)·배유정(裵有貞), 현령(縣令) 이문검(李文儉), 사직(司直) 전영수(全寧壽)·이서남(李瑞南), 부사직(副司直) 정노(鄭老)·이문례(李文禮), 사정(司正) 남경인(南敬仁)·행 부사정(行副司正) 박복경(朴復卿)·수의 부위(修義副尉) 김석정(金石貞)·진의 부위(進義副尉) 전상미(田尙美), 진무 부위(進武副尉) 장득부(張得富)·김소생(金小生), 진의 부위 이안(李岸)·장중경(張仲敬)·노원말(盧元末)·최운걸(崔雲傑)·김복리(金福利)·김계남(金繼南)·손성우(孫成佑)·박만(朴萬)·신귀존(申貴存)·배안습(裵安濕)·유중련(劉仲連)·박귀성(朴貴成)·김귀치(金貴致)·윤산(尹山)·신경선(申敬善), 수의 부위(修義副尉) 한문(韓文), 진의 부위(進義副尉) 윤경(尹敬)·서경(徐敬)·김을부(金乙富)·박계무(朴戒茂)·한신(韓信)·박유산(朴由山)·최철생(崔喆生)·왕치손(王致孫)·김효례(金孝禮)·김중정(金仲情)·강득(姜得), 진무 부위(進武副尉) 김봉(金奉)·김거손(金居孫), 진의 부위(進義副尉) 윤금음동(尹今音同)·임복정(林福汀)·김수(金守)·김휴(金休)·김치강(金致江)·한귀견(韓貴堅)·이약로(李若老)·하인귀(河仁貴)·최중산(崔仲山)·이신(李信)·정수(丁守)·김영남(金永南)·수의 부위(修義副尉)·김처인(金處仁)·조송(趙松)·최원(崔元), 진무 부위(進武副尉) 김곤(金坤), 진의 부위 김여수(金儷水)·전을생(全乙生)·임유생(林有生)·정유달(鄭有達)·김벌개(金伐介)·김중근(金仲斤)·김중련(金仲連)·전수(全守)·정효생(鄭孝生)·김특생(金特生)·김광신(金光信)·원명례(元明禮)·박생(朴生)·정연수(鄭延守)·최해(崔海)·김수강(金守江)·양중생(梁仲生)·박득현(朴得賢)·김여생(金麗生), 수의 부위(修義副尉) 이춘무(李春茂)·김효손(金孝孫)·진무 부위(進武副尉) 안우(安祐), 진의 부위(進義副尉) 최영달(崔榮達)·고을부(高乙夫)·심의(沈義)·박금산(朴今山)·서문(徐文)·박중남(朴仲南)·최득강(崔得江)·김이장(金以?)·김성미(金成美)·안호생(安浩生)·박계생(朴戒生)·조맹희(趙孟熙)·심극인(沈克仁)·김효지(金孝智)·윤잠(尹岑)·정효산(鄭孝山)·서자평(徐自平), 좌승직(左承直) 신운행(申雲行), 알자(謁者) 김눌행(金訥行)·알자 현녹(玄祿), 우승직(右承直) 이존(李存)·호군(護軍) 김이충(金以忠), 사정(司正) 장유의(張有義)·임희무(林希茂)·김호의(金好義)·정득현(鄭得賢), 부사정(副司正) 이기동(李奇童)·이운강(李云江)·김효윤(金孝潤)·이유례(李由禮), 사용(司勇) 박성생(朴成生)·김이곤(金以坤), 부사정 정가지(丁可智)·조대덕(趙大德)·유여평(兪汝平)·김자려(金自麗)·구복상(仇復祥)·배돈(裵敦)·정효신(鄭孝信), 행 사용(行司勇) 주흥도(周興道)·배상례(裵尙禮)·조예산(趙禮山)·한자렴(韓自廉)·김성기(金成己)·이옹(李雍)·임의민(林義民)·김경동(金敬童)·유증손(庾曾孫), 사직(司直) 김선기(金善奇)·정의종(鄭義宗), 부사직(副司直) 최자윤(崔自潤)·고치화(高致和)·진무 부위(進武副尉) 이소동(李小同), 사정(司正) 김경손(金敬孫)·박건원(朴乾原)·김수산(金水山), 부사정(副司正) 명복초(明復初)·양안위(楊安渭)·이지화(李之華)·변이문(卞以文)·박효동(朴孝童), 사용(司勇) 유호선(兪好善)·장좌원(張佐元)·이복산(李福山)·전유선(全有先)·박춘경(朴春敬)·사직(司直) 서치회(徐致淮)·사용 정산휘(鄭山彙)·사직 홍영호(洪永湖)·권지 참군(權知參軍) 허탁(許倬)·행 전사(行典事) 황윤례(黃允禮)·행 부관사(行副管事) 장치손(張治孫)·행 관사(行管事) 김맹흥(金孟興), 학생(學生) 김일(金逸)·장순(張順), 사직 김담(金擔)·사정(司正) 김화(金和)·서리(書吏) 백질(白質)·학생 한인부(韓仁富), 별감(別監) 박반자(朴般者)·나잉질동(羅芿叱同)·김정(金貞), 종[奴] 양동(梁同)·종 홍지(洪地)·종 내은동(內隱同)·김광(金光), 사정(司正) 장인기(張仁己)·차마류(車馬硫)·부알자(副謁者) 심말동(沈末同)·사직(司直) 김검(金劍)·사정(司正) 한사민(韓思敏)·알자(謁者) 홍금강(洪金剛), 종 김막동(金莫同)·이수산(李壽山), 사용(司勇) 김파지(金波知)·김계수(金桂壽), 사정(司正) 최군자(崔群子)·학생(學生) 문장수(文長壽)·행 사용(行司勇) 박막동(朴莫同), 종 박용(朴龍)은 2등에 녹(錄)한다.

 

좌참찬(左參贊) 정갑손(鄭甲孫)·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이사임(李思任)·온성 절제사(穩城節制使) 유사지(柳士枝)·전첨(典籤) 신사렴(申士廉)·소윤(少尹) 신숙(辛肅)·감찰(監察) 신윤저(申允底)·군사(郡事) 정식(鄭軾)·호군(護軍) 박윤형(朴允亨)·부정윤 이통(副正尹統)·현감(縣監) 신계조(辛繼祖)·부사직(副司直) 민충원(閔沖源)·좌랑(佐郞) 권윤(權倫), 주서(注書) 유계분(柳桂芬)·정은(鄭垠), 사직(司直) 최유림(崔有臨)·정육을(鄭六乙), 부녹사(副錄事) 정숙(鄭?), 직장(直長) 이세보(李世珤)·김귀손(金貴孫), 녹사 이효충(李孝忠)·신윤종(申允宗)·이서장(李恕長)·신환(申煥), 사정(司正) 유정문(柳正文)·정윤복(鄭允福)·구승중(具承重)·유중공(劉仲恭)·최진강(崔進江), 행 현감(行縣監) 강권재(康勸才)·군사(郡事) 박겸(朴兼)·만호(萬戶) 이은(李恩), 사정(司正) 장효량(張孝良), 호군(護軍) 황규(黃珪), 부사(副使) 민유(閔瑜)·목사(牧使) 박대손(朴大孫), 사직(司直) 김말석(金末碩)·김격(金格)·주욱(周郁), 만호(萬戶) 도이공(都以恭), 녹사(錄事) 이백당(李伯棠)·민효건(閔孝騫)·임수생(林遂生)·유하식(柳河植)·강숙(姜淑), 진사(進士) 변효동(邊孝同)·시직(侍直) 이일동(李一同)·호군(護軍) 이효림(李孝林)·이계녕(李繼寧), 만호(萬戶) 유조(柳條)·대호군(大護軍) 노정지(盧定之), 호군 김귀손(金貴孫)·정랑(正郞) 윤잠(尹岑)·만호 박치례(朴致禮), 사정(司正) 공효로(孔孝老), 호군 유효용(柳孝庸), 주부(注簿) 권함(權?), 사용(司勇) 최희(崔曦)·군사(郡事) 이순숙(李淳淑)·현감(縣監) 이귀미(李貴美)·호군 신정보(辛鼎保)·행 사용(行司勇) 민효간(閔孝幹)·판관(判官) 윤계흥(尹繼興)·사직(司直) 김자성(金子省), 부사직(副司直) 장중순(張仲淳)·함제동(咸悌童)·정사충(鄭思忠), 사정(司正) 최신인(崔信仁)·수호군(守護軍) 오한(吳瀚)·사직 구신생(仇愼生)·부사직 이인충(李仁忠)·권지 참군(權知參軍) 박홍(朴烘)·행 호군(行護軍) 김귀진(金貴珍)·부사직(副司直) 차중의(車中義)·만호(萬戶) 김자성(金自誠)·권지 참군 배처경(裵處卿)·만호 김숭지(金崇智)·군사(郡事) 신현(辛鉉)·행 부사직(行副司直) 이우량(李遇良)·행 사정(行司正) 신계린(辛季?)·행 현감(行縣監) 정득혜(鄭得蕙)·행 부사정(行副司正) 송호(宋虎)·사직(司直) 우창신(禹昌信)·수호군(守護軍) 홍영하(洪永河)·부사정(副司正) 김상렴(金尙廉)·권지 참군(權知參軍) 인호(印琥)·부사정 송균(宋均)·권지 참군 조징(趙徵)·사직 신맹린(辛孟?)·승훈랑(承訓郞) 채효순(蔡孝順)·판사(判事) 이백상(李伯常)·선무랑(宣務郞) 조중발(趙仲發)·봉직랑(奉直郞) 김자균(金子均)·현령(縣令) 임산해(任山海)·군사(郡事) 조지상(趙之商)·승훈랑(承訓郞) 이첨(李?)·사용(司勇) 최호(崔灝), 사알(司謁) 심장기(沈長己), 사정(司正) 김처겸(金處謙)·김영로(金榮老), 현감(縣監) 김수화(金守和), 사직(司直) 허평중(許平仲)·현감 봉장(奉璋)·사직 정안경(鄭安敬)·부사직 노우(盧佑)·권지훈련 녹사(權知訓鍊錄事) 강오상(姜五常)·권지 참군(權知參軍) 이경(李經), 권지 훈련 녹사 이탁(李擢)·신사면(辛師勉), 현감(縣監) 조쟁(趙?)·송맹용(宋孟容), 군사(郡事) 임효지(林孝止)·권지 참군 노중청(盧仲淸)·권지훈련 녹사 김만중(金萬重)·만호(萬戶) 이백륜(李伯倫)·부사직(副司直) 송의손(宋義孫)·권지 참군 장윤문(張允文)·군사 김대정(金大鼎)·권지훈련 녹사 최수산(崔水山)·부사정 최명강(崔命剛)·부사직(副司直) 이종현(李宗顯)·사직 김창수(金彰壽)·직강(直講) 공기(孔?)·부사직 김승서(金承緖)·부사정 김맹돈(金孟敦)·사직 강효정(姜孝貞)·부사직 배효사(裵孝思)·만호(萬戶) 최사후(崔思厚)·행 사정(行司正) 이맹손(李孟孫)·지사(知事) 권영(權寧)·판관(判官) 김자흠(金子欽)·호군 봉회(奉繪)·행 부사정(行副司正) 변정(邊靖)·군사(郡事) 김유찬(金有纘)·현령(縣令) 최성로(崔性老)·권지 참군(權知參軍) 최여녕(崔汝寧)·만호(萬戶) 김온(金穩)·행 사정(行司正) 하여(河礪)·사직(司直) 박동문(朴東文)·부사직 이지(李地)·권지 참군 이기(李基)·부사직 양주(梁洲), 권지 참군 박동기(朴東起)·문득주(文得周), 부사직 변포(邊袍)·사직 김자건(金子騫)·행 부사정(行副司正) 구치홍(具致洪)·행 사정 이효근(李孝根)·현령(縣令) 조효례(趙孝禮)·행 대호군(行大護軍) 김극기(金克己)·도사(都事) 이항무(李恒茂)·현령 이존학(李存學)·판사(判事) 한창(韓昌)·판관(判官) 김효급(金孝給), 주부(注簿) 오맹경(吳孟經)·조변흥(曹變興), 현감(縣監) 하순경(河淳敬)·직장(直長) 조숙종(趙叔宗)·이병규(李丙奎), 녹사(錄事) 김호형(金好衡)·지통례문사(知通禮門事) 오신지(吳愼之)·부사(府使) 이사계(李師季)·현감(縣監) 이회정(李懷精)·좌랑(佐郞) 황윤원(黃允元)·수 사예(守司藝) 정광원(鄭廣元)·장령(掌令) 민효환(閔孝?)·서령(署令) 조계종(趙繼宗)·판관(判官) 홍석(洪錫)·소윤(小尹) 이윤손(李尹孫)·부사(副使) 이눌(李訥)·군사(郡事) 문여량(文汝良)·부사(府使) 정유용(鄭有容)·만호(萬戶) 박정(朴楨)·행 부정(行副正) 윤석강(尹石岡)·행 사직(行司直) 홍영강(洪永江), 행 부사정(行副司正) 남식(南軾)·이수유(李守柔)·부사정 유효손(柳孝孫)·이인화(李仁和), 권지 참군(權知參軍) 서거광(徐居廣), 부사정 이중호(李仲浩)·행 호군(行護軍) 설정신(薛丁新)·소윤(小尹) 안철손(安哲孫)·현감(縣監) 조정로(趙廷老)·군사(郡事) 최여즙(崔汝楫)·판관(判官) 정하생(鄭夏生)·사직(司直) 차재도(車載道)·부사직 양정(梁汀)·권지 참군(權知參軍) 하계지(河繼支)·사직 이존인(李存仁)·권지 참군 윤말행(尹末行)·대호군(大護軍) 장맹창(張孟昌)·사용(司勇) 유수창(柳秀昌)·권지 참군 최자공(崔自恭)·만호(萬戶) 이터(李攄)·군사(郡事) 이중산(李重山)·부사직(副司直) 지계강(池繼江)·사정(司正) 최경인(崔景仁)·부사정(副司正) 조연종(趙衍宗)·사직(司直) 박충무(朴沖武)·행 사정(行司正) 배담(裵湛)·대호군(大護軍) 이효상(李孝常)·목사(牧使) 김길통(金吉通)·판관(判官) 강이(康履)·주부(注簿) 박윤창(朴允昌), 사직 이중생(李重生)·안혜(安惠), 사정 문흔손(文欣孫)·호군(護軍) 이맹영(李孟英)·판관(判官) 황우형(黃友兄)·대호군 유지(庾智)·부정(副正) 박하(朴河)·행 사직(行司直) 김유지(金有智)·행 부사정(行副司正) 윤시우(尹時遇)·부사직(副司直) 호종실(扈從實)·진용 부위(進勇副尉) 노효온(盧孝溫)·부정(副正) 경유선(慶由善)·교리(校理) 김국광(金國光)·판관(判官) 신윤조(辛潤祖),

 

주부(注簿) 김여(金輿)·윤수역(尹壽域), 서령(署令) 서형(徐逈)·주부 김한생(金漢生)·내자 윤(內資尹) 서구(徐耉)·부사(府使) 이정(李楨)·감정(監正) 이반(李泮)·시윤(寺尹) 정지담(鄭之澹), 부사 이백첨(李伯瞻)·윤취신(尹就新), 호군(護軍) 김소남(金召南)·이구상(李具商), 부사(府使) 안기(安起)·호군 임부(林鳧)·행 사정(行司正) 박희성(朴喜成)·부정(副正) 권상공(權尙恭)·판관(判官) 최영순(崔永淳)·정랑(正郞) 양계원(楊繼元)·이종겸(李宗謙), 부사정(副司正) 조욱생(趙旭生)·현령 김위(金偉)·정랑 양준(梁峻)·사직 조인(趙寅), 판관 신중주(申仲舟)·유첨(柳瞻), 사직 김여산(金麗山)·교리(校理) 이영구(李英耉)·서령(署令) 조원복(趙元福), 좌랑 강희(姜曦)·박충지(朴忠至), 주부 박경손(朴慶孫)·현령 조안효(趙安孝), 주부 유전(柳?)·오치행(吳致行), 행 부사정(行副司正) 정포(鄭圃), 부사 안엄경(安淹慶), 행 부사직(行副司直) 박후(朴?)·사정(司正) 유영간(柳榮澗)·부사직 홍이생(洪利生)·승의 부위(承義副尉) 홍유구(洪有矩)·수의 부위 정윤식(鄭允軾)·부사직 이규(李揆)·사정 최억령(崔億齡)·행 사정 신자행(申自行), 부사정 변영(邊寧)·정의손(鄭義孫), 행 사정 유훈(柳訓)·사용(司勇) 권추(權錘)·행 호군(行護軍) 고약회(高若淮)·군사(郡事) 한입(韓粒)·사직 김인의(金仁義)·참군(參軍) 박섬(朴贍)·행 현감(行縣監) 안인후(安仁厚)·사정(司正) 신명지(申命之)·호군 이복겸(李福謙)·사정 한무(韓茂)·행 부사직 최전선(崔傳善)·행 부사정 박휘겸(朴?謙)·부사직 곽안방(郭安邦)·판관 최준(崔俊)·행 사정 이중결(李仲潔), 행 부사정 김여려(金汝礪)·김계증(金繼曾), 감찰 임사덕(林士德)·현감 박충서(朴忠恕), 주부 유효반(柳孝班)·강원량(姜元亮), 부사 이진(李?)·판관 유간(柳諫)·감찰 민자온(閔子溫)·현감 정차온(鄭次溫)·정랑 권기(權琦)·판사 이사맹(李師孟)·정랑 기질(寄質)·주부 박홍간(朴弘幹)·예빈시 윤(禮賓寺尹) 송거(宋?)·판관 박진(朴振)·부사정 이연기(李衍基)·사직 조원립(趙元立)·서령(署令) 연비(延庇)·현감 홍보(洪寶)·판관 복오(卜吾)·감찰 유쟁(柳諍)·감정(監正) 이효신(李孝信)·사예(司藝) 남양덕(南陽德)·정랑 정지하(鄭之夏)·판관 권맹정(權孟貞)·정랑 한부(韓?)·감찰 김자행(金自行)·교리 박심문(朴審問)·감찰 이흥손(李興孫)·정언(正言)·허추(許錘)·행 사정(行司正) 김윤선(金允善)·행 사용(行司勇) 구진명(丘進明)·행 사용 안효례(安孝禮)·통덕랑(通德郞) 문맹검(文孟儉)·행 감후(行監侯) 박유창(朴惟昌)·통사랑(通仕郞) 조서연(趙瑞延)·승사랑(承仕郞) 배약중(裵若中)·수 호군(守護軍) 오간(吳幹), 행 사용(行司勇) 복승리(卜承利)·고수영(高壽永), 행 현감(行縣監) 김균행(金均行)·부사정(副司正) 유간생(柳澗生)·도만호(都萬戶) 박계로(朴季老)·행 부사정 정득온(鄭得溫)·사용(司勇) 조유원(趙由元)·부사직(副司直) 이백원(李伯源)·사직 오상(吳湘), 부사직 정숭로(鄭崇魯)·황기곤(黃起?), 호군 이의견(李義堅), 행 부사정(行副司正) 정종로(鄭從魯)·김유완(金有完), 호군 장윤신(張允愼)·행 사용 김치형(金致亨)·사직 김치원(金致元)·부사직 신흥지(申興智)·부사(府使) 김유윤(金有潤)·부사직 이계번(李繼潘)·행 부사정(行副司正) 권종손(權宗孫)·만호(萬戶) 강지간(姜之幹)·호군(護軍) 박양손(朴陽孫)·부사직 곽회(郭恢)·행 현감(行縣監) 김숙(金淑)·사직 김자상(金自祥)·대호군 박보생(朴保生)·직강(直講) 박추(朴?)·이견의(李堅義), 서령(署令) 최함우(崔涵雨), 감찰(監察) 박자오(朴子晤)·송계상(宋繼商), 주부(注簿) 곽분(郭汾)·현감(縣監) 이수산(李壽山)·소윤(小尹) 김안생(金安生)·직강(直講) 정차공(鄭次恭)·지통례문사(知通禮門事) 신균(申均)·봉상 윤(奉常尹) 이중(李重)·내자 윤(內資尹) 이백량(李伯良)·부정(副正) 이사민(李士敏)·부사(府使) 권시(權?)·감정(監正) 배인(裵寅)·감정 방구행(房九行)·군사(郡事) 정포(鄭抱)·소윤(小尹) 허비(許扉)·직강(直講) 박여(朴旅)·정랑(正郞) 안자립(安自立)·서령(署令) 남회(南?)·군사(郡事) 하맹질(河孟?), 판관(判官) 심호(沈灝)·이수량(李遂良)·조휘(曹彙), 현령(縣令) 백이(白璃)·판관 김장춘(金長春)·교리(校理) 김숙자(金淑滋)·고사(庫使) 김보지(金保之)·좌랑(佐郞) 복여(卜予)·현감(縣監) 이달성(李達誠)·좌랑 송의(宋衣)·부사(府使) 송석손(宋碩孫)·행 사용(行司勇) 김활(金活)·부사직(副司直) 우치선(禹致善)·권지 참군(權知參軍) 장매동(張邁仝)·감정(監正) 민승서(閔承序)·부정(副正) 유담(柳潭), 직장(直長) 이운생(李芸生)·이인견(李仁堅), 판사(判事) 임효명(任孝明)·주부(注簿) 김처지(金處智), 녹사(錄事) 박전(朴?)·조신손(趙信孫), 부정(副正) 최숭(崔崇)·김인(金璘), 주부(注簿) 기축(奇軸)·겸 군기감 정(兼軍器監正) 김가(金?)·녹수 신수담(辛壽聃)·판관(判官) 박여황(朴如滉)·녹사 윤유(尹愈)·직장(直長) 송철산(宋鐵山)·부정 장진충(張進忠)·겸 군기감 정(兼軍器監正) 조안(趙安)·직장(直長) 조원우(趙元祐), 녹사 박장윤(朴長胤)·문수덕(文修德), 좌랑(佐郞) 김맹(金孟)·남질(南?), 정언(正言) 박건순(朴健順)·부교리(副校理) 김진손(金震孫), 감찰 김지도(金志道)·김확(金確)·이군발(李群拔), 현감(縣監) 원자정(元自正)·고사(庫使) 백희보(白希寶)·봉례(奉禮) 권미(權眉), 주부(注簿) 강행(姜行)·이진수(李眞粹), 부령(部令) 이강(李綱), 현감 권선(權僊)·조행(趙珩), 행 사직(行司直) 권돈(權惇)·대호군(大護軍) 조수문(趙秀文)·부사(副使) 김을손(金乙孫)·좌랑(佐郞) 유곡(柳?)·정랑(正郞) 송인창(宋仁昌)·행 사용(行司勇) 이석산(李石山)·정랑 김계희(金係熙)·상호군(上護軍) 김중렴(金仲廉)·부사(府使) 안치강(安致康)·판관(判官) 윤길생(尹吉生)·군사(郡事) 유효담(柳孝潭)·부사(府使) 김숙(金潚)·겸 주부(兼注簿) 김계권(金係權)·겸 군기 주부(兼軍器注簿) 이양검(李良儉), 녹사(錄事) 정흔(鄭?)·이증(李?), 겸 군기 부정(兼軍器副正) 강구(康懼), 행 사정(行司正) 이의돈(李義敦)·민계(閔啓)·정길생(鄭吉生)·변상조(邊尙朝), 호군(護軍) 윤훈(尹壎)·행 사용(行司勇) 김귀식(金貴識)·행 부사정(行副司正) 이정기(李正己)·호군 이온(李溫)·판관 김표(金?)·김승평(金昇平), 행 사정(行司正) 김원석(金元石),

 

행 사직(行司直) 조방림(趙邦霖)·행 사용(行司勇) 박황(朴煌)·사직 조숭헌(趙崇憲)·부사정(副司正) 이서(李?)·군사(郡事) 송엄경(宋嚴卿)·현감(縣監) 박양손(朴養孫)·만호(萬戶) 이유창(李愈昌)·녹사(錄事) 이종명(李宗明)·도만호(都萬戶) 손윤생(孫閏生)·행 현령(行縣令) 강상보(姜尙甫)·찰방(察訪) 박사란(朴思爛)·판관(判官) 민효원(閔孝源)·행 사정(行司正) 노옥곤(盧玉?), 사용(司勇) 홍계손(洪繼孫)·전봉선(田奉先), 부사(府使) 조지하(趙之夏)·목사(牧使) 이교연(李皎然)·부사 함한(咸漢)·현감(縣監) 권득경(權得經)·고사(庫使) 이인전(李仁全)·직강(直講) 허종항(許從恒)·행 사용(行司勇) 피상의(皮尙宜)·상호군(上護軍) 윤인보(尹仁甫)·호군 최용(崔勇)·학생(學生) 안의산(安議山)·호군 은여중(殷汝中)·학생 한옥(韓沃)·사직(司直) 서득귀(徐得貴)·학생 이존인(李存仁)·감정(監正) 오상신(吳尙信)·행 사직(行司直) 송첨(宋瞻)·호군 조흥주(趙興周)·행 정(行正) 김지(金智)·행 부사정(行副司正) 양희(楊?)·부사정 마현수(馬賢守)·학생 김극철(金克哲)·행 사정(行司正) 이창(李昌)·사용(司勇) 노현수(盧賢守)·부사정 최첨(崔沾), 사용 박산수(朴山守)·유택(柳澤)·신효충(申孝忠), 녹사(錄事) 이원발(李原發), 사용 오징(吳澄)·김권(金權)·김상존(金尙存)·지생(池生), 행 사정(行司正) 임간(任幹)·행 사직(行司直) 장정필(張貞弼)·사직 박지생(朴之生)·행 경력(行經歷) 홍도상(洪道常)·행 부사직(行副司直) 홍성강(洪性剛)·행 녹사(行錄事) 이숭수(李崇壽)·행 능직(行陵直) 성율(成慄)·첨지통례문사(僉知通禮門事) 윤희제(尹希齊)·궁직(宮直) 윤효동(尹孝童)·호군(護軍) 강효동(姜孝童)·호군 강휘(姜徽)·찰방(察訪) 이계충(李繼忠)·감찰(監察) 유자미(柳自湄)·봉상 윤(奉常尹) 유척(柳?)·지평(持平) 윤자(尹慈), 행 부사직(行副司直) 박종의(朴從義)·문환(文煥), 행 대호군(行大護軍) 조성산(趙成山), 행 사정(行司正) 권자화(權自和)·신자강(申子?), 판관(判官) 채신보(蔡申保), 행 사정(行司正) 손차순(孫次純)·주부(注簿) 홍의발(洪義發)·행 사정 권윤인(權允仁)·행 사직(行司直) 유맹돈(柳孟敦), 현감(縣監) 정인충(鄭仁忠)·하여덕(河如德), 행 부사정(行副司正) 민순(閔淳), 행 사정 최연정(崔沿汀)·이운의(李云?)·현득형(玄得亨), 부사(副使) 이배륜(李培倫)·행 사정 이계원(李繼原)·사직 박대생(朴大生)·현감(縣監) 정윤식(鄭允?)·목사(牧使) 권숭지(權崇智)·부사(府使) 김진지(金震知)·행 사직(行司直) 박공순(朴恭順), 행 사정(行司正) 성소적(成小積)·김정지(金貞之), 현감 조수무(趙秀武)·호군(護軍) 신맹종(愼孟終)·행 사직 홍서종(洪瑞終)·행 현감(行縣監) 최덕소(崔德紹)·행 사정 장숭리(張崇理), 대호군(大護軍) 권조(權措)·남상형(南尙亨)·박연생(朴衍生), 행 사정 원진성(元盡性)·부사직(副司直) 김승경(金承敬)·호군 이장수(李長壽), 부사직 정예(鄭禮)·오영화(吳永和)·김결생(金潔生), 사정(司正) 김평(金平), 부사직 오상례(吳尙禮)·최경(崔涇), 행 사직 이기행(李淇行)·부사직 안귀생(安貴生)·행 사용(行司勇) 이근강(李根剛)·호군 성이건(成以乾)·부사정 원자명(元自明)·부사직 임주(林稠), 호군 김영철(金永轍)·김황(金璜)·이승충(李升忠)·동현(童賢)·방계산(方桂山)·남덕중(南德中)·박석산(朴石山)·박번(朴蕃)·이의순(李義順)·권첩(權睫)·신복명(申復命)·안제륜(安濟倫)·이사진(李士?)·김치신(金致身)·김합(金?)·오몽례(吳蒙禮)·이사남(李思南)·지대중(池大中)·이사달(李思達)·고거경(高居敬)·이숙희(李?喜)·이영은(李永殷), 정랑(正郞) 윤찬(尹贊)·녹사(錄事) 윤임(尹任)·판관(判官) 윤휘(尹暉)·현감(縣監) 윤귀산(尹龜山)·부사정(副司正) 윤지곤(尹之?)·군사(郡事) 최윤용(崔允庸)·부사(府使) 유양식(柳陽植)·녹사 윤원근(尹元謹), 행 좌랑(行佐郞) 권온(權溫)·권양(權良), 부승(副丞) 강자평(姜子平)·군사(郡事) 윤정(尹貞)·행 사용(行司勇) 윤명생(尹明生), 호군(護軍) 권환(權?)·강위기(姜渭起)·장인의(張仁義)·오중동(吳仲?)·박형산(朴荊山)·황계열(黃季悅)·최중렴(崔仲廉)·이형(李衡)·하복생(河福生)·구첨(具瞻)·최자충(崔自忠)·윤신(尹信)·박원생(朴元生)·박현생(朴賢生)·최숙륜(崔叔倫)·진숭조(秦崇祖)·강중우(姜仲遇)·전정리(田正理)·유해(柳諧)·조유(趙瑠)·유지윤(柳之潤)·박거항(朴去?)·정차건(鄭次虔)·조경규(趙敬圭)·이종인(李種仁)·김효지(金孝智)·허의(許義)·민해(閔解)·윤작(尹作)·유영손(柳英孫)·허시(許柴)·차남달(車南達)·오몽의(吳蒙義)·김치부(金致富), 상호군(上護軍) 임효충(任孝忠)·소윤(小尹) 이하성(李夏成)·사직(司直) 유극경(柳克敬)·행 현감(行縣監) 김숙(金?)·사정(司正) 박건(朴健), 현감(縣監) 하정수(河程秀)·이중석(李仲石), 감찰(監察) 안의(安誼)·수의 부위(修義副尉) 채하상(蔡河祥)·호군(護軍) 노식(盧式)·선무랑(宣武郞) 김자원(金自原)·호군 김희직(金希直)·지사역원사(知司譯院事) 애검(艾劍)·호군 김달(金達)·유종식(柳宗植)·김영수(金永壽), 첨절제사(僉節制使) 김정언(金精彦), 호군 문사준(文思俊)·조중돈(曹仲敦)·이영미(李英美)·김평(金平)·채중명(蔡仲命)·이종인(李宗仁)·이근계(李根繼)·이근우(李近愚), 감찰 송흥문(宋興門)·부사직(副司直) 이성(李誠)·현감(縣監) 박소조(朴紹祖)·사정(司正) 이석산(李石山)·판사(判事) 장유(張裕)·정랑(正郞) 권항(權恒)·군사(郡事) 최연(崔淵), 정랑 조부정(趙敷正)·한희유(韓希愈), 부정(副正) 신희(申熙)·정자의(丁自義), 판관(判官) 김시충(金始忠), 주부(注簿) 진우신(陳右信)·최필지(崔泌之), 학생 변처관(邊處寬)·알자(謁者) 홍중산(洪仲山), 행 장루(行掌漏) 박근생(朴根生)·전유손(全有孫), 사력(司曆) 송유산(宋有山)·이오행(李吾行), 사약(司?) 한득경(韓得敬)·박춘미(朴春美)·허오행(許吾行), 시일(視日) 김처생(金處生), 감후(監候) 김자형(金子衡)·사증(史曾), 사신(司辰) 김귀지(金貴枝)·이흥문(李興門),

 

부사정(副司正) 호신지(扈愼之), 녹사(錄事) 이존약(李存約)·김효영(金孝英)·김지충(金止忠)·도경손(都慶孫)·오탁(吳擢)·최여격(崔汝激)·이보량(李保良)·김석규(金錫圭), 지인(知印) 최광명(崔廣明)·김신종(金愼終)·한승석(韓承錫)·윤선말(尹善末)·최여관(崔汝寬)·김권(金權)·조탁(趙擢)·임계하(林啓賀)·정회아(鄭懷雅)·임중형(林仲亨)·정걸(鄭傑)·이계간(李繼幹)·성유(成裕)·신충경(辛忠卿)·최경본(崔敬本)·안숙손(安叔孫)·변기(卞紀)·박윤빈(朴允斌)·김극정(金克精)·김함(金涵)·서제(徐濟)·박순조(朴順祖)·양정무(楊汀茂)·한승필(韓承弼)·최귀산(崔龜山)·권노(權?)·윤흥지(尹興智)·호군(護軍) 이언생(李彦生), 행 사용(行司勇) 박영만(朴英蔓)·장익선(張益善), 학생 최유연(崔有淵)·김계지(金季沚)·서준(徐樽)·장효원(張孝元)·홍하로(洪遐老)·이효산(李孝山)·김사려(金斯礪)·장익지(張益之)·이계종(李繼宗)·김휴(金休)·전실(全實)·박안립(朴安立), 급제(及第) 민서(閔敍), 지인(知印) 최창(崔漲)·진치중(陳致中)·박수(朴穗)·이상로(李尙老), 아악 령(雅樂令) 김양(金良)·김자정(金自精), 지인 이전공(李專恭), 부사직(副司直) 오숭년(吳崇年)·김종량(金宗亮), 주부(注簿) 주정(朱楨), 상호군(上護軍) 송취(宋翠)·부정(副正) 조득인(趙得仁)·서령(署令) 조효생(趙孝生)·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 신자준(申自準), 사정(司正) 이기(李奇)·한자유(韓自宥)·전유례(全有禮), 역승(驛丞) 김섬(金蟾), 사용(司勇) 정숙공(鄭淑恭)·오명수(吳明秀), 학생(學生) 조곤생(趙崑生)·박영손(朴永孫), 부사직(副司直) 조함(趙?)·황자중(黃自中), 학생 오치손(吳致孫)·김중광(金重光)·박주(朴稠), 판사 하결(河潔)·주부(注簿) 김시주(金時?)·송수중(宋守中), 소윤(小尹) 유한생(柳漢生)·판사 허면(許綿)·행 영(行令) 정육손(鄭六孫)·행 승(行丞) 윤호(尹壕), 행 부승(行副丞) 홍흔(洪?)·신면(申?), 행 녹사(行錄事) 박수장(朴壽長)·승(丞) 남칭(南?)·현감(縣監) 김승(金昇)·행 사직(行司直) 박철산(朴鐵山)·사용(司勇) 조유형(趙由亨)·내금위(內禁衛) 유기(柳嗜)·행 사정(行司正) 성구연(成九淵), 행 사용(行司勇) 박휘(朴輝)·김핍(金?)·사용 한천손(韓千孫)·행 부사정(行副司正) 안순민(安舜民)·사정 노석곤(盧石?)·녹사(錄事) 최유진(崔有?)·호군(護軍) 조경례(趙敬禮)·부사(府使) 윤은(尹垠)·봉례(奉禮) 손수산(孫壽山)·녹사 안계성(安繼性)·사용(司勇) 홍계(洪桂)·행 부관사(行副管事) 이원효(李元孝)·사정(司正) 김휘(金徽), 행 사용 우장(禹場)·문뇌(文賚), 사용 이공순(李公淳), 녹사(錄事) 윤처안(尹處安)·행 사용 조계손(趙繼孫)·사정(司正) 민회증(閔懷曾)·갑사 사용(甲士司勇) 김지의(金之義)·행 사용 어득회(魚得淮)·녹사(錄事) 홍설(洪渫), 사용 오순손(吳順孫)·변석륜(邊石崙), 호군(護軍) 김팽수(金彭壽)·사직(司直) 최윤화(崔允和)·검률(檢律) 김영정(金永鼎)·판사(判事) 윤은(尹殷)·소윤(小尹) 김안민(金安民)·주부(注簿) 노목(魯穆)·학생 신맹해(辛孟謔)·녹사 김수생(金水生)·학생 이문기(李文琦)·부사직(副司直) 김상전(金尙全)·학생 손일강(孫日强), 사정(司正) 손숙로(孫叔老)·임효진(任孝進), 학생 허상(許詳)·최운수(崔雲秀)·이유산(李宥山), 부사정 박숭련(朴崇連)·학생 김한경(金漢卿)·사정 양인수(梁仁壽), 학생 강자민(姜自敏)·염치보(廉致保)·최성철(崔成?), 사정 주치경(周致敬), 학생 전본(全本)·고석숭(高石崇)·오중경(吳仲敬)·전말생(田末生)·안경례(安敬禮)·강윤경(姜允敬)·김중신(金仲信)·이계산(李季山)·문의(文義), 참군(參軍) 임효돈(任孝敦)·사정(司正) 박유인(朴惟仁)·부녹사(副錄事) 김숭로(金崇老), 녹사(錄事) 전양지(田養知)·이의숭(李義崇)·이▩형(李▩衡), 직장(直長) 신송주(申松舟)·교리(校理) 이영서(李永瑞), 현감(縣監) 한여(韓黎)·매좌(梅佐)·김결(金潔)·오효영(吳孝永), 판관(判官) 김등(金?)·소윤(小尹) 정자제(鄭自濟)·직장(直長) 김기(金琦)·사정(司正) 홍순성(洪循性), 학생 우신(禹晨)·이계동(李繼童), 장사랑(將仕郞) 이덕량(李德良), 학생 이희(李憙)·윤덕생(尹德生)·노진경(盧盡卿), 군사(郡事) 이소생(李紹生)·좌랑(佐郞) 구달충(具達忠)·부사직(副司直) 이성(李筬)·수의 교위(修義校尉) 안근(安謹)·이신(李晨)·이직손(李稷孫), 진용 교위(進勇校尉) 유수(柳?)·승의 교위(承義校尉) 이중생(李仲生)·수의 부위(修義副尉) 이겸인(李兼仁)·부사직 이귀연(李貴然)·진용 교위 이중손(李仲孫)·승훈랑(承訓郞) 고수전(高壽全), 호군(護軍) 낭득리복(浪得理卜)·김우허내(金右虛乃)·임아구(林阿具), 사직(司直) 동송고로(童松古老)·황이질개(黃伊叱介)·이보을치(李甫乙赤)·마가을수(馬加乙愁), 부사직 이아두(李阿豆)·이두칭개(李豆稱介), 사직 동모다오치(童毛多吾赤), 부사직 유자리(柳者李)·유어응개(劉於應介), 사직 최회인가무(崔回因加茂), 부사직 동도을치(童都乙赤)·동양가(童陽可), 사정(司正) 양호(楊好)·양가(楊可)·이다로(李多老)·김오간주(金吾看主)·동기오거(童其吾車), 부사정(副司正) 마보랑개(馬甫郞介)·김구화(金仇火)·동어허리(童於虛里)662) , 사정 이자읍가(李者邑可)·김소을중개(金所乙衆介), 대호군(大護軍) 박눌어치(朴訥於赤)·부사정(副司正) 김주창개(金主昌介)·대호군 동이시개(童伊時介), 사정 이야질대(李也叱大)·최허(崔滸), 현감(縣監) 김자완(金自?)·감찰(監察) 최정(崔?)·학생 최옥순(崔玉筍)·종사랑(從仕郞) 이수치(李壽稚)·주부(注簿) 조충로(趙忠老), 호군(護軍) 양자곤(梁自?)·이임(李霖), 현감 손경중(孫敬仲)·감찰 홍긍(洪矜)·현감 최숙렴(崔淑濂)·행 사직(行司直) 김신(金莘)·행 부사직(行副司直) 이주(李?)·행 사직(行司直) 전사립(全思立)·봉훈랑(奉訓郞) 김자해(金自海)·조봉 대부(朝奉大夫) 노상문(盧尙紋)·행 부사직 고용지(高用知)·행 정(行正) 김파(金波)·행 판관(行判官) 홍이(洪?),

 

통선랑(通善郞) 황기(黃耆)·판관 이환문(李煥文)·봉훈랑 길진(吉珍)·승훈랑(承訓郞) 송사충(宋思忠)·봉훈랑(奉訓郞) 정예(鄭芮), 승훈랑 유구경(兪九經)·채여중(蔡汝中), 주부 김자해(金自海)·선무랑(宣務郞) 김지강(金至剛)·행 장루(行掌漏) 김상겸(金尙兼)·선무랑 이종발(李宗發)·무공랑(務功郞) 상수(相壽)·행 장루 김등(金?)·무공랑 박옥여(朴玉汝)·계공랑(啓功郞) 진효성(陳孝誠)·행 사력(行司曆) 윤숭로(尹崇老)·무공랑 박빈(朴彬), 계공랑 이종민(李宗敏)·김자강(金自剛), 행 시일(行視日) 오효하(吳?夏)·통사랑(通仕郞) 김맹보(金孟寶), 승사랑(丞仕郞) 이백손(李伯孫)·박광손(朴光孫), 사력(司曆) 전수산(田壽山)·승사랑 윤종지(尹宗智)·사력 정의산(鄭義山)·주부 김윤화(金允和)·종사랑 진자공(晉自恭)·심구강(沈九岡), 승사랑 전순지(全順之)·종사랑(從仕郞) 지득상(池得祥)·장사랑(將仕郞) 박숭검(朴崇儉)·감후(監候) 전석(田碩), 장사랑 정계손(鄭季孫)·홍자근(洪自根), 사신(司辰) 이승실(李承實), 장사랑 이희재(李希材)·김수산(金壽山)·김귀손(金貴孫), 판관 김종순(金從舜)·과의 장군 송석동(宋昔童)·녹사 김원신(金元臣)·판관 정안조(鄭安祚)·사정(司正) 한희경(韓希敬)·군사(郡事) 최광손(崔廣孫)·진용 교위 송인례(宋因禮)·시약 한공행(韓公行)·사직(司直) 김남흡(金南洽)·사정 장석숭(張石崇)·사용(司勇) 장보인(張寶仁)·부급사(副給事) 김효손(金孝孫)·현감 양계통(梁繼統)·도사(都事) 유유(柳綏)·판내자시사(判內資寺事) 최선문(崔善門)·행 주부(行注簿) 유효순(柳孝順)·주부 강효연(姜孝延)·행 윤(行尹) 안종검(安從儉)·행 판관(行判官) 김구(金?)·행 주부 김사공(金士恭)·행 소윤(行少尹) 경유근(慶由謹), 행 직장(行直長) 이부(李扶)·행 직장 권치중(權致中)·판관 이호문(李好文)·주부 한견(韓堅)·직장 문송수(文松壽)·판사 이양직(李良直), 주부 송중손(宋仲孫)·봉규(奉珪)·소윤(小尹) 김맹헌(金孟獻)·판관 조겸지(趙謙之), 소윤 임효인(任孝仁)·유경생(柳景生), 판사 신기(愼幾)·소윤 권자홍(權自弘)·주부(注簿) 권격(權格)·소윤 양수(楊脩)·판사 진중성(陳仲誠)·주부 문여령(文汝寧)·수 소윤(守少尹) 채지지(蔡知止)·판사 박이창(朴以昌)·주부 이호신(李好信)·수 소윤 양도(楊道)·수 판관(守判官) 이전지(李全之), 주부 박공순(朴恭順)·송계사(宋繼祀), 판관 정호연(鄭浩然)·주부 허인(許認), 판사 김위민(金爲民)·김기(金淇), 소윤 지호(池浩)·수 판관(守判官) 변상회(邊尙會)·주부 최제남(崔悌男)·판사 김중성(金仲誠)·소윤 이영상(李寧商)·주부 김해(金垓), 직장(直長) 신자형(申自衡)·조매(趙枚), 소윤 강진(康晉)·함우치(咸禹治), 주부 김팽로(金彭老)·한계윤(韓繼胤), 직장 신선갑(愼先甲), 행 주부(行注簿) 한자이(韓自邇)·판사 권호(權護)·주부 김윤덕(金允德)·판사 심선(沈璿)·주부 박병균(朴秉均)·소윤(小尹) 오치선(吳致善), 주부 이숙(李塾)·허추(許樞), 직장(直長) 이괴(李魁)·주부 최복해(崔福海)·판관(判官) 기분(奇賁)·직장 조지주(趙之周)·송춘림(宋春琳), 판관 정양(鄭穰)·주부 박철손(朴哲孫)·판관 양순(楊洵)·주부 안전(安詮)·직장(直長) 이효조(李孝祖)·첨지(僉知) 이형증(李亨增)·판관 이해(李垓), 주부 이월(李越)·경유형(慶由亨), 행 사용(行司勇) 양연수(楊延壽)·선무랑(宣務郞) 황중(黃中)·부사정(副司正) 이영달(李英達)·행 부사정(行副司正) 이순무(李順茂)·행 사정 김경온(金敬溫)·행 주부(行注簿) 지자전(池自?)·승훈랑(承訓郞) 김맹손(金孟孫), 선교랑(宣敎郞) 김남(金南)·최유(崔洧)·함상정(咸尙正), 선무랑(宣務郞) 전남보(全南寶)·진흠(陳欽)·김유경(金由敬), 행 사정(行司正) 최해(崔海)·무공랑(務功郞) 이지무(李枝茂)·직장(直長) 김효명(金孝明)·계공랑(啓功郞) 이계부(李繼富)·종사랑(從仕郞) 김일신(金日新)·승사랑(承仕郞) 유습(兪濕)·무공랑(務功郞) 이호(李祜)·행 사용(行司勇) 최후(崔厚)·통사랑(通仕郞) 김성강(金成剛)·행 녹사 전성(田成), 녹사(錄事) 유흥달(兪興達)·최윤하(崔潤河), 주부(注簿) 윤홍(尹洪)·임상로(林尙露)·하흡(河?), 만호(萬戶) 반형(潘衡), 사직(司直) 이미(李美)·이항전(李恒全), 사용(司勇) 박귀로(朴貴老)·사정(司正) 윤지성(尹之成)·만호 이처의(李處義)·부사정 주상질(朱尙質)·군사(郡事) 변대해(邊大海)·소윤(小尹) 우전(禹傳)·행 주부(行注簿) 우계손(禹繼孫)·직장(直長) 양호(楊浩)·주부(注簿) 이귀근(李貴根)·판관(判官) 이승석(李承碩)·직장 유이(柳貽)·부직장 이순(李恂)·녹사 손억(孫億)·직장 이문비(李文?)·승(丞) 박사제(朴斯悌)·녹사 정이원(鄭而元)·부사(副使) 김승간(金承幹)·서령(署令) 권염(權念)·사(使) 김직손(金稷孫)·행 주부(行注簿) 김강(金强)·승(丞) 김치정(金致精)·판관 이구관(李九寬)·봉훈랑(奉訓郞) 이보기(李保基)·소윤(小尹) 원호(元昊)·승 이문강(李文疆)·부승(副丞) 조이(趙怡)·갑사 사용(甲士司勇) 박효강(朴孝康)·부령(部令) 정이우(鄭而虞)·정랑(正郞) 정승소(鄭承韶)·사용(司勇) 전진목(全進穆)·도만호(都萬戶) 이흥무(李興茂)·사용 김선거(金善擧)·행 판관(行判官) 설종(?從)·부승(副丞) 한치형(韓致亨)·수의 교위(修義校尉) 유사의(柳思義)·사직(司直) 박경신(朴景愼)·행 부사정(行副司正) 조유(趙瑠)·진용 교위(進勇校尉) 신효성(申孝誠)·승의 교위(承義校尉) 이중미(李仲美)·사정 박명(朴明), 진용 부위(進勇副尉) 이흥손(李興孫)·강돈효(康敦孝)·강응주(姜應周), 승의 교위(承義校尉) 김종(金悰)·박영생(朴榮生), 행 사용(行司勇) 정지실(鄭之實), 진용 교위 안흠(安欽)·김진강(金振綱)·장윤륜(張允倫)·정회산(鄭懷山)·박예생(朴禮生),

 

승의 부위(承義副尉) 한승윤(韓承胤)·진무 부위(進武副尉) 김종인(金宗仁)·사직(司直) 허예(許禮)·부사직 윤황(尹璜), 승의 교위 문여정(文汝楨)·곽후(郭?), 수의 교위(修義校尉) 배구(裵鉤), 승의 교위 윤성미(尹成美), 승의 부위 정안의(丁安義)·신치의(辛致義)·장계흥(張繼興)·송존례(宋存禮), 승의 교위 최득윤(崔得潤), 돈용 교위(敦勇校尉) 권자성(權自誠)·나유정(羅有精), 승의 부위 김효지(金孝智)·김로(金輅), 진용 부위(進勇副尉) 박춘산(朴春山)·이계하(李季夏), 수의 부위 이창(李昌)·신숭덕(申崇德)·이숭례(李崇禮), 진용 교위(進勇校尉) 이순중(李淳中), 승의 부위(承義副尉) 이박(李樸)·이순(李恂), 승의 부위 김덕산(金德山), 진용 부위 박효린(朴孝璘)·최자양(崔自洋), 승의 부위 문극명(文克明)·장안로(張安老), 진용 부위 이하(李夏)·최자연(崔自淵), 사정(司正) 박흥손(朴興孫)·김영(金寧), 부사직(副司直) 김중현(金仲賢)·사정 이계손(李季孫)·부사정 이중언(李仲彦), 사용(司勇) 조성만(趙成萬)·장을수(張乙守)·김상영(金尙永), 사직 박의문(朴義文), 부사직 신권(申權)·손형(孫衡)·안처성(安處性), 사정 백양보(白良寶)·김자려(金自麗), 사용(司勇) 신여해(辛汝海), 부사직 한중공(韓仲恭)·권경지(權敬智), 사정 탁계정(卓季貞)·조지손(趙智孫)·안석강(安石强), 부사정 송기(宋耆)·김상인(金尙仁)·이순산(李淳山), 사용 김경덕(金敬德)·임숙지(林叔枝), 사정 김호의(金好義)·사용 서식(徐軾), 부사직(副司直) 강근지(姜近之)·강표(姜彪), 사정 김용지(金用智)·이흥우(李興雨)·이효손(李孝孫), 부사정(副司正) 경생(慶生), 부사정 황처중(黃處中)·이효중(李孝中), 사용(司勇) 성자달(成自達)·허간(許幹)·김비(金備), 사직 김여준(金汝俊), 부사직 정종(鄭綜)·박중생(朴重生), 사정 송지정(宋之精)·박경운(朴敬雲)·백종생(白終生)·이일신(李日新), 부사정 주의생(朱義生)·사용 설춘신(薛春信)·수의 부위(修義副尉) 이맹손(李孟孫)·진용 부위(進勇副尉) 박승손(朴升孫), 진무 부위(進武副尉) 박자(朴自)·박미(朴美), 진의 부위(進義副尉) 이흥춘(李興春)·김윤덕(金潤德)·오계손(吳季孫)·유석천(柳石泉)·오효달(吳孝達), 수의 부위 김석이(金石伊)·박계생(朴季生), 승의 부위(承義副尉) 이휘(李暉), 수의 부위 이치화(李致和)·장언(張彦)·조예(趙禮)·최을부(崔乙夫), 승의 부위 황익선(黃益善)·수의 부위 임윤덕(林允德), 진무 부위(進武副尉) 박명(朴明)·김자공(金自公), 연리(椽吏) 이서산(李瑞山), 전리(典吏) 장귀형(張貴亨)·양윤징(梁允澄), 사약(司?) 윤희수(尹希壽), 영사(令史) 양수안(梁水岸)·양자한(楊自漢)·김지(金祉)·문덕회(文德澮)·강득제(康得齊)·진양(陳良)·김설(金屑)·김종선(金從善)·이종생(李從生)·서문식(西門湜), 전사(典事) 홍자경(洪自瓊)·별감(別監) 함금생(咸今生), 전악(典樂) 김쇄생(金灑生)·김치(金致), 영사(令史) 나기(羅綺)·김길상(金吉祥)·이계산(李繼山)·김윤덕(金允德), 차자정(車自貞)·이춘경(李春卿), 전사(典事) 심장수(沈長壽)·영사(令史) 김경충(金敬忠)·학생 김경례(金敬禮), 영사 한승경(韓承敬)·윤생(尹生)·김구룡(金九龍), 별감(別監) 김동(金同)·영사 이명례(李明禮)·취라치(吹螺赤) 김처강(金處江)·별감 진치(陳治)·직률(直律) 허은(許恩)·사용(司勇) 박중이(朴衆伊), 전악(典樂) 황효성(黃孝誠)·김윤산(金允山)·송태평(宋太平)·전수(田壽), 관사(管事) 이승련(李勝連)·부전률(副典律) 김길생(金吉生)·전률(典律) 유우(柳雨)·직률(直律) 양망오지(梁忘吾之)·전악 도말생(都末生)·서리(書吏) 김존수(金存壽)·보충군(補充軍) 권계동(權季同)·별감(別監) 김매방(金每方), 종[奴] 박금경(朴今經), 별감(別監) 김용수(金龍守)·박금강(朴今剛), 급사(給事) 김금음동(金今音同)·종 현물금(玄勿金)·재인(才人) 천우(天雨)·부급사(副給事) 김검송(金檢松) 등은 3등에 녹(錄)한다.”

 

하였다.

 

드디어 교서(敎書)를 내리기를,

 

“공(功)을 기록하고 상(賞)을 주는 것은 나라의 아름다운 법이다. 내가 부족한 덕(德)으로 외람되게 대위(大位)663) 에 앉았는데, 잠저(潛邸)664) 에서의 어려울 때를 회고하니, 덕이 같은 신하들이 전후 좌우에서 과인을 보호하였기 때문이다. 혹은 나의 동렬(同列)로서, 혹은 나의 요좌(僚佐)로서 혹은 가까운 친척으로서 혹은 오래 수종(隨從)하던 사람으로서, 혹은 내가 중국에 갈 때에 발섭(跋涉)665) 의 노고를 함께 하였고, 혹은 정난(靖難)에 참여하여 방위(防衛)에 힘쓰고, 아래로 복예(僕隷)에 이르기까지 힘을 다하였으니, 모두 원종(原從)의 공(功)이 있어서 오늘의 아름다움에 이르렀으니, 내가 감히 잊겠는가? 마땅히 먼저 포상(褒賞)하는 법을 보여서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아니하는 의리를 굳게 하려고 한다. 너희 의정부에서는 나의 지극한 마음을 몸받아서 마땅히 빨리 거행할 것이다.

 

1등에게는 각각 1자급(資級)666) 를 더하여 주고, 자손은 음직(蔭職)을 받게 하며 후세에까지 유죄(宥罪)667) 하고 부모에게는 작(爵)을 봉(封)하고,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자원에 따라 산관(散官)668) 1자급을 더하여 주라. 2등에게는 각각 1자급을 더해 주고 자손을 음직을 받게 하고, 후세에까지 유죄(宥罪)하고,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자원에 따라 산관 1자급(資級)을 더하여 준다. 그 가운데 자손이 없는 자에게는 형제·사위·조카 중에서 자원에 따라 산관 1자급을 더하여 준다. 3등에게는 각각 1자급을 더해 주고, 자손은 음직을 받고 후세에까지 유죄(宥罪)한다. 공신(功臣) 가운데 통정 대부(通政大夫)669) 이상은 자손·형제·생질(甥姪)670) ·사위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자원에 따라 산관(散官) 1자급(資級)을 더하여 주고, 죽은 자에게는 각각 본등(本等)에 의하여 시행하고 1자급(資級)을 추증(追贈)한다. 죄를 범하여 산관이 된 자는 본품(本品)으로 서용(敍用)하고 상중(喪中)에 있는 자와 연고가 없이 산관이 된 자는 1자급을 더하여 주어 서용(敍用)하며, 영구히 서용하지 못하게 된 자에게는 벼슬길에 통함을 허락한다. 고신(告身)을 거둔 자는 돌려주고, 첩의 아들은 한품(限品)을 적용하지 말고, 공사 천인(公私賤人)은 모두 천인을 면하게 하고, 사천(私賤)은 주인에게 공천(公賤)으로 보상하게 한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7책 102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변란(變亂)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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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662]동어허리(童於虛里) : 동맹가첩목아(童猛哥帖木兒)의 이복 동생.☞

[註 663]대위(大位) : 임금의 자리.☞

[註 664]잠저(潛邸) : 임금이 되기 전의 집.☞

[註 665]발섭(跋涉) : 산을 넘고 물을 건넘.☞

[註 666]1자급(資級) : 조선조 때 벼슬에 따른 품위(品位)의 등급. 정(正)·종(從)·각 품(品)마다 상(上)·하(下) 두 자급이 있었으므로 총 36자급이 있었음.☞

[註 667]유죄(宥罪) : 죄를 지으면 그 죄를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는 것.☞

[註 668]산관(散官) : 자급(資級)만 받고 보직(補職)을 받지 못한 관리를 말함.☞

[註 669]통정 대부(通政大夫) : 정3품.☞

[註 670]생질(甥姪) : 조카.☞

 

세조 3권, 2년(1456 병자 / 명 경태(景泰) 7년) 3월 5일(갑술) 3번째기사

취로정을 낙성함에 제조 금천군 박강 등에게 잔치를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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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의〉 후원(後苑)에 신정(新亭)을 낙성(落成)하니, 제조(提調) 금천군(錦川君) 박강(朴薑),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김개(金漑) 등에게 잔치를 내려 주고, 또 역부(役夫)에게 술을 내려 주었다. 이름은 ‘취로정(翠露亭)’이라 하고 앞에 못을 파서 연꽃을 심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7책 118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사급(賜給) / *건설-건축(建築) / *건설-토목(土木)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6일(정묘) 1번째기사

종명(鐘銘)을 고치기 위해 새 종을 경회루 문밖으로 끌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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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관사(官司)의 품종(品從)2089) 을 모아 신종(新鐘)을 경회루(慶會樓)의 문 밖으로 끌어내니, 장차 종명(鐘銘)을 고치려는 것이었다. 이보다 앞서 지중추원사 박강(朴薑)과 중추원 부사 김개(金漑)에게 명하여, 큰 종(鐘)을 주조하게 하여 경회루 남쪽에 자그마한 누각(樓閣)을 지어 이에 달아 놓았는데, 이때에 이르러 광화문(光化門) 오른쪽에 누각을 짓고 이를 달도록 명한 것이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7책 219면

【분류】 *예술-미술(美術) / *건설-건축(建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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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2089]품종(品從) : 관리들이 그 관품(官品)에 따라 나라의 역사(役事)에 내보내어 일을 돕게 하던 종. 종종 나라의 가벼운 역사(役事)에 조역(助役)시켰음.☞

 

 

세조 11권, 4년(1458 무인 / 명 천순(天順) 2년) 1월 17일(병자) 1번째기사

후원에서 관사하고 양정·홍윤성 등에게 말 1필씩을 하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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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 나아가 활쏘는 것을 구경하니, 임영 대군(臨瀛大君) 이구(李?)·영응 대군(永膺大君) 이염(李琰)·계양군(桂陽君) 이증(李?)·의창군(義昌君) 이공(李?)·익현군(翼峴君) 이관(李?)·밀성군(密城君) 이침(李琛)·화천위(花川尉) 권공(權恭)·청성위(靑城尉) 심안의(沈安義)·하성위(河城尉) 정현조(鄭顯祖)·영의정 정인지(鄭麟趾)·좌의정 정창손(鄭昌孫)·운성 부원군(雲城府院君) 박종우(朴從愚)·좌참찬 박중손(朴仲孫)·판한성(判漢城) 김하(金何), 대사헌 김세민(金世敏)·예조 판서 이승손(李承孫)·우참찬 성봉조(成奉祖), 병조 판서 홍달손(洪達孫), 지중추원사 양정(楊汀)·홍윤성(洪允成)·박강(朴薑), 공조 판서 심회(沈澮)·병조 참판 김순(金淳)·이조 참판 최항(崔恒)·예조 참판 이순지(李純之), 중추원 부사 심결(沈決)·김개(金漑)·봉석주(奉石柱), 한성부 윤 황효원(黃孝源), 형조 참판 송처관(宋處寬), 승지 등과 이조 참의 이극감(李克堪)·예조참의 조효문(曹孝門)·호조참의 강희안(姜希顔)·병조지사 권환(權?), 행 상호군(行上護軍) 김길통(金吉通)·어득해(魚得海)·이비(李?) 등이 입시하였다. 양정·홍윤성·홍달손·권지(權摯)·정식(鄭軾)·김길통에게 각기 말 1필씩을 내려 주었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7책 249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사급(賜給)

 

 

세조 12권, 4년(1458 무인 / 명 천순(天順) 2년) 3월 19일(병오) 4번째기사

최항·박원경·어효첨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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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항(崔恒)을 형조 판서로, 박원형(朴元亨)을 중추원 사로, 어효첨(魚孝瞻)을 호조 참판으로, 민건(閔騫)을 형조 참판으로, 조효문(曹孝門)을 예조 참판으로, 유수(柳洙)를 공조 참판으로, 이순지(李純之)를 동지중추원사로, 송처관(宋處寬)을 중추원 부사로, 김세민(金世敏)을 인순부 윤으로, 홍원용(洪元用)을 한성부 윤으로, 강희안(姜希顔)을 호조 참의 겸 황해도 관찰사로, 김개(金漑)를 행 첨지중추원사로, 김담(金淡)을 예조 참의로, 한계희(韓繼禧)를 병조 참의로, 김질(金?)을 승정원 우부승지로, 권환(權?)을 첨지중추원사로, 이교연(李皎然)을 겸지병조사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7책 263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세조 14권, 4년(1458 무인 / 명 천순(天順) 2년) 9월 27일(신해) 1번째기사

토기산에서 사냥하는 것을 구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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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토기산(土其山)에서 사냥하는 것을 구경하였다. 양녕 대군(讓寧大君) 이제(李?)와 임영 대군(臨瀛大君) 이구(李?)·영응 대군(永膺大君) 이염(李琰)·함녕군(?寧君) 이인(李?)·익녕군(益寧君) 이치(李?)·계양군(桂陽君) 이증(李?)·밀성군(密城君) 이침(李琛)·익현군(翼峴君) 이관(李?)·영해군(寧海君) 이당(李?)·순성군(順城君) 이개(李?)·보성군(寶城君) 이합(李?)·신종령(新宗令) 이효백(李孝伯)·연창위(延昌尉) 안맹담(安孟聃)·영천 부원군(鈴川府院君) 윤사로(尹師路)·우의정(右議政) 강맹경(姜孟卿)·우찬성(右贊成) 황수신(黃守身), 중추원 사(中樞院使) 박강(朴薑)·홍윤성(洪允成),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권남(權擥)·이조 판서(吏曹判書) 한명회(韓明澮), 행 상호군(行上護軍) 이사명(李思明)·김개(金漑)·김한(金澣)·이준생(李浚生)·하우명(河友明)·정종(鄭種), 경기 관찰사(京畿觀察使) 김연지(金連枝)와 승지(承旨), 야인(野人) 동창(童倉) 등 13인이 거가(車駕)를 따랐는데, 〈임금이〉 동창 등에게 명하여 술을 올리게 하고, 저녁 때에 이궁(離宮)에 머물러 잤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7책 296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외교-야(野)

 

 

세조 14권, 4년(1458 무인 / 명 천순(天順) 2년) 11월 6일(경인) 1번째기사

후원에 나아가 활쏘는 것을 구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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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後苑)에 나아가 활 쏘는 것을 구경하니, 내종친(內宗親)과 영천 부원군(鈴川府院君) 윤사로(尹師路)·화천군(花川君) 권공(權恭)·판원사(判院事) 권남(權擥)·이조 판서(吏曹判書) 한명회(韓明澮)·병조 판서(兵曹判書) 홍달손(洪達孫),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심결(沈決)·김개(金漑)·곽연성(郭連城)·유수(柳洙), 도승지(都承旨) 조석문(曹錫文)·동부승지(同副承旨) 이극감(李克堪)이 입시(入侍)하여 술자리를 베풀었는데, 권남에게 비파(琵琶) 1사(事)와 활[弓] 3장(張)을 내려 주었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7책 301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사급(賜給) / *예술-음악(音樂)

 

세조 14권, 4년(1458 무인 / 명 천순(天順) 2년) 11월 14일(무술) 1번째기사

여러 재추들에게 저폐의 편부를 논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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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 상참(常參)을 받고 정사를 보았다. 2품 이상에게 명하여 전상(殿上)에 오르게 하니,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이계전(李季甸)·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이인손(李仁孫)·이조 판서 한명회(韓明澮)·공조 판서 이변(李邊)·호조 판서 권준(權?)·우참찬(右參贊) 성봉조(成奉祖)·형조 판서 박원형(朴元亨)·병조 참판 김순(金淳)·인수부 윤(仁壽府尹) 윤사분(尹士昐) 등이 입시(入侍)하였다. 임금이 저폐(楮幣)3154) 의 편부(便否)에 대하여 논(論)하다가 도승지 조석문(曹錫文)에게 명하여 〈여러 재추(宰樞)에게〉 물으니, 여러 재추들이 모두 말하기를,

 

“면포(綿布)와 저폐(楮幣)는 마땅히 정원(情願)에 따라 통용(通用)하게 하소서.”

 

하였다. 마침내 호조(戶曹)에게 전지하기를,

 

“저폐(楮幣)의 법이 통행(通行)되지 못하는 것은 있고 없는 것[有無]이 민정(民情)에 다름이 있기 때문이니, 금후로는 주포(紬布)·면포(綿布)·정포(正布)와 오승포(五升布)·저폐(楮幣) 등 잡화(雜貨)로 그 정원(情願)에 따라 있고 없는 것을 무역(貿易)하게 하라.”

 

하고, 인하여 술자리를 베푸니, 임영 대군(臨瀛大君) 이구(李?)·영응 대군(永膺大君) 이염(李琰)·계양군(桂陽君) 이증(李?)·밀성군(密城君) 이침(李琛)·영순군(永順君) 이부(李溥)·오산군(烏山君) 이주(李澍)·하성위(河城尉) 정현조(鄭顯祖) 등이 또한 입시(入侍)하였다. 좌부승지(左副承旨) 김질(金?)에게 명하여 선전 표신(宣傳標信)3155) 을 도진무(都鎭撫) 하우명(河友明)과 위장(衛將) 김개(金漑)·어득해(魚得海)·이인(李茵)에게 주게 하여, 제위(諸衛)의 휘하(麾下) 군사(軍士)와 갑사(甲士)들로 하여금 입시(入侍)하게 하고, 술과 고기를 내려 주고 전지하기를,

 

“일기가 심히 추우니, 너희들이 비록 몹시 취하여 예의(禮儀)를 범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 죄를 주지 않겠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7책 301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 / *금융-화폐(貨幣) / *군사-군정(軍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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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3154]저폐(楮幣) : 저화(楮貨).☞

 

 

세조 30권, 9년(1463 계미 / 명 천순(天順) 7년) 1월 28일(무오) 3번째기사

김사우·김개·양정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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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우(金師禹)를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로, 김개(金漑)를 행 첨지중추원사(行僉知中樞院事)로, 양정(楊汀)을 평안도 도절제사(平安道都節制使) 겸 영변 도호부사(寧邊都護府使)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7책 56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세조 31권, 9년(1463 계미 / 명 천순(天順) 7년) 12월 13일(정유) 1번째기사

김개·권반·신영손·윤흠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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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金漑)를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로, 권반(權攀)을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로, 신영손(辛永孫)을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로, 윤흠(尹欽)을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7책 597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세조 33권, 10년(1464 갑신 / 명 천순(天順) 8년) 7월 27일(무인) 2번째기사

김개·임원준·김길통·정자영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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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金漑)를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로, 임원준(任元濬)을 예조 참판(禮曹參判)으로, 김길통(金吉通)을 형조 참판(刑曹參判)으로, 정자영(鄭自英)을 행 사헌 장령(行司憲掌令)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7책 639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세조 34권, 10년(1464 갑신 / 명 천순(天順) 8년) 10월 1일(신사) 3번째기사

정창손·황수신·윤사분·원효연·이석형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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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원 부원군(蓬原府院君) 정창손(鄭昌孫)·우의정(右議政) 황수신(黃守身)·좌찬성(左贊成) 윤사분(尹士昐)·밀산군(密山君) 박중손(朴仲孫)·좌참찬(左參贊) 최항(崔恒)·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이석형(李石亨)·예조 판서(禮曹判書) 원효연(元孝然)·인순부 윤(仁順府尹) 한계희(韓繼禧)·이조 참판(吏曹參判) 홍응(洪應) 등을 수궁상(守宮相)으로 삼고,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심회(沈澮)를 수궁 대장(守宮大將)으로 삼고,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김개(金漑)·정식(鄭軾)을 수궁 장(守宮將)으로 삼고, 좌승지(左承旨) 윤찬(尹贊)·동부승지(同副承旨) 윤필상(尹弼商)을 수궁 승지(守宮承旨)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7책 65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세조 35권, 11년(1465 을유 / 명 성화(成化) 1년) 4월 4일(경진) 2번째기사

노사신·윤자윤·강순·김개·윤사흔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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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신(盧思愼)을 호조 판서(戶曹判書)로, 윤자운(尹子雲)을 병조 판서(兵曹判書)로, 강순(康純)·김개(金漑)를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로, 윤사흔(尹士昕)·정식(鄭軾)·김국광(金國光)을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로, 김겸광(金謙光)을 호조 참판(戶曹參判)으로, 윤흠(尹欽)·송처관(宋處寬)을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로, 송익손(宋益孫)을 여산군(礪山君)으로, 심안의(沈安義)를 청성위(靑城尉)로, 이파(李坡)를 승정원 도승지(承政院都承旨)로, 김수령(金壽寧)을 좌승지(左承旨)로, 박건(朴楗)을 우부승지(右副承旨)로, 이영은(李永垠)을 동부승지(同副承旨)로, 안철손(安哲孫)을 행 첨지중추원사(行僉知中樞院事)로, 조근(趙瑾)을 예조 참의(禮曹參議)로, 노호신(盧好愼)을 행 사헌 지평(行司憲持平)으로, 오백창(吳伯昌)을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로, 허종(許琮)을 함길도 병마 도절제사(咸吉道兵馬都節制使)로 삼았다. 처음에 임금이 강녕전(康寧殿)에 나아가 임영 대군(臨瀛大君) 이구(李?)·영응 대군(永膺大君) 이염(李琰)·상당 부원군(上黨府院君) 한명회(韓明澮)와 승지(承旨)들을 불러서 인재를 임용하고 양계(兩界)의 다사(多事)함을 가지고 의논하니, 명하여 오백창·허종에게 명하여 진(鎭)에 나가게 하였다. 노사신이 임금에게 나아가 말하기를,

 

“뒤에 온 승지(承旨)는 모두가 이미 옮겨 갔는데 신(臣)만이 옮기지 못하였으니, 청컨대 신도 다른 관직을 제수하여 주소서.”

 

하니, 한명회(韓明澮)와 이구(李?)·이염(李琰)이 아뢰기를,

 

“노사신(盧思愼)이 스스로 제직(除職)하기를 청함은 심히 불가하니, 청컨대 술로써 벌(罰)하소서.”

 

하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옳다.”

 

하였는데, 노사신이 즉시 가득찬 잔을 마시니, 임금이 명하여 윤자운(尹子雲)의 금대(金帶)를 취하여 띠개 하여 즉시 판서(判書)에 제수하고 그 승지(承旨)의 직(職)을 그만두게 하였다. 임금이 승지 1인을 구하여도 얻지 못하자 관안(官案)에 의거하여 4품 이상의 제신(諸臣)을 보며 한 사람씩 들어 적당한가를 살펴보더니 임금이 문득 묻기를,

 

“이 사람은 선비이냐? 후설(喉舌)6990) 은 출납(出納)을 하니 마땅히 독서(讀書)한 사람을 임용하여야 하므로 선비가 아니면 옳지 못하다.”

 

하였는데, 얼마 있다가 말하기를,

 

“이영은(李永垠)과 바꿀 만한 자가 없다.”

 

하여, 마침내 이를 제수하였다. 임금이 김수령(金壽寧)에게 이르기를,

 

“너는 예전에 군법(軍法)에 관여되었으나 이제 내가 너를 용서하고 중한 이 직책을 제수하니, 너는 승정원(承政院)을 숙청(肅淸)할 수 있겠느냐?”

 

하니, 김수령이 말하기를,

“신은 마음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하므로, 임금이 웃으며 말하기를,

 

“김수령(金壽寧)은 건실한 자이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7책 681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왕실-행행(行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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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6990]후설(喉舌) : 승지(承旨)를 말함.☞

 

 

세조 37권, 11년(1465 을유 / 명 성화(成化) 1년) 9월 26일(경오) 2번째기사

지중추원사 김개를 고성 온정에 보내 행궁을 수리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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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김개(金漑)를 강원도(江原道) 고성(高城)의 온정(溫井)에 보내어 행궁(行宮)을 수리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7책 705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건설(建設)

 

 

세조 17권, 5년(1459 기묘 / 명 천순(天順) 3년) 9월 13일(임진) 1번째기사

살곶이들에서 진법을 연습하는 것을 구경하고, 장수에게 상벌을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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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곶이들[箭串平]에 거둥하여 진법(陣法)을 연습하는 것을 구경하였는데, 대장(大將) 허형손(許亨孫)과 위장(衛將) 김개(金漑)가 진법(陣法) 연습을 잘하므로, 김개는 1품계(品階)를 올려 주고, 허형손은 첨지중추원사(僉知仲秋院事)로 승진시키고, 위장(衛將) 이비(李?)와 김유선(金有銑)은 군율(軍律)을 어긴 것으로 좌죄(坐罪)하여 관직을 파면시켰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7책 348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군사-병법(兵法) / *군사-군정(軍政)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성종 172권, 15년(1484 갑진 / 명 성화(成化) 20년) 11월 25일(무신) 4번째기사

판중추부사 김개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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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김개(金漑)가 졸(卒)하였다. 철조(輟朝)15579) ·조제(弔祭)·예장(禮葬)하기를 예(例)와 같이 하였다.

 

김개의 자(字)는 선택(宣澤)이며 본관이 안산(安山)인데 연성군(蓮城君) 김정경(金定卿)의 아들이다. 영락(永樂)15580) 임인년15581) 에 음직(蔭職)15582) 으로 처음에 남부 녹사(南部錄事)에 제수되어 전농시 주부(典農寺主簿)를 거쳐서 여러 번 올라 대호군(大護軍) 겸 판통례문사(兼判通禮門事)와 상서원 소윤(尙瑞院少尹)이 되었다.

 

경태(景泰)15583) 계유년15584) 에 뛰어올라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에 임명되고 을해년15585) 에 가선 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에 올랐으며, 천순(天順)15586) 기묘년15587) 에 세조(世祖)가 동교(東郊)에서 열무(閱武)15588) 하면서 김개를 장(將)으로 삼았는데, 세조가 진(陣)을 설치한 형세를 바라보고 그 남다름에 크게 감탄하여 특별히 가정 대부(嘉靖大夫)에 올렸다.

 

신사년15589) 에 자헌 대부(資憲大夫)에 오르고 또 정헌 대부(正憲大夫)에 올랐으며, 성화(成化)15590) 을유년15591) 에는 숭정 대부(崇政大夫)에 오르고 정해년15592) 의정부 좌참찬(議政府左參贊)에 제수되었다.

 

무자년15593) 에 숭록 대부(崇祿大夫)에 가해지고 계사년15594) 에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제수되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졸(卒)하니, 나이가 80세이다.

 

평호(平胡)라고 시호(諡號)하니, 다스림에 사고가 없은 것을 평(平)이라 하고, 오래 수(壽)한 것을 호(胡)라 한다. 김개는 용모가 아름답고 해서(楷書)를 잘 썼으며, 성품이 정교(精巧)하고 민첩하여 국가에 영선(營繕)15595) 이 있으면 감독하여 관장한 것이 많았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10책 645면

【분류】 *인물(人物) / *왕실-의식(儀式) / *역사-사학(史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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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5579]철조(輟朝) : 임시로 조회(朝會)를 정지하던 일.☞

[註 15580]영락(永樂) : 명(明)나라 성조(成祖)의 연호.☞

[註 15581]임인년 : 1422 세종 4년.☞

[註 15582]음직(蔭職) : 조상의 음덕(蔭德)으로 하는 벼슬.☞

[註 15583]경태(景泰) : 명(明)나라 경제(景帝)의 연호.☞

[註 15584]계유년 : 1453 단종 원년.☞

[註 15585]을해년 : 1455 단종 3년.☞

[註 15586]천순(天順) : 명나라 영종(英宗)의 연호.☞

[註 15587]기묘년 : 1459 세조 5년.☞

[註 15588]열무(閱武) : 임금이 몸소하는 사열.☞

[註 15589]신사년 : 1461 세조 7년.☞

[註 15590]성화(成化) : 명나라 헌종의 연호.☞

[註 15591]을유년 : 1465 세조 11년.☞

[註 15592]정해년 : 1467 세조 13년.☞

[註 15593]무자년 : 1468 세조 14년.☞

[註 15594]계사년 : 1473 성종 4년.☞

[註 15595]영선(營繕) : 건축물 따위를 신축하거나 수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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