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발을 뒤집어쓴 다음 거울을 보고 조정을 하고 있을 때, 조성미가 노크를 했다. 나는 하이힐을 신어 늘씬해진 몸매를 뽐내듯 흔들며 현관문을 향해 걸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일단 여성 복장을 하고 난 다음에 나는 남자가 아니었다. 진정으로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싶은 여자가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마릴린 먼로처럼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며 그 징그러운 마녀 조성미를 맞이하기 위해 현관으로 다가서는 것이었다.
“안녕.”
그녀가 미소을 띤 얼굴로 들어서며 위에서 아래로 나를 훑어보았다.
“역시 장경화씨 몸매는 정말 멋져요. 질투가 나.”
그녀는 침대 위해 조그만 서류가방과 핸드백을 던져 놓고 소파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이미 탁자 위에 준비해둔 화장 케이스를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정말 대단해, 장경화씨. 이런 마당에 진짜 이런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보통 중독은 아니죠. 후후후... 자, 좋아요. 이리 와요. 오늘은 내가 특별히 생각한 화장을 해줄 테니까. 일명 타락한 콜걸. 호호호호....”
그녀의 웃음소리가 방안에 가득 찼다. 나는 미소도 짓지 못하고 그녀가 시키는 대로 그녀 앞에 다가가 앉았다.
“사진으로 인해 분명 사표 수리가 되었을 텐데, 나에게 이렇게 복종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그 사진들을 공개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겠죠? 후후후...”
그녀가 로션 뚜껑을 열며 잔인한 미소를 입가에 띠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 그녀가 시키는 대로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화장품 냄새와 붓결을 감상하고 있는 이 순간은 사실 행복했다.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화장을 마친 후 그녀가 내게 거울을 내주었다. 짙고 두툼한 아이라이너와 위아래로 붙인 속눈썹으로 내 눈은 진짜 커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누군지 못 알아볼 정도였다. 거기에 내 입술라인을 넘어 두툼하게 그려 넣은 새빨간 입술은 요염하기 짝이 없었다.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장경화씨? 호호호호...”
“네, 너무 마음에 들어요. 어쩜.”
나는 비록 천박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요염하게 변한 내 얼굴을 보며 몸을 비비꼬며 그녀에게 여성스럽게 대꾸했다. 그녀는 내 명랑한 대답이 의외라는 듯이 고개를 약간 갸우뚱하더니, 곧이어 큰 소리로 웃어댔다.
“정말 대단해요. 진짜 여자로 태어났어야 할 것 잘못 태어났나봐. 호호호호...”
나는 아까 처럼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침대를 돌아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녀가 내 뒤를 따라왔다. 나는 그녀가 보고 있는데도 슬립을 올리고 스타킹과 거들팬티를 내린 다음 변기에 앉아 소변을 보았다. 그녀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나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소변을 보고 나서 나는 다시 반대의 순서로 옷을 정리하고 다시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 그녀가 마주 앉았다.
“어때요? 오늘은 성미씨도 한번 화장을 저랑 같이 해보는 거? 그리고 우리 같이 외출하지 않겠어요?”
나의 뜻밖의 제안에 그녀는 놀란 얼굴을 했다.
“뭘 그렇게 놀래요? 전 어차피 오늘 부로 회사에서도 짤렸어요. 그 사진들 때문에.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본격적으로 여성을 만끽하며 살고 싶어요. 아직 모아놓은 돈도 좀 있으니까 한동안은 그냥 이렇게 여자로 살고 싶어요.”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얼굴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여자가 되는 것을 제가 도와드릴 수도 있죠 뭐.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 회사에서 방출되었으니까, 그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생각을 다시 해볼만하지 않아요? 만약 그렇게만 해준다면...”
그녀가 더 이상 말하지 못하도록 나는 얼른 그녀의 말허리를 끊었다.
“그런 얘기 오늘은 그만 하죠. 저 오늘 정말 차라리 마음이 편해요. 이렇게 편안한 마음 진짜 오래간만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기분 조금만 더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언니. 네?”
그녀는 내가 “언니”라고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표정을 보였다. 나는 애교스럽게 그녀에게 윙크를 살짝 해 보였다.
“저보다 나이가 한 살 위니까 이제 언니라고 할께요. 괜찮죠, 언니? 아니면 저 같은 동생을 두는 것이 부끄러우신 건가요?”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좀 뜻밖이라서. 사실은...”
그녀는 일어나 침대에 던져둔 자신의 핸드백을 열어 무엇인가 꺼냈다. 치한을 퇴치할 때 쓰는 소형 전기 충격기였다.
“오늘 장경화씨 너무 흥분을 해서 이상한 일을 저지를까봐 나 이것까지 가지고 왔거든.”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나에게 충격기를 흔들어 보이고는 다시 핸드백에 집어넣었다. 내가 아무리 여자 노릇을 한다고 하더라도 힘으로는 역시 나를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 조치였다. 나는 다시 한번 그녀의 치밀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그녀가 핸드백에 충격기를 넣는 것을 보고서 안심을 하며 나는 다시 애교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 언니도 참... 내가 힘으로도 언니한테 안 될 텐데요 뭐. 내 팔뚝을 보면 알잖아요. 호호호호...”
나는 여성스럽게 웃으며 가느다란 내 팔을 그녀 앞에 흔들어 보였다. 그녀가 재미있어 하면서 다시 내 앞에 앉았다.
“하긴 그래. 그게 어디 남자 팔이라고 할 수 있겠니?”
그녀는 이제 자연스럽게 말을 놓으며 화장 케이스를 슬쩍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럼 우리 정말 오늘은 언니 동생으로 다시 인연을 맺는 기념식을 한번 할까?”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씽긋 웃었다. 나는 신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녀도 꽤 진한 화장을 했다. 그리고 나와 사이즈가 비슷했기 때문에 내 원피스 중에서 하나를 골라 입고, 하이힐도 스스로 골랐다. 그래서 드디어 우리 둘은 마치 길거리에서 손님을 유혹하는 창녀의 모습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5.
그녀는 기분이 좋은 탓인지, 아니면 내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행동하고 느껴서인지 내가 원하는 대로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그것은 분명 그녀의 실수였다. 그녀가 앞으로 처할 일에 대해 그녀는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데리고 간 곳은 조그만 술집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김호영과 몇 번 술을 마시러 간 적이 있던 김호영의 단골집이었다. 일단 그곳까지만 그녀를 끌어들이면 나머지는 김호영이 알아서 처리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와 함께 술을 한잔하던 호텔 지하바에서 나는 먼저 김호영에게 전화를 해두었고, 잠시 후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본격적인 외출을 하는 것처럼 스스럼없이 밖으로 나간 것이었다. 그리고 호텔 앞에서 택시를 타고 바로 그 장소로 직행을 했다.
그녀는 여전히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 해보는 모습을 하고서 그렇게 드랙퀵이나 다름없는 나와 함께 다니는 것을 재미있어 했다. 그래서 그 술집으로 들어가는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우리는 술을 시켰고, 잠시 후에 나는 화장실에 갔다. 그리고 내가 돌아왔을 때, 그녀 조성미는 자리에 없었다. 구석진 룸에서 비명소리인지 신음소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누군가 등뒤에서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김호영이 었다. 그가 싱긋 웃었다.
“잘 될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20분 정도 지난 뒤에 두 남자가 그 룸에서 나왔다. 한눈에 운동을 많이 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김호영에게 카메라와 필름들을 건네주었다. 김호영이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며 봉투를 주자, 두 사람은 꾸벅 인사를 하더니 사라졌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가볼까? 너도 한번쯤은 네가 어떤 모양을 했었는지 봐두는 것도 좋잖아?”
김호영이 나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그 룸으로 갔다.
임시로 간이침대를 넣어 만든 그 룸이 시야에 들어오자 나는 벌써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조성미의 발에 건들거리는 나의 하이힐이 보였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자 그녀의 전체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내가 그런 모습으로 사진을 찍혔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었다. 아니, 사실 나를 찍은 사진보다 더 흉측한 모습이었다.
그녀의 눈은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입에는 그녀의 스타킹이 박혀 있었고, 두꺼운 테이프로 입이 막혀 있었다. 그녀의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인기척이 들리자 그녀는 몸을 비틀어대며 무엇이라고 말을 하려 했다. 그러나 단어가 되어 들리는 소리는 하나도 없었다.
목 뒤로는 커다란 막대기가 걸쳐져 있었고, 그 끝에 양팔이 묶여 있었다. 그리고 양쪽 다리는 번쩍 들려서 무릎쯤을 묶은 끈이 그 막대기와 다시 연결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 성기와 항문에는 인조성기가 꽂혀 있었다. 정말 처참한 모습이었다. 김호영의 계획이 이렇게까지 잔인할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러나 그것은 극단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그녀는 내게 이용했던 방법 그대로 본인이 당한 셈이었고, 제일 먼저 자신의 사진을 돌려 받기 위해 내 사진의 필름 원판을 빼와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회사의 몇 가지 기밀까지 덤으로 넘겨주고서야 그녀의 필름을 돌려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6.
하지만 그렇게 모든 것이 정리가 된 다음에도 나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았다. 프리랜서로 김호영의 일을 도와주기는 했지만, 그때의 일이 있은 후, 나는 김호영 밑에서 일을 하다가 다시 또 그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 회사 직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나는 대신에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김호영도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도움을 많이 주었다.
조성미 사건이 있고 난 뒤 반년이 지났을 때, 낮에는 나의 아파트에서 그의 일을 도와주고, 밤에는 조그만 게이바를 운영하며 화려한 여자가 되어 남자들을 상대로 술장사를 하는 밤나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내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 만약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난다면 나는 그를 위해 멋진 여자가 될 수 있을 텐데...
나는 아직 수술까지는 계획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도 필요하다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에 만족하고 있다. 가끔 김호영이 예쁜 선물을 사들고 가게에 혼자 찾아와 주었고, 그러면 우리는 아침이 될 때까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한번은 내게 키스를 잘하느냐고 물었는데, 나는 그때 얼굴이 빨개진 것을 기억한다. 그는 왜 그런 질문을 한 것일까? 그는 나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여전히 가슴이 콩닥거린다. 그는 아직까지도 내가 사귀고 싶은 남자 영순위인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그의 해바라기인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