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장,
성경은 화가 나는 것을 꾹 눌러 참는다.
엄마는 아직도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아 답답하다.
“엄마!
지금 우리는 부자도 아니고 하루 세끼 밥을 걱정해야만 하는 아주 빈털터리라는 것을 몰라요?“
“이놈아!
네 놈이 나를 먹여 살린다고 유세를 한다마는 이 에미는 열 달 배 아파 너희들을 낳고 이만큼 길러왔다.
이제 다 컸다고 에미를 아주 우습게 보는 모양이다마는 네 아버지만 돌아온다면 이까짓 고생은 하루아침에 벗어 날 수 있어!“
김서연은 다시 소식도 없는 남편에게 자신의 모든 희망을 걸어본다.
“엄마!
우리 아버지가 집을 나가 소식이 없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인가요?
벌써 오년도 넘는 세월동안 단 한 번의 소식도 없는 아버지가 돌아오기라도 하나요?
엄마는 아버지의 연락을 받은 것이에요?“
“.........................”
김서연은 성경의 말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한다.
어디가 있는 곳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남편이다.
“이제 내가 하자는 대로 사셔야합니다.
우리도 어떻게 하던 이 단칸 월세 방은 면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언제까지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하죠?“
”그래도 네 형이 성공만 하면 반드시 이 에미를 찾을 것이다.“
”이제 그 허황된 꿈을 꾸지 마세요.
이제 난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또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습니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그렇게 살아서 어느 세월에 돈을 모으고 재산을 모아 떵떵거리고 살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 세상은 무슨 짓을 하던 돈이 있어야만 사람대접도 받고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몰라?“
“엄마!
반드시 돈이 많고 많은 재산이 있어야만 행복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엄마와 아빠가 많은 재산을 누리고 있었을 때 행복했었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어요?“
“그래!
난 지금도 또 다시 그렇게 살고 싶다.“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엄마의 욕망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재산이 아니고 진경이 것이 아니던가요?“
“진경이?
흥!
진경이만 아니라면 그 재산은 네 아버지의 손으로 고스란히 넘어올 수 있는 재산이다.
진경이가 있기에 우리가 그 재산을 온전하게 차지하지 못해서 네 아버지도 사기꾼에게 넘어간 것이야!“
“처음부터 우리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왜 아직도 하지 못해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진경이 누나의 재산이라고 왜 인정하지 못해요?“
”난 그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진경이를 죽여 버릴 수도 있다.
그까짓 년이 뭔데 우리 앞길을 막느냔 말이다.“
성경은 자신을 낳은 어머니를 바라보며 긴 한숨을 토해낸다.
참으로 적반하장도 이만 저만이 아니라 생각을 하면서 방에서 나간다.
더 이상 엄마하고의 대화는 불필요한 것이라 생각을 하는 것이다.
성경은 생활을 아주 절약하면서 하고 있었다.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돈 쓰는 것을 최대한으로 줄이는 것이다.
아무리 김서연이 투덜거리고 못살겠다고 난리를 피워도 성경은 아예 못 들은 척 하기 예사였다.
엄마의 모든 것을 들어주다가는 평생을 이런 거지꼴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성경이다.
희경은 우선 아르바이트로 일을 시작한다.
이제는 무슨 일이든지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대형마트의 안내원을 아르바이트로 자리를 구한 것이다.
이제 희경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던 것이다.
막내 동생이 벌어다 주는 것으로 염치없이 받아먹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뻔뻔스럽고 동생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학업을 포기하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를 쓰고 고생을 하고 있는 동생이다.
도와주지는 못할지라도 그런 동생의 피를 빨아 먹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몰염치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면서 희경은 대형마트의 안내원으로 하루 종일 서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남의 일이라고는 모르고 살던 희경으로서는 뼈를 깎아내는 힘든 고생이고 아픔이다.
비로소 동생이 얼마나 힘든 일을 하고 있는가를 조금은 알 것만 같은 것이다.
성경은 지금까지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악착스럽게 일을 하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 동생이 형제들 중 제일 고생을 하며 지금 어머니와 자신까지도 떠안고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다시 성경이 학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다.
이제 새롭게 정비사 일을 배우면서 고생을 하고 있는 동생이 언제 버젓하게 기술자가 되어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해 낼 수 있을 것인지 희경으로서는 그저 아득한 일로만 생각이 되는 것이었다.
“성경아!
나 돈을 좀 주고 나가라!“
아침을 먹으면서 김서연은 성경을 보며 말을 하는 것이다.
“돈요?
뭐가 필요하세요?“
“꼭 뭐가 필요해야만 돈을 주겠니?”
“그렇지 않으면 돈을 왜 달라고 하세요?
뭔가 필요하시니 달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해서요.“
“그래!
너도 눈이 있다면 좀 봐라!
내가 언제부터 밑 화장품도 떨어지고 피부손질도 하지 않고 있으니 얼마나 추하고 늙어 보이는지 네 눈에는 보이지 않니?“
“엄마!
누구를 위해서 피부를 손질하고 화장을 하세요?
지금 우리 형편에 엄마가 피부손질이나 하고 화장이나 하며 살아야 해요?“
성경은 기가 막힌다는 듯이 말을 한다.
“아무리 가난한 형편이라 해도 여자는 가꾸어야만 한다는 것을 몰라?
더구나 이제 네 에미나이를 생각이나 해 보았니?
이 나이에 가꾸어 주지 않으면 금방 피부가 퇴색해 버리고 늙어버린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말이니?“
”나이가 들었음 늙어 보이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아닌가요?“
“누가 뭐라고 해도 난 그렇게는 못 산다.
아무리 나이를 먹었다 해도 자신을 가꾸지 않고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다는 말이냐?“
희경은 잠자코 밥을 먹다 수저를 놓는다.
“엄마!
지금 엄마는 자식이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생각을 해 봤어요?“
“뭐?
너는 또 왜 쌍지팡이를 짚고 나서?“
”성경이가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는지 생각을 해 봤냐고요?
엄마도 아직 그 나이면 얼마든지 나가서 돈을 벌 수 있는 나이더라고요.
식당 주방일이든 아니면 청소부를 나가던 일을 할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일거리는 있어요.“
“너 지금 내가 일을 하지 않아 배가 아픈 것이냐?”
“네!
솔직히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아 있어요.
엄마가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엄마라면 성경이가 벌어오는 것으로 이것저것을 불평하시면서 투정을 부리지는 않겠지요.“
”너 지금 그 말을 에미에게 하는 말이냐?“
김서연은 희경이의 말에 서슬이 시퍼렇게 변하면서 푸르르 떨고 있었다.
“그렇게도 이 에미가 고생하는 것이 보고 싶다는 말이냐?”
“엄마는 자식의 고생은 안중에도 없잖아요?
어떻게 자신의 뱃속에서 나온 자식들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엄마 생각만 할 수 있어요?
엄마가 낳은 자식들에게도 이렇게 냉정하니까 진경이를 그렇게 혹독하게 매질을 하고 구박을 한 것이겠지만..........“
“너...........이년!”
김서연은 갑자기 희경에게 달려들어 희경의 머리채를 휘어잡는다.
“그래!
난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면 못하는 것이 없다.
그래서 내가 너희들에게 못 해준 것이 뭐냐?
기껏 내 있는 돈을 다 날리면서 미스코리아에 출전을 시켜 놓았더니 보기 좋게 미역국이나 먹은 년이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아가리를 놀려?“
성경은 잠시 놀라서 바라보다가 이내 엄마의 손을 누나의 머리에서 떼어 낸다.
“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우린 지금 출근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몰라요?“
”출근?
흥!
그까짓 알량한 돈을 벌어오면서 에미는 구박하는 너희들이 내 자식들이란 말이냐?
다 필요 없다.
오늘부터 너희들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갈 것이니 아예 집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들 말아라!“
김서연의 독살은 계속 이어진다.
“누나!
우리 어서 출근을 합시다.“
성경은 희경은 재촉한다.
희경 또한 더 이상 엄마하고 상대를 해서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머리를 대충 손질하고 성경이와 집을 나선다.
“누나!
어디 며칠 가 있을 곳 없어?“
“왜?”
“아무래도 누나하고 내가 며칠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해!
그래야 엄마 생각이 조금은 변할 것이 아냐?“
”우리가 며칠 안 들어온다고 달라질 엄마가 아니다.
엄마는 아마 하늘이 두 조각이 나는 변화가 있을지라도 엄마 자신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그렇지 않을 거야!
지금은 당신 수중에 단 한 푼의 돈도 없고 어디 믿고 의지할 만한 곳도 없는 상황에서는 뭔가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글쎄?
난 엄마가 그렇게 쉽사리 변하리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어!“
“아무튼 우리가 오늘부터 며칠만이라도 집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을까?”
“그야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
“뭔데?”
“며칠이라면 찜질방에서 보낼 수도 있다.
너와 함께 저녁에 찜질방에 가서 자고 아침에 출근을 하면 되지 뭐!“
“아, 그런 방법이 있군!
우리 며칠만이라도 그렇게 해 보자.“
“너 돈이 아까워서 어쩌려고?”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는 각오를 해야 하지 않겠어?
그럼 누나!
내가 일을 마치고 누나를 데리러 갈게!“
남매는 그런 약속들을 하고 각자의 일터로 향한다.
김서연은 그런 것을 모르고 자신의 분에 이기지를 못하고 씩씩 거린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미는 것이다.
답답함을 이겨내려 피부손질을 하고 바람이라도 쏘이고 싶었던 김서연이다.
어디를 나가려면 승용차가 없으니 택시를 타야만 했고 피부손질을 오랫동안 하지 않아 피부가 까칠해져 있는 것이 마음이 상한 것이다.
자신의 말 한마디면 두 말도 없이 돈을 줄 줄 알았던 자식들이었다.
돈을 주기는커녕 진경이의 일까지도 들추어내는 희경이가 괘씸한 것이다.
더구나 자신을 일을 하러 다니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딸년이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만도 억울하고 분한데 식당주방이나 청소일이라니?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오르는 김서연이었다.
김서연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누워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되어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저녁준비조차 해 놓지 않고 아침상도 그대로 부엌에 내다 놓고 손을 대지도 않는다.
자신이 하루 종일 굶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김서연은 자신의 몸을 위해서 간식을 챙겨먹는다.
밥상을 그대로 둔 것은 아이들에게 보이기 위함이었고 자신의 몸을 위해서 그대로 생으로 굶을 수는 없는 일이다.
컵라면은 사다 먹고 쓰레기를 없애버리고 빵과 우유를 사다 먹고 또 다시 그 흔적을 치워버리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자식들에게 에미가 속이 상하고 화가 나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더 이상 에미에게 대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한 김서연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둘 다 들어오지 않는다.
아침에 아이들에게 들어오지 말라고 한 포악을 떨었던 것을 생각하지 않고 다시 늦게 들어오는 자식들이 괘씸해진다.
시간은 점점 흘러 자정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과 딸은 들어올 기미가 없는 것이다.
“이것들이 이제는 정말 이 에미를 보지 않을 생각인가?
하여튼 들어오기만 하면 이번에는 내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거야!“
그러나 아무리 벼르고 별러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 자식들이다.
다음날 날이 밝아도 아무런 소식도 없다.
김서연은 성경이를 찾아 나서려다 주저앉는다.
글 : 일향 이봉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