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억리 구억 초등 학교 터
1. 찾아가는 길
서부 산업 도로를 따라 모슬포로 향하는 도중에 서광리 4거리가 있다. 4거리에서 서쪽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4.5Km 정도 가면 대정읍 구억리에 도착한다. 구억리는 상동과 하동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구억 초등 학교 터는 상동에 위치해 있다. 구억리 하동 마을 복지 회관에서 상동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500m 정도를 가면 현재 폐교되어 있는 구억 분교가 있고, 다시 500m 정도 올라가면 도로변에 4․3 당시 구억 초등 학교 터가 있다.

2. 관련 내용
구억 초등 학교는 1948년 4월 28일에 김익렬 연대장과 유격대의 김달삼(본명 이승진)과의 이른바 4․28 회담 장소로 알려져 있다. 당시 모슬포 주둔 9연대는 4․3에 대한 대응을 선선무 후토벌의 원칙을 세우고 무장대와의 평화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 결과 4월 28일 김익렬 연대장과 연대 정보 참보 이윤락 중위, 무장대 군사총책 김달삼 등이 구억 국민 학교 내 관사에서 만나 평화적인 해결 방안을 합의하였다. 회담 결과 72시간 안에 전투 중지, 주동자 신분 보장 등을 합의하였으나 이 합의는 지켜지지 않았고 이후 무력을 이용한 적극적인 토벌이 이루어졌다.65)
김익렬 연대장은 유고록에서 구억 초등 학교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66)
……곧장 산길 도로를 따라 한라산을 향했다. 부대에서 직선 거리 약 15Km 지점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 곳은 연대 본부가 내려다보일 정도로 높은 고지 부락이었다. …… 이 학교는 제주도에서 제일 높은 고도에 위치하고 있는 산간 부락 국민 학교였다. 학교의 위치는 한라산의 밀림 지대가 동북으로 지척지간에 있으며 동남으로 중문면 일대에서 해안선까지, 서남으로는 대정면 일대와 모슬포까지 특히 9연대의 영내가 육안으로 내려다 보이는 곳이었다. ……
그러나 실제로 구억리에 가 본 사람이라면 이 내용에 강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중문면 일대에서 해안선까지 보이기는커녕 9연대 영내도 보이지 않는다. 구억 초등 학교는 1941년 ‘대정북공립국민학교’라는 명칭으로 정식 인가를 받아, 2개 교실에 2명의 교사가 배치되었다.67) 그러나 1948년 11월 21일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학교 건물은 군경에 의해 불타 없어져 버렸다.
당시의 구억 초등학교 교사 배치도는 아래 그림과 같다.

구억 초등학교 터
3. 현장 답사 의견
이 곳은 지금은 과수원으로 이용되고 있어 당시 모습은 전혀 남아 있지가 않다. 게다가 대도로변이어서 교통 사고의 위험도 다소 높아 체험 학습장으로서는 적합치가 않다. 그러나 구억 초등 학교 터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4․3이 처음부터 무장 투쟁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평화적인 해결을 모색하고자 했음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현장이기에 4․3 체험 학습장으로 신중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
65) 제민일보4․3취재반(1994), 앞의 책, pp.136-144.
66) 위의 책, p.319.
67) 제주4․3연구소(1990), 「4․3 장정」, 갈무지, p.63.
글과 사진 : 구억리 구억 초등 학교 터, 제주큰동산, 2013.03.05.22:48, 제주 서귀포시 보목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