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14 홍천 동봉사
"꿈보다 해몽이 어렵다." 영발의 대가였던 통일교의 고 문선명 총재가 생전에 필자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말에서 씹는 맛이 난다. 종교 단체를 이끌었던 교주도 해몽이 어렵다는데 하물며 보통 사람들은 꿈의 해석이 쉽지 않다는 게 당연한 일이다.
꿈은 다차원적 정보가 압축돼 하나의 장면으로 나타난다. 지난주에 지인의 전원주택 집터를 구경하기 위하여 강원도 홍천군 동면의 '맞바위'라는 동네에 갔다. 연두색 신록이 솟아난 봄 산을 구경하는 것은 삶의 기쁨이다. 이것도 모르면 사는 게 아니다. 선인들은 그 기쁨을 '춘산채지가로 노래하곤 하였다. 그런데 동네에 들어서면서부터 맞바위라고 하는 동네 이름이 필자의 시선을 끌었다. '이름 참 희한하다. 어떤 바위가 있기에?'
지명에는 여러 가지 함축적인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에 어느 지역을 답사할 때는 반드시 그 지명의 한자 뜻과 의미를 뜯어보는 습관이 있다. 마침 집터 옆에 동봉사라고 하는 조그만 절이 있었고, 72세의 동청 스님으로부터 50년 가까이 여기에서 살게 된 사연을 들었다. "내가 20세 때인 1964년에 꿈을 꾸었어요. 꿈에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가 나타나 동백나무 가지로 내 이마를 툭 치면서 '여기로 가거라' 하는 거야. 다음 날에는 머리가 허연 할머니가 나타나 역시 동백나무로 나의 이마를 치면서 '여기로 가거라' 하는 꿈을 꾸었지. 이게 도대체 무슨 꿈인가. 어디로 가라는 이야기인가?" 궁리를 거듭했지만, 해몽이 어려웠다. 마침 외할아버지가 해석해 주었다. 외조부는 영대가 밝았던 분이었다고 한다. "수염이 허연 노인은 산신령이다. 할머니는 여산신이니까 약수터를 상징한다. 동백나무는 동쪽으로 가라는 뜻이다. 동백나무가 두 번 나왔으니까 지금 네가 살고 있는 춘천에서 동쪽으로 두 번 가라는 것이고, 이마를 때렸으니까 '마박(빡)'이라는 의미이다. 춘천 동쪽에 있는 홍천으로 가서 그와 유사한 지명을 찾아보아라". 그 해몽을 듣고 홍천의 동면에 오니까 과연 신기하게도 맞바위라는 동네 이름이 있었고, 영검한 약수터가 있었다. 마빡이 맞바위였던 것이다.
[조용헌살롱1038]
조선일보 조용헌살롱의 칼럼을 생각하며 맞바위길 동봉사에 도착했다. 홍천 53번 농어촌버스 종점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길 거너에 동청스님이 혼자서 쌓았다는 108개 돌탑이 보인다. 돌탑을 배경으로 절집 문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동봉사에 들어선다.
왼쪽에 연못이 있고 그 위쪽 돌탑속에 용왕각도 있다.
동청스님의 안내로 요사채 응접실에 들어 구기자차와 복숭아화채를 대접 받으며 스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응접실이 참 예쁘게 꾸며져 있다. 대웅전을 아직 제대로 짓지 못해서 멋적으신지 우선 사람이 쉴 곳을 먼저 생각하셨단다.
조용헌 살롱에 기록된 내용과 더불어 월남전 참전이야기로 이어졌다. 참전기간 만료후 절집 건축비를 모으기 위해 2년을 더 연장해서 3년을 있었다고 한다. 제대후 절집을 지었는데, 1979년 정부의 화전민 강제 이주 때 무허가 건물이라하여 철거당했다고 한다. 그 때 스님 어머니의 최고위 지시자에 대한 저주를 소개할 때는 좀 황당한 느낌도 들었다. 그 후 다시 시작하여 돌탑도 쌓고 집도 짓고 대웅전 자리 축대도 쌓으며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동봉사는 정통불교사찰이라기 보다 산신령을 더 신봉하는 독성한 동청스님의 신앙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께서는 과거 마을 이장도 여러해 했고 노인회장도 하신단다.
현재의 대웅전은 비록 초라하지만 그 위 산신각 밑에 널찍한 대웅전 터를 닦아놓고 있었다. 대웅전 터 위쪽 높은 축대위에 산신각 탑이 앙증맞게 올려져 있다.
여기는 출가 전 동청스님 꿈 속의 여산신을 의미하는 약수터이다. 산신각에서 약수봉으로 가파른 산길을 따라 15분쯤 오르면 거대한 바위 밑에 약수터가 있다.
길이 막힐 것을 우려해 서둘러 돌아오는 길을 재촉해 대전에 일찍 도착했다. 덕분에 한 신도님의 보시로 국수와 파전을 대접 받았다.
대전테크노밸리의 맛집 '장비빔국수와 보쌈 관평점' 홀도 넓고 깨끗하고 쾌적하다. 식당 앞에 주차하기도 편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