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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11월 좌담회어서 참고 - 시조깅고전답서(세웅어서).hwp
2014년 11월, 좌담회어서 참고자료
시조깅고전답서 (세웅어서<世雄御書>)
1277년(건치3년) 대성인이 56세 때에, 미노부에서 보내신 편지. 세웅어서(世雄御書)라고도 한다.
깅고는 대성인의 지도대로 진장(陣壯)을 유보(留保)하고, 주군․ 에마씨는 법화경을 버린다는 기청문(起請文)만으로 조용히 사건을 수습하려고 했다.
깅고는 단호히 기청문을 거절하고, 그 상황을 대성인에게 보고하였다.
이에 대하여 대성인은 불법(佛法)은 승부(勝負)라고 하시며, 일본․ 중국에의 불법유전(佛法流傳)의 역사를 풀어 설하시고, 정법(正法)을 배반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엄벌이 있다는 확신을 말씀하시고, 또한 일상생활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것을 지도하시고 있다.
☞ 세웅어서(世雄御書) - 어서사전 916쪽
◇
단련하지 않은 철(鐵)은 성(盛)한 불 속에 넣으면 빨리 녹기가 마치 얼음을 탕(湯)에 넣은 것과 같으며, 도검(刀劍) 같은 것은 대화(大火)에 넣는다 해도 잠시(暫時)는 녹지 않으니, 이는 단련(鍛鍊)했기 때문이니라, 사전(事前)에 이렇게 말함은 단련(鍛鍊)하기 위함이니라.
불법(佛法)이라고 함은 도리(道理)이며 도리(道理)라고 함은 주군(主君)에게 승리(勝利)하는 것이니라.
(어서전집 1169쪽 3행 ~ 5행)
◇
일체를 승리로 여는
위대한 묘법의 공력(功力)
<포인트>
1. 신심(信心) 근본으로 산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생명을 연마해 간다는 것입니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은 인간혁명의 종교입니다.
신앙의 실천을 통해 생명을 단련하여 박해나 유혹 등 어떠한 악연(惡緣)에도 분동되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강화시키는 종교입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신․ 인간혁명 격투(激鬪)의 장(章)에서 “목숨이 있는 한, 법을 구하고 내일을 위해, 미래를 위해 자신을 연마하고 단련하며 도전한다. 그것이 불법자(佛法者)로서 살아가는 자세다. 그러므로 신심의 공로자는 과거의 사람이 아니다. 미래를 향해 광선유포를 위해 새로운 도전을 지속하는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에는 ‘이것은 절대로 피할 수 없다’ ‘질 수 없다’ 는 승부처가 있습니다만, 그 승부처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강해져야만 합니다.
신심 근본으로 자신을 연마하고 단련하는 것은 유사시에 승부처에서 자신이 지닌 능력이나 가능성을 최대로 발휘하는 것이 됩니다.
신심으로 생명을 연마한 마음의 재보는 절대로 파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체가 자기 자신을 단련해가는 기회라고 포착해 나아가고자 합니다.
2. 불법(佛法)의 승리는 묘법(妙法)이라는 최고의 도리에 기초한 승리라는 것입니다.
이 어문을 비롯해 대성인께 지도 받아, 마침내 깅고는 주군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여 소령(所領)을 받는 승리의 실증을 나타냅니다.
시조깅고의 신심에 의해 묘법의 큰 역용이 주군까지도 감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각각의 제자가 현실사회에서 승리하는 것은, 한 사람 한사람이 인간혁명하는 실증이 됩니다.
신․ 인간혁명 제17권 ‘민중성’의 장에 영국 동지가 광선유포하는 신심의 모습이 적혀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그 속에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지지 않고 강성한 신심을 관철해가면 언젠가 비난중상은 존경으로 바뀝니다. 불법이라는 보편의 법에 입각한 신념은 시대와 더불어 찬란하게 빛납니다. 정의(正義)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이좋게 단결하여 나아가세요.” 라고 지도하시고 있습니다.
생활 장소나 직장, 지역, 나아가 국가 등 여러 차원에서 신뢰와 신용의 뿌리를 내리고 자타함께의 행복 연대를 넓혀가는 것이 불법을 근본으로 한 진정한 승리라는 사실을 확인해 가고자 합니다.
더욱 광포 전진의 마디를 새겨야 할 계절입니다.
‘세계광포 신시대 개막의해’ 승리의 마무리를 향해 용약 전진합시다.
☞ 하시모토 교학부 서기장
◇
마음을 단련하고 결단코 신심을
대성인은 여기서 감정에 지배되어 경솔한 행동을 취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셨습니다. 위협에 굴복하거나 반대로 온화한 태도로 방심해서 회유책에 휘말려 주군의 뜻대로 신심을 잃으면 안 된다고.
어디까지나 시조깅고를 지켜주려고 하기 때문에 현명하게 처신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대성인은 시조깅고의 마음을 단련하기 위해 단련하지 않은 철은 왕성하게 타오르는 불 속에서 녹아버리고, 단련된 도검은 다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여러 가지 일에 일희일우(一喜一憂)해서 마음이 움직이면 참된 의미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불법은 도리입니다.
자기 마음을 단련하여 신심으로 연마한 흐림 없는 생명으로 대처해야 비로소 승리를 향한 묘용(妙用)이 자기 생명에 나타납니다.
언제나 신심근본으로 자신을 연마하는, 즉 묘법(妙法)을 통한 생명연마의 길이 바로 진정한 승리를 향한 지름길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조석근행이고 학회활동입니다. 자신이 인간혁명을 해야 비로소 승리의 문이 열립니다.
그래서 대성인은 승리를 향한 확실한 도리는 “불법이라고 함은 도리이며 도리라고 함은 주군에서 승리하는 것이니라”고 명쾌히 말씀하셨습니다.
법화경에 대한 신심을 근본으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은 도리로서 모든 일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주군에게 승리하는 것”이란 상벌로 부하를 지배하는 힘을 지닌 주군도 불법의 도리의 힘에는 결코 이길 수 없다는 말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신명을 걸고 주군의 악(惡)을 훈계하는 행동도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주군에 대한 변명서(요리모토진장)로 고쿠라쿠사 료칸을 엄하게 파절하셨습니다. 료칸은 불법의 관점에서 보면 악의 원흉이기 때문입니다.
악은 엄격하게 가책하고 타파해야 선(善)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소령이 아까워서 신심을 잃는 일이 있으면 안 된다고 재차 강조하셨습니다. 비록 어떤 일이 있어도 신심만은 반드시 관철하라는 준엄한 지도입니다. 빠듯한 한계점에서 선택해야 할 때, 최종적으로는 근본인 신심을 선택하라고 명쾌한 기존을 가르치셨습니다.
대난을 당했을 때는 이 결정적인 마음이 어디까지나 중요합니다.
단, 이런 경우에 성급히 자포자기해서 소령을 반납하고 스스로 주군을 떠나는 일은 결코 진실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이것은 비인도적인 주군을 떠나 신심을 근본으로 행동한 듯이 보이나, 실은 자신의 약한 마음에 패배한 모습입니다.
주군에 승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신심을 관철하고 성실하게 행동해서 결국 주군으로 하여금 정의를 각성케 하는 일입니다.
자타가 함께 행복을
묘법은 조화를 이루는 법입니다. 모든 것을 감싸고 살리는 근본의 법입니다. 묘법은 조화의 중심이고 근본입니다.
이 묘법의 힘으로 ‘오해’를 ‘이해’로, ‘대립’을 ‘신뢰’로, ‘분단’을 ‘결합’으로 높이는 일이 진정한 불법의 승리입니다.
대성인이 문하에게 가르친 확고하게 승리한 모습은 묘법이라는 조화력(調和力)을 나타내서 자타가 함께 행복을 구축하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이케가미 형제에게는 형제가 단결해서 일가화락으로 승리하는 모습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설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부당한 조치에 감연히 정의를 관철한 형제는 아버지에게 당한 의절이 풀린 것으로 끝내지 않고 신앙에 반대하던 아버지를 입신시키는 극적인 대승리로 이루어냈습니다. 형제가 믿는 묘법이 아버지를 이끌어 정의에 눈뜨게 만들었습니다.
대성인은 시조깅고의 경우도 주군이 현실적으로 깅고를 박해했어도, 주군이 대단한 대은(大恩)을 베푼 존재라고 지도하셨습니다.
다쓰노구치법난과 사도유죄 때, 일본 전체가 대성인을 증오하고 문하들도 소령(所領)을 몰수당하는 와중에 “당신은 주군의 수호를 받고 있지 않은가. 그 은혜를 잊고 비리(非理)로 주군을 원망하면 제천선신도 수호하지 않는다.”라고 (어서 1150쪽).
이 어서의 다음 편지(<스슌천황어서>)에서도 “주군은 지금은 신앙하지 않아도 신앙을 관철하는 깅고를 수호함으로써, 주군도 선근이 미쳐서 틀림없이 번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서 1170쪽)
시조깅고도 이런 지도를 받고 주군이 법화경을 신앙하도록 계속 기원했습니다. 결국 시조깅고는 다시 주군의 신뢰를 회복하고 새로 소령을 받는 승리의 실증을 나타냈습니다.
이 승리의 인(因)에 관해 대성인은 “자기 주군에게 법화경을 믿으시게 하려고 생각하시는 마음이 깊으신 때문일까.” “이는 오로지 귀하의 법화경의 신심이 깊기 때문이니라.”(어서 1180쪽)고 말씀하셨습니다.
불법의 승리는 묘법이라는 가장 높은 도리에 바탕을 둔 승리입니다. 불법에서 말하는 위대한 승리의 실상(實相)은 묘법으로 조화를 이룬 세계가 생활과 직장과 지역의 차원, 나아가서 국가를 초월한 차원으로 확대되는 모습입니다.
묘법에는 어떤 악연(惡緣)도 선연(善緣)으로 바꾸는 가치창조의 힘이 있으며, 대악도 대선으로 바꾸는 숙명전환의 힘이 있고, 비도(非道)를 도리로 바꾸는 정의로운 힘이 있습니다.
모든 제자가 현실사회에서 승리하는 모습은 각자의 인간혁명 실증입니다.
한 사람 한사람이 ‘마음의 재보’를 제일로 삼고 경애를 깊게 한다, 법화경 철학에서 말하면 ‘만인이 부처다.’라는 신념에 서서 ‘사람을 존경하고 인간으로서 취해야 할 행동’에 철저 한다. 신앙인으로서 인간적인 성장 자체가 승리를 약속합니다.
그래서 대성인은 문하에게 퇴전하지 않도록 강하게 계속 훈계하셨습니다.
“겁쟁이이고 법리(法理)를 기억하지 못하며, 욕심이 많고 의심이 많은 자들은”(어서 1191쪽)이라고 하며, 퇴전자들이 어둠에 빠지는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험하게 지도하셨습니다.
마음이 비뚤어져 신심을 잊으면 어느덧 세법의 명예나 지위에 사로잡혀 ‘마음의 재보’를 잊은 인생으로 빠집니다. 스승이 제자의 ‘만심(慢心)’과 ‘증상만(增上慢)’을 타파해주는 일은 가장 큰 자애(慈愛)입니다.
지혜를 다해서 현명하게
시조깅고는 대성인 말씀을 충실하게 지키고 성실한 행동을 관철했습니다. 그리고 대성인 말씀대로 ‘마음’으로 승리했습니다. 그것이 모든 환경을 크게 바꾸었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의 승리는 어디까지나 소사(小事)가 대사(大事)라고 하듯이 정교한 지혜로 투쟁함으로써 실현할 수 있습니다.
악연에 넘치는 악세에 신심으로 일관해서 실증을 보여야 하므로 방심하면 안 됩니다. 대성인은 앞으로 ‘백천만억 배’ 더 조심해야 한다고 지도하셨습니다.
현명한 지혜가 필요하며 주위 사람을 확실하게 내 편으로 만드는 등, 스스로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승리해야 한다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신심근본으로 인내해야 할 일은 이를 악물고 인내하며, 돌파해야 할 때는 지혜를 발휘해서 돌파하라고 지도하셨습니다.
대성인은 제자의 승리가 광포를 여는 시대를 맞았을 때에 ‘불법은 승부’라는 중요한 점을 깅고에게 가르치셨는데, 그 점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기고자 합니다.
첫째, 어디까지나 불법이 근본이고 신심근본으로 사는 일입니다.
둘째, 자신의 나약함과 싸워 마음을 단련하고 박해나 유혹 등 온갖 악연에 분동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 본질은 악과 싸우는 일입니다.
셋째, 무한한 묘법의 힘을 믿고 성실하고 인간성 풍부하며 인내심 강한 행동을 쌓아 올려야 합니다. 즉 지혜를 다하는 도리(道理)의 투쟁을 관철해야 합니다.
‘불법은 승부’라는, 묘법을 근본으로 하는 삶의 자세는 시대나 사회의 변천을 초월해서 영원에 걸친 근원적인 승리와 진실한 행복을 구축하는 원천이 됩니다.
☞ 승리의 경전 ‘어서’서 배운다 (21) 시조깅고전답서 (하)
http://m.cafe.daum.net/seikyoohknews/R9dO/32?listURI=%2Fseikyoohknews%2FR9dO%3FboardType%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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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에 승리하는 신력(信力)
시조깅고는 이 어서를 받을 당시, 주군에게서 법화경의 신심을 버리겠다는 기청문(起請文)을 써내라는 압력을 받고 있었습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이런 고경에 처한 깅고에게 얼음과 검의 비유를 인용하시며 ‘단련’의 중요성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또 대성인이 깅고에게 엄하게 주의를 주는 것은 깅고를 단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난에 부딪쳤을 때 그것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강한 생명력이 없으면 고난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난을 극복할 수 있는 강한 힘을 만드는 것이 ‘단련’이고 일상 속의 견실한 신심의 실천이라 하겠습니다.
나날의 근행창제와 광포활동을 지속함으로써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절대적 경애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또 “불법(佛法)이라 함은 도리이며”라는 말씀과 같이 불법은 누구나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보편적 진리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강성한 신심으로 투쟁하면 어떤 권력자에게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시조깅고도 법화경의 신심을 포기하지 않으면 추방하겠다는 에마 씨의 압박을 받았으나 대성인의 지도대로 신심 근본으로 싸웠습니다.
때마침 악성 유행병으로 쓰러진 주군은 깅고의 치료로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깅고는 지금까지 받은 영지의 3배에 해당하는 영지를 받게 되어 “도리라고 함은 주군에게 승리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깅고는 훌륭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불법은 일체에 승리하는 원동력이며 또 최고의 ‘병법(兵法)’입니다.
이케다 SGI회장은 “‘불법은 승부’다. 인생은 투쟁이다. 승부인 이상 승리 이외에는 없다. 투쟁인 이상 승리하지 않으면 불행하게 된다. 관념(觀念)이 아니다. 나날이 자기답게 승리해간다. 그것을 반복함으로써 삼세(三世)에 걸친 행복과 승리의 궤도를 엄연히 구축할 수 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단호히 승리한다!’ 라는 강한 일념으로 승리의 인생을 살아갑시다.
☞ 월간법련 : 0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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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은 도리
-납득하는 언론전(言論戰)을 당당히
불법은 도리다. 대성인은 신심의 복덕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꽃은 피어서 (이윽고) 열매가 되고 달은 떠서 반드시 차며, 등은 기름을 부으면 빛을 더하고 초목은 비가 내리면 무성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선근을 쌓으면 반드시 번영한다.” (우에노전답서. 어서 1562쪽. 통해)
‘신심’이 강성한 사람은 마지막에는 반드시 승리한다. 반드시 번영한다. 그러므로 ‘지속’이 중요하다.
또 ‘도리’ ‘이치에 맞는 이야기’는 어떤 권위나 권력도 억누를 수 없다. 이것은 대성인이 문하에게 되풀이해서 가르치신 정신이다.
대성인은 권력자에게 이 어서에서 말씀하신 대로 언론전을 관철하셨다. 깅고도 이 정신으로 주군을 설득해 역경을 이겨냈다.
아무리 올바른 도리도 말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다.
법화경(法華經)과 타종(他宗)의 정사(正邪)를 밝힌 대성인은 “뜻있는 사람은 세간의 도리를 지키고 추찰하라.” (법화초심성불초. 어서 549쪽. 통해) 하고 세간의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비유를 들어 가르치신다.
이러한 대성인의 지혜는 어서 곳곳에서 배독할 수 있다.
또 대성인은 “설령 공개된 장소에서 도리에 맞는 법문을 말한다고 해서 욕하거나 거친 말을 하거나 거만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면 안 된다. 그것은 야비한 일이다.” (교행증어서. 어서 1283쪽. 통해) 하고 불법자(佛法者)는 행동도 도리에 맞고 훌륭하게 행동하라고 가르치셨다.
니치렌 불법은 삼세(三世) 영원한 생명의 법칙을 설한 ‘최고의 도리’이다.
도다 선생님은 “신(信) 없는 언론은 연기와 같다.” 라고 하셨다.
중상 따위는 상대가 아니다. 묘법에 대한 깊은 ‘신’을 근본으로 도리를 다해 불법을 말하고 사람들을 이해하도록 이끌고 정정당당하게 언론전을 펼쳐야 한다.
☞ ‘어서를 펼치다’
http://m.cafe.daum.net/seikyoohknews/WE1o/21?listURI=%2Fseikyoohknews%2FWE1o%3FboardType%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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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승리 즉 불법(佛法) 승리의 모습
대성인은 불법의 도리의 힘은 반드시 주군의 상벌의 힘에 승리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말씀하신다.
이 불법의 도리란 결국 자신의 구계의 생명에 불계의 무한한 힘을 나타내는 십계호구, 일념삼천의 법리라는 점을 삼가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도리를 자신의 생명에 나타내는 열쇠가 ‘신(信)’이라는 점을 말씀하신다.
즉 주군과 대면했을 때 참언에 속고 있는 주군은 깅고에게 ‘상벌’을 주어 어떻게든 신심을 그만 두도록 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주군의 말에 분동하여 신심을 잃게 되면 구계의 생명에 불계의 힘을 용현하는 십계호구의 도리는 나타낼 수 없다. 즉 진정한 승리를 여는 원동력을 잃고 만다.
이러한 점을 강하게 훈계하며 무엇보다 신심 제일로, 불법의 도리에 맞는 기원을 근본으로 지금의 고경을 극복해야 한다고 가르치신 어서가 바로 이 <세웅어서>다.
<세웅어서>를 쓰고 약 한 달 후에 쓰신 편지가 <스슌천황어서>다.
이 시점에서는 사태에 큰 변화가 있었다. 역병이 떠돌아 류조보와 참언자들이 잇달아 쓰러졌다. 그리고 그들의 참언에 속아 깅고에게 힘든 선택을 강요한 주군 에마 씨도 역병에 걸리게 된다.
깅고는 에마 씨의 주치의이기도 했다. 병으로 눕게 된 에마 씨는 깅고에게 치료를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깅고에게는 주군의 신뢰를 회복하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 사이토 SGI 교학부장 강의 (2012년2월 연찬자료)
◇
불굴의 혼을 지닌 투사
성장하라
제목을 불러
후지산까지도
저마다 서원한 국토에서도, 사명의 인생에서도 간난(艱難)이 있고 시련이 있다.
그러나 학회의 자식은, 어려운 일이 있을수록 분발하며 ‘불굴의 혼’을 지닌 투사다.
대성인은 모든 대난을 이겨내고 말법 광선유포를 짊어질 ‘지용보살’을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을 단련한 보살이다” (어서 1186쪽, 통해) 라고 말씀하셨다.
‘고난에 지지 않는 일’과 ‘굴하지 않는 일’ 그리고 ‘이겨내는 일’은 바꿔 말하면 본디 꿋꿋이 단련 받은 위대한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말한다.
지용의 생명이 지닌 저력이 얼마나 깊고 강하며 큰가.
대성인은 어서에, 모든 대난의 노도를 이겨내는 힘을 엄연히 기록해 남기셨다.
관심을 갖고 보면 모두가 대성인에게 직결하는 존귀한 지용보살이다.
이 늠름한 청년도!
저 아름다운 여성도!
아무리 혼미한 어둠이 깊은 시대라도 창가의 청년들은 가슴속에 희망의 빛을 품고 끈질기게 앞으로, 앞으로 발걸음을 나아가야 한다.
성훈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단련하지 않은 철은 성한 불 속에 넣으면 빨리 녹기가 마치 얼음을 탕에 넣은 것과 같으며, 도검(刀劍) 같은 것은 대화(大火)에 넣는다 해도 잠시는 녹지 않으니, 이는 단련했기 때문이니라.” (어서 1169쪽)
인생은 길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고난과 숙명의 열화(熱火)가 기다리고 있다. 그 시련을 이겨내는 생명력을, 젊은 시절에 확고히 단련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
청춘 시절에 학회활동이라는 생명을 단련시키는 불도수행에 힘쓰는 일은 한평생 그리고 영원히 무상의 재보가 된다.
도전 과제를 명확히 정하고, 건강 제일로 낭랑하게 창제를 거듭해 후지산과 같이 흔들리지 않는 자신을 만들기 바란다.
반드시
지지 않는 인생을
장식하라
부모를 그리워하고
동지를 잊지 마라
때로는 필사적인 노력이 결실하지 못해 분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변독위약(變毒爲藥)하는 묘법이다. 의미 없는 일은 전혀 없다. 모두 다음의 ‘새로운 승리’로 이어진다.
그런 확신과 결의로 우리의 길을 유유히 나아가야 한다. 화려하게 주목을 받는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자기는 자기답게, 가슴을 활짝 펴고 명랑하게 전진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신세를 진 부모와 벗들이 기뻐할 역사를 남겨야 한다.
학회의 동지가 서로 격려하는 일은 최고의 힘이 된다.
☞ 수필․ 우리가 나아가는 승리의 길 (50) 청년은 세계의 보배
http://m.cafe.daum.net/seikyoohknews/R5e7/9?listURI=%2Fseikyoohknews%2F_r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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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세웅(世雄)이여 신심으로 이겨라!
“강철과 같은 의지를 지니는 한 역경도 좋은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이 말은 아프리카 인권의 암굴왕인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옥중에서 탄압받는 와중에 사랑하는 딸에게 보낸 편지에 쓴 구절이다.
모든 사람을 감싸 안아 어떻게든 격려하려는 웃는 얼굴은 분명 이 흔들림 없는 신념에서 나왔을 것이다.
우리 존귀한 동지도 냉엄한 현실 사회에서 온갖 역경과 싸우고 있다.
절체절명의 궁지에 몰릴 때도 있을 것이다. 한때는 진 것만 같아 분함에 피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그러나 부처의 이명(異名)은 ‘세웅(世雄)’이다. 즉 사회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위대한 영웅이다. 이 부처의 대법(大法)을 지닌 우리가 이겨내지 못할 고난은 없다.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 재세(在世)시에도 문하들은 참언(讒言)으로 소령을 몰수당하거나 의절 당하는 등 사회적, 경제적 위기에 처하는 압박을 계속 받았다.
그러나 모두 “한탄하는 기색이 없이 (한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어서 1163쪽) 또 “조금도 위축되는 일이 없을지어다.”(어서 1090쪽)라는 등의 성훈을 가슴에 새기고 단호히 승리의 실증을 보였다.
나도 스승 도다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의 사업을 지탱하며 몇 번이나 “더 이상 손 쓸 방도가 없단 말인가.” 하는 국면에 놓였다.
진정한 신심의 투쟁은 그런 최악의 밑바닥에서 시작된다.
사자분신(師子奮迅)의 힘을 일으켜 끝까지 스승을 지켰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타고 넘어 단연코 활로를 열 수 있는 ‘법화경(法華經) 병법(兵法)’이 있다.
☞ 여는 글 (1405)
http://m.cafe.daum.net/seikyoohknews/VTeO/8?listURI=%2Fseikyoohknews%2FVTeO%3FboardType%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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