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오랫동안 만성통증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보면 선풍기 바람에도 시큰거리고 통증이 발생한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 통증에 대해 깊이 탐구하지 않은 의료인들은 이런 말들을 진지하게 듣지 않고 무시해버리기도 한다. 바람만 불어도 시큰거리고 아프고, 살짝 만지기만 해도 아프다고 호소하는 환자들의 말은 진정 가슴아프게 들어야 한다. 그 환자들이 그렇게 통증이 만성화되어 가는 과정을 알게 되면 진심으로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나의 경험이 그렇다.
만성통증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 황당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의 말을 가슴아프게 들어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해서 알아보자.
통증은 다른 모든 감각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는 참으로 이상한 감각이다. 예를들어 우리가 뜨거운 목욕탕에 들어갈때 경험을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뜨겁게 느껴지던 온탕에 한참을 머무르면 오히려 따뜻하고 좋은 감각으로 변하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것은 온도감각에 인체가 적응(adaptation)한 것이다. 통증이외에 모든 감각(진동각, 위치감각, 차가운 감각, 만지는 감각, 온도각, 압력 감각 등)은 모두 적응현상을 보인다. 즉 감각이 주어지면 주어질수록 그 역치가 높아지면서 그 감각에 무뎌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통증은 이러한 감각과 정반대로 통증감각이 주어지면 주어질수록 그 역치가 낮아지면서 통증감각에 예민한 현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기전을 통증 감작현상(sensitization)이라고 한다. 즉 처음에는 주먹으로 내려쳐야 통증이 발생하던 자극은 통증자극이 지속적으로 주어지면 나중에는 살짝 때리는 감각에 통증을 느끼고, 심하면 만지기만 해도 통증을 느끼는 것이다. 아주 드물지만 선풍기 바람만 불어도 아프다고 호소하는 감작현상까지도 나타날 수 있다. 이렇게 진행되는 통증의 만성화는 실로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좋은 신호인 통증이 환자의 영혼을 괴롭히는 고통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만성통증이 발생하면 환자는 처음에는 의료인에게 주목을 받는다. 가족들도 함께 걱정을 해준다. 하지만 여기저기 병원을 다닐때마다 실제로 인체 움직임 등의 기능에 장애를 주는 심각한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의료인들도 대수롭지 않게 대하고 진통제를 처방하고 물리치료를 받으라고 권유한다. 계속 통증을 호소하면 너무 예민해서 그런다고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함께 걱정해주던 가족들도 무관심해지고 환자의 통증호소에 지쳐간다.
환자의 걱정은 더해만 간다. 심각한 질환은 아닐까? 심각한 질환인데 의료인이 자신의 질환을 제대로 찾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인터넷을 뒤지고 질병명은 하나둘씩 더해져간다. 그러면서 환자의 모든 관심사는 자신의 통증에만 쏠리게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거의 통증에 모든 주의를 빼앗기고 매일매일 고통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통증의 만성화는 어떤 기전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일까? 다른 감각과는 정반대로 통증감각은 통증이 주어지면 주어질수록 통증의 역치가 낮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 위에서 설명한 통증의 감작현상때문이다. 통증의 감작현상은 통증 수용기의 변환단계에서부터 신경, 척수, 시상하부, 대뇌로 이어지는 모든 경로에서 발생한다. 크게는 말초성 감작과 중추성 감작으로 나뉜다.
말초성 감작은 통증 수용기인 자유신경종말에서 일어나는 활동전위가 쉽게 일어나면서 발생한다. 자유신경종말의 활동전위가 쉽게 일어나는 과정을 좀 어려운 말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통증자극 수용체와의 결합 증가, 이온통로의 활성화로 과도한 탈분근, 세포내 전달 시스템의 활성화, 세포외 체액의 산도(pH) 변화"등이 발생하면 통증자극 수용기(Nociceptive receptor)가 민감해지면서 아주 작은 자극에서도 통증을 발생하는 활동전위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 결과 환자는 인체에 무해한 자극에서도 통증이 발생하고, 정상인에게서는 발생하지 않는 만지는 정도의 자극, 바람이 부는 자극에도 통증이 나타난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추성 감작은 척수레벨 위 충추신경에서 일어나는 반응이다. 반복적인 통증자극이 주어지면 척수후각의 통각수용성 신경세포에서 통증을 받아들이는 수용야(receptive field)가 넓어지면서 통증의 역치가 감소한다. 이 현상은 글루타메이트가 통각신경의 말단에서 분비되면 척수 신경세포의 세포내 신호전달계를 통해 연쇄반응이 일어나고, 중추의 NMDA수용체의 활성성이 일어나면 시냅스의 전도 효율이 높아져 중추성 통각과민이 나타난다.
둘째, 하행성 통증조절기전(descending inhibitory system)의 파괴로 인한 통증이 만성화된다. 예를들어 다리에 총상을 맞은 이등병의 통증 임펄스가 대뇌로 여과없이 전달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뇌는 통증으로 인한 전기신호가 가득차고 간질발작과같은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이러한 과도한 통증이 있을때 인체는 하행성 통증조절기전을 통해 스스로 통증자극을 줄여 대뇌로 전달한다. 이과정은 뇌간의 망상체(reticular formation), 수도관 주위 회백질(periaqueductal gray), 솔기핵(raphe nucleus) 등에서 세로토닌을 분비하고, 세로토닌은 척수 후각에서 내인성 마약물질인 엔돌핀, 엔케팔린, 다이놀핀을 분비하여 하행성 통증조절기전을 작동하여 통증을 스스로 줄여서 대뇌로 전달한다.
예를들어 허리디스크로 통증자극이 한달 혹은 1년넘게 계속전달되면 어떻게 될까? 망상체, 수도관주위 회백질, 솔기팩 세포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내인성 코르티코이드인 코르티솔을 분비하여 세포자연사과정을 촉진한다. 그 결과 하행성 통증기전을 담당하는 신경세포핵은 신경세포 죽음(neuronal cell death)이 일어나고 더이상 스스로 통증을 줄이는 기전을 마감한다.
이러한 만성통증은 기전의 결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래서 통증기간이 오래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만성통증이라고 진단할 수는 없다. 만성통증은 감작현상과, 하행성 통증억제경로가 망가져 통증이 증폭되고, 통증억제를 못하면서 사소한 자극에서도 통증이 발생할 때 나타나는 새로운 질병현상이라고 할 수있다. 이런 만성통증의 기전을 잘 이해하면 선풍기 바람에도 고통을 받는 환자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있다.
만성통증은 염증에 의한 통증이 아니기 때문에 소염진통제, 스테로이드성 진통제를 투여해도 통증이 거의 줄어들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물리치료에도 별로 반응하지 않는다. 가볍게 만지는 감각을 대뇌에서 엄청난 통증으로 느끼는 이러한 인체의 비정상적인 현상앞에서 의료인들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함께 걱정해주던 가족들도 지쳐가고 만성통증 환자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소외된다. 환자는 더욱 더 통증에 두려움에 빠지고, 예민해져가고, 걱정과 통증 스트레스로 인해 위염, 위궤양, 식욕저하, 대소장 기능저하, 만성피로, 과민성 장증후군, 긴장성 두통, 편두통, 섬유근막통, 생리통, 생리불순, 불임, 섬유근막통 등 병명은 늘어가고 복용하는 약물이 늘어간다. 나중에는 신경안정제, 수면제, 항우울제, 마약성 진통제 등의 약물치 추가됨녀서 환자의 절망은 깊어간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의료인에게 신경질과 분노와 같은 적대적 반응을 드러내는 것도 아주 흔하게 발생한다. 이렇게 인간의 육체와 정신, 영혼까지 파괴할 정도로 무서운 만성통증은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
인지치료, 통증분산(pain distraction), 최면치료, 신생근육만들기, 웃음치료, 전침, 봉약침 치료 등
첫댓글 뒤의 내용이 너무 궁금해지는 글입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환자를 더욱더 따뜻한 마음으로 어루만져줄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