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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후라멩꼬 음악
글쓴 시점-김종만(음악평론가, 본회 회장)
안달루시아 지방은 스페인 남쪽에 위치한 관광지이며, 후라멩꼬(Flamenco)의 원산지다. 이곳은 로마제국 이후 오랫동안 갖은 고통과 박해로 쫓겨 다녔던 여러 나라 ― 인도․무어․비잔틴․유대 ― 집시들의 마지막 정착지였다. 특히 19세기의 집시들은 박해가 느슨했던 이 기간동안 자리를 많이 잡았다.
후라멩꼬의 어원은 여러 설이 있다. 우선 합스부르크왕 찰스 5세의 신하 이름인 후레밍(Fleming)에서 나왔다던 지, 아랍어의 훼라망고(Fel-lah-mango : 노래를 잘 부르는 노동자)에서 기원되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가르시아 마또스(Garcia Matos)의 ‘불꽃’(flama=flame)에서 유래되었다는 어원설이 현재 가장 유력하다. 또 15세기 이후에는 히따노 음악(집시음악, 초기 후라멩꼬)이 모욕스런 떠돌이 집시들의 푸념이라 불려져, 이를 피하기 위해 후라멩꼬란 이름을 붙였다 한다.
후라멩꼬는 동․서양음악이 혼합되어 있어, 이국적 정서와 향수를 함께 지니고 있다. 원래 고대 안달루시아 고유 민속음악에 여러 나라 집시들이 자기 고향음악을 복합시킨 것이 후라멩꼬였다. 집시들은 떳떳이 세상을 살지 못했다. 개만도 못한,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이리저리 쫓겨 다니며 동굴 속에 숨어살던 이방인들은 그 서러움을 후라멩꼬로 달랬다. 태양의 밝은 세상을 볼 수 없는 눈과 마음의 어둠을 지하 동굴에서 불꽃 튀는 장작불로 밝힐 뿐이었다. 그러므로 후라멩꼬는 주로 집시들의 안식처인 동굴 안에서 연주됐다.
집시들은 3백여 년 동안 모진 감시와 참기 어려운 멸시와 박해를 받으면서 후라멩꼬를 지켜왔다. 쫓기고 몰리어 마지막으로 기어 들어갔던 땅속에서의 후라멩꼬는 모닥불이 빛을 발하듯 저주받은 운명과 울분을 어느 정도 태워 없앨 수 있었다. 온몸의 뒤틀림과 피를 토할 듯한 그 절규의 넋두리 음악, 그것이 집시들 가슴속 깊이 맺혀있는 한(恨)많은 후라멩꼬다.
낭만주의 시대 이후로 많은 예술가들은 후라멩꼬를 찾아 스페인을 여행했으며, 그 경험을 그들의 예술세계에 반영했다. 조르쥬 상드(Geroge Sand)를 비롯해, 프로스페르 메리메(Prosper Merimee)․알렉산드르 뒤마(Alexandre Dumas) 등의 소설가들과 리스트(Franz List)․글린카(Michael Glinka) 등의 음악가들과 에도아르도 마네(Edouardo Manet)․구스타프 도레(Gustave Dore)등의 화가들은 스페인에 들러 후라멩꼬 음악의 한없는 매력에 심취했다. 상드는 그의 기행문에서 ‘어두운 밤, 쓸쓸한 적막 속에서 울려 퍼지는 기타의 볼레로…’라 찬탄하며 적었다.
그 무렵 샤브리에르(Emmanuel Chabrier, 1841-1894) 역시 스페인 여행을 하고 있었다. 말라가의 어느 까훼 깐딴떼(Cafe Cantante)에 들렀던 그는 2명의 후라멩꼬 기타리스트 반주와 화려하고 요염한 후라멩꼬 춤에 넋을 잃고 말았다. 그는 첫눈에 반해 며칠 밤동안 말레게냐(Malaguena)․솔레아(Solea)․사빠떼아도스(Zapateados)등을 계속 들었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샤브리에는 그라나다에 온 뒤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자네가 후라멩꼬 무용수들을 본다면, 넋 빠진 사람같이 멍하게 앉아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아마 잊어버릴 거야. 말라가에서 나는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네. 그래서 얼른 내 아내의 손목을 잡아끌고 밖으로 나와 버렸지. 이렇게 쓰면 내가 좀 과장해 부풀린 이야기로 들릴는지 모를 거야. 그때의 광경은 다음과 같다네. 여자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춤을 추기 시작하면 익살스럽고 맵씨있는 남자 기타리스트들이 열이나 뚱겨주지.
여기에 네댓 명의 후라멩꼬 여자가수들이 악보에도 적기 힘든 셋잇단음표의 노래를 하는데 매우 흥미롭지. 멜리스마풍의 섹시한 노래를 부르는데 그만 안 나갈 사나이가 없을 정도야. 조성(調聲)도 자기 마음대로 바꾼다네. 자네가 본다면 가사나 프레이즈 그리고 강한 음과 여인의 신음 같은 지속음을 똑똑히 들을 수 있을 거야. 그들은 6박자를 치면서 3도. 6도로 교묘하게 악센트를 되풀이한다네. 거기에 안다! 살루뜨! 마리끼이따! 좀 더 추어라!… 좋구나! 로라! 잘하는구먼! 까르멘, 좋아! 멋있다! 따위의 소리로 베이스를 넣어 흥을 돋우지. 이런 장단 맞추는 소리에 여자들은 더욱 신바람이 나서 흥분의 도가니에 몰린 듯, 격렬하게 춤바람을 일으킨다네…
이와 같이 후라멩꼬는 1840년 까훼 깐딴떼가 생긴 이후, 지하음악에서 본격적인 땅위 무대로 올라와 빛을 받기 시작했다.
후라멩꼬 노래
후라멩꼬는 고대성가와 스페인민요와 집시들의 고향 음악으로 복합되어 이루어진 노래이다. 발성창법은 서양 벨칸토의 미성이라기보다는 가슴 깊이 폐에서 호흡을 다해 목으로 우러나오는 육성에 가깝다. 가락은 6도 음역에 한정되어 있고 음계는 반음보다 작은 음정의 프레지아 선법이다. 리듬은 신축성이 많고 자유롭다. 화성 진행은 서양음악과 다르게 진행된다. 특히 독특한 싱코페이션(syncopation)리듬의 율동 위에 잔 장식의 연속적 가락인 멜리스마로 이어져 나갈 때, 그 신비로운 오묘함은 ‘마(魔)의 요정노래’라 할 수 있다.
사실 까훼 깐딴떼(Cafe Cantnate), 즉 노래하는 까훼가 생기기 전에 후라멩꼬는 ‘땅 밑의 음악’, 또는 ‘검은 음악’이라 천시를 받았다. 그러나 18세기 중엽에 이르러 크게 번성하기 시작하여 오늘날 노래․춤․연주의 독특한 후라멩꼬 형식을 만들어 냈다.
깐떼 혼도
후라멩꼬 노래에 있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깐데 혼도(Cante jondo)로서, 깊은 노래(deep song)라는 뜻이다. 이 깐떼 혼도는 15세기 무렵 북인도에 고향을 등지고 스페인에 유랑해 왔던 집시 우리들에 의해 창조되었다. 이 깊은 깐떼 혼도 -그란데(grande)라고도 함-에 비하여 가벼운 노래는 깐떼 치꼬(Cante chico), 중간은 깐떼 인떠메소(Cante intermezo)라 한다.
깐떼 혼도를 이루고 있는 크고 주된 가지는 3종류의 형식으로, 또나스 (Tonas)․시귀리야스(Siguiryas)․솔레아(Solea)가 바로 그것이다.
첫 번째 형식으로 간주되는 또나스는 깐떼 혼도 본래의 고유한 곡 형식을 지녔다. 이와 더불어 여러 종류의 데불라스(Deblas)․마르띠네테(Martinete)․까르셀레라스(Carceleras)도 또나스와 같이 여기에 포함된다. 곡의 범위가 넓고 그 형식이 복잡한 이 노래들은 춤이나 기타와 같이 연주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치밀하게 짜여진 또나스는 육체적인 면과 정서적인 면을 둘 다 크게 필요로 하는 곡이다. 그래서 단지 몇 명의 유명한 가수만이 이 곡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살려가며 고유하게 노래할 수 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들은 궁지에 몰려 사는 서러움이라던지 쓸쓸하고 고된 삶의 연속이었던 집시들의 생활상을 되살아나게 한다.
등불과 초롱을 불끈 쥔
억센 마부들이 모퉁이에 몰려있네.
죽여라! 그 녀석은 집시이다.
마부들은 서로 악을 쓰며 외쳐 대었네.
두 번째 형식은 시귀리야스로서, 이 곡은 2000년 전 또나스가 발전되어 이루어진 노래이다. 오늘날 유명한 비르투오소의 후라멩꼬 가수일지라도 시귀리야스를 올바르게 부를 수 있는 이는 몇 명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노래이다. 대표적인 가사를 들어본다면 다음 내용과 같이 대개가 죽음과 숙명에 관한 강박관념을 그린 것으로, 집시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인 소외감과 절망감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몇 번이나 난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했으나
죽음은 나를 맞아주니 않았네.
죽음조차도
나를 불쌍히 여긴 모양이지.
세 번째 형식은 솔레아다. 18세기 초 집시의 박해가 느슨해진 동안에 시작되어 유행한 노래이다. 이 내용들은 인간 본래의 사랑과 여기에 여러 면으로 복잡하게 펼쳐지는 정감의 분위기에 관한 것이 많다. 또 쉽게 흥분하고 쉽게 감동하는 집시들의 '사랑의 노래' 대변자로 인정되었다. 가사를 보면 달콤하면서 낭만적인 것도 있지만, 슬픈 사랑의 종말과 배반당하고 응어리진 가슴을 호소하는 노래가 많다.
깐떼 혼도의 3종류 이외에 집시들은 계속해서 조금은 가벼운 형식의 노래를 만들어 냈다. 땅고(Tango)가 바로 이러한 종류의 노래이다. 집시들이 가장 뼈저리게 외쳐댔던 자유에 대해 또 고삐를 쥐고 있는 구속으로부터 느슨해지려고 애썼던 모습이 가장 많이 느껴지는 노래이다.
후라멩꼬 노래의 많은 종류 가운데는 집시노래가 기원이 아닌 곡들도 여러 곡이 있다. 그 주축이 되는 곡이 바로 환당고(Fandango)이다. 이 환당고는 위에서 설명한 노래와 다르게 서쪽 안달루시아 지방의 세비야(Sevillia)와 까디스(Cadiz)에서 일어났고, 스페인의 남쪽 끝 지역에까지 골고루 퍼져 나아갔다. 곡의 원래 형태는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스페인에 살고 있던 무어인(Moorish) 대중 음악가들이 창조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 있으며, 오늘날 널리 부르는 가볍고 리드미컬한 베르디알레스(Verdiales)․환당고 데 루세나(Fandango de Lucena)․환당고 데 엘바(Fandango de Helva)와 비슷하다.
18세기 내내 이 민속적인 환당고는 후라멩꼬 집시음악의 리듬패턴을 잘 아는 스페인 가수들이 번창시켰다. 단순한 3박자의 리듬은 완전히 없어졌고 이러한 형태로 변하는 동안 원래의 가락 흐름도 복잡해 졌으며 높은 음으로 꾸민 가락으로 바뀌었다. 가사내용을 보면 결백하고 솔직하며 감상적인 노래가 많다. 또한 아래와 같이 슬프고 처절한 가사도 있다.
한 부인이 죽어 누워있네.
여자의 아기들은 그녀를 둘러싸고
가장 어린 아기는 말했네.
엄마! 제발 나 좀 보아요.
아직 죽으면 안돼요.
환당고 그란데(Fandango Grande : 크고 깊은 환당고)의 지방적인 향토설로 본다면 남동쪽 해안인 알메리아(Almeria)지역에서 수집되는 따란따스(Tarantas)나 미네라스(Mineras)를 여기에 포함시키며, 또한 이와 비슷한 까르따헤네라스(Cartageneras)나 엑조틱한 그라나디나스(Granadias)와 제일 치밀한 말라게냐스(Malagenas)도 여기에 포함시킨다.
어떤 형의 후라멩꼬는 집시나 무어인들의 영향을 전혀 받은 흔적이 없다. 그 대표적인 노래가 세비야나스(Sevillanas)이다. 이 곡은 가장 많이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명랑․쾌활한 노래이다. 또 다른 곡에서 보듯이 의미심장한 내용은 없지만, 순수한 민속의 노래로서 우리에게 돋보인다. 호따스(Jotas)나 사르다나스(Sardanas)도 이와 같이 영향을 받지 않은 토착형의 노래이며, 뜨릴레라스(Trilleras)․뗌뽀레라스(Temporeras)․밤베라스(Bamber- as),그리고 종교적인 깜빠니에로스(Campanilleros)․빌란시꼬스(Villanciscos) 역시 마찬가지이다.
많은 스페인의 민속노래가 후라멩꼬에 융합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까냐(Cana)와 뽈로(Polo)이며, 일찍이 깐떼 혼도의 근본적인 형체로 간주되었다. 현재 이 노래들은 집시의 솔레아레스 리듬패턴으로 기울어졌고, 그러한 형태의 격정이 꽤 많이 스며들어 있다. 위와 마찬가지로 세라나(Serrana)는 산에서 유래되어 집시리듬과 융합되었다. 그라시아(Gracia)는 북쪽 아라곤(Aragon)의 호따스(Jotas)영향을 받은 스페인 고유의 가락과 합친 곡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일레그리아스(Allegrias)는 집시계통의 형태인 로메라스(Romeras)․까라꼴레스(Caracoles)․미라부라스(Mirabras)의 토대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북부 갈리시아(Galicia) 지방의 가락은 남쪽으로 스며들어 가로띤(Garrotin)과 화루까(Farrucca)의 주축을 이루었으며, 강렬하고 율동적인 춤과 노래로 발전되었다.
이 외에 유대계 집시의 영향을 받은 후라멩꼬곡은 적지만 뻬떼네라(Petenera)는 예외이며, 무어인의 영향을 받은 색다른 삼바라 모라(Zambara Mora)는 무겁고 침울한 무어의 분위기와 최면적인 리듬을 갖고 있다.
까훼 깐딴떼는 말 그대로 노래가 있는 까훼였다. 그러나 술도 함께 팔아 망사냐(스페인 토속주)에 취하듯 안달루시아는 물론 18세기 후반 마드리드․바르셀로나 등 북부 지방까지 쉽게 번져 나갔다. 이에 따라 후라멩꼬는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 일류가수들을 많이 배출했다.
그러나 이 가수들은 레퍼토리의 빈약함을 절감해야만 했다. 지하에서 불렸던 안달루시아에 국한된 노래만으로는 넓은 지상의 무대에선 모자라기만 했다. 그래서 비록 소재가 안달루시아의 옛 노래에 국한되었다 하더라도 그들이 창출해 냈다고 볼 수 있는 깐떼 히따노(Cante Gitano : 집시의 노래)를 불렀다. 솔레아레스․시귀리야스․땅고가 바로 그러한 곡으로 솔직하며 야성미가 넘쳐흐르는 곡들이다.
한편 안달루시아 지방의 민요를 그대로 부른 후라멩꼬 노래는 깐떼 안다루스(Cante Andaluz)라 불렀다. 말라게냐스와 그라나다스들이 이러한 곡으로 보다 세련되고 서정적이며 로맨틱한 것이 특징이다.
20세기에 들어와 근대문명의 물결은 깐떼 후라멩꼬를 잠시 쇠퇴기에 접어들게 했다. 그러나 1950년 이후 후라멩꼬는 다시 화려하게 발돋움했다. 왜냐하면 천재적인 기타리스트 라몬 몬또야(Ramon Montoya)에 이어 사비까스(Sabicas)등의 기타리스트에 의해 노래와 춤은 다시 발전하여 세계적으로 넓힌 콘서트 아트로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민족음악 재평가의 기운 때문에 깐떼 후라멩꼬는 다시 힘을 얻었으며, 유명한 깐따오르(Cantaor : 남자가수)나 깐따오라(Cantaora : 여자가수)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므로 깐떼히따노․안다루스는 물론이요, 부드러운 깐떼 비엔(Cante bien)과 아름다운 노래 깐떼 보니또(Cante bonito)로써 오늘의 제2황금기를 맞게 되었다.
이와 같이 후라멩꼬 노래는 여러 갈래로 복잡하다. 노래 또한 남자․여자․혼성가수들이 부르고 집시․비집시계로 나뉜다.
후라멩꼬 기타
후라멩꼬 기타는 클래식 기타보다 작고 음색이 밝기 때문에 쾌활하게 들린다. 악기의 옆판과 뒤판은 로즈우드(Rose wood)가 아니라, 측백나무인 시프레스(Cypress)로 만들어 머리부분을 매울 가볍게 했다. 그 이유는 후라멩꼬 기타리스트는 기타를 오른쪽 무릎에 얹어놓고 거의 수직을 유지하며 뚱기므로, 균형을 잡기 위해 머리부분을 가볍게 만든다. 그러므로 머리부분은 회전식 줄감개가 아니라, 예전 그대로의 나무 줄감개를 사용하고 있다. 후라멩꼬 기타리스트는 금속성의 밝은 음을 내기 위해서 세후엘라(cejuela: 카포타스토)를 쓴다. 그렇게 하면 줄의 길이가 짧아지고 조성에 의해 뚱기기가 쉽게 되며, 줄이 더 팽팽해져 음은 밝아진다. 그러나 셀룰로이드가 발명된 이후 후라멩꼬 기타는 클래식 기타에서는 필요치 않은 울림통 아래 보호 판을 붙였다. 그 뒤에는 플라스틱을 사용했다. 왜냐하면 후라멩꼬는 기타에서 타악기적인 특수효과를 내기 위해 오른손의 손가락을 심하게 두들기기 때문이다.
사실 초기 후라멩꼬 기타는 보조역으로 리듬을 맞추고, 노래에 따라 뚱기는 것에 한정되어 있었다. 기타리스트는 후라멩꼬의 가수나 무용수처럼 화려한 영웅이 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기타리스트들은 깐떼(Cante)의 가수나 바일레(Baile)의 댄서(Dancer)보다 더욱 혹독한 연습을 하여 높은 기량의 수준으로 올라갔다. 더욱이 클래식 기타 테크닉을 후라멩꼬에 도입시킴으로써, 오늘날의 발전된 테크닉을 이룩해 놓았다. 탁월한 후라멩꼬 기타리스트들은 작품을 분석한 뒤 연주했으며, 자신이 스스로가 작곡가이기도 했다.
그들은 뿌리 깊은 리듬, 즉 콤파스(compas)위에 심오한 후라멩꼬의 넋을 넣어 이른바 두엔데(Duende : 훌륭한 연기)를 연출해 냈다. 기타․노래․춤 어느 것을 막론하고 후라멩꼬를 사랑하는 사람이 매료되는 것은 이 두엔데가 기예(技藝)로 옮겨지는 때이다.
특히 불가사의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안타깝게 조여 가면서도 힘차게 이끄는 어두운 힘이다. ‘검은 음’이라고 말하는 이 힘은 가끔 ‘안달루시아의 흙 속에 숨어 있는 요상한 힘’이라고도 풀이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후라멩꼬 특유의 감각은 아니고, 모든 인간의 마음속 깊이 잠들고 있는 숙명감 같은 ‘존재하는 것’들의 비참한 안타까움과 같은 것이다.
스페인의 대가 시인 훼데리꼬 가르시아 로르까(Federico Garcia Lorca)는 후라멩꼬에 관한 특별 강연에서 기타의 또께 혼도(Toque jondo)와 노래의 깐떼 혼도(Cante Jondo)를 구별해 강조하고 있다.
“기타는 노래의 토대가 되어 가수의 뜻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기타리스트의 퍼스넬리티가 가수와 똑같이 높아진 게 요즈음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기타리스트가 노래와 활세따(Falseta) 즉 기타의 즉흥곡과 같이 연주하는데 멋진 성공을 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이탈리아리즘 이라고나 볼 수 있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만다.… 니뇨 데 엘바(Nino de Huelva)와 같은 대가쯤 되면 끓어오르는 피가 목소리가 되어 기타에 옮겨져 더욱이 순수한 음악을 유지하는데, 그러면서 대가다운 티를 드러내려는 잔재주를 부리는 법이 없다. 그것이 참된 비르투오조 자세인 것이다.”
현재 후라멩꼬 기타 독주곡은 30여 종류를 웃돌고 있다. 이 독주 양식은 1900년 이후 나타난 것이다. 후라멩꼬 기타리스트들이 독자적으로 무대에 서 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한편 솔리스트들은 까훼 깐뗀떼에서 연주를 시작하여 각광을 받았으며, 청중을 끌기 위해 변칙의 연주 스타일을 꾸며냈다. 즉 그들은 기타를 등 뒤나 가슴에 끼어 안고 머리를 흔들어 보이거나 여러 몸짓을 하며 한 손 또는 양손에 장갑을 끼고 연주하기도 했다. 이러한 트릭은 후라멩꼬가 까훼 깐딴떼로부터 나이트클럽이나 극장으로 옮겨지면서 나타난 서커스적 행위였다.
마누엘 데 화야(Manuel de Falla)는 1922년 “옛날의 저 장중하고 뭔가 신성한 느낌마저 드는 후라멩꼬의 멜로디는 지금은 변해서 이상한 것이 되고 말았다. 옛날엔 영광스럽고 고귀하다느니 해서 존중되었던 것이 지금은 진부(陳腐)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런 것이 현대적인 것일까?”라고 썼다.
그러나 화야의 어두운 예견은 한 세기 이상 거친 황금시대의 향수 이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실 후라멩꼬는 상상 이상으로 계속 성장해 왔다. 20세기에 들면서 위와 반대로 뛰어난 후라멩꼬 기타리스트가 배출되었는데, 그들은 후라멩꼬가 지닌 고유한 힘과 준엄함을 잃지 않은 채 기술을 향상 시켜 나갔다. 특히 기타는 노래(Cante jondo)와 춤(Baile jondo)반주 뿐만 아니라, 끓어오르는 넋을 기량 높은 오묘한 연주의 또께 혼도(Toque jondo)로 올려 놓았다. 이에 따라 기타 연주자들 역시 개성과 인격의 존재가 높아져갔다.
그리고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상상 이상으로 계속 성장해왔다. 왜냐하면 엄격하고 빠르며 격렬한 후라멩꼬 기타 테크닉 습득에 온몸과 생을 바쳐 더욱 전진한 기타리스트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라몬 몬토야(Ramon Montoya)․하비에르 몰리나(Javire Molina)․니뇨 리까르도(Nino Ricardo)․빠꼬・루세나(Paco Lucena)․뻬리꼬 엘 델 루나르(Perico el del Lunar)․루이스 마라뱌(Luis Maravilla)․사비까스(Sabicas)․까를로스 몬또야(Carlos Montoya)․마리오 에스꾸데로(Mario Escudero)․마누엘 까뇨Manuel Cano)․마니따스 데 쁘라따(Manitaz de Plata)․빠꼬 데 루시아(Paco de Lucia)․로스 로메로스(Los Romeros)등이 바로 그들이다.
언젠가 늙은 집시 기타리스트는 “또께 혼도는 마음 깊은 밑바닥에서 솟아오는 것이다.”라 말했는데 이러한 음악을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천재적인 기타리스트일 뿐이다. 화야도 “또께 혼도를 잘하는 것은 스페인 사람뿐이고, 온 유럽 어디를 찾아보아도 이를 연주할 수 있는 기타리스트는 눈에 뜨이지 않는다. 뛰어난 기타리스트는 아무 생각 없이 연주하는 하모닉스의 효과,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대 예술이다.”라고 말한다.
또께 혼도의 진수를 가득히 시에 노래하며 담아 넣은 대시인 로르까에 따르면 후라멩꼬 기타는 “둥글게 열린 입에서 나오는 잃어버린 영혼의 한숨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로르까는 그의 시(詩) 기타<La Guitarra>에서 또께 혼도를 “다섯 자루의 칼로 심하게 상처 입은 마음”이라며 다음과 같이 끝맺음하고 있다.
기타의
탄식이 시작되네.
새벽녘의
포도주 잔은 산산이 부서지네.
기타의
탄식이 시작되네.
그것을 침묵케 하기는 어려워
조용케 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라네
시내물결이 울며 흐르듯
바람이 눈 위를 울며 지나듯
홀로 흐느껴 울고 있네.
그 울음소리를
조용히 멈출 수는 없다네.
지나간 옛날을 추억하며
기타는 슬피 우네.
남쪽 나라 바닷가의 따뜻한 모래가
하얀 까메리아 꽃을 그리워하듯
홀로 흐느껴 울고 있네.
과녁이 없는 화살이 눈물짓고
아침도 없이 밤새 구슬피 울며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서 방금 죽은 새처럼
마냥 울고 있네.
오! 기타여!
다섯 자루 칼로 가슴 깊이 상처 입은
마음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