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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우리가 나아가는 승리의 길(44) 새로운 시대의 2월 투쟁
사제공전의 정신으로 부수지 못할 벽은 없다
새로운 힘을! 새로운 도전을!
눈보라에도 / 가슴을 펴고 늠름한 / 무관(無冠)이로구나
나는 엄동설한에도 광선유포를 위해 행동하시는 벗의 분투를 가장 찬탄하고 싶다. 특히 날마다 세이쿄(聖敎)신문을 배달하는 무관(無冠)의 벗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무쪼록 날씨가 몹시 궂은 경우에는 결코 무리하거나 초조해하지 말고 건강제일, 절대 무사고로 위대한 사명을 수행하도록 부탁드린다.
얼마 전(1월 23일), 수도권에도 밤부터 오랜만에 큰 눈이 내려 쌓였다. 이튿날 4시 반쯤, 아직은 캄캄하고 꽁꽁 얼어붙은 꼭두새벽부터 소카(創價)학원 경식야구부가 연습하는 운동장이 있는 히가시야마토시역 앞길에서 묵묵히 눈을 치우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바로 세이큐료(誓球寮)라는 기숙사에서 지내며 배우고 단련하는 소카학원생들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항상 따뜻하게 응원을 보내는 지역 주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발적으로 일찍 일어나 기숙사 관리인과 함께 사방이 온통 하얗게 뒤덮인 세계로 나갔다. 바닥에 꽁꽁 얼어붙은 눈도 평소부터 단련한 힘을 발휘하여 걷어냈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출근하기 시작하는 6시 무렵까지 길을 치운 다음 마치 새벽 연습으로 한바탕 땀을 흘린 것처럼 평소와 다름없이 소카학원에 등교했다.
나중에 소카학원생들이 눈을 치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웃 주민 여러분도 감격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히가시야마토시 홈페이지에서도 다른 학교에 다니는 학회 멤버들이 헌신적으로 눈을 치운 봉사활동과 함께 소개했다.
아프리카 환경의 어머니 왕가리 마타이 박사가 한 말이 떠오른다.
“인간은 여러 가지 문제를 지구 규모의 커다란 차원으로 받아들이면 무력감을 느끼고 맙니다. 그러나 가까운 곳에서부터 행동을 일으키면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눈이 많이 내린 이튿날, 도쿄는 날씨가 맑았다. 이런 날이면 아내는 눈이 많이 내리는 호쿠리쿠 지방 출신의 벗이 예전에 “도쿄는 눈이 내려도 이튿날은 대부분 날씨가 맑아서 좋군요”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고 한다.
나는 아내와 함께 눈이 계속 많이 내리는 일본을 비롯해 눈이 많이 내리는 곳에 사는 전 세계 벗의 고생을 떠올리며 날마다 무사안온을 기원하고 있다.
커다란 공덕을 쌓아라
성훈에는 “북국(北國)인지라 겨울에는 유난히 바람이 심하고 눈은 깊이 쌓이는데”(어서 1052쪽)라는 구절이 있다.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이 사도에 유배되신 법난(法難)은 가혹한 눈바람에 맞서는 싸움이기도 했다.
또 말년에 지내신 미노부의 암자에도 자주 눈이 많이 내렸다. 특히 1278년 겨울은 심하게 추웠다.
편지에 “연로(年老)하신 분들에게 물어본즉, 팔십(八十) 구십(九十) 일백(一百)이 되는 자가 이야기하기를 모두 옛날은 이만큼 추웠던 일이 없었다고” “근방 일정(一町) 가량은 백설(白雪)이 일장(一丈) 이장(二丈) 오척(五尺) 등이니라”(어서 1098쪽)고 쓰셨다.
‘일장’은 약 3미터에 해당한다. 옛일에 밝은 백살 노인들도 놀랄 정도로 춥고 눈이 많이 내렸다.
대성인은 한해 또 한해 엄동설한을 참고 견디며 영법구주(令法久住)의 법전을 단행하셨다.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되느니라”(어서 1253쪽)는 말씀에는 참으로 깊고 단호한 불굴의 정신에서 나오는 울림이 담겨 있다.
눈이 많이 내리는 곳에 살며 그에 지지 않고 서로 격려하며 광선유포의 스크럼을 짜는 벗은 이러한 어본불의 마음을 똑바로 잇고 있다. 그 복덕은 헤아릴 수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많이 내리는 눈에 / 더욱 쌓이는 /
공덕을 / 이야기하며 살아라 / 이 세상의 사명이라고
예전에 신에쓰 지방의 동지에게 삼가 보낸 시이다.
확신과 정열로
도다 선생님이 시련의 겨울을 이겨내고 제2대 회장에 취임하신 날은 1951년 5월 3일이다. 영예로운 그날, 도다 선생님은 75만 세대 본존유포라는 생애 원업(願業)을 대대적으로 선언하셨다.
그러나 절복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현실은 좀처럼 생각만큼 성과가 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절복이 잘 될까.’ 이 점은 당시 리더들이 품고 있던 솔직한 의문이자 고민이기도 했다.
도다 선생님은 그런 마음에 대답하듯 이렇게 말씀하셨다.
“‘조직을 어떻게 운영할까’ 라든지 ‘조직을 어떻게 움직일까’라는 점은 맨 나중 문제다.”
“신앙의 절대적 확신과 정열이 조직을 움직인다. 신앙의 확신과 정열이라는 에너지를 조직 속에 가득 넘치게 해야 한다.”
책략이나 방법을 쓰면 안 된다. 신심이라는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확신과 정열로 행동을 일으켜라!
'법화경의 병법'으로 확대의 길을 열어라!
은사는 그렇게 명확히 가르쳐주셨다.
스승은 원리를 제시한다. 제자가 해야 할 일은 그 원리를 구체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일이다.
내가 학회 전체총회에서 남자부를 대표해 ‘청년의 확신’을 발표한 적이 있다. 왜냐하면 제자로서 직접 돌파구를 열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성인의 말씀을 허망하게 만드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오직 창가학회의 힘과 우리 청년의 힘에 달렸습니다.”
“온갖 삼류강적(三類强敵)을 물리치고 전 세계 사람들이 주시하는 대상이 되어 빛나는 투쟁을 완수하겠다는 결심으로, 도다 선생님의 기대에 보답할 것을 굳게 맹세하며 청년의 확신에 대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은사가 등단한 나를 기쁜 표정으로 지켜보시던 일도 떠오른다.
<보은초>에는 ‘스승이 모든 제자를 육성하는 마음은 대법(大法)을 홍선(弘宣)하기 위해서’라는 문단이 있다.
스승은 제자가 종횡무진 활약하며 광선유포를 추진하기 바란다.
그러므로 제자는 ‘만일 법을 전해 중생을 이롭게 하면 결국 은혜를 갚는 일’이라고 결론지으셨다.
정법을 끝까지 홍통해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벗을 행복한 인생으로 이끄는 일이 바로 가장 궁극적으로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다.
나는 도다 선생님이 기뻐하시는 대대적인 절복을 하겠노라 결심하고 세찬 기세로 가마타지부 ‘2월 투쟁’에 뛰어들었다. 때는 1952년 몹시 추운 겨울, 내 나이 스물넷이었다.
‘보은’의 일념으로
‘2월 투쟁’의 발단은 제일선의 리더가 긴급히 모인 조장회였다. 나는 찬바람을 뚫고 참석한 동지 130명과 마음을 하나로 모아 맹세했다.
즉 ‘2월은 니치렌대성인이 탄생하신 달이자 도다 선생님이 탄생하신 달이기도 하다. 우리는 대성인이 출현하시고 도다 선생님이 홀로 서신 덕분에 묘법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 2월을 절복 승리로 멋지게 장식하자!’는 마음뿐이었다.
‘보은’하려는 일념이 투철할 때 인간은 인간으로서 가장 아름답고 강해진다. 하물며 불법이라는 세계에서 보은은 모든 일의 근간이다.
대성인은 “이러한 자의 제자단나(弟子檀那)가 된 사람들은 숙연(宿緣)이 깊다고 생각하여 니치렌과 동일하게 법화경을 넓혀야 하느니라.” (어서 903쪽) 하고 말씀하셨다.
이 성훈대로 우리는 한 사람 한사람이 보은하겠다는 마음으로 결연히 일어섰다.
그렇기에 몸은 범부일지라도 마음은 대성인에게 직결해 부처의 용기와 지혜 그리고 자비가 활기차게 흘러 통하기 시작했다. 모든 동지가 긍지 드높이 고개를 들고 가슴을 활짝 폈다.
당시 모두 아무리 애써도 한 지부에서 ‘한 달에 100세대’ 이상 절복하기는 어렵다고 한계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으로 말하면 제일선의 블록(반)에 빛을 비추며 ‘조별 2세대’라는 절복목표를 내걸었다.
그리고 나는 구체적으로 ①기원에서 시작하자 ②이웃을 소중히 하자 ③체험을 이야기하자고 강조했다. 세 항목 모두 내가 실천한 일들이었다.
나는 은사의 사업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을 때 “젖은 나무에서 불을 내고 마른 흙에서 물을 얻으려 하듯, 강성(强盛)하게”(어서 1132쪽) 끝까지 기원하여 타개했다.
또 내가 사는 ‘아오바소’라는 연립주택의 이웃 주민들에게 상쾌하게 인사를 건네려고 노력하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거듭 불법대화도 나눴다. 그러한 벗과 좁은 단칸방에서 근행을 함께한 일도 그립다.
그리고 나도 신심 덕분에 병을 이겨낸 체험을 열심히 이야기했다.
지용의 사명을 위해 일어선다
어쨌든 모든 동지가 ‘어떻게 해서든 도다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는 내 마음과 같이 불타오르며 일어섰다.
‘누군가’가 아니다. ‘자신’이 해야 한다!
‘언젠가’가 아니다. ‘지금’ 해야 한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가능한 일’로 만들어야 한다!
한 사람 한사람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도다 선생님의 대원(大願)과 합치해 ‘사제’라는 생명의 톱니바퀴가 깊이 맞물렸다.
스승과 함께 광선유포 하는 일을 스스로 원하여 출현한 존재가 지용보살이다. 학회원은 모두 위대한 보살이다.
일단 사명을 자각한다면, 반드시 으뜸가는 광포 투사로서 본디 지닌 힘을 발휘하지 못할 리 없다. 부수지 못할 벽은 결코 없다.
이러한 ‘절복전’을 시작한 우리 가마타 지부는 그 동안 한계였던 한 달 100세대 절복을 훌쩍 뛰어넘었을 뿐 아니라 200세대라는 벽까지 돌파했다.
창가의 역사에 빛나는 ‘2월 투쟁’을 펼친 지 60주년이 되었다.
이러한 가절에 우리 청년부는 신선한 숨결로 장년부·부인부와 일치단결하여 ‘창가청년세미나’ 등을 전개하며 우정과 확신이 가득한 대화를 널리 펼치고 있다.
여자부는 ‘3·16’을 기념해 새로운 멤버로 ‘이케다화양회’ 제5기를 발족한다고 들었다.
이러한 뜻깊은 가절을 자타(自他) 모두의 성장과 승리로 장식하자!
한 사람 한사람의 생애 원점으로 만들자!
나는 그 깊고 존귀한 마음이 무엇보다 믿음직스럽다.
장년부와 부인부 여러분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청년학회를 구축하기 위해 자신의 지역에서 젊은 벗을 열심히 육성하고 계신다. 이보다 더 고마운 일은 없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는 벗과 맺은 유대를 직접 작사·작곡하여 노래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 고귀한 태양이여 / 참된 우정을 맺은 / 인생은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긍지 드높은 우정을 넓혀야 한다. 명랑한 목소리로 학회가를 부르며!
사제불이(師弟不二) / 눈부신 전통 / 빛나노라 / 이기노라 불타노라 / 우리 긍지로
혹한을 / 참고 견뎌 거목으로 / 자라라 / 눈보라에 폭풍에 / 젊은 행자(行者)는
법화경 <법사품>에는 명확하게 설해져 있다.
“남몰래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법화경의 한 구절을 설하면 마땅히 알지어다 이 사람은 곧 여래의 사자로서, 여래가 보내, 여래의 일을 행하였다.”(법화경 357쪽)
불법대화가 결실하든 못하든 ‘여래의 일’, 즉 ‘부처의 일’을 행한 공덕은 광대무변하다.
우리 스승 도다 조세이 선생님은 알기 쉽게 말씀하셨다.
“이 사바세계에 괴로움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부처는 사람을 격려하지 않고는 구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이것이 절복정신이다.”
벗을 염려해 벗의 행복을 기원하고 말한다. 그곳에 자연히 부처의 생명이 맥동한다.
도다 선생님이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이 신심으로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고민의 중심을 타개하고 사람들이 바라는 것을 완벽하게 나타낼 수 있다. 용기와 진심이 중요하다. 진심은 반드시 상대에게 전해진다.”
이 2월, 전통의 ‘청년주장대회’가 도다 선생님의 고향인 홋카이도에서도 힘차게 시작 되었다. 젊은 힘을 결집해 홋카이도 전역의 200곳이 넘는 행사장에서 열린다.
각계 지성인들이 사랑하는 향토를 활성화하는 연대가 될 것이라고 크게 기대하고 있다.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뒤, 재건에 힘쓰는 도호쿠 미야기현에서도 창가청년대회를 목표로 모두 하나가 되어 전진하고 있다.
도다 선생님의 탄생 112주년이 되는 이번 2월, 은사도 후계인 청년들의 건투를 틀림없이 기뻐하실 것이다.
사람들에게 다이아몬드의 광채
60년 전, ‘2월 투쟁’을 어째서 승리할 수 있었는가.
①그 이유는 눈앞의 한 사람을 철저하리만큼 성실하게 격려했기 때문이다.
‘광선유포’는 한 사람의 ‘인간혁명’에서 비롯된다.
결의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일으켜 세운다. 그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을 분발해 일어나게 한다. 용기가 용기를 불러일으킨다. 이런 ‘일대일’로 이어진 결의의 연쇄 작용이 바로 확대의 철칙이다.
그러므로 ‘맹세한 사람’을 더 많이 만드는 일이 광포를 폭발적으로 진전시키는 데 필요한 조건이다.
도다 선생님과 같은 날인 2월 11일에 태어난 발명왕 에디슨이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에는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감춰져 있다. 갈고 닦으면 빛을 발한다.”
모두 다이아몬드와 같은 존귀한 인재다. 모든 동지는 신심의 위대함을 증명할 사명을 지니고 있다. 얼마나 소중한 여러분인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제일선에서 노고하는 여러분을 격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이 활기차게 싸울 수 있을지,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기원하며 지혜를 짜냈다.
나는 당시 가마타 지부간부 중에서 가장 젊었다. 사람을 모아 놓고 잘난 체 하며 지도해도 누가 신용하겠는가. 직접 찾아가 얼굴을 맞대고, 찬바람 속을 함께 걸을 수밖에 없다.
한 번의 좌담회, 한 번의 개인지도, 한통의 격려 편지… 모두 내 주된 싸움터라고 생각하고 진지하게 임했다.
절복이 진척되지 않는 멤버가 있으면 내가 직접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 나 혼자 이야기하지 않고 동석한 벗에게도 체험이나 교학의 기본을 자꾸 말하게 했다. 그러면서 모두 자신감과 확신을 키워 갔다.
연장자인 동지 여러분도 함께 일어서셨다. 특히 40대 장년부 선배도 용감하게 분발해주니 고맙고 마음 든든할 뿐이었다.
저마다 뭔가 괴로움을 안고서도 자진해서 절복에 뛰어들었다. 그 용기가 괴로움을 함께 이겨내는 용감한 생명력을 끌어낸다.
지금까지 주위 사람들에게 신심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 사람도, 아직 신심이 얕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망설인 사람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용기 있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함께 움직이고 함께 말한다
②‘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에서 생기는 ‘단결’도 ‘2월 투쟁’을 승리한 원동력이라 해도 좋다.
“니치렌의 동류는 이체동심이기에 사람들은 적지만 대사를 성취하여 반드시 법화경이 넓혀지리라고 생각하오.”(어서 1463쪽)라는 말씀 그대로다.
나는 각자가 지닌 개성을 발휘하며 서로 존경하고 단결할 수 있도록 남모르게 애쓰며 지휘했다.
특히 청년에게는 생활에 뿌리내린 체험을 가진 장년부와 부인부 선배와 함께 절복에 도전하도록 외쳤다.
함께 움직이고 함께 달렸다. 괴로워하는 벗이 있다고 들으면 둘러앉아 대화했다. 발고여락의 좌담회가 매일같이 열렸다.
어느 날, 입회한 지 얼마 안 된 부인부원이 절복을 결심하고 지인을 만나러 간다기에, 내가 따라간 적이 있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걸으면서도 다리가 얼어붙는 모양이었다.
나는 “학회가를 부르며 즐겁게 갑시다!” 하고 말씀드렸다. 처음에는 작은 목소리였지만, '동지의 노래'를 몇 번이나 함께 부르는 사이에 금세 활기가 생겼다.
결국 그날 대화는 결실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날을 계기로 분발해 지방에 사는 친구를 잇달아 절복했다.
이 친구에게도, 저 지인에게도 말해주고 싶다며 전 지부에 ‘문법하종’이라는 환희의 소용돌이가 일어나 그것이 몇 백 명에게 넓혀졌는지 헤아릴 수 없다.
그리고 2월을 끝까지 싸워 201세대라는 미증유의 홍교를 달성했다.
한 사람 한사람이 벽을 부수었다. 새로운 사람이 새로운 힘을 내어 새로운 단결로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다.
해내고 말겠다!
‘2월 투쟁’은 도쿄는 물론 다마강을 사이에 둔 가나가와에서도 광포의 불꽃은 타올라 주부와 야마나시, 지바 그리고 눈의 나라 도호쿠와 아키타로 확대되었다.
이 후에도 희망찬 봄의 발소리는 한층 더 울려 퍼져 시코쿠와 규규 등 전국으로 넓혀졌다. 우리의 행진은 드디어 홋카이도의 구시로까지 이르렀다.
당시 남편이 신심을 반대하는 속에서 부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절복하러 뛰어다닌 부인도 있었다. 점심 겸 저녁으로 변변치 못한 주먹밥을 싸가지고 열심히 돌아다녔다.
생각대로 절복이 좀처럼 진척되지 않을 때도, 서로에게 명랑하게 말을 건네고 격려하며 “아직 단념하지 않노라”(어서 1056쪽) 하는 구절을 가슴속에 새기고 굴하지 않고 계속 전진했다.
부인은 “‘할 수 없다’고 고민하기 전에 ‘해내고 말겠다’고 정하고 기원하며 싸운다”는 ‘2월 투쟁’에서 배운 정신으로 300세대나 개인 절복을 달성하셨다.
기쁘게도 아흔 두 살인 지금도 보수회(다보회)의 일원으로서 정정하게 활약하며 소카(創價)대학교 통신교육부에서 공부한 일도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함께 투쟁한 동지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내 가슴속 깊이 빛나고 있다. 돌아가신 분도 있다. 그러나 생사를 넘어 제목으로 맺어져 있다. 또 자녀와 손주분과도 연계를 맺고 있다.
미국SGI 나가시마 이사장의 어머니도 ‘2월 투쟁’이 한창일 때 가마타지부 거점인 시라키씨 댁에 찾아와 입회를 결의한 초창의 보우(寶友)이시다.
나가시마 씨가 요전에도 그리운 알래스카 동지가 바깥 공기 영하 13도라는 혹한에도 굴하지 않고 활기차고 사이좋게 전진하고 있다고 보고해 주셨다.
민중혁명이 이긴 원인은
새로운 힘, 즉 서민의 힘이 대두할 때 ‘새로운 시대’는 열린다.
1986년 2월, 필리핀에서는 ‘피플파워(민중의 힘)혁명’이 일어났다. 다른 이름은 ‘2월 혁명’, 이 싸움으로 21년 동안 이어진 독재 정권이 무너졌다.
이 극적 무혈혁명으로 필리핀 민주주의의 신시대를 연 중심인물 중 한 사람이 라모스 전 대통령이었다. 올해도 정성이 담긴 연하장을 받았다.
나는 4번째 회견 때, 솔직하게 물었다.
“혁명이 어째서 성공했습니까?”
라모스 대통령은 예리한 눈을 빛내며 대답하셨다.
“민중이 자신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겠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런 각오가 있었기에 혁명이 달성되었습니다.”
실은 이 혁명이 성취하는 데 여성의 힘이 컸다고 한다. 독재 정권이 무너진 직접적인 계기는 군중 수십만 명이 마닐라 ‘에드사 거리’에 결집해 정권에 항의하는 ‘인간바리케이트’를 만든 일이었다.
정권에 반대하면 목숨마저 잃을지도 모른다. 그런 공포 앞에서 망설이는 남편과 아버지, 형제 그리고 아이들을 설득해 ‘에드사 거리’로 향하게 한 사람이 각 가정의 이름 없는 어머니들과 딸들이었다. 그것은 평화를 바라는 신념 강한 여성들이 만들어낸 승리였다.
학회도 부인부의 확신에 찬 한마디가, 봄바람 같은 따뜻한 한마디가 얼마나 벗의 마음을 울리는지 모른다. 여자부의 상쾌한 웃는 얼굴이 동지에게 얼마나 큰 희망을 주는지 모른다.
지금, 필리핀을 비롯해 세계에서 창가의 여성들이 행복승리의 대화를 펼치며 우정과 평화의 스크럼을 넓히고 있다.
나와 아내는 더욱더 사이좋고 건강하게, 훌륭한 인생을 승리로 열기를 기원하는 나날이다.
“시(時)를 알아야 하느니라”
“불교를 홍통하는 사람은 반드시 시를 알아야 하느니라.”(어서 439쪽)
니치렌대성인은 750년 전인 1262년 2월에 이 <교기시국초>를 저술하셨다.
지금 세계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과제를 앞에 두고 앞날이 보이지 않는 망막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이러한 ‘때’이기에 올해 ‘SGI의 날’ 기념제언에서 말씀드렸듯이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끝까지 믿는 입정안국의 대화가 중요하다.
그리고 “한 사람 한사람이 서로의 가능성을 믿고 힘을 솟아나게 하며, 탈출구가 없는 시대 상황을 부수는” 입정안국의 연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생각해 보면 <입정안국론>은 대성인이 입멸하기 전에 지금의 오타구에 있던 이케가미 저택에서 제자들에게 강의하신 중서(重書)다.
내가 도다 선생님과 처음 만난 오타구 가마타 좌담회에서 선생님이 강의하신 어서도 <입정안국론>이었다.
60년 전의 ‘2월 투쟁’은 기이하게도 이런 연고가 있는 오타에서 서민의 힘으로 입정안국의 대화와 연대를 일으킨 광포의 역사다.
그리고 지금 다시, 그때와 같이 윤달인 이 달에 우리 제자들이 새로운 ‘2월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지금 이때가 바로 모두 청년의 마음으로 청년과 함께 싸우며 활기차게 나아갈 때다.
자, ‘입정안국’이라는 대원을 드높이 내걸고 ‘창가 청년의 새로운 시대’를 유쾌하게 승리해 열어나가지 않겠는가!
천(天)의 때 / 마침내 왔도다 / 건설하는 /
지용의 용자에게 / 아침 해 빛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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