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 하면 이미 넘어간 후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다 우회전하지 못하고 길을 지나쳐 버렸다. 재빨리 시계를 봤다. 일곱 시가 십오 분이나 남았지만, 갑자기 길가의 차들이 모두 내 주위로만 몰려드는 것 같았다. 디지털시계의 시와 분 사이, 세로로 놓인 두 점은 당황한 듯 빠르게 눈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분명 계기판 속도는 사십오 마일이 맞는데 이상하게도 바깥 풍경은 스쿨 타임처럼 이십 마일로 늘어졌다. 핸들에 놓인 열 개의 손가락이 짧게 스타카토 몇 번을 치더니 이내 기법을 바꿔 현란한 트릴을 선보였다.
길을 돌아가기 위해 미어캣처럼 목을 기다랗게 늘여 사방을 둘러봤다. 하지만 중앙분리대의 머리와 꼬리는 전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눈앞에서 도로 표지판 숫자가 고공행진을 하며 바람에 날아가듯 지나갔다. 가속페달을 밟는 발에도 힘이 더해졌다. 그러는 사이, 내게 주어진 시간은 순식간에 십 분으로 줄어들었다.
드디어 눈앞에 유턴 표지판이 떴다. 그제야 손가락의 트릴 연주가 멈추고, 기다랗게 늘였던 목도 제자리로 돌아갔다. 바깥 풍경도 사십오 마일로 달렸다. 시계 속 두 점도 숨을 골랐다. 그리고 부드럽게 핸들을 돌려 유턴을 하고 나니 도로 표지판 숫자가 다시 차분히 내려앉았다. 이제 다음에 나올 큰 사거리에서 좌회전 한 번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저 멀리 경찰차가 요란한 빛을 내며 길을 막고 서 있었다. 큰 트럭에서 떨어진 목재로 인해 여러 대의 차가 부딪쳐 큰 사고가 난 것이었다. 차들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거로 보아 사고가 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경찰이 지시하는 대로 차를 돌렸다. 가뜩이나 급한데 또 돌아가야 한다니. 다시 손가락이 트릴 연주를 시작했다.
그때, 휴대전화에 딸의 이름이 떴다.
“엄마 어디야? 나 끝났어.”
“미안. 여기 큰 사고가 나서 좀 늦어. 금방 갈게.”
이미 일곱 시를 지났다. 시계의 두 점이 느리게 깜빡이다 이내 멈췄다. 세상이 태곳적으로 돌아간 듯 조용해졌다. 원래부터 나 혼자인 공간처럼 주변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시간이 거꾸로 흘러 사고 전의 장면으로 옮겨갔다. 사고 차량도 제 궤도를 찾아 돌아가고 떨어진 목재들은 다시 트럭에 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돌려 감기 된 시간 속에서 내 차가 우회전할 기회를 놓치고 지나쳤다. 사고 시간과 간발의 차이였다.
아무런 문제 없이 단번에 우회전에 성공하는 인생을 꿈꿨다. 완벽하게, 한 치 오차도 없이 움직여 최단 거리로 목표 지점에 도착하는 걸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했다. 실수하면 그만큼 늦어지고, 돌아가는 것도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을 놓치는 실수가, 그래서 조금 늦어지는 인생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유턴해서 좌회전하는 것과 처음부터 우회전하는 건 보는 방향이 다를 뿐, 궁극적으로는 같다.
삼십 분이나 늦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급히 차 안으로 들어온 딸의 점퍼에서 빗방울이 튀었다. 그리고 쉴 새 없는 타박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런 딸의 상기된 얼굴이 오늘따라 더 예뻐 보였다. 하마터면 다시 못 봤을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딸이 내게 늦은 벌로 버블티를 사 내라고 했다. 그런데 입을 삐죽이는 딸의 옆모습을 훔쳐보다 또 길을 놓쳤다.
아차! 하면 이미 넘어간 후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유턴해서 다시 좌회전하고 싶은 날이다. 느리게 가고 싶은 날이다. 그래서라도 더 오래 보고 싶은 딸의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