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요모음곡 중에서
조용필의 '눈이오면 그대가 보고싶다'를 듣다보니...
새삼
조용필이
참 좋다!
이런 생각이 더 드네요. ㅎㅎ
물론 그를 싫어하는 대한민국 사람은 없겠지요?
벌써 환갑이 넘어버린 조용필...
그는 1950년 3월 21일에 태어났다네요.
음력이라는 말이 없으니 양력이겠지요?
그러면
그 악명(?) 높은 3월생!
별자리로 보면 '물고기 자리'에 태어났네요.
천재적이지만 개성 강한 사람들...
우리 집에도 둘이나 있습니다!!!ㅠㅠ ^^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고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살 때 그룹 '애트킨즈'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다가
미 8군 무대에서 데뷔했다네요.
21세 때 3인조 음악 그룹 '김트리오'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락음악으로 전환하였으며
24세 때 자신의 이름을 쓴 '조용필과 그림자라'는 그룹을 결성해서 활동했고
26세 때 솔로로 전향해서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발표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후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구요.
하지만 곧 대마초 파동에 휘말려 4년간의 공백기를 갖게 되고,
해금 조치이후 첫 앨범인 <창밖의 여자>를 발표했답니다.
<창밖의 여자>!
고음이 폭발하는 애절한 곡...
저도 참 좋아했습니다. ^^
유감스럽고 부끄럽게도
제가 그 노래 레코드나 테잎을 안 샀어도
이 곡은 대한민국 최초로 100만장 이상 팔린 단일 앨범이라네요.
조용필이 36세 때는
일본 발매 앨범 <추억의 미아 1>을 100만장 이상 팔아
골든디스크를 수상했고
일본에서의 앨범판매량 역시 공식적으로 600만장이 넘어
'한류의 시초'로 평가받는다고 합니다.
44세 때 대한민국 최초로 음반 판매량 1000만장을 기록했고
조용필 이후로 가요의 음반 판매량이 외국 음반 판매량을 넘어서게 되었으며
데뷔 이래 현재까지
조용필의 히트곡은 다른 가수들 보다 훨씬 많다고 알려져 있다니
정말...^^
조용필의 여러 대단한 점 중의 하나!
많은 가수들이 한 노래 장르에 머무는 데 반해
그는 트로트 음악 뿐만 아니라
락
발라드
한국민요까지 소화해 내며
거의 모든 노래 장르와
폭넓고 다양한 연령층을 확보했다는 것입니다.
원래 민요를 듣지도 부르지도 않는 저이지만 (ㅠㅠ)
그가 부르는 <한오백년>을 듣다보면
애간장이 끊어지는 듯한 처절함이
몸에 닭살이 돋게 만들고
여러번 듣게 만들 정도이지요.
조용필이 데뷔했을 때의 가요계는 그 때까지
그가 불러일으킨만큼 커다란 영향을 끼친 가수가 없었답니다.
특히 대한민국 가요계 최초로
'오빠부대'라고 불리는 팬층을 이끌고 다녔다고하는데
그 때 따라다녔던 소녀들은 아직도 그의 팬으로 남아
같이 늙어가고 있겠지요.ㅎㅎ
그는 또한 노래만 부르는 가수가 아니지요.
다양한 곡들을 직접 작사 작곡하고
다른 작곡가에게 받은 곡일지라도
대부분의 곡을 밴드 "위대한 탄생"과 함께 편곡 하였으며
앨범 프로듀싱까지 하여
대한민국 가요계에 '싱어송라이터'라는 개념을 확립시키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도 하답니다.
콘서트 활동을 통해 각종 진귀한 기록들을 낳고 있으며
한국의 콘서트 문화를 정착시킨 인물로도 평가받고 있구요.
그래서 그는 현재 대한민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역사,
전설,
가왕,
국민가수 등으로 불리며
한국 대중 음악을 크게 발전시킨 인물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정말 그가 하는 일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과 열정을 가진
성공적인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는 법...
그의 개인적인 삶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지요.
34세 때 국회의원의 딸인 미술교사 박지숙씨와
광릉에 있는 봉선사(奉先寺)라는 절에서 스님의 주례로 몰래 결혼을 했었는데
5년만에 이혼했고
독신을 선언하다가 44세 때
미모와 재능에, 재력까지 겸비한,
미국에서 활동한 국제 로비스트 재미교포 안진현씨와 재혼했지요.
두사람 결혼할 때 결혼식장에 안진현씨의 하객들로
칼 루치 전 미국방장관 부인,
앨 고어 미 부통령의 사촌여동생,
일본 정계 거물이었던 고(故) 아베 신타로의 아들 아베 신조 당시 의원,
김창준 당시 미 연방하원의원의 부인 등...
엄청난 거물급 인사들이 다녀갔었다고 하네요. ^^
게다가 안진현씨가 인도 출신 점술가에게 궁합을 보았었는데
그 점술가가
“결혼 상대자가 목소리로 유명하겠다고 말해 놀랐다”는 에피소드까지 있었답니다.
그만큼 그들은 그들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결혼이 운명적이었다고 믿고
서로 사랑했는데
9년만에 그만 그의 아내 안진현 씨는
급성 심근경색으로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지요...ㅠㅠ
당시 아내의 유해를 안고 귀국해 한국에서 조문객들을 맞은 조용필은
내내 빈소를 지키며 슬퍼했고
그 사랑과 슬픔 때문에
심장병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나서기도 했답니다.
그가 아내를 추모하기 위해 부른 노래가 바로 <진>인데
콘서트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얼마나 애통했던 것일까요
가슴이 아픈 일입니다...
그는 아이가 없지요.
그 또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가 자녀를 두었으면 그의 끼와 재능을 이어받아
이 땅에서 무엇인가 한몫 크게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참 이상하게도
정말 괜찮은 사람들은
결혼을 안하거나
자식을 안두거나 하데요.
세상이 그래서 발전이 늦는 걸까요? ㅠㅠ
가수 조용필과 배우 안성기는 중학교 동창이라네요.
조용필이 안성기의 집에 놀러올 정도로 친한 사이였고
안성기는 조용필이 음악을 하리라곤 생각도 못했답니다.
그때 조용필은 그냥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였다네요.
상상이 안되지 않나요?ㅎㅎ
그리고 안성기가
"조용필의 지금 키가 중학교 그때 키다"라고 말해서
출연했던 텔레비젼 프로그램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는데
조용필의 키?
작아보이지요?
찾아보니 166cm라네요. ㅎㅎ
실제로는 조금 더 작을지도 모릅니다.
항상 부풀려지는 것이니까 말이지요.
남자가 그 키이면 정말 작은데
어떻게 그 노래 볼륨이 나올까요...
그는 정말 작은 거인입니다!^^
저는 이상하게 트로트에 전혀 끌리지 않아서
그의 노래 중에서 그 유명한 인기곡
<돌아와요 부산항에>나 <허공> 같은 노래는
별로입니다. ㅠㅠ
하지만 다른
거의 모~든 노래들은
정말 새로워서
<못찾겠다 꾀꼬리>처럼
때로는 아이같고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때로는 무거운 철학자 같은
노랫말과 곡조에
늘 감탄하게 됩니다.
수많은 노래를 만들고
불러
우리의 정서를,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조용필!
이제 저물어가는 나이에 있는 그...
건강을 잘 유지해가며
외롭지 않게 좋은 사람을 곁에두고
계속 행복하게 일하는 모습을
오래 보고 싶습니다.
조용필이 좋네요...^^
마지막으로
노랫말이 깊고 처연해서
눈물이 나는
그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를 옮겨봅니다.
남자가 아니지만 저도
이 노래 가사와 같은 마음으로
살고 싶네요...
<킬리만자로의 표범>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 거리는 하이에나를 본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는 눈덮인
킬리만자로의 그표범이고 싶다
자고 나면 위대해 지고 자고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묻지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살아가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때
그것을 위안해줄 아무것도 없는 보잘것 없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건 사랑때문이라구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고독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지
사랑만큼 고독해 진다는걸 모르고 하는 소리지
너는 귀뚜라미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귀뚜라미를 사랑한다
너는 라일락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라일락을 사랑한다
너는 밤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밤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나는 사랑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찬것 같으면서도 텅비어 있는 내청춘에 건배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건 외로운 거야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 않는것
그래야 사랑했다 할 수 있겠지
아무리 깊은 밤 일지라도 한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 메마르고 타버린 땅일 지라도 한줄기 맑은
물소리로 나는 남으리
거센 폭풍우 초목을 휩쓸어도
꺾이지 않는 한그루 나무 되리
내가 지금 이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
구름인가 눈인가 저높은 곳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매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면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 이 노래는 이 카페 음악감상실에 올려놓겠습니다...
첫댓글 70년 대까지는 팝송을 불러야 했고
가요는 촌스러우니 저딜 애들이나 불렀고
이런 흐름이 확 바뀌어서
요새 팝송브르면 오히려 눈초아 받는 시대
이렇게 흐름을 바꾼 가수가
조용필? 서태지?
그렇겠네요.
정말 요즘 팝송부르면 눈총받는다... ㅎㅎ
한국 영화수준도 높아졌고
뭐든지 참 좋아졌지요.
이제 정치만 잘하면 되는데...ㅠㅠ
군대에서 막 제대하여
누나와 봉제완구 공장을 운영하던 친구를 찾아갔는데
친구 방에 미니전축이 있기에
턴테이블에 바늘을 얹어 듣는데 조용필의 노래가 흘러나왔겠지요?
제목이 [단발머리] [고추잠자리]였지요.
얼마나 가슴이 젖어들던지요.
그 밤을 홀딱 새웠습니다.
조용필의 음악에 빠져들어 야간작업을 마치고
후줄근하게 들어오는 친구를 게스츠레 올려다보며
그 새벽으로 포장마차에 가서 술에 깊이 취해
그냥 쓰러졌습니다.
조용필의 음악에 그냥 대책없이 쓰러졌습니다.
정말 쓰러질만한 가수 맞지요?
어쩌면 그렇게 노랫말이나
노래하는 양식을 달리해서
잘 부르는지
하다못해 그가 부르는 트로트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만들거든요.ㅎㅎ
대한민국은 조용필 팬들로 가득한 거 맞지요?
오랫동안 앞으로도 활동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조용필에게도 전달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