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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여기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캐릭터 디자인이라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확실히 하겠습니다. 보시다시피 위엔 초사이어인 블루 오공, 베지터의 설정화가 둘 있습니다. 여기서 왼쪽은 원작자 토리야마 아키라가 처음으로 ‘창조’한 블루의 모습이죠. 이 토리야마가 개발해낸 블루는 애니메이션화되는 과정에서 한 사람의 손을 거쳐 ‘재탄생’하게 되는데요. 그 사람은 바로 ‘캐릭터 디자이너’라는 역할을 부여받은 인물입니다. 이 캐릭터 디자이너가 토리야마에 의해 만들어진 초사이어인 블루의 생김새를 새로 그려내고 이 재탄생한 블루가 애니메이션에 쓰이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다룰 이 캐릭터 디자인이라는 것도 토리야마의 캐릭터 디자인이 아닌, 캐릭터 디자이너가 애니화를 위해 토리야마의 그것을 다시 그린 캐릭터 디자인입니다.
드래곤볼 애니의 역대 캐릭터 디자이너로는 오리지널부터 Z 인조인간 편과 1~11기 극장판의 ‘마에다 미노루,’ Z 마인 부우 편과 GT의 ‘나카츠루 카츠요시,’ 12~19기 극장판과 슈퍼 애니의 ‘야마무로 타다요시,’ 20기 극장판의 ‘신타니 나오히로’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큰 것만 언급했지만 여기서 야마무로는 점프 40주년 tva와 카이, 슈퍼 드래곤볼 히어로즈 애니의 설정화도 담당하였죠. 참고로 저 초사이어인 블루를 맡은 캐릭터 디자이너는 신타니였습니다.
드래곤볼 캐릭터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는 어떠한 컨셉을 잡았느냐입니다. 보통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디자이너들은 그냥 원작 만화의 작화체를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가 많은 데에 비해 드래곤볼은 워낙 많은 세월을 거치며 토리야마의 스타일도 여러 차례에 걸쳐 상당히 바뀌었고 원작이 연재된 지도 이미 오래 전이었기 때문에 그 와중에 나온 드래곤볼 애니는 캐릭터 디자이너가 무슨 컨셉으로 다가갔는가가 아주 크게 작용하였습니다.
제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컨셉은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인데요. 일부러 근육 등에 디테일을 주지 않고 심플하게 디자인하여 애니메이터들이 단순한 생김새보단 자연스러운 움직임, 즉 부드러운 액션에 힘을 쏟을 수 있게 하는 디자인의 컨셉을 부드러움이라고 하겠습니다. 쉽게 말하면 ‘액션을 위한 디자인’이라 부를 수 있겠네요. 그러나 이 부드러운 디자인은 아무래도 순수 비주얼의 화려함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애니를 예로 든다면 포켓몬스터 썬앤문이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한편 그런 것보단 자세히 묘사된 근육과 날카롭게 각이 진 캐릭터들의 생김새에 힘을 주는 등 멋있는 비주얼에 집중한 날카로움, 혹은 ‘화려함을 위한 디자인’ 컨셉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날카로운 디자인은 장기간 애니메이션용으로 하기엔 다양한 액션을 담아내기 한계가 있으며 지나친 근육이 때때로는 어색한 몸동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존재하죠.
이것을 드래곤볼 캐릭터 디자이너들에게 적용해보면 마에다와 신타니는 부드러움을, 야마무로와 나카츠루는 날카로움을 추구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엔 단순히 이들의 스타일 뿐만이 아니라 그 당시 시기 토리야마의 스타일이 그러했다는 것도 한 몫하였죠. 토리야마가 소프트한 그림체를 추구함에 따라 마에다 역시 같은 스타일로 나갔으나, 날이 갈 수록 그림체가 각이 지고 날카로워지며 나카츠루와 야마무로의 색깔에 큰 영향을 주었고 최근엔 다시 부드러운 스타일로 회귀하며 이에 신타니 역시 그런 토리야마의 성향을 바탕으로 컨셉을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부드러움과 날카로움 사이에서의 황금 밸런스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는 걸까요? 만약 이 둘이 하나로 만나면 어떤 모습이 나타날까요? 드래곤볼의 역대 캐릭터 디자이너들 중 두 명이 바로 그것을 시도하였습니다.
- 야마무로 타다요시
(야마무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제가 예전에 쓴 글을 참고해주세요.)
과거 전성기 야마무로의 스타일을 정리하자면 슬림한 캐릭터들의 얼굴, 표현 전달에 큰 힘이 되어주는 곡선 눈매, 갑빠를 비롯하여 크게 강조된 근육 등이 있었습니다. 즉, 날카로움을 컨셉으로 잡아 최고의 반열에 오른 것이죠. 그에 비해 21세기의 야마무로는 캐릭터들의 큰 얼굴, 얼굴에 입체감을 주지 못하는 명암, 표현력에 한계를 주는 직선 눈매, 얼굴에 물광, 딱딱한 플라스틱처럼 보이는 머리카락, 갑빠는 커녕 달랑 뼈 하나만 보이는 흉부, 그러면서도 큰 팔 근육 등이 특징이며 이렇게 변한 스타일로 인해 팬들의 질타를 받기도 합니다.
2013년 신들의 전쟁이 나오기 전, OKStars와의 인터뷰에서 야마무로는 이러한 자신의 스타일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스스로 말하기를, “저는 마인 부우 편 막바지 때의 느낌과 좀 더 현실적인 오늘날 토리야마 선생님의 그림체 사이에서 밸런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이것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현재 야마무로의 스타일을 하나하나 분석해보면 양 쪽의 것들을 각각 몇 개씩 따왔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선명한 팔 근육과 딱딱해보이는 머릿결은 부우 편의 그것인 데에 비해 과거보다 둥근 얼굴, 직선 눈매, 갑빠 없는 흉부는 오늘날 토리야마의 특징입니다. 이렇듯 날카로운 스타일을 보유했던 야마무로는 오늘날 토리야마의 부드러움을 추가하려고 시도하였으나,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결과물만을 낳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야마무로의 설정화들을 보면 인체비율적으로 어색한 그림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신들의 전쟁 극장판과 슈퍼 애니에 쓰인 노멀 오공 설정화는 그야말로 최악이죠. 상하체가 맞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며 그런 와중에 팔 근육은 너무 세세히 그리느라 전체적인 캐릭터의 포즈가 매우 어색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무지막지한 근육 캐릭터들을 그려내는 데에 있어 제일 까다로운 점은 근육을 조금만 잘못 그려도 캐릭터의 자세가 순식간에 부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초사이어인3 브로리 역시 마찬가진데요. 엄청난 근육으로 위압감을 주는 데엔 성공하였으나 근육들이 지나치게 각이 져있고 알통들이 아예 따로 놀아 사람 같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고 움직일 수 있어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런 설정화는 단순히 일러스트용으로만 이상할 뿐 아니라, 나아가선 애니메이션화가 되어 동작을 움직일 때도 캐릭터가 뻣뻣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한편 초사이어인3 오천크스 그림은 야마무로의 스타일이 담아내는 표현력의 한계로 인해 도대체 저게 무슨 표정이고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죠. 즉, 현재의 야마무로는 단순히 캐릭터 디자이너로서나 애니메이터로서를 떠나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상당히 아쉬운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종종 자신은 지금의 야마무로도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전 여기에 뭐라 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이런 류의 얘기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른 거고 저 역시 야마무로가 담당한 씬들 몇몇개를 보고 괜찮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심지어 비주얼 자체로만 따져 봤을 때도 야마무로의 스타일이 그렇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과거 야마무로 본인을 포함한 예전 캐릭터 디자이너들이 너무 뛰어났기 때문에 전혀 성에 차지 않는 것이죠.
슈퍼 드래곤볼 히어로즈 애니를 보면 부활의 F 때와는 달리 물광에 대한 과한 집착을 많이 버렸던데 이런 점을 미루어보아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발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다만 저는 물광보다도 큰 야마무로의 문제점들은 많고 오히려 가끔 사람들이 야마무로에 대해 유독 물광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물광은 토리야마, 나카츠루도 썼고 GT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으니까요.)
- 신타니 나오히로
2008년 점프 40주년 기념 tva에 원화가로 참여하며 드래곤볼과 첫 인연을 쌓은 신타니 나오히로는 오늘날 토리야마의 스타일을 완벽히 구현하여 오디션에서 토리야마의 직접적인 선택을 받아 브로리 극장판의 캐릭터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같이 두고 비교해보면 그 유사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죠.
처음 신타니는 드래곤볼 구력이 약했기 때문에 캐릭터의 생김새에 대한 접근법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특히 눈 사이가 너무 벌어져있고 코의 위치가 지나치게 높이 그려져있었죠. ‘타카하시 유야’ 역시 이러한 부분을 꼬집었고 이 때문에 초반까진 스타일이 드래곤볼스럽지 않다는 혹평을 받았었는데요. 이것은 곧바로 피드백되어 눈에 띌 정도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얼굴형도 처음엔 캐릭터를 둥글게 그렸었으나 날이 갈 수록 슬림하고 날카로워지며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스타일로 개선된 한편, 코가 뾰족해고 귀를 그리는 방법은 토리야마와 더더욱 유사해졌습니다.
최근 드래곤볼에 몸 담으며 신타니는 더 뛰어난 아티스트로 발전하였다고 생각됩니다. 기본적인 실력이 워낙 출중한 애니메이터인지라 원래부터 캐릭터들 포즈의 자연스러움이나 근육의 알맞은 조화 등이 아주 괄목할 만하였으나 거기에 전체적으로 캐릭터들의 손가락이나 옷깃 등의 디테일이 몇 단계는 더 훌륭해졌죠. 특히 오공의 날 포스터 노멀 오공의 옷깃에서 보이는 디테일은 엄청납니다. 세세한 손동작은 ‘시다 나오토시’ 느낌도 나네요. 한 마디로 현대 토리야마의 느낌에서부터 시작해 부드러움을 컨셉으로 잡았으나 점점 날카로움을 더해가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의 적절한 조화이고 앞으로 차기작에서 신타니가 선보일 디자인이 기대되어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누구의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든 그건 개개인의 취향이지만 설령 본인의 취향에 맞지 않더라도 그 스타일이 무슨 이유와 무슨 목적으로 그런 스타일로서 존재하는지는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느낍니다.
첫댓글 굿자료
글 정리 고생하셧어요 감사합니다
디테일하셔 ..
진짜 이건 개인의 취향이아니라 프로로써 자격이 없는 수준
갑자기 퇴보 수준으로 작화를 변화한 이유 중 하나가 조산명 영향이라니.. ㄴㅇㄱ
그것보다 오공 vs 브로리 포스터 개 쩌네요
다다단님의 자료 항상 너무재미있게 잘보고 있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잘봤습니다.
이런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