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를 찾아]
소 외양간과 돼지우리에 넣을 풀 베는 일이 하루 일과 중 비중이 큰 일 이었다. 아버지, 할아버지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이다. 아침 해 뜨기 전 지게를 지고 먼 곳의 산소부터 찾아 나선다. 소, 염소 고삐 끌고 풀 뜯어 먹게 하러 다녔다. 예전에는 산에 소나 염소가 풀을 뜯어 산소에 자라는 풀이 남아나지를 않을 정도다. 성장할 때는 아예 벌초라는 것을 모르고 지냈다. 또 아버지나 삼촌이 으레이 추석 전에 정리를 해 두었기에 예사로 여겼다.
삼사십 년 전의 일이다. 산소마다 우거진 풀을 제거하는 일, 벌초가 언제부터인지 집안 연례행사로 바뀌었다. 추석 전 서로 가능한 날짜를 정해서 온 집안에 장성한 사람들이 모여 선대 묘소의 풀베기에 나선다. 새벽 동이 트면 동네 입구 구릉에 자리한 산소부터 벌초를 한다. 십여 명 정도가 예초기 몇 대와 낫, 풀을 치우는 갈쿠리가 준비된 도구다. 기계의 도움을 받게 된 후부터 벌초 속도가 빨라지고 이전보다 수월해졌다. 위험 요소가 있기에 조심스럽게 다루고 초보에게는 맡기지 않는다. 비가 자주 내린 탓으로 산소에는 키가 큰 잡풀이 서로 뒤엉켜 예초기 엔진 회전력을 높이는 소리가 골짜기마다 기계 소리다.
우거진 수풀 사이로 작은 공간이 보인다 싶으면 그곳은 영락없이 묘가 있다. 짧은 시간에 우리의 산천이 벌거숭이에서 빽빽한 숲으로 바뀌었다. 퇴비와 난방과 여러 연료를 산에서 구하던 시대에는 벌거숭이산이 되는 것은 당연하였다. 묘지 봉분은 소나 염소가 밟아 훼손되는 경우가 많아 어른들의 지청구를 듣기 일쑤였고 동네 가까이 있는 묘소는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잔디로 잘 가꾸어진 최고의 놀이터가 묘지다. 멀리 떨어진 묘소도 예외는 아니다. 소를 산에 올려놓고 여유를 가지는 쉼터였다. 놀이에 정신을 놓고 지내다 소를 잃게 되었을 때 찾아 헤매다 찾는 곳도 묘지 근처다. 어린 우리는 밤이면 무덤 근처가 무서워 거리를 두는 데 짐승은 그곳이 편한 모양이다.
달라진 풍경이다. 명절보다 벌초 때 만나는 친인척이 더 많다. 고속도로는 한꺼번에 몰려 붐비는 차량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느리게 옮겨간다. 명절만큼이나 복잡하다.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는다. 사람들이 조금 적게 모일법한 날을 정하는 것도 비책이다. 곳곳에 벌초 대행 안내문이 붙어있다. 오가는 시간과 비용까지 고려하면 이것이 나을 수도 있으나 조상 묘소 벌초가 돈으로만 해결할 것은 아니다. 벌초라는 집안 행사를 통해 서로 안부를 묻고 살아가는 사정을 접할 수 있다. 어쩌면 집안의 예의범절과 어른 공경을 자연스럽게 확인하는 시간이 된다. 세대에서 세대로 물려주는 좋은 풍습을 엿볼 수 있다.
명절에는 가족 단위로 시간을 보낸다. 점점 이런 추세가 강하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듯하다. 대가족이 차츰 핵가족으로 바뀌고 집단의식에서 개인주의로 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산소를 묵혀 나가는 추세란다. 먼 곳에 있거나 윗대 조상의 묘는 자연으로 되돌린다. 어쩌면 자신들의 편의 위주로 행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남의 일이 아니다. 나 또한 거기에 동조하였다. 조상 없는 후손, 뿌리 없는 가족이 어디 있겠는가?
세월의 변화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 집단 중심의 생활이 가족 중심으로 바뀌어 간다. 우리 세대를 지나면 다음 세대에는 강요를 할 수 없을지 모른다. 기성세대가 추구하고 유지해 온 전통이 소원해지고 도외시되는 현상이 점점 짙어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전통은 지켜지고 오롯이 후대에 넘겨주어야 할 정신이 아닐까?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는 시점에 안타까움이 밀려오는 것은 기우일까? 서로의 정을 나누고 친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주는 틀이 하나씩 사라지는 현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일을 조화롭게 수용하면서 현실에 맞게 조율해 나갈 방법을 찾아본다. 세대 간의 의견 차이와 작은 갈등도 수용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나와 가족을 아우르는 우리의 진정한 뿌리 의식을 찾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만 남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사라지는 뿌리 없는 시대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