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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집 제9권[3]
[남악 현태 화상] 南嶽 玄泰
석상의 법을 이었다. 그가 살던 난야蘭若는 산의 동쪽에 있었는데 칠보대七寶臺라 불렸다. 한평생을 고결하게 지내면서 회상을 차려 문도門徒를 세우지 않았다. 그러나 유행遊行하며 참예하는 스님들이 가끔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였기에 일정한 기준은 없었다.
선사가 이튿날 열반에 들려 할 무렵에 아무 스님도 오지 않자, 몸소 산 어귀로 내려가서 한 사람을 불러다가 산자락에 향탄목[香薪:화장나무]을 준비하게 하고는 법의法衣를 입고 올라앉아서 다음과 같이 두 게송을 썼다.
금년이 65세인데
4대가 주인을 버리려 한다.
그 도는 본래 현현하여
그 안에는 부처도 조사도 없다.
다시 또 송했다.
머리를 깎을 필요도 없고
목욕을 할 필요도 없다.
한 무더기의 이글거리는 불덩이면
수족手足이 두루 충분하리라.
게송을 다 읊고는 한 발을 드리우고 떠나니, 다비茶毘한 뒤에 사리를 거두어 견고 대사의 탑 왼편에 무덤을 만들었다. 평생토록 지은 가歌ㆍ항行ㆍ게偈ㆍ송頌이 천하에 퍼졌고, 그 도는 눈과 귀로 전해 퍼졌으나 여기에 다 수록하지 않는다.
[보개 화상] 寶蓋
석상石霜의 법을 이었다. 행적을 보지 못해서 생애를 기록할 수 없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책 읽기를 그만두었을 때는 어떠합니까?”
“일찍이 책을 편 적이 없느니라.”
“다시 들추는 이는 어떠합니까?”
“들추는 사람이 뜻을 잃었으니, 그대는 벌써 제2의 경지境地에 떨어졌느니라.”
“조정의 부름에 나아가지 않는 자는 어떠합니까?”
“급제를 했었던가?”
“금방金牓에 쓰인 이름이야 어찌하겠습니까?”
“세상의 호号로는 통할 수 없느니라.”
“그렇다면 황금 상자에 있는 옥새玉璽를 전해 줄 곳이 없겠습니다.”
“벼슬의 칭호는 드러난 적이 없느니라.”
“대궐 안에도 은총이 미치지 못할 때는 어찌합니까?”
“용상에 일찍이 누운 적이 없고, 구오九五에도 일찍이 오른 적이 없느니라.”
[현천 언 화상] 玄泉 彦
암두巖頭의 법을 이었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음성 이전의 한 구절입니까?”
선사가 “흠흠[吽吽]” 하자,
다시 물었다.
“소리를 낸 뒤에는 어떠합니까?”
“어떤 것이 전혀 막힘이 없는 도인가?”
“청산이 정수리를 드러내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옥토끼가 봄을 알지 못하나 밤과 낮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그러할 때는 어떠합니까?”
“항아姮娥 신선이 월궁月宮에 났으나 신선의 가풍에 머물지 않는다.”
[오암 화상] 烏巖
암두巖頭의 법을 이었다. 선사의 휘諱는 사언師彦이니, 행장을 보지 못해서 그의 생애를 기록할 수 없다.
어떤 이가 물었다.
“머리 위에서 보배 일산이 나타나고 발밑에서 구름이 생길 때는 어떠합니까?”
“칼을 쓰고 족쇄를 찬 놈이니라.”
“머리 위에 보배 일산이 나타나지 않고 발밑에 구름이 나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아직도 수갑[杻]을 차고 있느니라.”
“필경畢竟의 일은 어떠합니까?”
“공양을 든 뒤에는 나른해지니라.”
“어찌 하늘이 덮지 못하고 땅이 싣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덮이고 실리느니라.”
“만일 그렇지 않다면 오암을 만났겠습니다.”
이에 선사가 “사언師彦아” 하고 이름을 불렀다.
“어떤 것이 부처님들이 몸을 내신 곳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갈대꽃은 바다 밑에 잠기고, 겁석劫石은 따사로운 봄을 맞는다. 불꽃은 영원히 흐르는 물 같으니, 부처님께서는 여기서 나타나신다.”
선사가 이러한 질문을 폈다.
“온 시방세계가 오직 한 사람에게 속했나니, 만일 다급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연락을 취하겠는가?”
이에 광리 화상이 대답했다.
“그대가 아무리 세계를 뭉그러뜨려도 그 사람은 조금도 그대를 기특하게 여기지 않는다.”
보은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만일 화상을 용두사미라 하여도 그 역시 눈먼 놈일 뿐이오.”
[영암 화상] 靈巖
암두巖頭의 법을 이었고, 길주吉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諱는 혜종慧宗이요, 성은 진陳씨이며, 복주福州의 장계현長溪縣 사람이다. 귀산龜山에서 업을 익히다가 나이가 차자 계를 받고는 종사를 흠모하더니,암두를 한 번 보자마자 비밀한 뜻을 몽땅 전해 받았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학인 자신의 본분 일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진금眞金을 버리고 기와 조각을 주워 모아 무엇에 쓰겠는가?”
[나산 화상] 羅山
암두巖頭의 법을 이었고, 복주福州에 있었다. 선사의 휘諱는 도한道閑이요, 성은 진陳씨이며, 장계현 사람이다. 귀산에서 출가하여 계를 받자마자 조사의 비밀한 뜻을 위해 길을 나섰다가 암두를 만나 비밀한 뜻에 계합하였다.
처음 개당할 때에 법의法衣를 갖추고 법상에 올라서 “잘 가시게” 하였다. 이때 학인이 나서서 물으려 하자, 선사가 할을 하여 내쫓으며 말했다.
“어디를 갔다가 오는가?”
어떤 스님이 소산 화상을 위해 연수탑延壽塔을 세웠는데, 공사가 끝나고 화상에게 고하니,
소산 화상이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장인들에게 돈을 얼마나 주었느냐?”
스님이 대답했다.
“모든 것이 화상께 달려 있습니다.”
소산이 다시 물었다.
“그대는 돈 세 푼을 장인에게 주었느냐, 아니면 돈 두 푼을 장인에게 주었느냐, 그도 아니면 돈 한 푼을 장인에게 주었느냐?
만일 대답을 한다면 나를 위해 친히 탑을 세워 준 것이 되느니라.”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선사가 대령大嶺의 암자에 머무르고 있을 때 그 스님이 왔기에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소산에서 왔습니다.”
“소산 화상께서 요즘 무어라 하시던가?”
그 스님이 자세히 이야기하니, 선사가 말했다.
“대답한 사람은 있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다시 소산에 돌아가 말하기를,
‘대령 화상께서 제가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 말씀하시기를 만일 돈 서 푼을 장인에게 준다면 화상께서는 금생 동안에 결정코 탑을 세우지 못하실 것이요, 만일 돈 두 푼을 장인에게 준다면 화상께서는 한 손을 같이 거들어야 탑을 세울 것이요, 만일 돈 한 푼을 장인에게 준다면 장인의 눈썹과 수염만 더럽히고 동시에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하여라.”
그 스님이 바로 돌아가서 소산에게 말하니, 소산이 얼른 위의를 갖추고 대령을 바라보면서 찬탄했다.
“아무도 없다고 여겼더니, 대령에 옛 부처님이 계셔서 광명이 예까지 비치는구나.
그대는 다시 대령으로 가서 말하기를,
‘마치 섣달에 연꽃이 핀 것 같습니다’ 하라.”
그 스님이 다시 선사에게 와서 이 일을 이야기하니, 선사가 말했다.
“벌써 거북의 털이 두어 길이나 자랐구나.”
선사가 또 언젠가 상당하여 말했다.
“종문의 깊고 깊은 뜻을 어떻게 말로 알아들을 수 있으며, 참된 마음 정하기 어려운데 실제 이치를 어떻게 설명하랴? 조사가 대대로 드러내 밝혀 주시고 지견知見을 곡진히 드리워 주시니, 준수한 선비는 큰일을 드러내고 차례대로 시행해서 부처와 악마를 무찌르고 깊은 경지境地에 돌아가며, 신령한 광채를 은밀히 퍼져 나게 하여 눈앞에 교법을 퍼뜨리며, 뜻을 들어 종지를 밝혀서 광채가 큰 바다같이 흐른다. 선법과 도를 들으면서 자취를 없애고 소리를 죽인다. 부처와 조사가 분명한 옛길을 밝히는데, 마등摩騰과 축법란의 노란 잎[黃葉] 무엇이 다르랴? 대장경의 교법은 도서圖書로는 그려내지 못한다. 만일 종승宗乘의 한 가닥 길을 말한다면 바다같이 큰 입이라도 설명하기 어렵나니, 석가가 방문을 닫고, 유마가 입을 다문 것을 보지 못하는가? 잠시 파란波瀾을 멈추고 만물을 계제에 따라 접하고, 반드시 뛰어난 선비와 교제하고 때에 응하기를 바람처럼 하며기회에 응하기를 번개처럼 하라. 하나라도 빠지면 마치 죽은 놈과 같나니, 칼날에 맞서는 한 대의 화살을 누가 감히 감당하겠는가? 준수한 무리가 아니면 공연히 입만 놀리는 격이 되며, 오랜 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기특함을 지나지 못한다. 만일 훌륭한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고개를 숙여 귀 기울여 듣고 마음으로 생각을 더듬어도 끝내 만져지지 않는다. 그저 옛사람의 말만 기억해 소경 무리를 미혹시킨다면 공겁으로 보내져 윤회를 면하지 못하건만 작가랍시고 대답하고 두드려 봐서는 나귀 해가 된다 해도 이룰 수 없으리라. 잘 지내거라.”
정씨의 열셋째 딸이 12세가 되자 어떤 비구니를 따라 서원西院의 대위 화상을 뵈었다.
막 절을 하고 일어서는데,
대위가 물었다.
“저 비구니는 어디에 사는가?”
“남대南臺의 강가에 삽니다.”
위산이 할을 하여 내쫓고는 다시 물었다.
“등 뒤의 노파는 어디에 사는가?”
열셋째 딸이 온몸으로 세 걸음 앞서 나가 손을 모으고 섰다.
이에 위산이 다시 물었다.
“저 노파는 어디에 사는가?”
열셋째 딸이 대답했다.
“벌써 화상께 대답을 해드렸습니다.”
위산이 말했다.
“가거라, 가거라.”
그리하여 법당 밖으로 나서는데,
비구니가 열셋째 딸에게 물었다.
“평소에 ‘나도 선을 안다’며 입을 마치 방울처럼 놀리더니,
어째서 오늘 화상께서 물으실 때에는 전혀 한마디도 못했느냐?”
열셋째 딸이 말했다.
“슬프도다, 슬프도다. 겨우 그러한 안목을 갖추고서 ‘나는 행각行脚을 하노라.’ 말하니, 누더기를 벗어서 나 열셋째 딸에게 입히려 해도 입히지 못할 것이오.”
열셋째 딸이 나중에 선사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고 물었다.
“열셋째 딸이 대위를 뵙고 그렇게 대꾸한 것이 온당하였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허물이 없을 수 없느니라.”
“허물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에 선사가 꾸짖으니, 열셋째 딸이 말했다.
“오늘의 일이야말로 비단 위에 다시 꽃수를 놓은 것이겠습니다.”
또 언젠가 상당하여 말했다.
“이치에 밝게 통하면 부처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현상에 밝게 통하면 모든 성인과 동등하게 되나니, 현상과 이치를 모두 통달하면 무엇이라 부르겠는가?
거리낌 없이 천하를 돌아다닐 수 있고 속박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모름지기 이러한 사람이라야 근기에 임하여 숨었다 나타났다 하고, 잡았다 놓았다 함이 그때그때마다 자유로울 것이니, 그대들이 중얼거리는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실제로 알지 못한다면 세 구절 나아가 네 구절에 얼기설기 얽히게 됨을 끝내 어쩌지 못하리라.
만일 위로 향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면 어디에서 얻을 수 있겠는가?
듣지 못했는가?
높은 선비는 관문을 알지 못한다 했다.
아는가?
만일 초월한 작자라면 깜짝할 사이에 그만두리라.
지금에도 그러한 녀석이 있는가?
나와서 시험 삼아 한마디 일러보라.
얼마나 훌륭한가?
만일 긍정과 부정의 원리를 알지 못한다면 먼저 여러 겁 동안의 부사의한 것을 스스로 알아차려 항상 드러나게 하여 자유자재로워야 한다.
만일 사자가 땅을 버티고 선 경지를 논한다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천 가지 시설과 작용도 야간(野干:승냥이)의 울음을 벗어나지 못하나니, 예와 작금을 꿰뚫고 지나는 경지를 음성 이전에 알아차려 보아라. 일없으니 잘 가거라.”
진 상좌가 물었다.
“암두巖頭 화상이‘동산은 좋은 부처이지만 다만 광채가 없구나’ 했는데, 동산에게 무슨 흠이 있기에 광채가 없다 하였습니까?”
선사가 무진을 불러 무진이 대답하니, 선사가 말했다.
“확실히 좋은 부처인데, 다만 광채가 없구나.”
진 상좌가 말했다.
“대사께서는 어찌하여 저의 말에 시비를 거십니까?”
“어디가 노승이 그대의 말에 시비를 거는 곳인가?
속히 일러라. 속히 일러라.”
무진이 대답을 못하자, 선사가 때렸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종문에서 유포되는 일입니까?”
선사가 손을 벌리니,
다시 물었다.
“서둘러 와서 뵈었으니, 스님께서 한 번 제접해 주십시오.”
선사가 대답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화살이 이미 지나갔느니라.”
또 어떤 대덕이 와서 참문하니,
선사가 물었다.
“대덕의 호는 무엇인가?”
“명교明敎라 합니다.”
“교법을 아는가?”
“어느 정도 압니다.”
이에 선사가 주먹을 세우고 말했다.
“영산회상에서는 이것을 무슨 교법이라 하는가?”
“주먹의 교법이라 합니다.”
선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런 것을 주먹의 교법이라 한다고?”
그리고는 다리를 뻗으면서 물었다.
“이런 것은 무슨 교법이라 하는가?”
대덕이 대답이 없으니, 선사가 말했다.
“다리의 교법이 아니겠는가?”
선사가 열반에 들기 직전에 상당하여 법상에 올랐다. 그리고는 양구良久했다가 왼손을 펴니, 주사主事가 말했다.
“동쪽이 검으니, 스님들은 뒤로 물러나시오.”
선사가 또 양구했다가 다시 오른손을 펴니, 주사가 또 말했다.
“서쪽이 검으니, 스님들은 뒤로 물러나시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스승의 은혜를 갚으려면 지조를 지키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고, 국왕의 은혜를 갚으려면 대교大敎를 퍼뜨리는 것만한 것이 없다.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하하하하, 잘 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