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4장
물질과 육체의 선함을 가르침, 목사의 사명
(찬송 488장)
2023-10-12, 목
맥락과 의미
4장에서는 직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목사의 직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가르칩니다.
첫째로, 목사가 가르쳐야 할 내용과,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서 말합니다(1-10절). 모든 물질을 믿음과 감사로 거룩하게 사용할 것을 가르치라고 합니다.
둘째, 성경의 가르침을 잘 전하고 거룩한 삶의 모범을 보이는 것에 힘쓰라고 합니다(11-16절). 그러면 성도와 목사 자신이 모두 구원에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1. 물질과 육체를 거룩하게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악한 가르침(1-5절)
2. 자유롭게 누리며 감사하는 삶은 신실하게 가르쳐야 한다(6-10절)
3. 목사는 가르침과 삶으로 자신과 성도를 구원에서 성장하게 함(11-16절)
1. 물질과 육체를 거룩하게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악한 가르침(1-5절)
앞으로 거짓 교사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거짓 교사는 “미혹하게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릅니다. 사단의 영은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통해 나타납니다.
2절: 거짓 교사는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으로 거짓말합니다. 참된 경건이 아니라 외적인 행동을 가르칩니다. 몇 가지 행동은 잘 지키면서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온갖 악한 생각을 그대로 둡니다.
3절: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금욕주의입니다. 교회 역사에서 수많은 금욕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즐겁게 먹는 대신 금식을 숭상했습니다. 혼인의 즐거움과 아름다움 대신에 독신을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로마 교회에서는 계속해서 교역자의 결혼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세 교회는 특정일에 고기를 먹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물질과 육체와 성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좋은 것입니다. 신자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알고 감사하면서 사용하면 됩니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으로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 더러워졌습니다. 물질은 선하고 육체도 선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이 악합니다. 그래서 복음 진리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야 합니다.
참되고 거룩한 분이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와 연합할 때 우리의 영혼이 거룩해집니다. 다시 거룩하게 물질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4절: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원래 좋습니다. 모든 음식을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한 손으로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다른 손으로 그분의 선하심을 인해 그분께 감사하며 받아야 합니다.”(칼빈 주석).
5절: 이 좋은 것들은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집니다. 하나님이 물질을 창조하셨으며 선하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신앙으로 고백하면서 물질을 사용해야 합니다. 또 침실과 몸의 즐거움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좋은 것임을 알고 사용해야 합니다. 기도, 즉 감사 찬양으로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로 받을 때 일상의 음식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선한 것들을 바른 지식과 감사 찬양이 없이 사용한다면 배은망덕한 일입니다. 물질과 육체는 좋은 것이지만 감사하지 않을 때 나빠집니다. 탐욕으로 물질을 얻고 탐욕으로 사용한다면 죄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즐기면서도 검소하고 절제하는 마음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물질의 선함을 바로 가르치지 않으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모욕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쁨으로 물질을 즐기는 자유를 억압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죄와 죄책감에서 자유롭게 하신 그리스도께 도전하는 일입니다. 물질을 사용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와 이 시대의 목사는 이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선하다, 감사함으로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절제하며 검소하게 사용해야 한다.”
2. 자유롭게 누리며 감사하는 삶은 신실하게 가르쳐야 한다(6-10절)
교회에서는 사소한 것을 본질적인 것처럼 가르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목사의 똑똑함, 말 잘하는 것, 심오한 지식을 자랑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도와 교회가 유익하게 성장하도록 하는 일에 도움이 안 됩니다.
8절: “육체의 연습”의 뜻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체력 단련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체력 단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습니다. 건강에는 좋습니다. 그러나 경건의 훈련은 이 세상과 다음 시대에 유익이 있습니다.
둘째, 금욕주의적 생활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억제하며 사는 것은 약간의 유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육체와 물질을 악하다고 보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해악만 있습니다. 목사인 디모데는 사람의 생각으로 만든 경건의 훈련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모든 성도가 주의해야 합니다.
7절: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해야 합니다. 디모데는 성경의 바른 가르침을 열정을 다해 힘껏 가르쳐야 합니다. 목사 자신이 말씀에 따라서 사는 참 경건을 훈련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성도들도 경건에 이르기 위해 순종하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경건은 이 땅에서도 행복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내세에서도 행복을 줍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경건한 사람에게 많은 고난이 따릅니다. 그래서 “수고하고 힘씁니다”(10절). 사람들의 인정과 안락을 구하지 않습니다. 다음 시대에 얻을 행복을 굳게 믿고 달려갑니다.
10절: 하나님은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사람의 구주입니다. 여기서 구주는, 보호와 안정을 주시는 분을 말합니다. 믿지 않는 자도 하나님을 생각하면 약간의 안정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참된 보호와 안정은 오직 믿는 자들만 누립니다. 불신자는 하나님의 선한 것을 누리지만, 인정하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강도처럼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즐기고 있는 셈입니다.
3. 목사는 가르침과 삶으로 자신과 성도를 구원에서 성장하게 함(11-16절)
이제부터 목사의 삶과 가르치는 태도에 대해 말합니다. 장로도 여기에 나오는 목사와 같이 가르치는 역할도 해야 하고 삶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11절: 목사는 인내심을 가지고 중요한 가르침을 계속 반복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참된 성도는 말씀을 지루해하지 않고 계속 달게 받을 것입니다.
12절: 목사는 말과 행실, 사랑과 믿음, 정절(거룩)에서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삶의 모범을 통해 존경을 받을 때 목사가 전하는 말씀에 권위가 섭니다.
13절: 목사는 성경을 읽고 권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바르게 가르치지 않으면, 삶의 모범 그 자체로는 유익이 없습니다. 목사가 원하는 대로 아무 말이나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신실하게 읽고, 그 말씀에서 가르치는 바를 가르칩니다.
말씀의 일반적인 뜻을 성도의 구체적인 삶에 적용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권하는 것”입니다. “위로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구체적인 적용 방향을 권면해주어야 합니다. 또 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위로해주어야 합니다. 목사가 이렇게 할 때, 성령님께서 성도의 마음에 유익한 권면과 위로가 스며들게 하십니다.
“전념하다”(마음을 착 붙여둔다, 13절)는 1절의 “사람들이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의 “따르다”와 같은 말입니다. 마귀적 가르침을 추구하는 자들에 대항하여,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을 힘껏 추구해야 합니다.
14절: 목사는 목사와 장로의 모임에서 안수할 때 받은 은사를 잘 나타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사(장로)들의 모임에서 디모데를 목사로 임명할 때 성령님의 은사로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가르칠 은사를 주셨습니다.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부지런히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서 목사들에게 은사를 주십니다. 목사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부지런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에 필요한 말씀을 목사를 통해 계속 주시고 있습니다.
15절: 목사는 전심 전력하여 가르쳐야 합니다. 목사가 바르게 가르치려고 할 때 많은 유혹이 있습니다. 안으로는 자기 과시욕을 버려야 합니다. 성도들의 신앙에 유익한 것을 집중하여 가르쳐야 합니다. 밖으로는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성도들의 저항에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담대히 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목사가 가르치며 사역하는 일에서 계속해서 성숙하게 됩니다. 수고한 것에 대한 진보, 열매가 항상 나오도록 성령님이 인도하십니다.
16절: 목사는 “네(목사)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르침”을 살펴야 합니다. 바른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면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성도가 구원의 일에서 견고히 성장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목사 자신도 구원의 일에서 성장합니다.
모든 구원은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목사가 전하는 말씀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신실하지 않고 게으른 목사는 큰 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실하고 부지런하게 일하는 목사는 구원 안에서 연단을 받으며 성장할 것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우리 시대에 도덕적 위기가 심각합니다. 그 배경에는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영적 위기를 겪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배경으로 목사가 말씀 전파와 삶에서 신실하지 못하고 부지런하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다.
목사가 계시된 말씀과 성령님을 의지하여 신실하게, 끈기 있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삶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모든 성도는 목사가 바르게 가르치고 그 가르친 대로 살아가도록 기도로서 도웁시다. 목사가 바로 서는 것이 성도 자신의 구원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목사가 바른 복음을 가르칠 때 성도는 말씀을 달게 받고 순종합시다. 그럴 때 교회 전체가 구원의 풍성함에서 강하고 담대하게 성장할 것입니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절,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프로스-에코)=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13절)
1절, “사람들이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프로스-에코)”. 마귀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교인들이 생겨납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13절은 같은 단어를 “전념하다”(마음을 착 붙여 둔다: 프로스-에코)로 번역합니다. 목사는 마귀의 가르침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을 힘껏 추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는 마귀와 싸워야 합니다. 마귀와 싸우는 것은 목사가 말씀을 바로 전하는 일입니다. 디모데가 목회하던 에베소에 쓴 바울의 다른 편지에서는 “성령의 칼”,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와 싸우라고 합니다(에베소서 6:17).
우리는 마귀와 마귀가 일하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분명하게 하나님을 말씀을 주셨습니다. 항상 말씀을 영혼에 담고 묵상하며 마귀의 공격을 이깁시다. 말씀을 꼭 붙잡고, 천국을 향해 나가는 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