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영락경 제5권
17. 무량품[4]
[9지 보살의 세 가지 선법]
부처님께서 다시 월광조보살에게 물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9지의 선남자나 선여인이 9지 가운데에서 세 가지 선을 성취하는가?”
대답하였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단정히 앉아서 사유하기를,
‘안을 관하면 과거의 몸이 있는가, 과거의 몸이 없는가?
스스로 안으로 미래의 몸을 관하면, 미래의 몸이 있는가, 미래의 몸이 없는가?’하고,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관(觀)을 버리고 나서 다시
‘남의 안의 과거 몸을 관하면 과거의 몸이 있는가, 과거의 몸이 없는가?
남의 안의 미래의 몸을 관하면, 안의 미래 몸이 있는가, 안의 미래 몸이 없는가?’합니다.
이 관(觀)을 버리고 나서 다시 이렇게 사유하나이다.
‘나는 본래 안의 과거 몸이 없고 과거의 몸이 없으며, 본래 안의 미래 몸이 없고 미래의 몸이 없거늘,
하물며 남의 바깥의 과거 몸이 있으며 과거의 몸이 없고, 남의 바깥의 미래 몸에 미래의 몸이 없으랴?’
이처럼 집착하는 마음이 굳건하여 본래의 서원을 버리지 않으니,
이것을 선남자나 선여인이 9지 가운데서 세 가지 선을 성취하였다고 이르나이다.
[관(觀)ㆍ행(行)ㆍ근본]
다시 다음에 9지의 선남자나 선여인은 마땅히 다시 세 가지 선의 행을 닦아 도량에 앉기까지 어기거나 잃지 말아야 하나니,
어떤 것이 셋 가지인가?
첫째는 관(觀)이고, 둘째는 행(行)이요, 셋째는 근본이다.
만일 세 가지 선을 성취하는 이는 문득 도량에 이르게 됨을 갖출 수 있나니,
어떤 것이 ‘관(觀)’인가?
법계를 분별하고 중생의 근본을 알아서 뭇 모습을 장엄함이니,
이것을 ‘관’이라고 이른다.
어떤 것이 행(行)인가?
보리수[佛樹]에 나아가 몸의 색상(色相)을 나타내지만, 온갖 번뇌가 이미 다해서 티끌과 때에 오염되지 않으니,
모든 부처님께서 항상 행하시는 네 가지 항상되지 않은 법을 일러 행(行)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근본인가?
보살마하살이 스스로 생각하시기를 ‘나는 이제 큰 서원을 이미 갖추었다’라 하고, 마땅히 중생으로 하여금 이 큰 서원을 갖추게 하나니,
이것을 일러 근본이라고 한다.
선남자나 선여인 가운데 이 세 가지 행을 갖춘 이는 문득 도량에 이르게 됨을 능히 갖출 수 있다.
[공공(空空)ㆍ공상(空想)ㆍ공식(空識)]
다시 다음에 선남자나 선여인은 다시 마땅히 세 가지 선(禪)을 갖추어서 도량에 이를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것이 셋 가지인가?
첫째는 공공(空空)이고, 둘째는 공상(空想)이고, 셋째는 공식(空識)이니,
이 세 가지 공을 갖춘 이는 문득 도량에 이르게 됨을 능히 갖출 수 있다.
무엇을 공공(空空)이라 하는가?
이른바 ‘공’이란 안의 법의 공과 바깥 법의 공을 관하여 한 세계, 두 세계, 나아가 무수 아승기 세계까지 관한다.
이것을 일러서 공공이라고 한다.
무엇을 공상(空想)이라 하는가?
문득 정의(定意)에 들어가 세계를 다 관하면서도 공(空)의 있음ㆍ공의 없음ㆍ나의 있음ㆍ나의 없음을 생각하지 않나니,
이것을 일러 공상이라고 한다.
무엇을 공식(空識)이라고 이르는가?
정의(定意)에 들어갈 때에 다시 이런 관(觀)을 하길
‘나는 지금 중생 생각[念] 때문에 다시 다른 상념이 없으니, 마땅히 중생을 청정케 하기를 나와 다름이 없게 하겠다.
그렇지만 이 중생에게는 한량없는 식이 있으니, 이제 나는 무슨 식으로 저 중생의 식을 교화하여야 하는가?
나는 이제 마땅히 공식(空識)으로 이 세계를 다 공과 같게 함으로서 저 중생으로 하여금 식의 집착을 분별하게 하여야 한다’라고 하니,
이것을 선남자나 선여인이 9지 가운데서 이 세 가지 선을 갖추었다고 말하나이다.
[세계ㆍ중생계ㆍ제일의(第一義)를 분별함]
다시 세 가지 법이 닦아 행할 만하니,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세계를 분별함이요, 둘째는 중생계를 분별함이요, 셋째는 제일의(第一義)를 분별함이다.
만일 이 세 가지 법을 닦으면 문득 도량에 능히 나아가는 데 두려울 것 없다.
어떤 것이 세계를 분별하는 것인가?
온갖 세계를 다 두루 관하여서, 청정한 자든 청정하지 못한 자든 모조리 요달해 알아서 어긋나거나 그르침이 없고, 뜻에 따라 선택해서 부처님의 국토를 닦아 다스리니,
이것을 세계를 분별한다고 이른다.
어떤 것이 중생계를 분별하는 것인가?
다시 온갖 중생을 두루 관하여 항상 권도의 방편[權便]으로 교화해서 큰 서원의 광대한 마음을 버리지 않으며, 겁수(劫數)를 지나도 어려움으로 여기지 않나니,
이것을 선남자나 선여인이 중생계를 성취하였다고 이른다.
어떤 것이 제일의를 성취하는 것인가?
낱낱이 중생의 의취(義趣)를 분별해서 모조리 공(空)으로 돌아가니,
나와 남과 수명도 없고 또한 하나나 둘이라는 분별도 없다.
온갖 법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인, 이것을 으뜸가는 뜻을 분별한다고 이른다.
[세 가지 신족]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세 가지 법을 성취하면, 문득 도량에 나아감을 능히 갖출 수 있다.
다시 세 가지 신족(神足)이 있으니,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신족으로 과거의 법을 알고,
둘째는 신족으로 미래의 법을 알고,
셋째는 신족으로 현재의 법을 아는 것이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세 가지 법을 갖추면, 문득 도량에 이르게 됨을 갖출 수 있으리라.
어떤 것이 신족으로 과거의 법을 아는 것인가?
여기서 9지(地)의 선남자나 선여인은 과거의 법이 허공의 상념과 같음을 알아서 과거의 중생을 분별하는데,
욕심ㆍ화냄ㆍ어리석음으로 마음이 오염된 이와 욕심ㆍ화냄ㆍ어리석음으로 마음이 오염되지 않은 이를 낱낱이 분별하면서도 집착함이 없나니,
이것을 신족으로 과거의 법을 안다고 말한다.
어떤 것이 신족으로 미래의 법을 아는 것인가?
이 9지에서 선남자나 선여인은 미래의 형상을 받을 중생을 아는데,
욕심ㆍ화냄ㆍ어리석음으로 마음이 오염된 이와 욕심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어서 마음이 오염되지 않은 이를 낱낱이 분별하면서도 집착한 바 없나니,
이것을 신족으로 오는 세상의 법을 안다고 이른다.
다시 다음에 9지의 선남자나 선여인은 현재의 온갖 중생을 아는데,
욕심ㆍ화냄ㆍ어리석음으로 마음이 오염된 이와 욕심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없어서 마음이 오염되지 않은 이를 낱낱이 분별하면서도 집착한 바가 없나니,
이것을 신족으로 지금 현재의 법을 안다고 이른다.
이것을 9지에서 세 가지 법을 성취하여 도량으로 나아간다고 말하나이다.
[몸ㆍ입ㆍ뜻의 청정]
다시 다음에 9지의 선남자나 선여인이 세 가지 법으로 도량에 이르게 되나니,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몸이 청정[身淨]함이요, 둘째는 입이 청정[口淨]함이요, 셋째는 뜻이 청정[意淨]함이니,
이 세 가지 법을 갖추면 도량에 이르게 된다.
어떤 것이 몸이 청정함인가?
몸은 벌써 한량없는 덕행(德行)을 초월했고, 본행(本行)은 이미 멸하여 다시는 몸의 행[身行]을 짓지 않아서 몸마다 통달하여 걸리는 바가 없나니,
이것을 9지(地) 보살의 몸이 청정함이라고 이른다.
어떤 것이 입의 청정인가?
한량없는 가르침을 내면서도 일찍이 매우 깊은 묘한 곳간을 이지러트리거나 손상시키지 아니하니,
이것을 입의 청정이라 이른다.
어떤 것이 뜻의 청정인가?
물들어 집착함을 없애서 티끌과 때를 받지 않나니,
이것을 뜻의 청정이라고 이르나이다.”
그때에 월광조보살이 문득 이 게송을 읊었다.
몸은 청정하여 티와 더러움 없고
안팎으로 물든 바도 없네.
덕이 높으셔 견줄 이 없고
욕심과 분노의 이름 영원히 없네.
입이 청정하여 온갖 교법 설하시되
어떠한 허물도 새나오지 않고
멸도를 성취하실 때까지
입으로 가르치심 다함없어라.
뜻이 청정하여 탐내고 집착함 없고
자비와 연민은 늘고 줄지 않아
한량없음 가운데 태어나시어
깨치지 못한 이를 깨우쳐 주시네.
9지(地)에 법계를 지나니
있지도 않고 또한 없지도 않아
이들 선남자들은
이미 여래의 경계에 들어갔도다.
나는 본래 한량없는 세월동안에
부지런히 배우며 스승을 따랐지만
이 행을 아직 밟지 못했거니
하물며 나머지 타락한 이들이랴?
행을 지켜서 집착한 바 없어
한결같이 부처를 이루길 쌓으면
행은 삼계를 초월하고
사람 중의 사자후라네.
“이것을 9지(地)의 선남자나 선여인이 세 가지 법을 성취하였다고 말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