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나무를 찾아서 / 마틴 슐레스케
옛사람들은 '노래하는 나무'를 찾아낼 줄 알았습니다. 예부터 대대로 바이올린을 만들어 온 가문에는 그들만의 비법이 있습니다. 그들의 선조는 산속 계곡에서 나무들을 뗏목으로 날랐습니다. 그러다 물살 센 곳에 이르면 나무 둥치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고 합니다. 뗏목 위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던 나무 중 몇몇은 청명한 소리로 울렸고, 바이올린 제작자들은 그 소리를 듣고 좋은 바이올린이 될 만한 나무들을 가려냈습니다. 노래하는 나무가 될 만한 재목은 1만 그루 중 한 그루가 될까 말까 합니다. 숲에서 노래하는 나무를 찾는 일은 인내가 필요한 모험입니다. 망치의 뭉툭한 쪽으로 나무 둥치를 톡툭 두드리며 진동을 느끼고 나무의 울림을 듣기를 얼마나 많이 반복했던지요. 온 마음을 기울여 바이올린으로 탄생할 만한 나무를 찾았을 때 바이올린 제작자의 가슴은 높이 뜁니다. 수없는 시도 끝에 종소리와 같은 울림을 가진 나무를 발견했을 즈음, 몸은 벌써 지쳐있습니다. 그러나 숲에서 돌아 나오는 마음만은 더없이 가볍고 기쁩니다. 울림이 좋은 바이올린 재목을 찾는 데 이렇게 큰 수고를 들여야 한다면, 울림 있는 삶을 사는 데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요? 삶은 순례입니다.
-마틴 슐레스케(유영미 옮김),「가문비나무의 노래-아름다운 울림을 위한 마음 조율」, 니케북스, 2016.
[단상]
인간의 삶이 고통과 환희, 중력과 은총으로 점철된 거라면, 문학은 길 없는 길을 가는 것. 그 길 위에서 우린 절망 속의 희망, 희망 속의 절망을 겪게 된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는 것, 정오의 태양(또는, 사상)과 대면한다는 것은 얼마나 커다란 울음인가, 깊은 울림인가. 울음 뒤의 울림은 바이올린의 현에서 절정에 달한다. 바이올린의 재료가 되는 가문비나무는 겨울이면 삭풍이 몰아치는 고산지대에서 숲을 이루며 자란다. 살아남기 위해 위쪽 가지는 빛을 향해 뻗어 오르지만, 그렇지 못한 아래쪽 가지들은 자연스레 떨어져 나간다. 가지 하나 없이 줄기만 뻗어 있는 이 쓸모없음의 쓸모[無用之用]가 바이올린 공명에는 최적이다. 마틴 슐레스케(Martin Schleske, 1965~)는 독일 출신의 음향물리학자이자 깊은 영성의 작가다. 무엇보다 바이올린 제작의 명장이다. 세계 순회 연주를 하는 솔리스트들과 유명 오케스트라의 수석 주자들이 그의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제작 과정에서 비롯된 체험과 묵상, 사유가 고스란히 반영된 이 글에는 바이올린의 선율처럼 성스러움이 있다. 1만 그루 중 한 그루, 노래하는 나무를 찾았을 때 나무의 울음이 울림으로 화했을 때 그의 벅찬 감격과 희열은 무엇이며, 어디서 오는가.
오스트리아 화가 F․훈데르트바서는〈직선에는 하느님이 없다〉고 일갈한다. 곡선의 흐름으로서 커브음, 바흐의 샤콘(Chaconne)에는 하늘에 사무치는 고통이 있다. 물살 센 곳에 이르면 나무 둥치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온몸과 마음으로 전해 들으며 청명한 소리를 발견하는 것, 그런 비어있음의 충만은 숫제 하나의 모험이다. 모험은 존재와 사건, 아름다움의 다른 명명이다. 마침내의 나무는 종소리와 같은 신의 울림을 가졌다. 삶은 순례. 그 울림의 인간과 삶을 사는 데는 또 얼마나 많은 모험이 필요한가. 가문비나무의 노래와 울림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책의 부제는 아름다운 울림을 위한 마음 조율. 조율은 마음과 사물의 조응에서 비롯되며 소리의 중화(中和), 그것은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일련의 과정이다. 하이데거가 말한 세계와 만나는 근본 방식으로서‘기분(Stimmung)’은‘조율하다(stimmen)’라는 말에서 발원한다. 조율은 수동적 상태이면서도 세계를 열어 보이며 존재의 방식 자체를 말한다. 조율의 핵심은 완전한 일치에 있는 게 아니라 어긋남을 인정하면서도 서로 응답 가능하게 열려 있는 도정에 있다. 저자에게 나무는 악기 제작을 위한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비움과 깎임의 미학, 마음의 율려(律呂)와 죽음의 탄생이다. 거듭난 삶이다. 그의 숲에는 고통과 상처, 감히 상상하지 못할 꿈과 거룩한 은총이 있다. 숲의 바이올린은 천상의 소리, 영성의 음악이다. 동방의 나는 동파의 거문고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묻는다. 소리는 어디에 있는가?
琴詩 / 소동파
若言琴上有琴聲(약언금상유금성) 만약 거문고에서 거문고 소리가 난다면
放在匣中何不鳴(방재갑중하불명) 갑 속에 있을 때는 어찌 소리 나지 않는가?
若言聲在指頭上(약언성재지두상) 만약 그 소리가 손끝에서 소리가 난다면
何不於君指上聽(하불어군지상청) 왜 그대 손끝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첫댓글 琴詩 / 소동파
若言琴上有琴聲(약언금상유금성) 만약 거문고에서 거문고 소리가 난다면
放在匣中何不鳴(방재갑중하불명) 갑 속에 있을 때는 어찌 소리 나지 않는가?
若言聲在指頭上(약언성재지두상) 만약 그 소리가 손끝에서 소리가 난다면
何不於君指上聽(하불어군지상청) 왜 그대 손끝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 그것 참 곡할 노릇이다. - 거문고가 소리일까, 손끝이 소리일까 - 시인은 무용지용이라도 된다는 걸까. - 김상환 시인의 시견은 높고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