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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 30
미국의 수도, 워싱턴
* 워싱턴 가는 길
2006년 7월 9일. 우리 일행은 뉴욕 구경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향했다. 뉴욕에서 워싱턴은 430km의 거리, 관광버스로 5시간 걸린다. 그러니 서울에서 부산 가는 거리다. 미국의 길이란 게 동부지방의 경우 대부분 그렇지만 산이 없고 그저 넓은 들판이니 곧은 직선이다. 95번 고속도로라고 한다. 길옆으로 가로수 숲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로수는 길옆에 한 그루씩 나란한 모양인데 이곳은 숲이다. 십여 미터의 폭으로 숲을 이루어 시야를 가리고 방음벽 역할도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행 내내 가로수 숲의 동굴 속을 지나쳐야 했다. 숲 저쪽에 마을도 있고 밭도 있고 언덕 구릉도 있을 터이지만 숲에 가려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숲의 동굴 속을 단조롭게 달리고 또 달린다.
가는 도중에 잠시 멈춘 곳은 볼티모어 항구도시였다. 항구도시라 해군복장의 군인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종종 눈에 띄었다. 볼티모어는 인구 100여만의 큰 도시라고 한다. 항만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부두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조금 한적해 보이는 만에는 아름답게 채색된 유람객들을 위한 요트들이 즐비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워싱턴을 향해서 달렸다.
워싱턴DC에 도착한 것은 1시 30분이었다. 햇살이 쨍쨍했다. 관광버스가 제일 먼저 관광객을 내려놓은 곳은 백악관이다.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인 백악관. 세계 정치의 중심지가 아닌가? TV나 신문 등에서 익숙히 보았던 건물이다. 백악관이 지니는 정치적 무게 때문이었던지 평소 대단한 건물로 알고 있었는데 막상 직접 대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아담한 모양의 시골 관공서쯤으로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백악관의 규모는 우리나라 청와대 규모의 5분의 1정도라고 한다. 그러니 백악관을 왜소하다고 느낀 것도 무리가 아니다.
백악관은 1814년 영국군에게 불태워진 뒤 재건되어 외벽을 하얗게 칠한 데서 화이트하우스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여러 번의 증·개축으로 현재는 지상 4층, 지하 2층에 132개의 방이 있다.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는 서쪽 모서리에 있고 2층에 대통령과 가족이 거주한다. 대통령의 행정권한이 증대했기 때문에 백악관 참모진도 비대해져서 지금은 대통령·부통령의 직속 참모진만이 백악관을 채우고 그 밖에 국가안전보장회의·행정관리예산국 등은 서쪽 다른 빌딩 2채에 들어 있다고 한다.
백악관 주위는 조용하다. 관광버스에서 내린 관광객들만 사진을 찍느라 법석일 뿐 경호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정복 차림의 경찰관 몇 명이 보초를 서고 있는 것이 고작이다. 조금 이색적이라면 가슴과 등에 구호를 적은 광고판을 매달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몇 사람이 눈길을 끌뿐이었다. 1인 시위자 중에는 몇 달을 같은 자리에서 계속 버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나는 가이드에게 미국대통령의 집무실인데 이렇게 경호가 허술해서 되느냐고 물었더니 경호 업무는 백악과 울타리 옆에 있는 재무성에서 담당한다고 했다. 재무성의 건물도 그리 크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시골 관공서 건물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안에는 백악관을 경호하는 여러 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필요시에는 상당수의 경호팀들이 민첩하게 움직인다고 한다. 유명한 총잡이들이 고용되어서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외형적으로는 전혀 그런 낌새를 느낄 수 없었다.
*기념물로 가득 찬 워싱턴
워싱턴은 수도로서의 기능을 하도록 인위적으로 구획을 정한 계획도시여서 시가지 전체가 하나의 공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공원의 적절한 곳에 기념물이 세워지고 호수가 만들어지고 잔디밭이 있었다. 시내의 중심에서 눈에 띄는 것은 링컨 기념관이다. 그리고 이들이 서로 마주 보는 위치에 워싱턴 기념탑, 그리고 국회 의사당이 나온다. 이렇게 중심 건물들이 대각선으로 또는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서 길게 펼쳐진 산책길을 형성하는데 관광객들은 이 중심 건물들을 본부 건물(애칭; Castle)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리고 그 둘레로 박물관 건물들이 에워싸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이 링컨기념관이다. 링컨 기념관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시킨다. 하얀색의 건물로 관내 중앙에는 19피트나 되는 제16대 대통령 링컨의 대리석 좌상이 있다. 그 뒤의 벽에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명성은 그에 의해 구원된 미국인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이 신전에 영원히 간직 될 것이다.' 라고 적혀 있다.
주변에는 36개의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각각의 기둥에는 그가 암살 될 당시에 있었던 36개의 미국 주 이름을 새겨놓았다. 그리고 좌상의 왼쪽 벽에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게티스버그 연설이, 오른쪽 벽에는 링컨의 제2회 취임 연설이 조각되어 있다.
이곳에서 시민운동가로 유명한 마틴 루터킹이 흑인차별 철폐를 외치면서 'I Have a Dream'이란 연설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작은 규모의 전시관에서는 링컨의 일생에 대한 자료들을 관람할 수 있었다. 테라스에서는 워싱턴 기념탑과 국회의사당의 전경이 보였다.
워싱턴기념탑은 워싱턴의 어느 곳에서나 눈에 띌 정도로 높다. 네모난 기둥 모양으로 밑에서 위쪽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진다. 이 탑은 백악관 남쪽의 몰 한가운데 솟아 있는데 높이가 약 169m의 화강암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석조 구조물이라고 한다.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1848년에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남북 전쟁 때문에 계속 지연되다가 완성까지 37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탑의 꼭대기까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70초 만에 올라갈 수 있으며, 그 곳 전망대에서는 동쪽으로 국회 의사당과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단지, 남쪽으로 제퍼슨 기념관과 포토맥 강, 서쪽으로 링컨 기념관과 알링턴 국립묘지, 북쪽으로 백악관이 보인다. 특히 밤의 경치가 아름답다고 정평이 나있다.
제퍼슨 기념관은 포토맥공원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1943년 미국 독립선언문의 초안을 만든 토머스 제퍼슨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건립된 전당이다. 지붕이 원형으로 된 로마 신전을 본 따서 만든 아름다운 건물로 국립미술관을 만든 건축가인 존 러셀 포프가 만들었다고 한다. 루즈벨트 대통령 때 착공해 1943년에 완공되었는데 건물 안에는 청동으로 만든 대륙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는 제퍼슨의 동상이 있다. 그는 위대한 정치가이자 과학자였다. 그리고 미국독립선언서의 주요 집필진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그를 존경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대리석 벽에는 재퍼슨이 대통령 취임식 때 국민을 감동시켰던 연설의 일부와 독립선언서의 일부가 새겨져 있다.
워싱턴에는 많은 박물관이 있는데 그 중에서 ‘스미소니언박물관’이 유명하다고 한다. 연간 관람객 2천만 명 이상, 운영비 1억 5천만 달러, 직원만도 4천500명이 되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은 오히려 ‘박물관 단지’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실제로 18개의 박물관이 하나의 단지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뛰어난 화학자이자 광물학자였던 스미손(Smithson, 1765~1829)의 유언에 따라 그의 막대한 재산을 인간의 지식 증진과 보급에 쓰기 위해 건립됐다. 스미소니언박물관들 중에서도 가장 현대식 건물인 ‘항공우주박물관’ 전시실에는 240여 점의 실물 항공기와 40여 개의 우주선, 50여 개의 미사일과 로켓, 425개의 항공엔진, 350개의 프로펠러가 소장돼 있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에서부터 최초의 대서양 횡단 비행기, 1,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투기, 달 탐사선 아폴로 11호와 우주 탐험선에서 채집한 원석들까지 항공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매년 900만 명이 다녀 갈 정도라고 한다.
관광의 또 하나의 코스는 알링턴 국립묘지다. 면적은 약 1.6평방킬로. 포토맥강을 사이하고 있다. 약 20만 명의 전몰자가 잠들어 있는데 반달 모양의 대리석으로 된 무명용사의 묘를 비롯하여 국가를 위해 죽은 전사자들의 무덤이 있다. 투어모빌을 이용하면 입구의 관광안내소에서 출발하여 존 F. 케네디묘가 첫 도착지다. 거기엔 그의 동생 로버트 F. 케네디의 유해도 안치되어 있다. 그 뒤쪽에는 '영원의 불'이 타오르고 있다. 이곳엔 미국독립전쟁부터 세계 제1,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 한국전, 걸프전 등 미국내 전쟁과 미국이 참전한 전쟁에서 전사한 수많은 용사들이 잠들어 있다. 무명용사의 묘는 미국을 수호하다 전사한 모든 장병들을 기리는 곳으로, 50톤이나 되는 대리석 묘비 앞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해병대 병사가 위병 근무를 하고 있는데 여름에는 30분, 겨울에는 1시간마다 위병 교대식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케네디 묘 뒤쪽의 언덕에는 남북전쟁의 영웅 로버트 리 장군의 집이었던 알링턴 하우스가 있다.
*워싱턴 DC의 면모
워싱턴 DC는 면적 174㎢. 인구 58만(2002), 주변도시를 합하면 400만에 이른다고 한다. 공식 명칭으로는 컬럼비아 특별구(district of Columbia). 메릴랜드주와 버지니아주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엔 행정 관련 기관이 중심이다.
1790년 초대 대통령 G. 워싱턴은 메릴랜드주와 버지니아주에서 분할 양도받은 포토맥강 연안에 합중국 수도로서 한 변이 16㎞인 정사각형의 부지에 컬럼비아특별구 건설을 결정하고, P.C. 랑팡에게 수도 건설계획을 맡겼다. 랑팡은 연방의사당을 중심으로 남·북과 동·서로 통하는 기본노선을 기준으로, 바둑판모양의 도로망과 연방의사당·백악관 등을 중심으로 한 방사선 도로망을 계획하였다. 또 곳곳에 광장이나 공원을 두는 설계를 했다.
이곳의 제1산업은 관광이며, 최대고용주는 연방정부인데, 연방정부의 직원은 워싱턴시 취업자 수 가운데 약 45%를 차지하고 있다. 연방의사당 주위에는 의회도서관·최고재판소 및 상·하의원회관이 있으며, 연방의사당과 백악관을 잇는 펜실베이니아 애버뉴 연변에는 국립공문서관(國立公文書館)·사법부·연방수사국(FBI)·국세국 등이 있고, 연방의사당과 워싱턴기념탑 사이에 내셔널갤러리와 스미스소니언연구기구, 과학박물관군의 자연사박물관·역사기술박물관·항공우주박물관 등이 늘어서 있다. 북서부 매사추세츠 애버뉴에는 전세계의 대사관·공사관이 집중되어 있다. 이곳의 주요 볼거리를 살피면 다음과 같다.
0펜타곤: 미국 국방부(國防部)의 속칭. 육·해·공군 3부를 통합한 최고군사기관을 말한다. 청사가 오각형 건물인 데서 펜타곤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1947년 국가안전보장법에 의해 창설되었으며 대통령 직속으로 3군 최고사령관인 국방장관이 군사행정을 통할한다. 1958년의 기구개혁으로 작전지휘계통을 대통령, 국방장관, 합동참모본부로 일원화하여 강화시켰다. 워싱턴의 포토맥강변에 있으며, 미국 예산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방대한 기구와 세계 최대의 관청 건물로도 유명하다.
o인쇄국: 주로 지폐와 우표를 찍어내는 인쇄소. 미국 내에서 유일하게 지폐를 인쇄하는 곳으로 재무성 발행 증권과 군의 증명서류, 백악관에서 쓰는 초대장도 이곳에서 인쇄한다. 매년 200억 달러에 상당하는 양을 찍어내는데 전시실이 있고, 투어를 통해 인쇄의 기본을 설명한 짧은 필름과 커다란 종이에 인쇄되어 나오는 지폐들의 인쇄 과정을 볼 수 있다. 관광객이 많은 곳이므로 일찍 도착하지 않으면 2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0포토맥 공원: 1912년 일본에서 벚나무 3200그루를 기증해 4월 초순정도에 워싱턴을 방문하게 되면 아름다운 벚꽃을 볼 수 있다. 3200그루가 일제히 활짝 꽃을 피운다. 바람에 흩어지는 꽃잎은 마치 눈 같다. 이 시기에는 화려한 벚꽃축제가 열리며 수영장과 테니스 코트, 골프, 놀이터, 피크닉 테이블 등 가족단위의 방문객들을 위해 좋은 코스가 마련되어 있어서 주말에는 피크닉 하러 온 사람들로 가득 메워진다.
0조지타운: 조지타운은 워싱턴의 북서쪽에 있는 조지 왕조풍의 오래된 거리로 포토맥 강의 항구 마을이다. 식민지 시대의 좁다란 돌길을 따라 늘어선 빅토리아풍의 저택들이 매우 아름답다. 관광뿐만 아니라 쇼핑으로도 인기가 높다. 이곳은 처음엔 항구로 번영했는데 식민지 시대의 모습을 짙게 간직하고 있다. 이곳은 워싱턴 주변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로 고급스런 레스토랑과 바, 나이트클럽, 부티끄 같은 고급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이 곳에 자리잡고 있는 조지타운 대학은 1789년 미국 최초의 고등교육 가톨릭 기관으로서 문을 열었다고 한다. 대학 근처의 가게들은 세련되고 개성이 넘친다. 덤버튼 오크는 1800년에 세워졌으며 조지타운의 화려했던 시대를 보여 주는 우아한 대저택으로 현재는 미술 박물관으로 사용되며, 특히 9개의 분수와 10개의 풀이 있는 큰 정원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곳이다.
관청과 박물관, 사무실이 즐비한 워싱턴의 중심가와는 달리 조지타운은 유럽의 소도시 같은 독특한 개성이 넘쳐 색다른 분위기다. 그리고 레크리에이션 공간으로 록 크리크 공원엔 테니스 코트, 사이클링과 승마용의 포장 도로, 야외극장, 자연 센터, 동물원, 물방앗간 등이 있어서 관광 겸 운동하기에 좋다.
*한국전쟁기념탑공원과 6:25의 기억
링컨기념관 옆에 한국전에 참전하였던 미군의 영예를 상징하는 한국전쟁기념탑공원(Korean War Veterans Memorial)이 있다. 이 공원에는 미군병사 5만 4천여 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실종자도 6천여 명이나 된다. 이때 사망한 유엔군은 68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 기념탑을 방문한다. 그리고 한국의 6:25라는 ‘소위 잊혀진 전쟁’을 되새긴다. 어찌 잊을 수 있는 전쟁인가? 모든 세계인이 잊어도 한국인은 잊을 수 없는 전쟁이다.
생명의 존귀함은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는 절대 가치다. 그런데 한국 전쟁에서는 유엔군 68만 명의 희생은 물론이고 수백만의 한국인 희생자가 있었다. 그리고 1천만이 넘는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이런 엄청난 희생의 원인은 어디에 있었던가? 그 배경은 결코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한국 강점과 세계 대전, 그리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투쟁, 강대국에 희생당한 약소국가의 한계, 그러나 무엇보다도 전쟁을 직접적으로 감행한 김일성 도당들의 잘못된 판단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을 직접 일으킨 김일성과 그 도당들은 마땅히 응징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응징되어야 하고 역사적으로 매장되어야 한다. 그들은 우리 민족에게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럼에도 좌편향된 일부 지식인들에 의해서 이념전쟁이니 하는 말로 미화하려는 경향을 발견하게 될 때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남의 생명을 볼모로 전쟁을 일으킨 자는 그 어떤 말로도 변명될 수 없다. 전쟁에 어찌 이유가 없을 것인가? 그것이 이념 침략이든 영토 침략이든 용인되어서는 안된다. 과거 영토확장의 영웅들, 징기스칸이나 알렉산더 등의 행적도 미화되어서는 안된다. 그런 점에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가 절실히 체험한 6:25의 전범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워싱턴을 관광하면서 더욱 절실히 느끼는 바는 왜 한국의 청와대며 국회의사당, 국립묘지 등은 내외국인의 관광 코스가 되지 못하고 있는 가에 대한 아쉬움이다. 광화문 네 거리에 우남 이승만 기념탑, 중수(中樹) 박정희 기념관이 없는 가에 대한 아쉬움이다. 역대 대통령의 기념관도 있어야 한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참으로 어려운 역경을 헤쳐야 했다. 재임 중에 공도 있고 잘못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모두가 어려운 한국적인 조건을 극복해야 했던 시련의 과정이다.
공은 찬양해야 하고 잘못은 반복되지 않도록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이런 긍정의 바탕에서 우리의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져야 한다. 모든 것을 무로 돌리고 비웃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선배들이 쌓아 놓은 정치적, 경제적 업적을 바탕으로 우리는 세계문화의 중심축에 다가서고 있다. 그것을 우리의 후배들이 승계해서 확고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서야 할 것이다. 부국강병이야말로 민족의 생존권을 지켜 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